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남자 같아요? 여자 같아요?"
        2006년 12월 11일 07:1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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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색하고 드러내는 한 사람의 진의는 다른 사람들을 당혹케 한다. 25년을 한 가정의 아내이자 어머니로 살아온 최현숙(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이 본인의 성적 정체성을 들고 나왔을 때, 나 역시 당혹스러웠고, 구태여 묻지 않던 그 정체성에 대해 새삼스레 들춰내자니 어떤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지부터가 고민스럽다.

    “그래, 새로 온 상근자는 누구예요?”
    “‘캔디’라고, 예전에 여성운동 하던 친구예요.”

    늦바람 든 ‘오빠’

       
      ▲ 최현숙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장
     

    잠깐, 성소수자위에서 말하는 ‘여성운동’은 또 뭐지?

    “그러지 말고, ‘나 쓰는 말’로 남자예요, 여자예요?”
    “여자. 근데, 내가 남자 같아요, 여자 같아요? 중앙당 상근자들은 나더러 남자래. 그런데 내가 도시락 싸오니까 남자답지 않고 이상하대.” 갈 길이 구만 리다.

    내가 최현숙더러 ‘늦바람’ 들었다고 하는 것은 진보정당 운동에서든 성적 자각에서든, 그의 시작이 늦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중앙당에서 가장 오래 일한 위원장 축에 드는 최현숙은 민주노동당의 전신이 되는 정치운동이나, 학생운동, 노동운동을 하지 않았다.

    그가 사회운동에 뛰어든 것은 1980년대 후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에서 장기수 가족을 후원하는 일을 하면서부터였다. 뒷바라지 하던 장기수들이 북으로 송환되고, 최현숙은 2000년부터 민주노동당에서 일한다. 강서양천 지구당 자통위에서 활동을 시작해, 전국 최초로 지구당 여성위원회를 만들었다. 2002년부터는 중앙당 여성위원장을 맡게 된다.

    2004년 1월, 그는 갑작스레 여성위원장직을 사임한다.
    “저 혼자서는 결혼 전부터 양성애자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민주노동당 여성위원회 일을 하면서 ‘누구랑 함께 할 것인가’를 더 고민하게 됐죠. 나름의 결론을 얻었고, 그런 자기 확인 속에서 굳이 ‘Sex’만 뺄 필요도 없었죠.

    총선을 앞두고, 여성위원장이라는 직책이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하는 굴레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죠. 주변에서 권하는 비례대표나 최고위원을 하면 내가 행복할까?

    당시 사무총장이던 노회찬 의원과 몇몇 사람에게 ‘죽을 병 걸렸다’고 거짓을 한 다음, 고등학교 자퇴하고 대안학교 다니던 둘째 아들과 인도 여행을 떠났어요. 어느 자리에 있어야 내 스스로 행복할지를 깨닫게 되었어요.

    돌아와 보니 최고위원회 선거가 진행 중이었고, ‘동성애는 자본주의의 파행적 산물’이라는 발언을 한 어느 후보 반대 운동을 하면서 ‘붉은 일반(민주노동당 성소수자 지지 모임)’과 함께 하고, 지금은 ‘붉은 이반(민주노동당 성소수자 모임)’이죠.”

    25년을 함께 산 남편에게 이혼을 신청하다

    2004년 가을, 최현숙은 25년 동안 같이 산 남편에게 이혼을 신청했고, 남편은 2년 넘게 버텼다. 지난 달 최현숙은 ‘아내’에서 벗어났다. 애초부터 싹수가 보여 ‘일반’에서 ‘이반’으로 월반한 최현숙이야 그렇다 쳐도, 동성애나 양성애 같은 성적 소수자들 모두가 자각에 의한 것인가? 최현숙의 과거처럼 사회적 억압에 의해 자신을 찾지 못하는 것만큼이나 사회적 ‘유행’에 의해 만들어지지는 않는가?

    “유행이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성적 지향이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라면, 유행과 같은 사회적 현상의 영향을 받는 성적 지향 같은 것도 우리 주변에 다양하게 있어야 되겠죠.”

