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민주당과 한국 열린우리당의 대조적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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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2월 12일 05:5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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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초부터 본격화된 열린우리당 내부의 비생산적 갈등은 현재 한국의 소위 개혁진영이 얼마나 한계가 많은가를 생생히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실제 그들이 몸으로 보이는 후진적 행태와 달리 머리로는 세련된 미국적 정치를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지 레이코프의 베스트셀러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 대한 여의도 정가의 폭발적 관심은 그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자신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이 미국식의 세련된 정치 프레임 이전에 현대 정치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들을 이해하는 것임을 그들은 망각하고 있다.

    이에 미국 정치의 네 가지 강점을 지적함으로써, 열린우리당의 행보를 비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미국에서는 ‘정치질서'(political order)에 대해 다른 차원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무릇 올바른 답을 얻기 위해서는 정확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미국의 성공한 정치집단들은 그러했다. 1964년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보수주의자 골드워터는 보수주의의 위기에 직면하여 단기적인 선거전략을 넘어 향후 보수주의 혁신의 방향을 제시했다.

    비록 당장의 선거에서는 패배했지만, 닉슨, 레이건, 부시(심지어 클린턴)로 이어지는 보수주의 시대의 초석이 이때 놓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민주당도 70년대 이래 계속되는 선거 패배로 불임정당의 위기에 몰렸지만, 뉴딜적 자유주의나 이익집단 자유주의 등의 혁신을 통해 결국 92년 클린턴 시대를 만들어냈다.

    반면 한국에서 통합신당을 추구하는 이들은 51대 49의 선거구도가 재현되리라는 위험한 환상에 사로잡혀, 당장의 선거 승리만 바라볼 뿐 앞으로의 새로운 정치질서 창출을 고민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정치질서란 어느 정당이 집권하느냐의 협소한 의미가 아니라 시대의 결, 지배적 담론, 힘의 관계 등을 총체적으로 집약하는 개념이다.

    협소한 시야, ‘시민정치’가 아닌 여의도 정치활동 방식에 갇혀 있는 소위 대권주자들이 아무리 ‘양심’ ‘통일’ 혹은 ‘중도’를 이야기해도, 그들은 결국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20세기 정치세력일 뿐이다. 그들은 심지어 부동산, 재벌개혁 같은 좌파적 이슈는 물론이고 ‘근대적’ 과제 해결에조차 불철저하고 무능한 모습을 드러냈다.

    친노진영도 별반 다르지 않아, 새로운 정치질서를 창출하기보다 대통령 개인을 향한 맹목적 팬클럽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이들은 공히 자신들의 한계를 겸허히 인정하고, 21세기적 질서를 위한 초석이 되고자 하는 진정성이 부족해 보인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열린우리당 내부에서 새로운 정치질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들은 20세기 지도자들간의 비생산적 공방 속에서 아직 정확한 방향조차 잡지 못한 실정이다.

    둘째, 미국 민주당 내의 DLC(민주주의 리더십회의) 같은 전문연구집단이다. 새로운 정치질서는 학자들이 잠시 모여 비전을 정리한다고 창출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 민주당내 주류는 70년대의 구진보주의에서 탈출하기 위해 DLC를 구성해 수년에 걸쳐 벼려냈다.

    DLC는 정책·집행의 네트워크로서, 이들은 이것을 통해 새로운 정책 실천의 전형을 만들어냈으며 다시 이 전형은 새로운 자유주의 이념 정립의 재료로 활용되었다. 이런 전문연구집단이 없다면 한국의 개혁파가 기적처럼 집권한다 해도 민의의 위임(mandate)과 무관하게 움직였던 노무현정부의 비극은 부단히 재생산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기성 정치인들이나 지식인들은 단지 소그룹 수준의 싱크탱크들만 만들어 운영할 뿐, DLC 정도의 시야와 프로페셔널리즘을 갖춘 연구집단을 구성해내지 못하고 있다. 단지 미국을 모방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미국보다 질적으로 나은 한국형 DLC를 만들 것인가를 두고 싸워야 할 시간에, 정계개편 설문조사 항목을 놓고 다투는 코미디는 한국 정당정치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장기적인 전문연구집단 없이 요행으로 집권할 수 있다는 도박사적 기질과 역사에 대한 무책임함이 경악스럽지 않을 수 없다.

    셋째, 하워드 딘 돌풍이다. DLC 중심의 정치지형에 본받을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업과 중산층 엘리트 위주의 노선에 지나치게 치우친 나머지, 민주당은 정당조직 건설 과정에서 정작 중요한 풀뿌리 차원의 활력있는 사회적 기반 조성을 경시한 것이다.

    이는 민주당이 이후 대선에서 연이어 패배하게 된 주요한 원인 중 하나가 되었으며, 미국 정치에서 역동성을 제거해 그것이 현상유지적으로 퇴락하는 것에도 기여하고 말았다. 하워드 딘이라는 비주류 후보의 민주당내 돌풍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세계적 수준의 IT기술과 역동적인 시민사회를 지니고 있다. 이를 잘 활용한다면 DLC를 넘어 ‘리눅스적’인 정치와 조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셈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협소한 기간당원제와 오픈 프라이머리 사이의 부적절한 대립구도가 형성되어버렸다.

    기간당원제는 한국의 역동적 시민사회를 반영하기보다는 그들만의 리그를 양산하는 데 그쳤다. 또한 시민적 집단지성의 창조적 투입을 통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단지 인기투표식 오픈 프라이머리를 도입한 것은 얄팍한 흥행전술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넷째, 실사구시적 공존의 풍토이다. 미국에서는 항상 현 단계 정치질서와 민의의 위임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매우 중요시한다. 그래서 현실과 자신의 이념 간에 존재하는 간극을 부단히 메워나가려고 치열하게 그리고 과학적으로 노력해나간다.

    현재 민주당내 중도파인 루빈 전 재무장관이 ‘해밀턴 프로젝트’를 통해 양극화 문제에 과거보다 전향적인 태도를 취하고 당내 진보파가 낙태 등 사회적 가치에서 유연한 입장을 보이는 것은 바로 그러한 배경에 기인한다.

    앞으로도 이 양자간에 치열한 긴장이 존재하겠지만, 그들은 매 시기 시대적 의제에 대한 해석투쟁 속에서 합의점을 모색해나갈 것이다. 이는 부동산, 교육, 햇볕정책 등에서 시대의 성격과 민의를 읽어내고 폭넓은 합의점을 새로 만들려는 노력이 미흡한 열린우리당 진영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네 가지 강점들이 있기에 미국 민주당은 연이은 선거 패배에도 불구하고 부단히 혁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정치현실에서의 계속되는 패착을 볼 때, 열린우리당이나 새로이 생길 통합신당이 조만간 이를 본받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68년 미국 민주당의 시카고전당대회 위기처럼 외부에서의 강력한 에너지 투입이 가능할지도 의심스럽다. 아직 한국 정치지형에서 건강한 개혁정치세력의 형성은 쉽지 않은 과제인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지체 현상은 역으로 건강한 보수주의진영의 성립을 촉진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은 대한민국의 ‘선진화’란 요원하다는 것이 한해를 마무리하며 느끼는 솔직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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