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본주의 성장·쇠퇴 이해의 열쇠,
    동시에 잊혀진 전통의 복원
    [서평] 헨릭 그로스만의 『자본주의 체계의 축적과 붕괴 법칙』
        2021년 09월 04일 12:2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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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헨릭 그로스만(Henryk Grossman, 1881-1950)의 대표작인 『자본주의 체계의 축적과 붕괴법칙 : 동시에 위기이론(1929)』(이하 『붕괴법칙』)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1929년 초, 뉴욕 주식시장 붕괴가 일어나기 불과 몇 개월 전에 발간된 이 책은 마르크스 사상의 핵심이 자본주의 체제의 흥망성쇠와 그 원인을 파악하고자 한 것임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그로스만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경기순환의 근본적 원인을 조명하면서 마르크스가 발견한 자본주의에 내재한 모순을 체계적으로 연구했다. 그러나 ‘자동붕괴론’이라는 폄하 속에 그로스만의 문제의식은 잊혀졌다. 그로스만이 복권되기 시작한 시기는 자본주의의 불황기가 시작되는 1970년대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초입부에는 그로스만 평전이 출간되기도 했다. 이처럼 그로스만은 자본주의가 작동불능 상태에 빠질 때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하나의 참고점이 되어서 다시금 소환되었다. 20세기 미국자본주의의 끝자락을 목도하고 있는 현재, 그로스만의 문제의식을 곱씹어볼 이유는 충분하다.

    그로스만의 생애

    본격적인 책 내용 소개에 앞서, 저자의 생애를 간단히 소개한다. 그로스만은 1881년, 당시 폴란드를 지배하고 있던 오스트리아의 갈리시아-로도메니아 왕국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5살 무렵 메이데이 행사 때 우연히 목격한 사회주의자의 강렬한 연설에 감동을 받은 그로스만은 그날부로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그로스만은 24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갈리시아 유대인 사회민주당의 창립 비서 겸 이론가로 추대되었다. 이후 그로스만은 마르크스 경제사학자 칼 그륀베르크에게 배우기 위해 비엔나 대학에 진학하였다. 차별적인 외국인 정책으로 인해 독립한 오스트리아 공화국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그로스만은 폴란드로 이주하여 자유대학에서 교수직을 맡았다. 그는 이와 병행하여 폴란드 공산당에 가입해 지하 활동을 수행했다. 몇 차례의 체포와 수감생활을 겪은 후 독일로 망명하기로 합의하면서 사실상 정치의 무대에서 퇴장하고 연구자의 길을 걷게 된다.

    그륀베르크가 초대 소장을 맡았던 프랑크푸르트 대학교 사회연구소로 초빙된 그로스만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연구를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그로스만은 이곳에서 『붕괴법칙』을 출판했다. 그러나 1931년에 그륀베르크가 병사하고 호르크하이머가 새로운 소장으로 취임하면서 그의 처지는 곤란해졌다. 연구소가 히틀러를 피해 뉴욕으로 망명길에 오르자 호르크하이머는 급진적인 마르크스주의와 거리를 두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또한 사민주의자였던 그는 그로스만의 연구에 동의할 수 없었고 논문 출판을 방해했다. 연구소가 미국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로스만의 『붕괴법칙』이 영역되지 않은 이유를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냉전이 시작되면서 정부 당국의 집요한 감시에 시달리던 그로스만은 1949년에 미국을 떠나 동독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갔고 1950년 11월에 사망했다. 그로스만의 저작 중 어떤 것도 동독에서 출판된 적이 없었는데, 그가 다시 복권되기까지는 그 뒤로도 몇 십 년의 긴 세월이 필요했다.

    마르크스 사후 붕괴론 논쟁과 그로스만의 개입

    강력한 개량주의의 등장과 함께 마르크스 사후 『자본』의 결론에 대한 논쟁이 전개되었다. 자본주의는 과연 붕괴하는가, 그렇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가. 『붕괴법칙』에서 그로스만은 붕괴론 논쟁을 설명하고 이에 개입한다.

    베른슈타인은 “만약 사회주의가 진정으로 자본주의에 내재적인 필연이라면, 그것은 현존 사회질서의 경제적 붕괴가 불가피하다는 증명에 기초해야 한다”며 그러한 증명이 불가능함을 근거로 붕괴이론을 거부했다. 투간-바라노프스키와 힐퍼딩은 생산의 개별 영역 간의 불균형이 위기를 야기하지만 적절한 조정을 통해 위기를 해소할 수 있고 자본주의는 붕괴하지 않으며 무제한적인 성장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카우츠키는 마르크스는 붕괴이론을 말한 적이 없다면서 이 논쟁을 피해 갔고, 룩셈부르크는 실제 자본주의의 경제적 붕괴를 입증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붕괴의 원인을 상품을 판매할 시장의 부족에서 찾는 우를 범했다.

