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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탄소중립은 가속, 탈석탄은 감속?
    ‘전환 vs 감축’은 탄소민주주의의 모순
    [에정칼럼] 녹색성장위와 탄소중립위, 차이는 무엇?
        2021년 10월 01일 11:4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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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탄소 전환의 피해자는 누구인가? ‘정의로운 전환’의 이름으로 기후위기 취약계층 찾기가 한창이다. 2050 탄소중립위원회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감축 목표와 방식을 둘러싼 비판이 거세지자 정의를 방패 삼아 방어 논리를 편다. 일자리를 잃을 노동자와 그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을 호명한다. 미씸쩍다.

    탄소중립위원회가 8~9월에 운영한 탄소중립시민회의 설문조사(1~4차) 결과도 찜찜하다.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수립 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소’를 묻는 질문이 있다. 선택지가 많다. 그러나 나는 답할 수 없다.

    △ 배출 당사자가 부담을 져야 한다는 책임성, △ 탄소중립 목표 달성, △ 누구라도 소외거거나 배제되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 △ 현재 대비 발전할 수 있는 미래 기술의 혁신성, △ 미래세대와 다른 생물종을 배려하는 포용성, △ 비용 대비 효과 등 경제성, △ 증거 및 정보의 합리성, △ 기타 등(한겨레, 갈길 먼 탄소중립 시나리오…시민들 “피해 볼 노동자 최우선 고려해야”, 2021.9.30.).

    ‘탄소중립 목표 달성’과 그 원칙들을 동일선상에 나열해 놓았으니 출제 오류에 해당한다. 탄소중립 달성 시점(2050년 이전, 2050년, 2050년 이후 등)에 대한 문항이 별도로 있지 않는가. 엄연히 탄소중립을 전제로 하는 위원회가 최우선 고려 요소에 굳이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포함시킨 이유가 뭘까 궁금하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묻고자 해서일까.

    나머지 선택지들은 워원회가 8월에 공개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에 등장한다. “기후위기로부터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탄소중립 사회‘라는 비전을 실현할 원칙들로 제시된 바 있다.

    △ 책임성의 원칙(국제사회의 책임있는 구성원, 배출책임자 부담), △ 포용성의 원칙(세대 간 형평성, 다른 생물종 배려) △ 공정성의 원칙(정의로운 전환, 다양한 이해관계자 참여), △ 합리성의 원칙(합리적 예측, 과학적 방법론), △ 혁신성의 원칙(혁신생태계 조성, 기후위기 회복력 제고).

    이런 언어의 풍부함이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는 빈곤함에 그쳐 존경받을 가치보다는 무시할 가치로 취급받고 있어 안타깝지만, 나는 그 조사에 응답할 생각이 없다. 탈탄소 정의로운 전환의 정언명령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첫째, 모두를 위한 전환이 돼야만 정의롭다. 둘째, 사회전환 통해 1.5도 목표를 신속히 달성해야 한다. 셋째, 감축 목표와 정의로운 전환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정의로운 전환 담론의 우경화 분위기에서 협의의 정책대상으로 전락하는 것도 문제지만, 마치 감축 목표·시점 상향 조정과 정의로운 전환 대책을 맞바꾸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탄소민주주의 구조를 충실히 따르려는 정치적 올바름에서야 그럴 수 있다. 반면 생태민주주의의 발상은 다르다. 감축 속도·강도가 강화될수록 정의로운 전환 또한 강화되고, 반대로 그 속도·강도가 약하면 사회전환의 필요와 동력도 약해진다.

    탄소중립시민회의 설문조사 결과의 변화는 탄소중립위원회의 의도 여부와 상관없이 감축과 전환을 제로섬 관계로 만들어버렸다. 탄소중립을 2050년보다 더 빨리 달성해야 한다는 인식이 증가했지만,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시점은 2차 조사에서 4차 조사로 가면서 후퇴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노동자들의 일자리 문제, 즉 정의로운 전환을 고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탄소중립은 가속, 탈석탄은 감속,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렇게 서로 충돌하는 쟁점을 발견하는 것도 성과라면 성과다. 그러나 쟁점 형성 후의 재학습, 재숙의, 재선택의 과정이 바로 진행돼야 한다. 그러나 탄소민주주의는 닫힌 문을 열지 않는다.

    9월 30일, 탄소중립위원회 국민참여분과에 참여하던 4대 종단 종교위원 4인도 사퇴를 선언했다. 이들은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는 물론 위원회 구성의 왜곡과 운영의 파행을 비판했다.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1957년)과 같은 정의 구현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2009년, 저탄소녹색성장위원회가 2020년 온실가스 감축의 세 가지 시나리오를 공론화했던 사건이 떠오른다. 녹색성장위원회와 탄소중립위원회는 구성과 운영에서 겉으로는 차이가 있지만, 속으로는 차이가 없다고 보는 편이 맞겠다. 시민사회 포섭에는 신경을 썼지만, 결국 형식적 포섭에도 실패하고 말았다. 비록 늦었지만, 위원회는 사회전환을 추진하는 과정의 선택 편향, 인지 편향, 해석 편향, 처방 편향 등 전환관리의 실패에 주목해 교훈을 얻어야 한다.

    내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ㆍ녹색성장 기본법’이 시행되면,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로 이름이 바뀐다. 탈탄소 피해자나 희생의 공간의 주변화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그러나 탄소중립녹색성장을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로는 불가능하다. 정치적 측면의 불공정 결정와 참여 배제, 경체적 측면의 자원 포획과 탈취, 사회적 측면의 불평등과 취약성 심화, 생태적 측면의 환경 파괴와 침해에 맞선 기후정의·정의로운 전환의 주체 세력화를 통해서 가능한 일이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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