       
     ▲ 다양한 성적 지향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최현숙 위원장
     

    돈오돈수(頓悟頓修)는 이런 걸 일컫는 말일 것 같다. 하지만 ‘노동’이나 ‘사회주의’ 같은 근대 집합 이념 위에 서 있는 민주노동당이 성적 소수자 문제를 느닷없이 깨달아, 제 일처럼 달려들기는 쉽지 않을 터이다.

    “1기 최고위 선거 과정을 통해 성소수자위원회가 만들어졌고, 당 내에서 완전한 동의를 얻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런 것도 있다는 정도의 인식은 이루었다고 할 수 있어요. 성소수자 문제에서 민주노동당이 다른 진보진영보다 앞서기는 하지만, 아직 사업, 인력, 예산을 배치 안하기는 마찬가지죠.

    진보진영 안에서 성담론에 대한 문제 제기가 먼저 필요한 거 같아요. 진보주의자들 대부분이, 별다른 고민이나 문제의식도 없이 가족 중심, 이성애 중심의 담론을 답습하고 있거든요. 내년부터 진보정치와 진보적 성담론이 만나는 접점을 만들고, 그 접점을 넓혀가는 것을 계획하고 있어요. 지난 10월부터 ‘진보적 성정치 연구모임’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고요.”

    요즘 최현숙은 성전환자성별변경법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성별변경을 원하는 사람이 가정법원에 신청하면 요건이 되는지를 판단하여 성별변경을 가능케 해주는 법이다. 이 법과 기존의 대법원 사무처리 지침이 세 가지 지점에서 충돌하며 논란이 이는 모양이다.

    “대법원에서는 성기 성형을 마쳐야 변경을 받아주겠다고 하고 있어요. 전형적인 성기 중심적 사고죠. 성기 성형 비용이 3천만 원에서 1억 원 가량 들거든요. 그런데 대부분의 성소수자들은 경제적 소외 계층이예요. 돈 없는 사람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찾지 말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잖아요. 목숨까지 위협받는 성기 성형을 마쳐야 한다는 기준은 인정할 수 없어요.

    대법원에서 내세우는 기준 중에 ‘결혼의 경력이나 자녀가 없을 것’이라는 것도 있어요. 현재의 혼인 여부가 아니라, 혼인의 경력이예요. 결혼한 적이 있으면 이성애자라는 거죠. 문화적 속박 속에서 많은 성소수자들이 결혼하게 되는 현실에 너무 어두운 거죠.

    대법원 기준 중에 ‘20세 이상’ 조항도 있어요. 물론 미성년의 성별변경에는 더 신중해야 하지만, 원천적으로 막는 것은 옳지 않아요. 부모나 법적 대리인의 허락을 받은 경우에는 미성년의 성별변경도 인정해야 해요.”

    제 가고 싶은 길을 어렵사리 선택하더라도 그 길은 제 발길이 아니라, 이러저러한 사정에 의해 좌우되기 십상이다. 성적 소수자의 생활도 마찬가지일 게다.

    어머니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요즘 제 파트너가 MTF(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사람)예요. 아직도 밖으로는 남자인 척 하는 사람인데, 그러다 보니 제 앞에서는 더 여성적이려 하고, 제게는 남성성을 요구하죠. 그 사람에게서 ‘오빠’라고 불리우다 보니, 알게 모르게 사회적 남성성에 더 크게 물드는 거 같아요. 그래서 당 상근자들이 저더러 ‘남자’라 그러는 거고.”

    이성애자로서의 길을 버린 최현숙의 삶이 안온하기는 쉽지 않다. 그가 민주노동당 게시판을 통해 자신을 드러낼 때 언급한 바 있는 맏아들과의 관계가 그러하다. 최현숙이 자신의 성적 지향을 어찌 선택하든, 사회적으로 어떤 성적 역할을 놀든, 그 아들의 어머니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작년 12월에 맏아들이 결혼했는데, 결혼식에 가지 못했어요. 제가 무얼 하든 엄마라는 사실은 받아들일 수 있죠. 하지만 결혼식에서는 아이의 엄마가 아니라, 혼주(婚主)인 남편의 아내 역할을 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걸 인정할 수 없었어요. 나중에 아들과 이야기하려 했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 말하자고 하더라고요. 버스에서도 울고, 사무실에서도 울어요. 그 생각만 나면 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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