    그로스만은 투간-바라노프스키와 힐퍼딩의 주장을 비판했다. 또한, 붕괴이론을 복원한 룩셈부르크에게 경의를 표했지만 이론적 한계에 대해서는 지적했다. 그 핵심은 마르크스의 위기이론이 다른 특별한 원인을 원용할 필요가 없는 체제 내적인 위기라는 데 있었다. 힐퍼딩이나 룩셈부르크의 이론들은 자본주의 그 자체로부터 위기를 연역할 수 없고 균형의 파괴는 오직 외생적인 요인을 통해서만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균형을 가정하면서 시작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균형의 성립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한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성숙해질수록 이윤율 하락이 관철되고 자본축적이 점차 둔화되는 체제에 내재한 메커니즘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장을 통해 그로스만은 이윤율 하락설의 관점에서 룩셈부르크의 붕괴이론을 비판적으로 계승했다.

    자본주의의 붕괴법칙과 자본축적 모형의 구성

    그렇다면 그로스만은 어떻게 마르크스의 붕괴법칙을 증명했을까? 그는 마르크스의 과학적 연구 방법을 강조하면서 현실설명력을 통해 붕괴법칙을 입증한다. 추상적인 이론의 분석 결과가 구체적인 현실에서 얼마나 정확하게 증명되는지 살펴봄으로써 이론의 과학성을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메커니즘을 연구하기 위해 덜 근본적인 측면을 사상(捨象)하고 나서 분석을 시작한다. 분석의 출발점에서 마르크스는 화폐가치가 불변이고 수요와 공급이 일치함으로써 가격도 불변이라고 가정한다. 이러한 초기 전제 속에서 분석한 결과는 잠정적이며 점차 가정을 완화하여 설명을 추가함으로써 실제 현실을 근사(近似)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마르크스는 이와 같은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자본생산성과 이윤율 하락이 지속되면서 자본축적이 둔화되는 과정을 자본주의의 내재적 메커니즘으로 설명한다. 혁신적인 기술진보 없이는 경제성장 과정에서 노동자 1인당 자본이 증가함에 따라(즉, 유기적 구성이 고도화됨에 따라) 성장이 점차 둔화 된다는 점은 경제성장사에서도 관찰되는 객관적 사실이다. 붕괴이론은 이러한 경향이 발생하는 근본 원인에 대해서 설명력을 갖는다.

    다음으로 그로스만은 당시 마르크스의 재생산표식을 재구성하여 자본주의 메커니즘의 지속성장을 증명했던 바우어를 반박하면서 붕괴법칙을 입증한다. 그는 바우어 표식을 연장하여(무려 36차 연도까지!) 붕괴를 입증했고 이를 근거로 붕괴이론의 수학적 모형을 구성했다. 다만 그가 재생산표식을 통해 붕괴 경향을 설명한 방식에는 다소 문제가 있는데, 마르크스의 재생산표식은 애초에 편향적 기술진보나 이윤율 하락을 전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붕괴에 관한 모형은 성장에는 한계가 있음을 표현하는 로지스틱 곡선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 로지스틱 곡선은 그로스만도 『붕괴법칙』에서 이미 상정하고 있었던 모형이었다.

    과잉축적의 결과 산업부문의 낮은 이윤율로 인해 생산 현장에 투입되지 않는 유휴자본이 형성된다. 그와 동시에 생산 현장의 고용이 증가하지 않으면서 상대적 과잉인구인 산업예비군이 형성된다. 그로스만처럼 자본축적의 절대적 한계를 사고할 때에만 비로소 과잉자본과 과잉인구에 대한 마르크스의 설명을 논리적 충돌 없이 이해할 수 있다.

    반경향과 계급투쟁으로 자본주의의 역사를 설명하다

    이윤율이 하락하면서 자본주의가 붕괴하는 것이 필연적인 경제법칙이라고 한다면 법칙이 순수하게 관철되지 않는 이유는 이윤율의 하락 경향에 반작용하는 역사적 요인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는 현실적인 설명력을 가지는데 만일 19세기 영국자본주의에 반작용하는 법인자본주의라는 역사적 제도가 없었다면 1차 세계전쟁과 대불황을 거치며 자본주의는 붕괴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경향의 작동은 현실 세계에서 붕괴 경향이 중단되고 순환적 위기에 의해 다시 성장의 시기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반경향은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최후의 순간에는 그 힘을 잃게 될 것이다.

    그로스만은 반경향을 개념적으로 구분한다. 첫 번째는 국내시장과 관련되는 자본의 내재적인 반작용요인, 대표적으로는 ‘자본의 구조조정’이다. 두 번째는 자본의 외재적 반작용요인, 즉 세계시장에서의 수익성 회복을 위한 ‘제국주의’의 자본수출 경향을 설명한다. 이와 함께 최후의 반작용요인으로써 ‘금융화’ 경향을 분석한다. 자본수출과 마찬가지로 금융화는 생산에서 기회가 없는 유휴자본 때문에 발생한다.

