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통의 기억 경쟁 넘어야
    [책소개]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임지현/ 휴머니스트)
        2021년 08월 20일 10:0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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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일제의 억압에서 해방된 지 올해로 76년째다. 반세기를 훌쩍 넘긴 시간 동안 우리는 스스로를 식민 지배의 희생자로 굳게 믿어왔다. 그래서 아시아의 전쟁과 학살에 책임이 있는 일본의 정치인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찾아가 참배하는 것을 볼 때마다 크게 분노한다. 하지만 참배 같이 노골적인 행위보다 우리를 더욱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히로시마 원폭의 기억을 통해 ‘피해자’ 일본이 부각될 때다. 히로시마가 반핵평화운동의 상징이 될 때, 전쟁의 책임이 흐려지고 가해자의 희생자성만을 강화하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더 큰 어려움은 우리가 일본의 후안무치함을 비판할 자격을 갖춘 ‘정당한’ 희생자라고 믿을 때 나타난다. 저마다 자기 민족이 정당한 희생자라고 강변하는 시대,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21세기 기억 전쟁의 위험하고도 유력한 이념으로 떠오르고 있다.

    폴란드와 독일, 미국과 일본을 넘나들며 세계적인 기억 연구자로 활동하고 있는 임지현 교수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고통을 경쟁하는 지구적 기억 전쟁》을 통해 21세기 기억 전쟁의 복잡한 풍경을 선명하게 포착한다. 수백만의 유대인이 희생된 홀로코스트 앞에서도 자신들의 고통만을 강변하는 독일과 폴란드의 우익,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영원히 세습함으로써 팔레스타인에 대한 식민주의적 억압을 정당화하는 이스라엘의 시온주의자, 일본군 ‘위안부’가 일본의 명예를 더럽히기 위한 음모라고 주장하는 일본의 극우파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얼마나 강력하게 지구적 기억 공간을 지배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홀로코스트, 식민주의 제노사이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희생과 고통의 기억을 줄 세움으로써 누가 더 ‘우월한’ 희생자인지를 다투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자신의 과거를 정확하게 반성하지 못하게 만들고 민족 사이의 갈등만을 부추긴다. 고통과 희생을 혐오와 적대가 아니라 이해와 연대를 위한 마중물로 삼는 기억 연구가 절실한 이유다. 임지현 교수가 국경을 넘나들며 다년간 진행한 기억 연구를 결산하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기억의 연대로 나아가기 위한 지구적 기억의 윤리를 탐색하는 데 필수적인 길잡이다.

    ‘일상적 파시즘’, ‘대중독재’, ‘국사의 해체’ 등 민족주의 정서에 균열을 일으키는 개념을 잇달아 제시하며 세계 학계에 신선한 자극을 불어넣은 역사학자 임지현 교수. 그는 지구적 기억 공간을 떠돌면서 인문사회과학의 설득력은 연구자 자신의 개인적이고 역사적인 삶의 경험에 뿌리박은 고유한 문제의식과 그 경험을 추상화할 수 있는 이론적 힘에 있음을 깨달았다. ‘서양’이 이론을 제시하고 ‘동양’은 경험자료를 제공하는 불평등한 학문적 분업 체제가 아닌, 지구적 근대의 주변부인 동유럽과 동아시아의 경험에 천착한 독자 이론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발간은 큰 의미가 있다. ‘대중독재’로 해외 학계의 민족주의 연구에 큰 반향을 일으킨 임지현 교수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라는 개념으로 21세기 민족주의를 적확하게 포착하며 기억 연구의 새 장을 열었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영어판으로도 출간될 예정이다.

