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쇄 맞서 기습시위로 서울 뒤흔들다
        2006년 12월 07일 01: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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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FTA와 노동법 개악 저지를 위한 노동자와 농민의 함성이 서울 도심을 진동시켰다. 경찰이 집회를 원천봉쇄함에 따라 집회 참석자들은 서울 동대문과 충무로, 을지로에서 기습시위를 전개하면서 서울을 뒤흔들었다. 집회를 ‘허가’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무시한 경찰에게 노동자와 농민은 더 거센 저항으로 맞섰다.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6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앞에서 1만여명(경찰추산 5천여명)이 참가한 ‘비정규확산법 날치기 규탄, 노동기본권 쟁취, 광우병 쇠고기 수입중단 촉구, 사회양극화 해소 한미FTA 저지 제3차 범국민총궐기대회’를 개최했다. 애초 이 대회는 종묘공원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경찰의 집회 ‘불허’로 인해 ‘민주노동당 결의대회’에 이어 곧바로 진행됐다. 

    범국본은 결의문에서 뼛조각이 붙은 쇠고기 수입은 물론, 자동차세제 개편, 농산물 대폭 개방, 투자자 대국가 소송 제도의 도입 등의 요구로 압박하고 있는 미국을 규탄했다.

       
     ▲ 종로 5가 대학로에서 열린 민주노동당 결의대회
     

    범국본은 “한미FTA 협상이 한국 내 각계각층의 이해와 요구를 수렴하면서 국민적 합의를 모아내는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고, 미국측의 요구와 일정에 맞춰 시간에 쫓기듯이 협상을 마무리 지으려는 의도에 따라 밀실, 졸속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정부를 견제해야 할 국회 특위는 여전히 개점 휴업 상태에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군사독재 시절을 방불케 하는 경찰 파쇼적 탄압을 규탄”하면서, “계엄을 연상시키는 비상식적인 탄압은 결국 망국적이고 굴욕적인 협상을 은폐하기 위한 정치적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강경탄압 굴욕적 협상 은폐하기 위한 술수”

    조준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한을 풀지 못한 점을 사죄한다”며 “민주노총의 투쟁에 국민도 이에 적극 동참해줄 것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문경식 전농 의장은 “참여정부는 한미FTA에 대한 장밋빛 전망으로 국민을 현혹시키고 있지만, 노동자와 농민은 앉아서 죽느니, 투쟁하면서 죽기를 각오하고 있다”며 한미FTA 협상 중단을 위한 강도 높은 투쟁을 전개할 각오를 밝혔다.

    미국산 광우병에 걸린 소의 모형을 불태우는 의식을 한 후 집회 참여 조직들은 단위별로 다음 집결 장소를 향해 곧바로 이동했다. 민주노총은 동대문 운동장역, 전농은 충무로역으로 각각 흩어진 뒤 이들은 을지로역 부근에서 재집결하며 "한미FTA 결사 반대“를 외쳤다.

       
      ▲ 광우병 걸린 소 모형 화형식
     

    “농촌 망하면 도시 부양자식들 부담도 늘어”

    음성농민회 소속의 조용희 농민(46)은 “한미FTA 협상에서 쌀은 민감 품목으로 제외한다고 하지만, 농작물이 개방되면 과수 농가나 대체 작물을 하는 농가들은 살아남을 수가 없다”며 “이미 수지가 맞지 않는 논농사 때문에 많은 농민들이 과수 농가로 몰려 공급 과잉 상태에 이르렀는데, 또다시 미국 농산물이 들어오게 되면 농촌은 망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농촌이 망하면 부모를 부양해야 할 도시 자식들의 부담도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1인당 3만원의 회비를 거둬 전세버스 3대를 대절해 오전 9시에 출발하여 서울로 올라온 논산농민회 소속 은명규(50) 농민은 “더 이상 지을 대체 작물도 없다”며 “1등급 농산물을 만들어도 똥값 취급을 받는데 한미FTA 되면 농민은 박살난다”고 말했다.

    시골서 농사만 짓던 농민들의 분노한 함성이 서울 도심을 가득 메웠다. 그들의 목소리가 어떤 메아리가 돼서 돌아올 것인가.

