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 사회적 책임, 공공정책으로 만들어야”
        2006년 12월 06일 03:58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5일 국회에서는 심상정 의원실과 대안연대가 공동 주최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연구 발표회>가 열렸다.

    시민단체와 몇몇 언론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사업을 펴고, 어떤 이유인지 노무현 정부와 재벌들까지 똑같은 언술을 펴고 있는 마당에 민주노동당의 재정경제위 의원과 진보적 경제 학술 단체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논하는 자리를 마련하였으니, 의미심장하지 않을 수 없다.

       
     

    너무나 다른 프랑스 사람들의 기업 인식

    심상정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얼마 전 프랑스에 갔었는데, 그 나라 사람들은 기업주에게 노동자 해고권을 준다는 것조차도 용납하지 못하는 것 같더라. 최초고용법 반대 투쟁에 350만 명이나 나설 수 있었던 것은 프랑스 사람들의 기업에 대한 인식이 한국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업의 일차적 책임이 고용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심상정은 삼성 저격수’라는 것은 대안이 아니다. 기업들에게 어떤 사회적 책임을 지게 할지를 구체적으로 정하고, 그에 따라서 기업 정책을 펴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또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기준이, 노동조합이 자본을 대하는 태도와 역할을 제시할 수도 있다.”

       
      ▲ 전창환 교수
     

    이날 발표회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이론적 검토와 대표적인 대기업 네 곳의 사회적 책임 실태에 대한 진단이 있었다.

    전창환 교수(한신대 국제경제학)는 「이해당사자 기업모델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통해 주주 중시 기업모델이 아닌 이해당사자 기업모델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론을 도출하고 있다. 전창환에 따르면, 만능인 것처럼 이야기되는 주주 중시 모델은 미국의 엔론, 월드컴 등의 회계부정 사건을 통해 잘 가동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실제로 주주는 기업을 통제하거나 감시하지 못한다. 케인즈는 주주가, ‘특별한 생산적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 무기력한 투자가’라고 간파한 바 있다.

    주주 중시 경영의 폐해들

    전창환은, 주주 중시 모델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해당사자 모델에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기업 홍보 등에 악용되는 도구적 이해당사자 이론을 경계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론이 공적인 질서 없이도 기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경영자의 재량에만 맡겨 놓을 것이 아니라 공공정책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 이해관 KT 해고자
     

    이해관(KT 해고자)은 KT 민영화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민영화 이후 KT 의결가능주식의 2/3를 외국인이 소유하게 되면서, 주주 배당이 다섯 배나 늘었다. 반면 매출 대비 설비투자액 비중은 절반으로, 연구개발비 비중은 1/3 수준으로 하락했다.

    이러다 보니 곳곳에서 통신두절 사태가 벌어지고 있고, 진대제 정통부 장관조차 “KT가 민영화 이후 소비자 권익보다 주주 이익을 먼저 살펴 유선전화에 대한 설비투자를 게을리 한 것도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고 지적할 정도에 이르렀다.

    이상호(진보정치연구소 연구위원)는 「완성차업체의 협력업체에 대한 사회적 책임」에서 현대자동차와 협력업체 사이의 관계를 진단했다. 우리 나라 자동차 부품 업체의 납품 총액 중 현대와 기아가 78%를 차지할 정도로 시장 지배적 위치다.

    삼성전자, GE-도요타 노동자 절반 수준 대우

    그런데 현대자동차는 부품 납품을 독립업체 뿐 아니라 계열회사에도 발주함으로써 현대차의 전체 거래 중 절반(49.3%)이 내부에서 이루어지고, 이는 독립업체들에게 부당한 단가 인하 압력으로 작용한다. 실제로도 이익률에 큰 차이가 나, 현대차는 7.3%, 계열사는 6.2%, 독립부품업체는 4.9%의 이익을 거두고 있다. 이상호는 이처럼 불공정한 하도급거래를 막기 위해 표준계약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이상호 연구원
     

    김주일(한국기술교육대학교)은 「삼성전자 이익처분의 현황과 문제점」을 검토했다. 독일에서는 기업의 2/3가 임금, 이자 등을 지출한 이후 이익의 50%를 노동자 몫으로 지급한다.

