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당은 투쟁하는 당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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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02월 03일 08:0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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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새로운 진보정당운동 안에서는 우리가 기존의 진보정당운동에서 버리고 가야 할 것들, 혹은 가지고 가야 할 것들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 가운데에는 행사 때마다 민중의례를 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문화를 버리고 가자는 의견도 있는 것 같은데, 그 의견을 듣고 떠오르는 바를 적어보고자 한다.

    예전에 노사모에서 활동하던 한 친구와 대화를 한 적이 있다. 나는 노사모의 활기찬 문화가 부러웠다. 행사가 끝나고 그들이 벌이는 한판 기차놀이도 부러웠고 각종 놀이문화가 정치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그들을 바라보며, 정치라는 것이 원래 저렇게 유쾌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노사모의 유쾌함과 우리들의 칙칙함

    그래서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자신도 "진보정당에서 말하는 것에 동의는 하지만 분위기가 너무 칙칙하고 삭막해서 같이 하기 싫다"는 것이었다. 또 "너희들은 왜 그렇게 매일 우울하고 결연하고 투쟁적인 집회 문화를 탈피하지 못하냐"면서, 우리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참 우스운 말이었다. 물론 우리의 문화가 많이 바뀔 필요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세련되어 보이지 않아서 옳은 길을 가는 우리를 마다하고 노동자 민중의 목을 죄고 있는 저들과 함께 하겠다는 것은, 못생긴 성직자를 따라가는 것보다 잘생긴 살인마를 따라가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새로운 진보정당운동 발족식 행사에서 이창우 동지가 홍세화 동지의 말을 전하며 정례화된 민중의례 문화를 지적했다. 물론 나도 그러한 문제의식에는 충분히 공감하며, 나 역시 오래 전부터 무슨 행사를 하든지 민중의례를 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팔뚝질을 하는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던 터였다.

    그러나 칙칙하다고 해서, 또는 대중들이 공감하지 못한다고 해서 우리의 문화를 무조건 버리고 가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그러기보다는 왜 우리가 민중의례를 하고 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지를 돌아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요즘 젊은 세대는 민중의례는커녕 ‘임을 위한 행진곡’도 잘 모른다. 그런 세대가 민중의례를 좋아하고 그 슬픈 행진곡을 달가워할 리 없다. 그렇다면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그들과 함께 하기 위하여 민중의례와 그 노래를 버리고 가야 할까?

    나도 운동판에 처음 들어왔을 때에는 민중의례라는 것이 낯설었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비장하게 팔뚝질을 하는 것이 심히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국민의례 대신에 민중의례를 하고, 애국가 대신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것을 보면서 이 사람들은 ‘국민’이 아니라 ‘민중’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국민과 민중

    온 나라가 시뻘건 옷을 입고 “대~한민국!”을 외치며 유겐트들마냥 미쳐 날뛰더라도, 적어도 우리는 세계가 국가나 민족 따위가 아니라 계급으로 나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는 국가나 민족이 아니라 노동자 민중을 생각하며, 지나간 투쟁을 돌이켜보고 다가올 투쟁을 결의하는 마음으로 민중의례를 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것이 아니던가? 운동판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그러한 것들을 낯설어하면 그 사람을 위해 그러한 것들을 하지 않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왜 그러한 것들을 하는지를 설명해주는 것이 보다 옳은 일이다.

    사회주의를 위하여, 혹은 노동 해방을 위하여 피 흘리며 쓰러져간 많은 선배 동지들. 지금 이 순간에도 추운 철창 안에 갇혀 있는 오늘의 동지들. 그저 인간답게 살기 위하여 총을 들고 투쟁하다가 전사한 광주 영령들.

    우리는 그들을 생각하며, 또한 그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것을 다짐하며 민중의례를 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팔뚝질을 하는 것이 아니었나?

    물론 나는 지금까지의 방식처럼 우리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행사에서 민중의례를 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자는 것은 아니다. 조금 가볍고 즐거운 분위기로 진행되어도 좋을 행사에서는, 상황에 따라 그러한 것들을 생략하고 갈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더 신나는 노래를 부르며 행사를 진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의 미래를 예측하건대, 즐겁게 웃을 수 있는 날보다는 구슬프게 통곡할 날이 더 많으리라 생각한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더 악랄하고, 더 치열하게

    노사모를 했던 내 친구는 우리가 왜 그리 항상 심각하고 우울한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지만, 나는 그들이 어찌 그리 늘 즐거울 수 있는지를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시위하던 노동자가 경찰에게 맞아 죽고, 단속을 피하던 이주 노동자가 떨어져 죽고, 비정규직의 설움을 호소하며 분신하는 노동자들이 잇달아 나오는데, 우리더러 왜 그렇게 늘 심각하고 우울하냐고?

    나는 새로운 진보정당에 웃으면서 기분 좋은 행사를 할 수 있는 날들이 많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보다는 통곡하며 가슴을 치는 일이 더 많아질 것을 굳게 각오하고 창당에 임하기를 바란다. 우리가 기존의 진보정당운동에서 버리고 가야 할 것은 민중의례와 ‘임을 위한 행진곡’이 아니라, 구속수배와 손해배상을 두려워하며 투쟁을 회피하거나 대충 접는 더러운 작태이다.

    따라서 새로운 진보정당의 발족식에서 민중의례를 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그날은 분명히 즐거운 날이었음에 분명하지만, 마냥 좋아만 하기에는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무척 험난할 것임이 분명하지 않은가. 아니, 우리가 가야 할 길이 험난하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새로운 진보정당은 더욱 악랄하고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새로운 진보정당이 만들겠다고 하는 빨강과 초록이 더욱 선명해지는 세상은, 투쟁이 없이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세상이다. 물론 주구장창 ‘투쟁, 투쟁’만 외칠 것이 아니라, 투쟁과 함께 분명한 대안과 실현방법을 제시하는 것도 동시에 이루어져야만 한다. 새로운 진보정당은 ‘대항 정당’을 넘어 ‘대안 정당’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대안이 있고 구체적인 실현계획이 있어도, 악랄하고 치열한 투쟁이 없이는 그 무엇도 이룰 수 없다. 노동자의 힘이 없이는 결코 협상도 없다.

    노동자의 힘이 없으면 협상도 없다

    재벌들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방식으로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자고? 웃기고 자빠진 소리이다. 이미 저들의 권리는 정부와 자본주의 사회의 헤게모니에 의하여 철저하게 보장되고 있는데, 저들이 무엇이 아쉬워서 힘도 없는 노동자들에게 양보를 하고 사회적 대타협을 하겠는가?

    새로운 진보정당이 해야 할 일은 자본가 계급이 덜덜 떨게 만들 강력한 노동자 계급의 힘과 물러섬이 없는 단호한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다. 보다 대중들 곁으로 다가가는 것도 좋고, 시민사회운동과의 만남을 활발하게 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만으로는 빨강과 초록 가운데 무엇 하나도 이룰 수 없다.

    우리가 새로운 진보정당을 창당하고자 하는 이유는 기존의 진보정당들에서 어떠한 점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기존의 진보정당들보다 훨씬 더 악랄하고 치열하게 싸우기 위해서임을 분명히 해야만 한다. 새로운 진보정당은 노동운동을 제대로 하고 싶은 사람들, 환경운동을 제대로 하고 싶은 사람들이 주저 없이 선택할 수 있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금껏 숱한 손가락질을 받고 조롱을 들어야 했던 우리의 촌스러운 구호를 외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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