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의 몸 국가경쟁력 도구 아니다"
        2006년 12월 13일 03:5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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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부팽창,미열,질염,우울증 발생 / 정상 난소 조직을 연구용으로 의도적 적출 / 난치병 걸린 동생을 이용해 난자 채취를 권유 / 난자 기증 서식이 연구의 목적과 난자의 용도에 대해 설명한 흔적이 없고, 레지던트에 의한 일방적 요식행위로 판단돼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음 / 난소절제자 중 1명의 환자기록은 수술지에는 낭종만을 절제한 것으로 돼 있으나 조직병리검사에서는 양측 난소 모두 절제된 것으로 기록돼 조작 혹은 실수를 확인할 필요가 있음…”

    지난 24일 보건복지부 국가생명윤리위는 ‘황우석 연구의 생명윤리 문제에 대한 최종보고서’라는 의미심장한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보고서가 나오기까지 국가생명윤리위 내부의 정치적 공방을 보도하던 언론들은, 여성주의 저널 <일다> 외에 막상 이 보고서가 나온 뒤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오랜 고민 끝에 수락한 인터뷰

    황우석 사건 1년이 지난 지금. 핵심 연구진들은 다시 복직되었고, 황우석 전 교수는 재판을 받고 있다. 또 황우석 사태 제보자는 지인들의 돕기 모금 운동을 통해 다시 복직의 의지를 다잡고 있다. 그러나 황우석 난자 채취 피해자들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었고, 그들이 지난 4월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아직 재판 날짜조차도 잡히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황우석 난자 채취 피해자들은 그 누구에게도 아무런 사과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모두에게 잊혀졌다. <레디앙>은 난자 채취 후유증으로 직장마저 잃고 국가, 미즈메디 병원, 한양대병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던 난자 채취 피해자 랑이씨(가명, 29)를 2주 간의 인터뷰 요청 끝에 만날 수 있었다.

    서서히 건강을 회복하고 있는 그녀는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있었으며, 이젠 피해자가 아닌 ‘소송 당사자’라고 불러주기를 요청했다.

    황우석 ‘소송 당사자’인 랑이씨(가명, 29)를 지난 12일 늦은 9시 녹사평의 한 찻집에서 만났다. 그녀의 외모는 첫눈에 ‘선입견’ 을 갖게 만들기 충분했다. 바람불면 날아갈 듯 한 몸, 새 하얀 피부의 주먹만한 얼굴, 작고 여린 목소리, 천진난만한 미소 등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랑이씨의 첫 인상은 한 눈에 봐도 ‘사람 잘 믿고, 상처 받기 쉬운 사람’일 것이라는 편견(?)을 심어 주었다.

    그녀도 외모가 주는 선입견을 이미 잘 안다고 했다. 요즘 랑이씨는 타인이 자신의 외모에 기대하는 선입견에 배신을 때리고(!) 있다. 타인의 부탁을 거절하는 법, 아닐 땐 아니라고 말하고, 권리에 대해 당당히 말하는 등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데 주저함을 없애고 있다고 한다.

    외모에 대한 기대에 배신을 ‘때리기’ 위해

    "주변 사람들이 말하길 얼굴이 많이 편해졌다고는 해요. 근데 말이나 행동이 예전에 비해 좀 까칠해 졌다고 하네요. (웃음) 그런 일을 겪고도, ‘성장’하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죠."

    이에 기자는 아무리 사람을 잘 믿어도 <황우석 – 나의 생명 이야기>라는 책 한 권에 감명을 받아 ‘생면부지’의 황 박사에게 난자를 기증 할 수 있느냐고 다짜고짜 따져 물었다. 사연인 즉, 랑이씨는 평소에도 ‘장기를 기증 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고, 인간에 대한 믿음이 깊은 사람이었다.

    "삼촌이 타인에게 장기를 기증 받아 건강을 회복했어요. 그 당시 제가 옆에서 직접 간호를 하면서 생명에 대한 소중함, 장기 기증의 고마움, 인간에 대한 신뢰 등 많은 걸 경험적으로 배웠죠. 그래서 저도 기회가 된다면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장기를 기증하겠노라고 결심을 했었어요."

    랑이씨는 지금도 난자 채취 후 각종 부인병 등의 후유증으로 ‘자기 돈’과 ‘시간’을 들여 ‘기약없는’ 치료를 받고 있다. 몸은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으며 서서히 회복되고 있지만, 진심에 대한 배반이 남긴 마음의 상처는 "그 고집이 여간내기가 아니"라고 말한다.