    민주노동당 당원 대회 “노무현 대통령을 물러나라”

    한편 민주노동당은 이날 오후 2시 30분부터 대학로에서 ‘비정규확산법 날치기 규탄, 광우병쇠고기 수입중단, 노무현 정권 심판 결의대회’를 열었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민주노동당 당원들은 ‘비정규 날치기 무효’ ‘한미FTA 협상 중단’이 적힌 주황색 깃발을 흔들었다. 민주노동당 당원들은 “노무현 대통령 물러나라”는 구호를 외쳤다.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는 비정규직 법안을 통과시킨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을 ‘열린우리한나라당’이라고 이름 붙였으며, “한미FTA를 ATF(All Togather Fighting), 즉 민중이 함께 나서서 싸워 저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표는 “한미FTA 협상으로 농민들의 한숨이 깊어갈 때 노무현 대통령은 오직 정계 개편에만 몰두한 나머지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편지나 쓰고 있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흡수 통합돼서 대량해고를 양산하는 비정규법안을 통과시켰다”고 맹렬하게 비판했다.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국민의 권리를 짓밟은 독재파쇼 노무현 정권이 국민의 분노에 불을 붙인다면 더 이상의 관용은 없다”며 “노동자, 농민, 서민과 민주노동당이 함께 일어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민은 자살할까 고민, 대통령은 탈당할까 고민"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은 “한국인 사망의 세 번째 원인은 자살이며, 노무현 정권은 한국인을 이 땅에서 살지 못하도록 하는 제3의 원인”이라고 규정하면서, “비정규직을 확대 양산하는 법안을 날치기 통과시킨 열린우리당과 정부는 또 얼마나 많은 서민을 죽으려 하느냐”며 따졌다.

    그는 또 “한미FTA로 또 얼마나 많은 농민이 농약을 마시며 자살할 것인가”라고 물은 뒤, “국민 10명 중 1명이 자살할까 말까를 고민하는 동안, 노무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을 탈당할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지금이라도 자신 없으면 당장 내려오라. 열린우리당은 해체하라. 다음 선거에서 무슨 낯짝으로 나오려 하느냐. 한나라당에 맞서 싸울 정당은 민주노동당 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 의원은 “한나라당에 맞서 싸울 민주노동당에 힘을 보태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기습시위로 서울을 뒤흔들다

    인권위의 권고마저 무시하고 집회와 행진을 봉쇄한 노무현 정권에 맞서 노동자와 농민들은 기습시위로 맞섰다.

       
     ▲ 동대문운동장에서의 기습시위
     
       
      ▲ 명동 밀레오레 앞에서의 시위
     

    5천여명의 노동자들은 집회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 삼삼오오 집회장을 빠져나가 동대문 운동장역으로 이동했다. 4시 50분 “거리로 나갑시다”라는 메가폰 소리와 함께 투산타워 앞에 서성거리던 노동자들이 일시에 우르르 길거리로 쏟아져나왔다. 노동자들은 동대문 운동장을 지나 을지로를 향해 행진을 벌였다.

    조합원들과 시민들이 합세하면서 시위대열은 7천명으로 늘어났다. 5시 40분 을지로 입구에 도착하자 경찰은 버스와 전투경찰을 동원해 행진을 가로 막았다. 조합원들은 순식간에 방향을 퇴계로로 틀었다. 중부경찰서와 명동성당 후문을 지나 퇴계로 4차선을 잡고 행진을 계속했다.

    시위대의 기습 시위에 경찰은 적잖이 당황한 표정이었다. 서울경찰청의 한 정보과 형사는 “동대문 운동장에 모여 을지로로 행진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퇴계로 나갈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농민과 합세한 시위대는 “한미FTA 저지하자” “비정규직 확산법안 날치기 전면무효”를 외쳤다. 행진 도중 집회 참가자들은 조선일보 기자를 확인하고 지하도로 쫓아내기도 했다.

    6시 정각. 뒤늦게 나타난 경찰들은 시위대를 가로막았다. 노동자들은 격렬하게 몸싸움을 벌였다. 시위대는 경찰 봉쇄를 뚫고 나아갔다가 뒤로 물러나기를 반복했다. 명동 밀레오레 일대는 아수라장이 됐고, 곳곳에서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12명의 참가자가 경찰이 연행되기도 했다.

    한 시간 가량 계속된 기습시위는 7시시 경 명동성당 촛불집회로 이어지면서 집회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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