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벌받지 않는 범죄
    [시선] 가정이라는 말로 폭력을 덮지 말라
        2021년 09월 24일 09:4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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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신문의 글을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자.

    22일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가정폭력사범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25만 4254명이 검거됐다. 2016년 5만 3511명, 2017년 4만 5264명, 2018년 4만 3576명, 2019년 5만 9472명, 2020년 5만 2431명으로 연평균 5만명을 웃돌았다. 같은 기간 가정폭력으로 형사입건된 인원 가운데 0.8%인 2062명만 구속됐다. 가정폭력 사범의 79%는 남성이었다. 연령별로는 40대가 30%로 가장 많았고 30대 24%, 50대 23%가 뒤를 이었다.(출처 링크)

    구속률이 0.8%라는 것도 놀랍지만, 이 부분도 놀랍다.

    이 기간 동안 실제 112 신고 건수는 125만 건이 넘었지만 실제 검거 검수는 22만여건(17.6%)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출처 링크)

    신고되었지만 검거되지 않는 경우가 82.4%라는 것인데,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정부가 발표한 폭력범죄 처리 현황을 살펴보자.

    도표 설명 : 출처-대검찰청 (검찰통계시스템)

    구공판 : 검사가 법원에 피의자에 대한 정식재판을 청구하는 것
    구약식 : 검사가 법원에 피의자에 대해 벌금형이 선고되는 약식재판을 청구하는 것
    불기소 : 검사가 수사결과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 등의 사유가 있을 때 기소를 하지 아니하는 처분(혐의없음, 기소유예, 죄가안됨, 형사미성년, 공소권없음, 각하)
    기타 : 기소중지, 참고인중지, 가정보호사건송치, 타관이송, 성매매보호사건송치 등
    미제 : 검찰에 접수된 사건중 현재 수사중인 상태

    이를 가공하여 접수된 폭력 사건의 처리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비율로 보자.

    폭력 사건의 경우 불기소율은 5년 연속 50%를 넘어서고 있지만 매년 감소하고 있다. 또한, 구공판+구약식, 즉 정식 재판이든 약식 재판이든 공판에 넘겨진 이의 비율은 커지고 있다. 2020년에는 25.5%까지 높아졌음을 볼 수 있다. 이는 가정폭력 사건과는 전혀 다른 비율을 보인다.

    가정폭력과 가정폭력을 제외한 폭력범죄가 기소되는 비율의 차이를 명확히 살필 수 있도록 글을 하나 인용하자.

    가정폭력처벌법은 가정폭력을 처벌할까?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주 1), 2011년부터 2018년 7월까지의 가정폭력 기소율은 7.1%에 불과하다. 2017년 폭력 범죄 기소율은 25.8%인 데 반해 가정폭력 기소율은 9.6%에 그쳤다.(출처 링크)

    가정폭력 범죄의 기소율은 그것을 제외한 폭력범죄와 비교해 현저히 낮음을 알 수 있다. 남편이 때리든 아내가 때리든 그것은 폭력이다. 부모가 자식을 때리든 자식이 부모를 때리든 그것은 폭력이다. 하지만 이 사회에는 오래된 착각이 존재한다. 가정폭력은 가정 내부의 일이며 가정 내부의 일은 사회적인 것이 아니라는 착각 말이다.

    레디앙에 연재되었던 소설 <김민수전> 2화의 한 장면을 인용한다. 이는 작가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80년에 실제로 겪었던 일이다.

    비명 소리와 함께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민수의 옆집에서 피투성이가 된 옆집 아주머니가 밖으로 나왔다. 민수는 밖으로 나갔고 많은 동네 사람들도 그랬다. 집 밖에서도 옆집 아저씨의 폭행은 계속되었고 민수가 놀라게도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람들은 남의 집안 문제나 남녀 간의 문제에는 끼어들지 않는다고 했다. 시퍼렇게 부은 아주머니의 얼굴이 민수의 눈에 새겨졌다. (출처 레디앙 링크)

    1980년과 2021년을 비교해보자. 사람들의 가정폭력에 관한 인식은 많이 달라졌는데,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보면, 법이 오히려 지체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1조의 법의 목적 자체가 의심스럽다.

    제1조(목적) 이 법은 가정폭력범죄의 형사처벌 절차에 관한 특례를 정하고 가정폭력범죄를 범한 사람에 대하여 환경의 조정과 성행(性行)의 교정을 위한 보호처분을 함으로써 가정폭력범죄로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며 피해자와 가족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출처 링크)

    “가정폭력범죄를 범한 사람에 대하여 환경의 조정과 성행(性行)의 교정을 위한 보호처분을 함으로써 가정폭력범죄로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며”라는 문구는 현실과 유리되어 있다. 보호처분을 통해 ‘성행(性行)의 교정’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은 많은 경우 환상에 불과하며,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며’라는 표현은 법 자체가 관념적 궤변에 기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건강한 가정’이 법에 나올 말인가? 그게 무엇인가? 가정의 평화는 또 무엇인가? 혹시 그것은 잠재적 폭력범과 아슬아슬한 삶을 이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피해자와 가족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라는 말은 무슨 얘기인가? 가장 흔한 예를 들자. 남편이 아내를 폭행했다고 가정하자. 피해자는 아내이고 가해자는 남편인데, 남편은 당연히 가족구성원이다.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이 법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인권을 보호할 목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 누구라도 인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다른 법에도 그런 문구가 들어갈까?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 약칭: 폭력행위처벌법 )

