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이 변했나, 당신들이 변한 건가?
        2006년 12월 10일 07:4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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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해에도 새로운 양심수가 생겼다. 고향을 버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김지태 이장이 양심수가 되는 걸 우리는 또 지켜보고야 말았다. 긴 세월이 지나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미 잘 알고 있다. 양심수 김지태 이장을 석방하라!"

       
    ▲ 9일 세계인권의 날을 맞아 양심수를 위한 인권콘서트가 열렸다.  소외받는 사람들이 오늘만큼은 직접 무대에 올라 주인공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증명했다.
     

    제 58회 세계 인권의 날(12, 10)을 맞아 열린 양심수를 위한 인권 콘서트에서 관객들은 한 목소리로 국제사면위원회가 지정한 양심수 김지태 이장의 석방을 노래했다.  9일 오후 5시 세종대학교 대양홀에서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이하 민가협)가 주최한 열 여덟 번 째 인권 콘서트가 개최됐다.

    1989년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이 콘서트는 ‘인권’을 주제로 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공연이며, 관객들의 연령차가 가장 큰(?) 공연이기도 하다.  이날 콘서트에선 세계인권선언문을 지표삼아 2006년 인권의 주인공이 된 소수자들이 사회와 빚은 우리의 인권 풍경을 펼쳐 보였다.

    고향을 미군기지에 뺏기는 대추리-도두리 주민들, 총을 들지 않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이동권과 교육권 투쟁을 벌이는 장애인, ‘간첩’ 낙인으로 고통 받는 조작간첩 피해자, 300여 일째 농성중인 KTX여승무원, 편견에 상처 받는 HIV/AIDS감염인 등 한국의 불가촉천민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 세계 인권 선언을 낭독하며 그들의 권리를 증명했다.

       
     ▲ 크라잉 넛의 열창으로 분위기는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사진 =민가협) 
     

    지난 11월 종로에서 ‘평화를 원한다면 대추리를 지켜라’ 거리 공연을 한 가수 정태춘씨는 "평택의 버려진 갯벌을 갈퀴손이 되도록 일해 옥토로 만들고, 미군에게 쫓겨 움막에서 살 동안 국가가 대추리 주민들에게 무엇을 해줬는가? 국가가 어떻게 국민들에게 이럴 수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우리의 들판 황새울에서 김 이장과 다시 만나는 꿈을 꾸겠다"라고 다짐했다.

    1981년 봄. 전라남도 진도 가족 간첩단 사건의 피해자 고 박경준 선생의 딸 박미옥씨는 "아버지는 간첩이 아니다. 나는 간첩의 딸이 아니다"라는 내용을 담은 영상편지를 준비해 25년간 그 슬픔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인생을 회고했다. 한 때는 "(세상의 편견이) 너무 힘들어 아버지를 간첩으로 만든 사람을 죽이고 싶을만큼 미웠다"는 박미옥씨와 그 가족들은 이날 무대에서도 여전히 마르지 않은 통한의 눈물을 쏟아냈다.

    "이번 인권 콘서트에선 노래로 데뷔하고 싶었으나, 주최 측과 음악적 견해 차이로 노래를 부를 수 없어 섭섭하다"라고 너스레를 떨며 등장한 사회자 권해요씨는 "세상이 많이 변해 우리가 낡았다고 하는데, 오히려 이 현실을 애써 외면한 사람들이 먼저 변하진 않았는가?"라며 18회 째 인권 콘서트가 계속 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 인권콘서트 단골손님 가수 김종서
     

    그러나 현실이 아프다고 해서 의기소침하게만 있을 관객들이 아니었다. 2007년에도 희망을 찾아 다시 싸우기 위해 그간 가슴에 쌓인 울분을 다 토해냈다.

    "인권콘서트가 19살이 되면 정식으로 같이 술 한 잔 하자"고 농을 거는 밴드 크라잉 넛, "식지 않은 인기로 스케줄이 많아 내년엔 인권콘서트에 올 수 없다"고 잡아떼는 영원한 오빠 김종서가 무대에서 날뛰기 시작했다.

    이에 관객들도 질세라 체면, 나이, 성별, 남의 눈을 다 던져버린 체 온 몸으로 열정을 불살랐다. 100일 된 갓난 아이는 들썩거리는 아버지 무릎 위에서 춤을 추고, 무거운 몸이 더운 가슴을 따라가지 못한 40대 어머니는 10대 못지않은 함성으로, 감정 표현에 어색한 어르신들은 박수로 추임새를 넣으며 그렇게 2006 인권콘서트는 저물어 갔다.

    초대를 받아 우연히 인권콘서트에 함께한 이영아(학생, 25)씨는 "벌써 18회가 되는 데, 그간 이런 콘서트가 있는지조차 전혀 몰랐다. 막상 와서 보니 승무원, 장애인, 성적소수자 등의 막연했던 문제들이 직접 피부에 와 닿는다"면서 "평소 인권에 관심이 많은 분들 외에, 나같이 평범한 사람도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인권 콘서트가 더 많은 이들에게 제대로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주최 측에 당부를 전했다.

    가수 정태춘의 오랜 팬이자 18년째 인권 콘서트에 참여하고 있는 김영준(지하철공사, 48)씨는 "소수였던 사람들이 기득권화 되면서 인권 상황은 지난 80년대와 크게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이제는 정말 솔직히 인권 콘서트에 오지 않아야 되지 않겠는가?"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이어 그는 "사회가 점점 보수화 돼 소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서 "대추리 문제도 막상 국민들이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하면 그리 무관심하진 않을 것이다. 정부뿐 아니라 시민들도 인권에 대한 각성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민가협 전 상임의장 이영씨는 "그간 열심히 활동을 해 왔건만 아직도 우리사회엔 한미FTA, 비정규직, 장애인 등 많은 과제들이 남아있다"면서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다시 우리가 힘을 모아 스스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앞으로도 차별 받는 모든 이들의 어머니로서 함께 하겠다"라고 다짐했다.

    이날 콘서트에는 2000여명의 관객들과 가수 전인권, 노찾사 권진원, 오지총 밴드 등이 함께 했으며, 대추리 겨울나기 기금 마련 물품 바자회, 홍석천의 10분 토크쇼 등 각종 행사가 음악과 어울려 다채롭게 펼쳐졌다.

       
      ▲ 제18회 인권콘서트가 끝나고 참가자들이 무대 위에서 인사하는 모습 (사진=민가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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