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성하는 마음으로 단식을 시작한다"
    By tathata
        2006년 12월 13일 02:07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고층빌딩 숲 속에 둘러싸인 여의도 공원 한 켠에 천막이 쳐졌다. 12월 찬바람이 부는 아스팔트 위에 70여명이 3박4일간 집단단식을 하는 공공연맹 단식농성단의 숙소다.

    공공연맹은 지난 12일부터 ‘비정규법 노동법 입법 무효화’ 등을 요구하며 오후 7시 문화제를 시작으로 여의도공원에 천막을 쳤다. 동원된 텐트 수만 하더라도 16개.

    이날 밤 9시 단식농성장. 수십여명의 대표자들이 단식을 위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농성장은 바로 곁에 있는 사람의 얼굴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희미한 불빛으로 인해 매우 어둑했다. 

    단식에 돌입하는 사람들은 공공연맹이 지급하는 마그밀(갑작스런 단식으로 인한 위의 부담을 줄여주는 약)과 구충제를 먹었다. 한 단식 참가자는 “추운 겨울에 아스팔트 위에서 단식한다고 하니깐 아내가 꼭 가야만 하냐고 말리더라”고 말했다.

       
      ▲ 서울 여의도공원에 마련된 공공연맹 단식농성장
     

    농성장 안의 불빛은 너무도 희미해 사람들은 핸드폰 액정 불빛을 서로의 얼굴에 쏘이며 인사를 나눴다. 노트북 화면의 불빛도, 후레쉬도 동원됐다. 농성장 한 가운데에는 금단의 커튼이 쳐졌다. 70여명에 이르는 남녀가 협소한 공간에서 함께 동거에 들어 가다보니 생긴 일이다.  

    농성장에 모여 앉은 대표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교육과 회의를 열기 시작했다. 의료연대지부의 조합원들은 핸드폰 불빛을 문서에 쪼이며 환노위를 통과한 로드맵 법안이 미칠 영향을 읽고 있었다.

    “필수유지업무에 대해서는 영역과 규모 등에 대해서는 시행령에서 규정되고, 노사합의가 도출되지 않을 경우 노동위원회에서 판정하기로 했어요. 사실상 노조의 파업권을 막겠다는 의도나 다름없어요.” “조합원들은 직권중재가 사라졌다고 좋아했는데 이런 일은 잘 모르고 있었어요. 이번에 많이 알려서 조합원들에게 실상을 알려야겠습니다.” 의료연대지부 대표자들은 어둠 속에서 글씨를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다른 자리에서는 자활, 보육, 복지 분야의 대표자들이 모여 한나라당의 내년 정부 복지예산을 삭감하려는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었다. 한 대표자는 “한국의 복지예산이 OECD 국가에 비해 현저하게 낮음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이를 삭감하는 것을 비난은 하되, 정확하게 무엇을 겨냥할 것인가를 말해야 합니다. 복지예산 증가인지, 정부 예산안대로의 통과인지를 구체적으로 잡아야 해요”라고 말했다.

    단식농성장의 이같은 회의는 군데군데서 열리고 있었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불을 밝히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공공연맹이 이 시간 단식농성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자조감도 나왔다. 금속연맹에 비해 투쟁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에 단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고민이 그것이다.

    성홍용 공공서비스노조 인천상공회의소지부장은 “98년 노동법개정투쟁 이후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 양산되는 비정규법안이 통과되든, 로드맵이 통과되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며 “이 법이 지금은 아니더라도 10년, 20년 나를 혹은 나의 후손을 겨냥한 법이 될 수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조합원들마저도 나한테 직접 걸리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거리에 뛰쳐나가지 않으려 주저하고 있다”며 “사람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파이를 누가 가지고 가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내 파이를 키우려고만 한다”고 말했다. 곁에 있던 사회연대연금지부의 이인화 교육국장은 “사실 로드맵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자세하게 모른다”며 “여기 단식 와서 배워보자는 결심으로 왔다”고 말했다. 

    권수정 공공연맹 부위원장은 “비정규법, 노조법, 산재법…이렇게 몰려오는 정부의 공격에 어떻게 방어를 해야 할지, 도대체 어떻게 전열을 가다듬어야 하는지 방법을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밤 12시가 훌쩍 넘었는데도 잠을 청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잠자리가 불편하기도 하지만, 잠을 청하기에는 속에서는 수심과 함께 무엇인가가 끓고 있는 것 같았다. 