    [시행 2016. 1. 6.] [법률 제13718호, 2016. 1. 6., 일부개정]

    제1조(목적) 이 법은 집단적 또는 상습적으로 폭력행위 등을 범하거나 흉기 또는 그 밖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폭력행위 등을 범한 사람 등을 처벌함을 목적으로 한다.(출처 링크)

    그렇다. 이 법은 “처벌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폭력범의 인권은 언급하고 있지 않다. 왜 다를까? 간단하다. 가정 내부의 일은 사회의 일이 아니라는 인식을 법 제정과 개정 당시의 다수의 국회의원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간단한 수학 관련 질문을 해 보자. 여기 김모라는 남성과 이모라는 여성으로 이루어진 가족이 있다. 그 가족이 한국 사회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인가?

    ⓒ 연합뉴스

    역대 정부들은 누군가가 참혹하게 죽으면 그때마다 대책을 내놓는다 어떤다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가정폭력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고, 살인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처벌이 모든 범죄를 없앨 수 없음을 알지만, 처벌이 없을수록 혹은 약할수록 범죄는 더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다.

    가정폭력을 ‘특례’로 취급하는 것은 긍정적인 일일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부정적인 효과를 양산하고 있다. 결론을 내리자면 이렇다. 우선,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반드시 개정되어야 한다. 법의 목적부터 바꿔야 한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인권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뉘앙스의 문구도, 가족의 평화니 건강한 가정이니 하는 표현도 삭제되어야 한다. 보호처분을 줄이고 처벌을 늘리는 기능을 할 수 있는 법으로 재탄생해야 한다. 약식 기소에 의한 벌금형의 선고는 피해자들을 계속되는 폭력에 노출되게 하므로, 이 비율을 낮출 방안도 법에 반영되어야 한다.(주 2)

    두 번째로, 경찰의 가정폭력에 관한 대응이 획기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이런 종류의 기사는 거의 매년 반복된다. (관련 기사) (관련 기사)

    늦장 대응이나 실수 등으로 인해 살릴 수 있었던 이들이 죽은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게다가 가정폭력 신고 대비 입건 비율은 너무나 낮다. 인용한 기사에 따르면 “지난해 가정폭력으로 112에 신고된 24만8천660건 중 입건 처리된 건수는 4만1천720건에 불과했다.”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5/6의 사건들을 입건하지 않았던 것인가?

    세 번째로, 법조계가 달라져야 한다. 검사와 판사들은 어떤 이의 말을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나에게는 죄가 없다.”라는 말을 일단 의심하는 이들 아닌가? 그런데 왜 유독 가정폭력과 관련해서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므로” 기소하지 않거나 유죄 선고를 하지 않거나 낮은 형량을 선고하는가?

    배우자에게 폭력을 당할 때 피해자는 신고한 후에도 마음이 흔들릴 수 있는데, 한국 사회에서 부부는 경제 공동체이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많다. 배우자에게 벌금이 선고되는 경우 사실 자신의 재산도 줄어드는 것일 수도 있고, 배우자가 실형을 선고받는 경우 경제적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그래서 처벌을 바라지만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진술할 수 있다. 하지만 범죄가 명백하다면 범죄자는 처벌되어야 한다. 모든 범죄자는 누군가의 자식이고, 다수의 범죄자는 누군가의 배우자이다. 그것 때문에 처벌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듯이, 가정폭력도 누군가의 배우자이기 때문에 처벌되지 않을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가정폭력과 성폭력에 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폭력은, 가정에서 이루어지든 ‘애인’ 사이에서 이루어지든, 폭력임을 배워야 한다.

    이 글과 관계없는 것으로 보이는 사진을 싣고자 한다.

    왼쪽 사진은 탈레반의 유죄 선고로 코를 잃었다가(2010년, 당시 19세) 인공 코를 부착하고 살아가는 아이샤의 것이고, 오른쪽 사진은 남편에게 ‘부부싸움’ 중 코를 잘린(2016년, 당시 20세)) 레자 굴의 것이다. 탈레반의 정책에 의한 폭력과 부부싸움에서 비롯된 폭력은 무엇이 다른가. 만일 레자 굴이 자신의 품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생각하여 남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남편은 처벌받아야 한다. 이런 잔혹한 범죄가 처벌되지 않는가면 또 다른 아이샤와 레자 굴이 생겨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 아닌가.

    위의 사진은 한국 사회의 가정폭력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말할 분은 있는가? 한국 사회에서 코를 베는 일은 거의 없겠지만, 그것보다 더 잔혹한 살인과 폭력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가정이라는 사회 내에도 말이다.

    <주석>

    주 1) 법무부, 정춘숙 의원실 제공 자료(2018년 7월): 2011~2018년 7월까지 가정폭력사범 접수 및 처리 현황

    주 2) 한 연구에 따르면 2017년과 2018년 9~11월에 검찰에서 다루어진 가정폭력의 처벌은 벌금 100만 원이 전체의 33.4%, 200만 원이 전체의 25.3%였다고 한다.(관련 링크)

    필자소개
    레디앙 기획위원. 도서출판 벽너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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