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총선과 사민당 부활
    [분석] '신호등 연정' 등 협상 험난해
        2021년 09월 29일 09:1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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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사민당이 16년 만에 1당을 차지했다. 하지만 집권으로 가는 길은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안갯속이다. 9월 26일 실시된 독일 연방 하원의원선거 개표 결과, 25.7%를 득표해 206석을 획득하며 1당을 차지했다. 집권 기민/기사연합은 196석(24.1%)을 획득해 2당으로 내려앉았다. 기민/기사연합의 득표율은 독일 통일 이후 최저치다.

    5월까지만 해도 25%가 넘는 지지율 1위를 기록하며 기염을 토했던 동맹90/녹색은 118석(14.8%)을 획득하는데 그쳤다. 창당 이후 최대 의석과 최고지지율이라는 기록은 다소 빛이 바랬다. 자민당은 92석(11.5%)을 차지하며 소폭 약진했다. 극우정당인 독일대안은 83석(10.3%)을 차지하며 의석수는 소폭 추락했지만 지역구 의석이 5석에서 16석으로 늘어나 소선거구에서 경쟁력이 확대되고 있다.

    좌파당은 4.9%를 득표해 봉쇄조항인 5%를 넘지 못했지만 지역구 3석을 차지해 단서조항에 따라 39석을 얻으며 기사회생했다. 독일 선거법은 봉쇄조항인 5%를 넘지 못하면 비례의석을 배분하지 않지만 지역구에서 3석 이상을 차지하면 득표비율만큼 비례의석을 배분하고 있다. 하지만 의석수가 반 토막이 난 선거결과에 따라 지도부 교체 등의 변화가 있을 전망이다.

    사진 설명 : 사진 좌측은 지역구 선거결과다. 사민당(붉은색)이 서남부와 서부를 제외하고 낙승을 거두었다. 기민당(검은색)은 서부 일부 주 정당으로 전락했다. 기사(파란색)당은 바이에른 주를 다시 석권했다. 극우정당인 독일대안(하늘색)은 작센 주와 튀링엔 주를 장악하며 지역조직이 계속 강화되고 있다. 

    올라프 숄츠의 좌회전과 지역구의 낙승

    독일 총선에서 공약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총리 후보의 지지율과 정치력이다. 그런데 총리 후보의 지지율이 지역구 후보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 오랫동안 다져 온 지역구가 총리후보의 지지율이 높다고 뒤집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사민당 총리 후보인 숄츠의 개인 지지율이 50%에 육박하고 집권 기민/기사 총리 후보인 라세트의 지지율이 25%를 머물자 패배주의에 익숙해져 있던 사민당의 지역조직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총력을 기울이며 움직였다. 예상은 적중했다. 숄츠의 지지율에 힘입어 지난 총선보다 두 배가 넘는 지역구 당선자를 배출하는 데 성공했고 그것은 곧 1당으로 연결됐다.

    사민당의 유력정치인들이 그렇듯 올라프 숄츠 역시 17살의 나이에 당의 청년조직인 ‘젊은 사회주의자’(Jusos)에 가입해 당 활동을 시작했다. 함부르크대학 재학 시절 두각을 나타내던 숄츠는 젊은 사회주의자 전국의장에 올라 7년간 재임하며 지도부의 신임을 받았다. 1998년 사민당의 전통적 우세지역인 함부르크에서 손쉽게 연방의원에 당선됐다. 함부르크는 사민당의 비주류, 즉 좌파 색채가 강한 곳이지만 숄츠는 주류와 함께 움직였다.

    2002년 동맹90/녹색과 2차 적록연정을 하던 사민당의 슈뢰더 총리는 노동법 개악을 위해 재선에 불과한 숄츠를 당 사무총장과 원내대표에 파격적으로 발탁했다. 슈뢰더 역시 젊은 사회주의자 전국의장 출신인 탓에 숄츠를 눈여겨 본 것도 있었지만 숄츠가 노동법 전문변호사라는 것도 작용했다. 숄츠는 동맹90/녹색 출신인 사민당 노동부장관과 손을 잡고 노동법 개악을 진두지휘했다. 숄츠는 독일 노동자들의 공공의 적으로 떠올랐고 당원들의 대거 탈당이 이어졌다. 이때 내각에 차관으로 참여해 개악에 동조했던 동맹90/녹색의 인물들이 현재는 당의 지도부를 장악하고 있다.

    사민당 당원들의 기억 속에 잊혀가던 숄츠는 2011년, 승부수를 던지며 전면에 등장했다. 붉은 함부르크(함부르크 시는 독립 주다)는 기민당과 동맹90/녹색의 약진으로 사민당은 시의회를 기민-동맹90/녹색에게 내주었다. 숄츠는 연방의원을 사퇴하고 함부르크를 탈환하기 위해 시장선거에 출마했다. 승부수가 성공해 사민당은 단독 과반 이상의 의석을 획득하며 시의회를 장악했다. 2015년 선거에서도 과반은 획득하지 못했지만 1당을 유지하며 동맹90/녹색과 적록연정을 이어갔다. 선당후사의 결단은 당원들 사이에서 숄츠의 인기가 급상승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2017년 총선에서 사민당은 다시 2당에 머물렀고 과반을 획득하지 못한 기민/기사연합은 다른 정당들과의 연정 협상이 실패로 돌아가자 사민당에게 다시 손을 내밀었다. 기민/기사연합과의 대연정 탓에 당의 지지기반이 계속 무너지고 있는 사민당의 지역조직과 당원들은 반발했지만 당의 주류는 대연정에 참여하는 결정을 내렸다. 협상 결과 사민당에 주어진 부총리 겸 재무부장관 자리는 숄츠에게 돌아갔다. 당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자리에 오른 숄츠는 여세를 몰아 2019년 당대표 선거에 출마했지만 대연정을 반대하는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 이때만 하더라도 숄츠가 차기 총선에서 사민당의 총리 후보가 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다.