    누가 ‘숭고한 희생자’의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 국가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희생의 기억

    오랫동안 폴란드와 독일 등을 넘나들며 연구해온 임지현 교수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현장으로 먼저 폴란드의 기억 전쟁을 살펴본다. 1987년 한 문학평론가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게 끌려가는 유대인을 방관했던 폴란드인의 행동을 반성하는 에세이를 발표하자, 에세이에 공감하는 목소리와 나치 독일에 끈질기게 항거했던 폴란드가 절대 그럴 리 없다는 항변이 팽팽하게 맞부딪혔다. 폴란드의 공식 기억에서 배제되고 억압되었던 풀뿌리 기억이 표면으로 올라왔을 때 나타난 격렬한 반응은 그만큼 희생자라는 자리가 도덕적으로 얼마나 편안한 것인지를 드러냈다. 폴란드인의 죄의식을 건드린 사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0년 폴란드인 역사학자가 ‘예드바브네 학살’을 다룬 책 《이웃들》을 발표하면서 폴란드 전체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1941년 7월 폴란드 동부 변경의 작은 마을에서 1600여 명의 유대인이 학살당한 이 사건은 학살의 주체가 다름 아닌 폴란드인 이웃이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주었다. 나치의 희생자이자 유대인을 구출한 정의로운 저항자라는 폴란드인의 이미지는 산산조각날 수밖에 없었다.

    폴란드의 ‘세습적 희생자의식’에서 발생한 균열은 희생자의 지위를 세습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우리에게도 나타났다. 2007년 미국에서 출간된 《요코 이야기》가 좌우를 막론하고 국내 언론의 맹비난을 받은 사건이 대표적이다. 일제의 침략을 통해 조선과 만주에 살던 일본인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대규모로 피란을 떠나야 했다. 어린 시절 피란 행렬에 끼어 온갖 고생을 한 저자는 당시 조선인의 험악한 분위기는 물론 수시로 나타나는 폭력을 증언했다. 저자의 기억에서 역사적 맥락을 소거한 채 피해의 경험만 부각한 것은 문제이지만, 국내 언론도 재미교포 사회도 오로지 ‘희생자 한국인’만을 강변하면서 개인의 피해 경험을 지우려 한 한계가 드러났다.

    이처럼 폴란드와 한국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희생자라는 위치를 부각한다는 점에서 21세기 민족주의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전사자를 ‘숭고한 희생자’로 숭상하는 국민국가는 민족주의라는 시민종교를 통해 정당성을 확보해왔다. 여기에 고통 받은 희생자들의 기억이 덧붙어 도덕적 권위의 근거가 ‘영웅’에서 ‘희생자’로 바뀜으로써, 지구적 기억 공간에서 민족주의의 모습은 훨씬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희생의 기억은 어떻게 국경을 넘나드는가
    ― 기억의 지구화와 홀로코스트의 국민화로 보는 기억 전쟁

    탈냉전을 맞아 기억도 국경을 넘나들며 지구화 시대에 들어선다. 특히 2000년은 지구적 기억 문화의 ‘0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중요한 해다. 2000년 1월에 열린 ‘홀로코스트에 대한 스톡홀름 국제포럼’은 홀로코스트의 교육과 기억 보존을 의제로 삼았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그리고 그해 12월 ‘일본군 성노예제에 대한 여성 국제전범재판소’가 도쿄에서 열렸다. ‘위안부’ 문제에 제국주의와 성적 폭력이 동시에 얽혀 있음을 분명히 드러낸 국제전범재판은 일본군 ‘위안부’가 결코 한국만의 문제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의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 기억활동가들이 ‘위안부’ 희생자들과 연대하고,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 생존자와 ‘위안부’ 희생자의 증언을 함께 전시한 기획이 성사되는 것은 고통과 희생의 기억이 국경을 넘나들며 갈등과 연대의 가능성을 함께 품고 있음을 드러낸다.

