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천국 또는 죽음의 공장
    By tathata
        2006년 12월 12일 01:5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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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지천국’, ‘4년 연속 대한민국 최고기업 상’, ‘무분규 12년 축제’, ‘중국 10대 브랜드에 선정’, ‘일하기 좋은 회사 선정’. 언론을 장식하는 현대중공업에 쏟아지는 찬사들이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에서 사내하청으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그럴까를 묻는다면 대답은 단호하게 ‘NO’다.

    그들에게 현대중공업은 손마디가 잘려나가거나, 거대한 기계에 압사되는 산업재해의 위험을 무릅쓰고 월 400시간이라는 살인적인 노동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죽음의 공장’이다. 그 고통의 기록과 투쟁의 기록이 시가 되어 나왔다. 

       
    ▲ 시집『물으면서 전진한다』표지
     

    조성웅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장의 두 번째 시집 『물으면서 전진한다』(갈무리)는 ‘복지천국’ 현대중공업의 가면을 벗기고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언론의 한 켠조차 보도되지 않는, 주목받지 못한 그들의 삶을 조성웅 지회장은 낱낱이 기록하고, 고민하고, 그리고 또 노래한다.

    “월말 시급 계산서가 나오면 / 모두들 이번 달 얼마나 일했나 목이 빠진다 / 일하는 소, 승훈이 형님 / 모두들 야! 400시간 넘네 / 부러워하지만 /목욕탕에서 본 승훈이 형님 등판은 온통 부황자국뿐

    용접공인 만석이 형님 / 허리디스크로 산재신청을 하려고 할 때 / 업체에서는 증인을 매수하여 산재를 못 받게 했다 / 일하다 허리디스크가 생겼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 / 중공업 박 부서장님 무재해 표창장 받고 이사로 승진해야 하기 때문 / 억울하고 분하고 서러워 / 우리 만석이 형님 업체 대표 앞에서 / 산재 요구하며 독극물 마셨다” (「삶은 변한다 」중 )

    몸이 부서져 온 몸이 부황자국으로 벌겋게 물들어도, 허리디스크 산재를 당해도 무재해 달성을 위해 일해야 하는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의 현실은 이곳이 21세기 세계 최대의 조선공장이라는 사실과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조성웅 지회장은 이 공장에서 쫒겨났다. 지난 2003년 8월 노조설립을 보름 앞두고 해고됐다. 그로부터 3년간 그는 해고자 신분으로서의 노조활동을 펼치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였던 그의 아내마저 작업장 라인 속도가 느려져 ‘여유인력’으로 분류되고 정리해고를 당했을 때는 정말이지 생계가 막막했다. 그의 아내는 식당에서 일하다 현재 금속연맹 울산본부 법률원에서 법규부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가족의 생계는 전적으로 아내에 의존하고 있다.

    대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부부는 지금은 다섯 살 난 문성이를 보듬어 안고 키운다. 문성이는 “하청 노동자인 아내가 정리해고 당한 날 아내가 입덧을 시작”하며 세상에 첫 신호를 알렸다.

    “어느새 너의 첫 돌이 다가오고 있는데 / 네 첫 돌 날 아버지는 / 갈수록 보수화되고 반동화 되어가고 있는 현대중공업에서 / 전투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 이 해맑은 웃음은 이 투쟁에 대한 축전이냐 / 네 분유값을 날릴 수도 있는데 / 문 밖으로 나가는 아이” (「문 밖으로 나가는 아이」중에서)

    그는 “집주인은 직영 / 사글세를 사는 사람들은 하청 / 직영 특근 네 대가리가 하청 한 달 월급을 넘어서는 / 1층과 3층의 높이만큼이나 직영과 하청은 생활적으로 갈라서는” 곳에 산다.

    일상에서 매 순간 마주하는 부조리는 그가 처한 현실이 얼마나 구조화된 것인지를 직설적으로 말해줄 뿐이다. 조 지회장이 사내하청지회 활동을 한 지는 3년이 넘었지만, 조합원의 수조차도 정확하게 알리길 꺼려했다. 조합원의 규모가 회사에 알려지게 되면 회사는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다른 회사로의 취업조차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회사의 억압에 맞서 노조활동의 봇물을 뚫어야 하지만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서울행정법원은 현대중공업에 원청 사용자성 인정 판결을 내렸지만, 현대중공업은 항소를 제기하며 현재까지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

       
    ▲ 조성웅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장.
     

    “가장 힘든 것은 노조가 조합원과 함께 싸우지 못해,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돼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노조활동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니 조합원들이 떨어져나가고, 노동자들이 산재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현실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조는 사내하청지회가 출근투쟁을 하거나 피켓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지회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도 하였습니다. 대공장 노조와의 연대투쟁은 끊어진 지 오랩니다.”

    고립무원의 전장에서 그는 외로움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투쟁을 접기에는 그를 가슴 아프게 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우연히 버스에서 마주친 산재 노동자에 대한 연민은 다시 그의 발걸음을 운동으로 향하게 만든다.

    “아침 출근 버스 안 / 손가락 마디 7군데가 잘려 나간 늙은 노동자를 보았네 / 엄지손가락 하나 남은 오른손 / 손잡이를 간신히 잡고 있네 /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몸 전체가 위태했네 / 참혹한 고통이 지난 이후에도 살아남은 몸은 일자리를 찾아 헤맸네” (「잘려나간 손마디가 더욱 붉다」중에서)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투쟁을 채찍질하며 고통스럽게 번민한다.

    “이제 목숨조차 눈물을 부르지 못하고 / 이제 목숨조차 단결을 부르지 못하고 / 이제 목숨조차 투쟁을 부르지 못하고 / 오히려 침묵을 만들고 / 오히려 체념을 만드는 / 새로울 것도 없는 갑신년 새해 / 과연 내 투쟁의 심장은 살아있는가” (「내 투쟁의 심장은 살아있는가」중에서)

    그의 시집에서는 이 화두에 대한 해답은 쉽사리 찾을 수 없다. 그는 현실의 벽 앞에서 느끼는 아픔을 “아프다”고 노래할 뿐이다. 조 지회장은 “노동자가 희망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지금과는 다른 삶을 위한 출발은 여기, 이 곳이 어디인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시집의 제목처럼 "물으면서 전진한다"를 경구처럼 가슴에 새긴다.  

    "투쟁 속에서 묻고 또 물어라 / 투쟁하는 동지와 투쟁하지 않는 자를 / 끝까지 함께 하는 벗과 /유리한 이론으로 투쟁을 가로막고 있는 자를 / 투쟁하면서 물어라 / 물으면서 전진하라"(「물으면서 전진한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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