    "반성하는 마음으로 단식을 시작한다"

    [인터뷰] 양경규 공공연맹 위원장

    -공공연맹이 단식농성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비정규법과 로드맵 법안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력한 거부의 의미가 있다. 이 투쟁을 하는 것은 무엇인가. 면면히 이어져온 민주노조운동을 압살할 노동법이 상임위를 통과했는데, 이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운동은 죽은 운동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강력한 저항을 단식투쟁을 통해 확인하고, 이후에 현장을 책임 있게 조직하는 결의를 확인하려 한다. 어떤 결말을 낳든지 간에 노동기본권 쟁취해야 한다. 정기국회 투쟁 넘어서서 이 투쟁을 이어나가야 한다.

       
      ▲ 양경규 공공연맹 위원장.
     

    -단식에 들어가면서 느끼는 소감은.

    =단위노조 대표자들에게 이야기 했다. 98년 첫 국회 앞 투쟁 이후 9년째 국회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상정된 법안을 다음 국회에 넘기는 것 뿐 대국회 투쟁에서 성과를 만들어 낸 적 없었다고. 입법쟁취에서 저지로 방향을 돌려온 참담함으로 또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고.

    또다시 단식투쟁하면서 정말 복수하고 싶다. 노동자를 하나로 묶는 투쟁을 한번 만들어서 권력과 자본의 파열구를 만들어 내고 싶다. 현장에서 그만큼 했으면 좋겠다. 반성하는 마음으로 단식투쟁을 시작한다.  

     

    노사관계 로드맵이 통과되면 특히 공공연맹에 치명적인 타격이 온다고 하는데, 실제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됩니까.

    =직권중재보다 훨씬 못한 파업권을 원천 봉쇄하는 법안이다.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단위노조 노사교섭의 의미가 없어진다. 최소 유지업무에 대해 노사간의 협정이 체결되지 않으면 노동위원회가 판정하기로 했다.

    그간 노동위원회가 개입, 관여한 방식을 보면 절대적으로 사용자 편에서 업무를 지정할 가능성이 높다. 파업권이 봉쇄됨으로 인해 교섭력은 현저하게 약화되는 것이다. 공공연맹 11만 7천여명 60%가 필수공익 사업장이다.

    -민주노총 총파업이 잘 안되고 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위기의식에 비해 현장 분위기가 뜨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민주노조운동을 위해 총파업은 불가피하다. 850만 비정규직을 길바닥으로 내몰지 않기 위해서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특히 공공연맹이 그만한 투쟁을 못하는 것은 그 책임이 위원장이 있다.

    이 자리에서 단식농성 대표자들이 정말 고민해야 하는 것은 금속만의 총파업만으로 안 되고, 공공 또한 총파업의 한 축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연맹이 그 중요한 위상에도 불구하고 역할을 제대로 못는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러나 기계적으로 금속과 공공을 비교할 수는 없다.

    -공공연맹의 총파업 참여율이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철도, 발전, 항공의 파업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다. 그들은 투쟁은 열심히 하지만, 정치적 파업이라고 하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근본적인 문제가 걸려있다. 민주노조운동은 망해가고 있다. 현재의 토대와 구조로는 어떤 총파업도 완벽하게 하기 어렵다.

    민주노총 조합원의 80%가 정규직이다. 당장 비정규직의 이해가 아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싸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토대와 운동의 정신의 괴리가 발생하고 있다. 나아가야 할 방향과 토대가 일치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 운동의 토대와 구조를 일치시키기 위한 대책과 방안을 수립하지 않으면 총파업이 안된다는 얘기는 하기 어렵다. 결정적인 고리를 해결해야 한다.

    -공공서비스노조가 지난 11월 30일 출범했습니다. 의의와 전망 그리고 남은 과제는 무엇입니까.

    =공공부문의 산별노조는 단일업종이 아니다. 금속, 보건, 화섬이 단일업종 산별인 것과든 대별된다. 자본의 성격으로만 보면 공공도 있고 민간도 있지만, 공공서비스로 묶였다.

    가스, 문화예술, 연구소, 민간 엔지니어링, 항공조종사 등, 이 구조를 하나로 묶어 세워서 산별로 만들어가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업종의 독특한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할 수 없으면 계급이 하나 되는 계급적 산별노조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공공산별은 연대와 계급을 중심으로 지역산별노조를 고민하고 있다. 그것을 관철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닌가에 따라 진로가 정해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소산별로 분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 중심과 철학을 가진 확실한 지도력과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