    코로나가 시작되자 모든 정치는 그에 따라 발생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재무부장관을 겸하고 있던 숄츠는 늘어나고 있는 무임금 휴직노동자와 자영업자들을 소득과 수입을 보전해 주기 위해 독일 역사상 최대의 재정안을 들이밀었다. 기민/기사연합뿐만이 아니라 사민당 주류조차 당황할 정도였다. 하지만 여론과 유권자들은 숄츠편이었다. 보수적인 재정론자였던 숄츠는 좌회전을 선택하며 전국적인 인물로 떠올랐다. 총선이 1년도 더 남은 2020년 여름, 사민당은 숄츠를 총리 후보로 지명했다.

    올라프 숄츠 사민당 총리 후보

    총리 후보로 지명되었지만 당의 지지율은 전후 최저치까지 떨어지는 등 숄츠에게는 최악의 조건이었다. 숄츠의 개인 지지율은 오르고 있었지만 당 지지율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2021년 봄, 선거가 본격화되면서 사민당의 눈금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숄츠는 2차 적록연정 당시에 도입된 노동법 개악을 원점으로 돌리겠다고 약속하며 노동자들에게 호소했고 유권자들은 재무부장관 숄츠를 떠올렸다. 과거와 달리 기후위기에 대한 공약도 적극적으로 전면에 내세웠다. 여름이 끝나자 동맹90/녹색에 이어 3위까지 내려갔던 사민당은 지지율 1위를 다시 회복했다. 숄츠의 좌회전이 16년 만에 사민당을 1당으로 만든 것이다.

    사민당 집권 시나리오

    총선 결과, 연방의석은 초과의석이 137석까지 늘어나면서 역대 최고인 735석을 기록했다. 동맹90/녹색만이 아니라 좌파당까지 포함해도 과반인 368석에 미달한다. 선거기간 동안 숄츠는 유권자들을 의식해 좌파당을 제외한 적록연정을 공약했다. 기민/기사연합이 “좌파당이 참여하는 연정을 독일을 파국으로 몰고 갈 것”이라고 물고 늘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좌파당을 포함해도 연정 구성이 불가능한 최악의 교착상태에 빠졌다. 적녹적 소수연정이라는 시나리오도 있지만 16년 만에 집권을 눈앞에 둔 사민당이 이런 불안정한 연정을 받아들일 가능성과 다른 정당이 동의해 줄 가능성은 아주 낮다.

    사민당이 집권하는 유력한 시나리오는 동맹90/녹색에 이어 자민당을 포함하는 소위 ‘신호등 연정’이다. 문제는 물과 기름 같은 관계인 동맹90/녹색과 자민당의 타협이 가능할까 하는 것이다. 동맹90/녹색은 기후위기 시대에 대응하는 녹색공약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지지율이 급성장한 반면, 친기업 정당인 자민당은 녹색에 대해 광적인 알레르기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2030년까지 내연기관 자동차의 판매를 전면 금지하겠다는 동맹90/녹색의 공약에 대해 자민당은 독일 경제를 파탄시키는 주장이라며 강력한 반대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민당이 신호등 연정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동맹90/녹색의 공약을 완화시키는 방안을 찾는 것이다. 다만 동맹90/녹색의 총리 후보인 아날레나 베어보크가 야망이 크다는 점과 당의 주류가 “자전거를 타는 생태자민당”이라고 불리는 녹색우파인데다 과거 적록연정의 향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변수다.

    4당이지만 원내 6당 중에 유일하게 지역구 당선자가 없는 자민당은 대표인 크리스티안 린트너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 바꿔 말하면 린트너의 지지율에 따라 당의 지지율이 움직이고 비례의석 숫자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린트너의 당 장악력은 강력하다는 의미다. 린트너는 탄소국경조정세 도입과 배출권거래제도(ETS) 편입에 찬성하는 등 기존의 자민당과는 달리 열린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배출권거래제는 시장기반의 정책이기는 하지만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한 정책으로 자민당 내에서는 부정적인 기류가 강한 편이었다. 린트너가 연정 참여의지가 얼마나 강한지가 관건이다.

    2017년 총선이 끝나고 연정을 구성하는 데는 4개월이 걸리며 해를 넘겼다. 숄츠는 크리스마스 전에 연정을 끝내고 싶다는 의견을 나타냈지만 독일 언론들은 일제히 부정적인 기사들을 내보냈다.

    필자소개
    인문사회과학 서점 공동대표이며 레디앙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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