• 내 기억의 랩 음악 몇 곡
    [대중음악] 어울리지 않는 연관성
        2021년 10월 04일 11:0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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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음악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장르가 된 랩 음악은 1970년대 미국에서 탄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내가 태어났던 1969년에 이런 음악이 있었다. 한때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던 희극인이었던, 혹은 희극인 중 한 분이었던 서영춘의 이 곡이다. (관련 영상 링크)

    내가 언제 처음 이 음악을 혹은 랩을 혹은 말을 들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초등학생 때였던 1970년대 후반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산에 가야 범을 잡고 물에 가야 고길 잡고” 부분이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찌개백반” 등을 내가 따라 했었다는 것도 기억난다. 물론 이것을 한국 랩 음악의 시초라고 부르는 것은 무리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서영춘은 초등학생 나의 영웅이었고, 자막 없이도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는 랩은 요즘도 드물다는 의미에서 이 ‘곡’을 선정해보았다. 내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랩 음악이라고.

    하지만 서영춘의 그 랩은 당시에는 코미디라고만 인식되었고, 나의 평가는 사후적인 것에 불과하다. 내가 처음으로 랩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이 곡 덕분이었다. 원곡은 1975년에 발표되었었는데, 1986년에 랩과 록의 결합으로 재탄생되었던 이 곡의 ‘재’ 히트 덕분으로 에어로스미스(Aerosmith)는 1980년대 중후반부터 1970년대보다 더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Run DMC와 함께 부르는 이 곡을 들어보자. (관련 영상 링크)

    나는 록 음악을 선호하는 편이었고, 랩에 관한 관심은 한정적이었는데, 1989년에 이 음악을 듣고 매우 놀랐었다. 홍서범의 이 곡 <김삿갓>은 서영춘의 코미디 냄새 짙은 그 곡을 제외하면 내가 들은 최초의 본격적인 한국어로 하는 랩이었다. (관련 영상 링크)

    가사도 인용한다.

    1807년 개화기에 태어나 어렸을때부터
    글공부를 좋아하여 10살 진후에 사서 삼경
    독파하고 이십세 전에 장원급제 했네
    안동 김씨에 본명은 김병연 어머니를 모시고
    아들 둘에 처 하나 중국의 이태백 일본의
    바쇼 그렇다면 보여주자 대한민국 김삿갓

    백일장 과거에서 조상을 욕한죄로
    하늘이 부끄러워 삿갓을 쓰고 이름도 버리고
    가정도 버리고 욕심도 버리고 양반 또한 버렸네
    그후로 한평생 삿갓을 쓰고 삼천리 방방
    떠돌아 다니니 사람들은 그를 보고
    김삿갓 김 삿갓 삿갓이라 하네

    김삿갓 김삿갓 나는 좋아 김삿갓
    김삿갓 김삿갓 너무너무 좋아 김삿갓
    천재로다 천재로다 김삿갓 김 삿갓
    삿갓 삿갓 삿갓 삿갓

    삿갓쓰고 죽장짚어 비람 부는대로
    구름처럼 떠돌며 착한 서민의 친구되어
    못된 양반 혼내준 의리의 사나이
    도인에는 도 시에는 시로 맞서 시짓기 내기에
    져본일이 없네 산첩첩 수중중 구경하고
    동가식 서가숙 방랑하네
    외롭고 고독한 방랑의 생활 술은 삿갓의
    유일한 친구 한잔하면 시상이 떠올라
    두잔하면 세상이 내것이라 한잔에 시한수
    또한잔에 시한수 신선의 목소리 무아의 경지로다

    김삿갓 김삿갓 나는 좋아 김삿갓
    김삿갓 김삿갓 너무너무 좋아 김삿갓
    천재로다 천재로다 김삿갓 김 삿갓
    삿갓 삿갓 삿갓 삿갓

    1989년의 이 음악은 사람들을 웃게 하기도 했지만, 나는 훌륭한 음악적 시도였다고 본다. 억지로 운(라임)을 맞추려고 모든 문장을 ‘요’로 끝내기도 하던 1990년대 시작되었던 초창기 랩 음악들보다는 훨씬 좋다고 보는데, 한국의 시는 영시나 한시와 같은 각운보다는 세 음절 네 음절 등을 활용한 ‘조’가 운율에 있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희극이 탄생시킨 ‘랩’ 음악을 살펴봐도 그것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흔히 ‘김수한무’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서영춘이 한 역할(서 대감)과 관련 있는 것이어서 이러했다.

    서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 세브리깡 무두셀라 구름이 허리케인에 담벼락 담벼락에 서생원 서생원에 고양이 고양이엔 바둑이 바둑이는 돌돌이

    서수한무를 발음한 후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터’를 제외하면 모두 4음절 3음절로 이루어진 랩이 이루어지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리듬감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외우는 것도 힘들었을 것이다.