    그는 저작의 절반에 걸쳐 반경향요인을 분석하는데 대표적으로 자본의 내재적인 반작용요인에 대한 설명을 살펴보자. 지금까지는 자본가계급이 단일한 실체라고 간주했지만 이제는 개별 자본가의 상호경쟁을 고려하면서 분석을 구체화한다. 그는 개별 자본 간의 경쟁을 통해 불변자본을 감소시키는 내재적 원인으로써 산업 합리화, 즉 구조조정을 설명한다. 합병의 결과로 등장한 새로운 기업의 경우 노동력을 방출하여 산업예비군을 증가시키고 생산성이 증가하면서 이윤율이 상승한다. 이 외에도 산업예비군을 통한 임금인하 압박이 잉여가치율을 증가시킨다는 측면,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더 낮은 새로운 생산 영역의 출현 등 다양한 내재적 요인을 설명한다. 특히, 상업이윤을 제거하는 투쟁에서 카르텔과 트러스트의 수직통합 방식에 주목하는데 이러한 통찰은 20세기 법인자본의 형성을 반경향요인으로 설명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붕괴이론의 정치적 결론으로써 계급투쟁은 동시에 역사적 분기를 의미한다. 붕괴이론은 공산주의로의 이행을 위한 객관적 조건과 계급투쟁이라는 주체적 요인을 종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한다. 즉, 변혁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동시에 제기하는 것이다. 따라서 객관적 조건을 무시하는 의지주의, 주체적 요인을 무시하는 경제주의 양자에 대한 비판이라 할 수 있다. 그로스만은 “노동자계급이 거부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지배계급이 활로를 찾지 못하기 때문에 제도를 전환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자본주의의 역사는 양 계급의 의식적인 행동을 통해 영향을 받지만 그러한 행동에는 특정한 한계와 조건이 존재한다. 한계와 조건을 사고하는 행위는 그 조건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자동붕괴론이나 목적론과 달리 붕괴론에는 정해진 방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공산주의로의 이행이라는 ‘긍정적 통과점’과 자본주의의 재건이라는 ‘부정적 통과점’, 여기에 ‘투쟁하는 두 계급의 공멸’이라는 파국의 가능성도 열려있다. 역사의 방향이 아니라 분기를 강조하는 것이 역사과학, 역사변증법의 중요한 함의이다.

    『붕괴법칙』 : 초기 반응과 재평가

    그로스만의 저작은 1940년대까지만 해도 부정적인 평가가 대다수였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자본주의 개혁의 가능성을 부정하고 붕괴 경향을 설명한 그의 주장을 근본적으로 거부했다. 더욱이 그로스만은 스탈린이 지지한 교리를 비판했기 때문에 소련 영향권에 있는 나라들에서도 대체로 부정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영역본이 출판되기까지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폴 스위지의 교과서에 수록된 ‘왜곡된 설명’에 영향을 받았다. 스위지는 경제위기의 내재적 원인으로 이윤율 하락에 주목하는 그로스만의 입장을 무시한 채, 위기의 원인을 외부적 교란 요인에서 찾는 투간-바라노프스키와 같은 학파로 배정하여 설명하였다. 재생산표식을 중심으로 이론을 전개했다는 이유였다. 게다가 그로스만의 이론을 계급투쟁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자동붕괴론으로 설명했다. 이러한 이유로 아직까지도 그로스만의 이론을 자동붕괴론, 경제결정론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로스만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계기는 1970년대부터이다. 1970년대부터 오랜 전후 호황이 종료되는 불황기가 시작되었고 마르크스의 이윤율 하락 법칙에 대한 논쟁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68세대들’은 마르크스주의자 중 최초로 이윤율 하락에 주목한 그로스만을 복권시켰다. 『자본』 발간 이후 두 세대가 지나 붕괴이론이 복권된 것처럼, 『붕괴법칙』 발간 이후 두 세대가 지나고 나서야 그로스만이 복권될 수 있었다.

    한 마르크스주의자가 던지는 무거운 질문

    한 세기 전의 고전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그로스만의 이론은 시대를 초월하는 통찰력을 보여준다. 그로스만은 마르크스에게 존재했던 역사과학이라는 중요한 단초를 복원하고 이를 통해 자본주의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역사의 분기를 강조하는 붕괴이론의 정치적 결론은 우리에게 이행의 조건을 사고할 수 있게 해준다. 그로스만은 자본주의의 붕괴 경향과 경제위기가 노동자대중의 주체적 행동의 객관적 결과가 아니라 주체적 행동을 위한 객관적 조건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붕괴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기 위한 주체적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의 분석이 후대에 남기는 질문의 무게는 무척이나 무겁다. 특히 사회주의 국가들이 지난 역사 속에서 저지른 과오와 현시점에서의 타락을 쉽사리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붕괴법칙』이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이유는 그로스만이 마르크스의 붕괴이론을 “복원”했듯이 마르크스주의 그 자체의 “복원”을 꿈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필자소개
    사회진보연대 인천지부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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