    물론 기억의 연대가 언제나 매끄럽게 이뤄지는 것만은 아니다. 1963년 일본의 반핵평화활동가들은 폴란드의 아우슈비츠를 찾아가 ‘히로시마-오시비엥침(아우슈비츠) 평화행진’을 진행했다. 장장 3만 3000km에 이르는 긴 여정 끝에 행진 참가자들은 “아우슈비츠는 다시 없게!”와 “히로시마는 다시 없게!”를 동시에 외쳤다. 원폭으로 고통받는 히로시마의 기억과 인간에게 벌어져서는 안 될 참혹한 아우슈비츠의 비극이 포개지는 순간이었다. 평화행진은 냉전의 논리 속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등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중 가장 난감한 순간은 평화를 갈망하는 ‘순수한’ 의도로 행진을 기획한 평화활동가들이 싱가포르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맞닥뜨렸을 때였다. 희생자로 나선 이들이 자기 나라의 가해자성을 마주할 때, 기억의 지구화는 기억의 국민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1950년대 일본에서 안네 프랑크의 일기가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증언한 빅토어 프란클의 책이 출판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은 홀로코스트의 국민화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다. 홀로코스트에 희생된 유대인과 원폭에 희생된 일본인 사이의 유비가 일본 독자들을 끌어모으는 동력이었음은 물론이다. 홀로코스트의 국민화는 일본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위안부’ 문제를 홀로코스트에 빗대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문제는 홀로코스트의 국민화가 희생의 기억을 탈역사화할 때 빚어진다. 희생의 경험을 곧바로 홀로코스트에 비유하고 어느 쪽이 더 큰 희생자인지를 가려내는 기억의 경쟁이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가해의 기억은 어떻게 손쉽게 망각되는가
    ― 기억의 탈역사화와 과잉역사화라는 동전의 양면

    우리는 독일이 일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전쟁과 학살의 책임을 받아들이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패전 직후의 독일은 그렇게 성찰적이지 않았다. 반성을 강조하는 점령 당국의 교육은 독일인에게 열패감만을 안겼고, 상당수의 독일인이 유대인 등의 절멸은 어쩔 수 없었다는 인식을 완고하게 지니고 있었다. 한 마디로 독일의 탈나치화는 신화였다. 자신을 희생자로 인식하는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희생자 신화가 집권당과 우익뿐만 아니라 평화헌법의 지지자와 평화활동가들 사이에도 널리 퍼졌던 것은 물론이다.

    역사적으로 실재하는 가해의 경험이 소각된 채 희생의 기억만 강조되는 현상은 피란민과 전쟁포로에게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귄터 그라스는 《게걸음으로》에서 빌헬름 구스틀로프호의 비극을 묘사했다. 1945년 1월, 1만 여 명의 피란민을 태우고 동프로이센에서 출발한 배는 소련 잠수함의 공격을 받고 침몰했다. 독일이 통일되면서 우익들은 빌헬름 구스틀로프호 침몰을 거리낌없이 내세우며 독일의 희생자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라스가 종래의 우익과 다른 점은 희생의 경험을 일방적으로 강변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빌헬름 구스틀로프호가 나치에 복무했으며 동프로이센 피란민의 상당수가 나치 지지자였음을 드러낸 것은 가해와 희생의 기억을 얼버무리지 않고 정확하게 직시하려는 노력의 결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의 기억을 탈색하려는 무의식적 욕망은 사라지기는커녕 더욱 강해지고 있다. 예드바브네 학살의 가해자들이 자신들은 무고한 피해자이고 모든 잘못은 ‘유대인 빨갱이’가 저질렀다고 주장하거나, 한국 사회가 일제의 동남아 침략의 선봉에 서다 B·C급 전범으로 처형된 조선인 군무원들을 ‘일제에 어쩔 수 없이 복무한 불쌍한 조선 청년들’로 규정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희생자 민족은 모두 무고하다는 ‘집합적 무죄’ 의식은 학살의 기억마저 가려버린다. 1931년 7월 만주에서 벌어진 조선인과 중국인 농민의 갈등이 언론의 오보로 조선인이 각지에서 중국인을 학살하기에 이른 ‘완바오산(만보산) 사건’은 사실상 ‘화교 포그롬’이라 불릴 참극이지만, 해방 이후 한국인은 완바오산 사건을 슬그머니 덮어두었다.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무기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식민주의적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다. 희생자 지위를 영원히 소유하고자 하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위험한 것은 바로 성찰을 포기한 채 도덕적 정당화에만 골몰하기 때문이다.