    1992년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가 발표되었고, 한국에서도 랩 음악은 퍼져갔다. 그런데 랩을 한국에 널리 퍼뜨린 인물이 나를 랩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그는 서태지였다. 나를 경악하게, 그리고 실망하게 만들었던 랩 음악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 음악이었다. (관련 영상 링크)

    왜 경악했냐면 나는 이미 이 음악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관련 영상 링크)

    바쁘시다면 00:22 부분부터 10초만 들어보시기 바란다. <하여가>를 들으며 나는 서태지를 높게 평가했었는데, 이 노래를 들은 후 그에 관한 관심이 시들었다. 생각해보면 그는 끊임없이 미국에서 유행하는 음악들을 ‘참고’하며 자신의 음악을 만들었다. 그것도 재주이긴 하지만.

    서태지와 사이프러스 힐(Cypress Hill)

    서태지가 나를 실망하게 만든 후 나는 랩 음악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던 나에게 주어진 선물은 다음 곡이었다. 당시 알지 못하던 음악인 지누션의 음악을 들었던 이유는 아마 엄정화 때문이었을 것이다. 엄정화는 나와 같은 나이로 1969년생이다. 지금 들어도 이 음악은 매력적이다. 1997년은 지금으로부터 24년 전이지만 말이다. (관련 영상 링크)

    이것은 2008년 버전인데, 지누션도 멋지고, 엄정화는 11년 전보다 더 매력적이다. 화장의 차이인지도 모르지만.(관련 영상 링크)

    1990년대 미국에서는 ‘갱스터 랩’이라는 것이 퍼져간다. 그 가사들을 보면서 나는 랩 음악 전반에 관한 관심을 끊게 되었다. 폭력적이고 성 차별적인 가사들에 질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음악들도 있겠지만, 이 음악 정도의 가사들은 수없이 많았다.(관련 영상 링크)

    Ice Cube, <Black Korea>

    Every time I wanna go get a fuckin’ brew
    I gotta go down to the store with the two
    Oriental one penny countin’ motherfuckers
    That make a nigga mad enough to cause a little ruckus
    Thinkin’ every brother in the world’s out to take
    So they watch every damn move that I make
    They hope I don’t pull out a gat and try to rob
    They funky little store, but, bitch, I got a job
    “Look, you little Chinese motherfucker
    I ain’t tryin’ to steal none of yo’ shit, leave me alone!”
    “Mother fuck you!”
    Yo, yo, check it out
    So don’t follow me up and down your market
    Or your little chop suey ass’ll be a target
    Of the nationwide boycott
    Juice with the people, that’s what the boy got
    So pay respect to the black fist
    Or we’ll burn your store right down to a crisp
    And then we’ll see ya
    Cause you can’t turn the ghetto into black Korea
    “Mother fuck you!”

    빌어먹을 술을 사러 갈 때마다
    나는 두 한국인이 있는 가게에 가야 한다.
    작은 소동을 일으킬 만큼 깜**들를 미치게 하는
    동양의 돈 세는 니미***들
    세상의 모든 형제(흑인)들이 빼앗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들은 내가 하는 모든 빌어먹을 행동을 지켜봐
    그들은 내가 총을 꺼내서 털려고 하지 않기를 희망해
    코딱지만한 가게 하는 주제에, 이*아, 나는 직업이 있어
    “이봐, 이 중국 니미***들아
    난 너희들 것을 훔치려는 게 아니야, 나 좀 내버려 둬!”

    “******!”

    이봐, 이봐, 이것 좀 봐.
    그러니 가게에서 나를 따라다니지 마.
    아니면 너의 작은 중국요리 엉덩이가
    전국적인 불매운동의 표적이 될 거야
    사람으로 만드는 쥬스(사람을 짜낸다는 것), 그게 바로 그 소년(동양인 비하하는 표현)이 얻은 거야
    그러니 검은 주먹에 경의를 표해
    아니면 가게를 완전히 태워 버릴 거야
    그리고 나서 또 보자
    게토(흑인 거주지역)를 검은 한국으로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

    아이스 큐브는 자신이 꽤 반체제적인 가사를 쓴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가 여성과 동양인에 관해서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를 보면, 그는 절대로 올바른 의미의 저항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과격한 언사로 유명인사(celebrity)가 되었고, 영화배우마저 되어 부유한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2000년대에 나는 한국이든 미국이든 랩 음악을 거의 듣지 않았었는데, 2010년대가 되자 유튜브를 통해 예전에 발표되었지만 알지 못했던 몇 곡을 접하게 되었다. 그렇게 접했던 곡 중 하나로, 내가 가장 즐겨듣는 랩 음악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미 한 번 언급했었지만, 헤비메탈 밴드와 힙합 밴드가 함께 만든 이 음악은 여러모로 나를 즐겁게 했다. 여성과 남성, 흑인, 백인, 히스패닉 모두가 열광하는 공연은 매우 드물 것인데 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Anthrax with Public Enemy의 <Bring The Noise>이다. 록 음악 팬이나 힙합 음악 팬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노래라고 생각하는데, 영상도 재미있다.(관련 영상 링크)

    서영춘, 홍서범, 아이스 큐브, 퍼블릭 에너미를 한 글에서 다룰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던 일을 하는 것이 작가라고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필자소개
    정재영(필명)은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작가이다. 저서로는 「It's not Grammar 이츠낫 그래머 」와 「바보야, 문제는 EBS야!」 「김민수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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