    이에 비해 삼성전자 노동자들은 임금과 성과급으로 연 5,070만 원을 받고, 1억 원의 이익을 더 생산한다. 삼성전자 노동자들은 종업원 1인당 영업이익이 비슷한 GE나 도요타 노동자들의 절반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공헌’을 내세우는 삼성전자의 당기순이익 중 기부금은 2.2%에 지나지 않는다.

    조돈문(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은 「삼성SDI 지속가능성 보고사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서 삼성SDI가 국내 최초로 발표하고 있는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반박했다. 삼성SDI는 “인재 중시 경영, 임직원이 가장 소중한 자산, 인재가 곧 미래”라고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삼성SDI는 근로기준법을 어기고 무려 월 518시간의 노동을 시켜 노동자를 사망케 하고, 임산부와 연소자에게까지 연장근로를 시키고 있었다.

    주주 가치보다 훨씬 우위에 서 있는 총수 가치

    “이해관계자와 파트너십을 강화하여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삼성SDI는 같은 라인의 일부 노동자들을 위장 분사시켜 정규직 임금의 50%만 주고, 결국에는 도급계약을 해지하여 부당해고하고 있었다.

       
      ▲ 조돈문 교수
     

    조돈문은, 삼성SDI가 이해당사자 자본주의가 아닌 주주 자본주의 모델에 입각해 있지만, 주주 가치와 총수 가치가 충돌할 때는 언제든지 총수 가치를 최우선시 한다며, 그 예로 0.02% 지분밖에 안 되는 총수 일가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1일 4.24%의 주가 하락까지 감수한 사례를 들었다.

    조돈문은, 삼성SDI의 지속가능성 보고서와 사회적 책임성 담론이 “기업 홍보라는 상업적 동기와 친화적 기업 이미지 형성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발표회의 사회를 맡은 조원희 교수(국민대 경제학)는 전창환의 발표에 대해, 주주 중시 모델과 이해당사자 모델의 대립 구도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론을 도출하는 것이 올바른지, 특정한 기업 모델이 아니라 자본주의 기업 자체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부여하는 차원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을 제기했다.

    세계 최우량 기업의 45% 사회적 책임 보고서 내

    토론자로 나선 이종탁(산업노동정책연구소)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론이, 대안운동이 사회를 주도하지 못하고 자본주의를 넘는 대안을 내지 못하는 상황을 반영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며, 기업 공개도 안 하고 있는 중소기업은 사회적 책임에서 자유로운 것인지를 물었다. 또 기업 내부 이해당사자의 기업 참여는 관계자 담합의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 강화와 함께 다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 조명래 교수 
     

    또 다른 토론자인 조명래(단국대 도시지역계획학 교수)는, 아담 스미스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역설했다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1940년대에 미국 대법원 판결로 확립되었고, 세계 최우량기업의 45%가 사회책임 보고서를 내고 있다고 전해 주었다.

    어떤 대안적 위치를 가지는가와는 무관하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마땅히 물어져야 한다. 문제는 그것이 두 개의 운동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두 운동 중 하나가 자본의 사회적 확장이라는 점이다.

    운동가들이 만들어낸 기업시민권(Corporate Citizenship)은 기업에게 의무를 부여하기 위해서였지만, 현대의 다국적 독점기업들은 언제 어디서든지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내세우고 있고, 법률의 제개정과 폐지에 의해 변화되는 법인격과 달리 법률 이전의 ‘천부(天賦)’와 ‘불가침(不可侵)’이라는 시민격의 반열에 올라서게 될 자본의 내일은 너무도 끔찍하다. 19세기 영국 최대 방적공장 경영주였던 오웬(Robert Owen)은, 자본이 ‘거대하고 영구적인 악’이라고 갈파하지 않았던가.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