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자화장실 청소 왜 아주머니가 할까?
        2006년 12월 07일 11: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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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경험(?)을 한 나이가 열 세 살이었다. 남자 화장실에서 청소하는 아주머니와 마주친 순간 우리는 서로 놀랐다. 기자는 남자 화장실을 ‘여성’인 아주머니가 청소한다는 것에 놀랐고, 청소하는 아주머니는 남자 화장실에 여학생이 들어와 볼일을 보는 것에 놀랐다.

    남성 전용 미용실인 ‘블루 클럽’의 특별 회원일 만큼, 중 1때부터 짧은 커트 머리를 유지했던 기자는 공공장소에 가면 본의 아니게(!) 남자 화장실을 가끔 이용한다. 신체 구조적으로나 여성의 특성상 더 많은 시간을 화장실에서 보낼 수밖에 없음에도 변기 수가 적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 기자에겐 ‘상식’으로 쉬이 납득돼지 않았다.

    그래서 기사 마감이 임박 할 때, 혹 중요한 행사가 분초를 다투고 있을 때 등 ‘기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아주 긴박한 상황이 닥칠 때’면 행여 ‘놀랄 남성들을 위해 모자를 착용 한 채’ 남성 화장실을 종종 이용했다.

    그 결과 우연찮게, 남성 화장실에서 청소하는 아주머니와 남학생 사이의 실랑이를 목격했다. 또 한 외국인 친구는 상기된 얼굴로 내게 "Why?" 와 "How?"를 연발하며 "어떻게 남자 화장실 청소를 여성인 아주머니가 할 수 있느냐? 남녀 모두에게 인권침해 아니냐?"라고 짜증을 냈다.

    "개방화 시대에 여자가 청소 좀 하면 어때?"

    그리하여 첫 경험의 강렬함, 남성 화장실에서의 목격, 또 외국인 친구의 짜증을 근거로 ‘남자 화장실의 아주머니 청소, 문제 없을까?’ 라는 주제 아래 기사를 기획했다. 게다가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얼마 전 보도를 통해 남자 화장실 내 성폭력을 문제로 제기해, ‘관행’ 뒤 감춰진 모순을 지적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 신이문역 남자 화장실을 청소하는 최복례씨.
     

    하지만 그 아주머니를 직접 만난 결과 보도는 ‘오보’였고, 다른 분들을 만나도 졸지에 기자는 "아직도 사춘기냐?"는 핀잔만 들었다. 1호선 역사를 다니며 남자 화장실을 청소하는 20명 남짓의 아주머니들을 만나 본 결과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직업이 있는 게 어디냐?"라는 반응이었다. 

    "여기선 우리 막내가 쉰 하나여. 요즘 같은 시대, 이런 나이대에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게 축복이지. 남자 화장실도 맨 처음이 어렵지 다음엔 쉬워.  개방화 시대인데 여자가 남자 화장실 청소 좀 하면 어때? 이거 안 하면 자식에게 빌붙기 밖에 더하나?  물론 상식적으로 남자 화장실은 남자가 해야 되는 게 맞긴 하지만, 현실적으론 그렇지 못한 이유가 뭔가 있겠지."

    신설동에서 근무하는 김 모씨(61)는 연신 "일이 있어 감사하다"라며 "일이라고 생각하면 남자 화장실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22년째 청소를 하고 있는 신이문역 담당 최복례(55)씨도 마찬가지였다.

    최 씨는 "사람들이 화장실에 대해 주인의식이 없는 게 힘들 뿐이다. 아무래도 화장실 청소는 남자보다 꼼꼼하고 섬세한 여자가 하는 게 맞지 않겠는가?"라며 "내가 젊었던 80년대에도, 화장실 미화원 자격은 여성에게만 주어졌고 아마 그게 관행처럼 굳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아주머니들만큼이나 실제 화장실을 사용하는 남학생들 또한 덤덤하기는 마찬가지. 어린 시절부터 해외여행을 자주했다는 공익근무요원 박모(23)씨는 "솔직히 외국에 나갔다가 한국에 돌아오면 당혹스럽고 민망하다. 하지만, 그때뿐이지 시간이 지나면 또 아무렇지도 않게 된다"면서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젊은 여성분들이 청소를 하면 그때는 정말 불편할 것 같다. 가끔은 남자 화장실 청소를 왜 아주머니가 하는지 나도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 돈 받고 남성들이 그런 일 하겠나?"

    결국 주제는 "남자 화장실 청소 왜 아주머니가 하는가?" 로 바뀌었다. 그 답은 ‘인건비에 따른 인력난’이었다. 화장실시민연대의 표혜령 대표는 "남성분들이 아주머니들이 받는 인건비로는 일을 하러 오지 않는다"면서 "원칙적으로 화장실 청소를 할 때는 외국처럼 출입을 통제하기로 돼있지만, 이용하시는 분들이 급하다 보니 지켜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금방 더러워지고 아주머니들이 청소를 할 수 밖에 없어 계속 마주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동대문 구청 청소 행정 주임은 "한 화장실을 청소하는데 남성과 여성 두 명을 고용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한 명만 고용해야 되는데, 아주머니를 고용했을때가 아저씨를 고용할 때보다 덜 불편하다"면서 "제 아무리 화장실을 깨끗이 청소하고 또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라고 해도 여성들은 남자가 청소하면 당장 화장실 사용을 안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공공연맹 시설노조 이진희 위원장도 "남자에게는 똑같은 노동력으로 똑같은 시간 일했을 때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는 직업들이 여성보다 더 많다"면서 "임금이 올라가지 않는 한 앞으로도 남자 화장실을 남자가 청소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태백 구호’에 가려진 노년의 취업 문제가 청년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박람회에서, 또 청소 작업장에서 만난 노년들은 내 주위에서 직업을 찾는 20대 들의 절박함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았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오히려 일 안하면 아픈 사람들이잖아. 그깟 남자 화장실보다, 더 한 지옥이라도 일이 있으면 갈 거야. 젊은 애들도 직장을 못 구한다는데, 이 정도면 감사해야지. 안 그래?”

    신설동에서 만난 김 아주머니의 말은 “남자화장실을 청소하는 것이 여성으로서 불편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청년 실업의 심각성 못지 않게 노년 실업을 벗어나는 일도 절박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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