    "아마 황우석 사태가 터지지 않았더라면, 전 지금도 ‘황빠’ 로써 충실한 역할을 했을 거예요. (웃음) 게다가 제 난자까지 기증 돼 있는데, 당연히 잘 되도록 응원해야죠. 또 성격상 남을 의심한다는 건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일이 안 터졌으면 지금도 ‘황빠’였을 거예요"

    그녀는 "비록 내가 손해를 볼지언정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다라는 강박관념에 오랜 세월 짓눌려 살았던 것 같다"라며 "이제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니 마음이 편하다"라고 담담히 덧붙였다.

    그 성장의 시발점은 ‘황우석 난자 불법 채취 소송 제기’인 듯싶다. 한없이 여리기만 했던 랑이씨의 목소리가 소송에 대해 운을 떼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랑이씨가 아니 였다면, 소송마저도 없던 일로 돼버릴 참이었다.

    "막상 소송을 제기하려 하고 보니, 여자라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피해 당사자들이 누구도 나서지 않았어요. 그래서 없던 일로 그냥 묻힐 뻔했죠.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숨긴다고 달라질 건 없으니 저라도 나서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여태껏 살아 온 것처럼 또 가슴에 묻어두면, 평생 후회 할 것 같았어요. 그냥 덮어버리면 저 같은 피해자가 생길 텐데… 지금껏 살아왔던 방식대로 침묵 할 순 없었어요."

    그러나 랑이씨의 용기에도 불구하고 소송의 전망이 그리 꼭 밝은 것만은 아니다. 게다가 소송 당사자인 국가도 피해자라고 발뺌하고, 사회적 분위기 또한 ‘여성 개인의 책임’으로 환원하고 있다.

    황우석을 ‘신화’로 만든 국가는 무죄인가 

    "국가도 속았다고 하는데,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여지가 정말 없었을까요? 윤리적으로나 법률적으로 미리 검증하고 폐해를 막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고민없이 황우석 박사를 ‘신화’로 만들어 준 건 바로 국가였죠. 여성의 건강권에 대해 국가와 시민들이 얼마나 무관심한지 만천하에 드러난 대표적인 사건이죠."

       
      ▲ 인위적인 난자 채취 모습
     

    난자 채취의 폐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부인성 질환으로 시작해, 불임,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데, 이는 개개인의 건강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 아직 그 폐해에 대한 공식적 통계와 연구가 없다. 하지만 폐해의 유무와 상관없이 이에 앞서 선행돼야 할 고민이 있다. 여성의 몸은 국가 경쟁력을 위해 도구로 쓰여도 괜찮은 것일까?

    "난자는 그냥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저 또한 처음에 그랬듯, 여성의 몸, 건강, 인권에 대해 우리 사회는 너무 무지 한 것 같아요. 난자가 어떻게 만들어 지고, 또 과배란의 폐해가 어떤지 아무도 알려 하지 않고 또 그런 것들에 대해 그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죠. 우리는 그렇게 남성주의적 시각으로 교육을 받아 왔어요. 그러다 보니 여성의 몸이 그 어떤 검증 없이 국가 발전의 도구로 쓰여도 아무런 문제 제기가 없는 거죠."

    여성의 난자는 한 달에 한 번 생명주머니인 난소에서 하나씩 배출된다. 연구과정에서 이용된 과배란은 호르몬제 등으로 난소를 자극시켜 한 번에 수 십 개의 난자를 배출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자연의 질서에 도전하는 것으로서 여성의 몸에 ‘쓰나미’ 같은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난자 채취 여성의 몸에 ‘쓰나미’ 같은 희생 요구하는 것

    이에 랑이씨는 여성의 인권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딸과 아내에게도 ‘난자 정도(?)’는 국가 발전을 위해 기증하라고 당당히 권유 할 수 있겠는가?"라고 묻고 싶다며, 황우석의 난자 채취를 ‘개인적 문제’로 돌리는 사회적 분위기에 아쉬움을 표했다.

    "언제까지 국가가 그리 발뺌을 할지 모르겠어요. 오히려 황우석 사태를 계기로 국가가 여성의 인권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 시키면서 같이 고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는데, 지금 당장은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래서 소송의 승패보다는 그 과정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아는 것이 더 중요해요."

    일년 전 황우석 난자 채취 피해자라고 보도됐던 랑이씨는 이제 자신을 황우석 소송 당사자라고 소개하며 침묵 대신 여성의 인권에 대해 말하기를 선택했다. 덕분에 그녀는 ‘국가’가 해야 할 역할마저 대신 짊어 진체 지난한 싸움을 시작하고 말았다.

    “이젠 가만히 있지 않으려구요. 남을 배려하는 것 못지않게 제 자신을 주체적으로 지키고 사랑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미 지나간 과거를 생각하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구요. 다만 제가 말을 함으로써 여성의 건강권이 사회적으로 관심을 얻고 또 제 2, 3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는데 도움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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