    고통의 기억을 어떻게 기억의 연대로 바꿀 것인가
    ― 복잡다단한 기억을 직시함으로써 구축하는 지구적 기억의 윤리

    기억의 지구화와 더불어 두드러지는 현상은 기억의 병치다. 나란히 선 기억은 서로를 참조하면서 희생의 고통을 부각시키고 사람들로 하여금 희생자와 더욱 쉽게 동일시하도록 만든다. 1945년 8월 원폭 투하 당시 나가사키의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던 나가이 다카시는 죽기 직전에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는 성모 마리아가 마실 물을 주는 환상을 보았고, 나가사키에 체류했던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에게 기도를 드리라는 음성을 들었다. 잠시 ‘아우슈비츠의 성인’ 콜베 신부를 만나기도 했던 나가이는 이후 나가사키 원폭의 기억과 홀로코스트의 희생을 적극적으로 연결했다. 나가이는 공교롭게도 우라카미 천주당에서 미사가 있던 그때 그곳에서 원폭이 터졌다는 데서 우라카미가 하느님께 바쳐진 제물이라는 발상에 이르렀다. 나가사키가 세계평화를 위해 제물로 바쳐졌다는 서사는 종교적으로 강렬한 만큼 정치적으로 크게 문제적인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제의 전쟁 책임을 종교적으로 승화된 기억으로 덧칠하는 기억 정치의 맞은편에는 종교적으로 승화된 용서의 윤리가 있다. 1966년 폴란드 가톨릭 주교단이 서독 주교단에게 보낸 사목 서신은 희생자인 폴란드인이 가해자인 독일인을 용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폴란드에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비록 서독 주교단의 소극적인 대응으로 폴란드 주교단이 기대했던 만큼 국경을 넘은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희생자가 먼저 가해자를 용서한다는 전복적인 내용은 탈냉전 시대 동유럽 각지에서 낭독되면서 사람들이 서로를 보복 학살하는 비극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이끌기도 했다. 폴란드 주교단의 사목 서신은 동아시아에서 일본 제국이 벌인 전쟁과 학살의 책임을 받아들이고 희생자 민족들에게 용서를 구한다는 일본 주교단의 결의로 이어졌다. 여전히 국가의 사과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에게 폴란드 주교단과 일본 주교단이 보여준 화해의 제스처는 동아시아의 초국가적 화해와 용서를 위한 아이디어를 제공해준다.

    지구적 기억 공간에서 용서와 화해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또 있다. 바로 부정론이다. 특히 실증주의적 부정론은 ‘물적 증거’를 강조함으로써 생존자의 증언을 무력화하고 희생의 기억을 자기들에게 유리한 쪽에 묶어두려 한다. 희생자의 개인적인 기억은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의 자양분인 동시에, 진영의 유불리에 따라 억압되고 배제되는 것이다. 이때 기억 활동가에게 필요한 작업은 얄팍한 ‘팩트’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희생자/생존자의 ‘깊은 기억’을 끌어내고 이를 세심하게 서사화하는 것이다.

    다년간 국경을 넘나들며 기억 연구를 진행해온 임지현 교수는 진정한 기억의 연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희생하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희생의 경험을 일방적으로 내세우고 서로 다른 희생의 기억을 줄 세워 국가와 민족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데 그치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국가 간의 장벽을 더욱 높여 다른 존재에 대한 혐오와 적대만을 양산하기 때문이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21세기 민족주의를 포착하는 가장 적확한 개념인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정확하게 통찰함으로써 지구적 기억의 윤리를 모색한다. 기억의 성찰성과 잠재력을 탐색하는 이 책은 혐오와 적대가 더욱더 심해지는 이 시대를 돌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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