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징에서 마주친 젊은 저항자들
    [책]『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홍명교/빨간소금)
        2021년 08월 20일 10:00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누가 사라졌나?

    2018년 7월,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외신은 중국 광둥성 선전에 위치한 용접기 제조 공장 자스커지에서 일하던 노동자 30명이 체포된 사건을 전했다. 노동자들의 요구는 단지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조합에 가입하겠다는 것이었다. 이후 수십 명의 대학생과 노동운동가가 선전으로 모여들었다. 베이징대학, 런민대학, 난징대학 등에서 마르크스주의 학회 활동을 하거나, 그런 경험을 거쳐 NGO 활동가로 살고 있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탄압은 더욱 거세어지기만 할 뿐이었다. 9월에는 동아리 등록이 취소됐고, 11월에는 동아리를 졸업해 NGO에서 일하던 선배들이 체포됐으며, 12월에는 동아리 간판을 강탈당했다.

    이 시기 베이징에 머무르고 있던 저자는 우연한 기회로 이 청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단지 더욱 평등하고, 노동 착취가 없는 세상이 되려면 지금의 중국 사회가 자본주의의 길을 가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청년들이었다. 청년들은 하나둘씩 사라졌고, 2019년 봄이 됐을 때에는 체포된 사람만 132명이 되었다. 이들 중 일부는 풀려나왔지만, 대부분은 여전히 행방을 알기 어렵다.

    그들은 왜 사라졌나?

    2010년대 중국의 노동운동은 어느 때보다 뜨겁게 타올랐다. 2010년 5월 난하이혼다자동차 공장에서 폭발한 신세대 농민공들의 파업은 그 신호탄이었다. 개혁개방 이후 막대한 외국자본 유치와 규제 해소로 ‘세계의 공장’이 된 광둥성 일대에서 파업의 물결이 일었다. 나이키 신발을 만드는 공장에서도, IBM 공장에서도, 월마트와 건설 현장에서도 행동은 이어졌다. 자본주의의 길을 걷던 중국 사회의 모순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중국공산당은 이런 사회 모순이 정치화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기 시작했다. 체제 안정을 위해서는 임금이나 해고 문제에 분노해 일어난 농민공들의 파업이 체제 비판적 성격의 흐름과 만나는 것을 원천 봉쇄해야 했다. 중국의 민간좌파는 새롭게 태동한 이 노동운동의 물결에 함께하고자 했다. 베이징대학 등 여러 대학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던 청년 그룹들이 결집하기 시작했다. 자스커지 사건은 세상을 바꾸는 투쟁에 투신한 청년 활동가들을 뿌리째 뽑고자 하는 당국의 과감한 탄압이 빚은, 중국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들에게 보내는 약속

    “정치적인 욕망과 일상의 피로, 열악한 사회 현실과 전망 없는 미래에 대한 답답함, 30대라는 생애주기에서의 고민 등”으로 글쓴이는 오랫동안 가까이 지내던 이들을 뒤로하고 홀로 베이징으로 떠났다. 때마침 중국 광둥성 선전에 위치한 용접기 제조공장 자스커지에서 노동자투쟁이 시작되었고, 그 저항의 한복판에 있던 몇몇 청년을 만났다. 그들은 글쓴이에게 자신과 다소 다른 견해를 지닌 젊은 활동가들과의 만남을 흔쾌히 주선했다. 이런 열린 마음 덕분에 그들은 중국과 한국의 사회 상황과 운동에 관해 폭넓게 이야기 나눌 수 있었으며, 빠르게 친구가 되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이 세상 누구도 할 수 없는 진귀한 만남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글쓴이가 중국에 있던 2018년 봄부터 이듬해 봄까지 그가 만난 이들을 포함한 130여 명의 활동가가 체포됐다. 이들은 다른 미래를 꿈꾸었다는 이유만으로 재판받을 권리조차 빼앗긴 채 구속 또는 연금 조치됐다. 그래서 그는 기록했다. 이 상황과 그들의 이야기를 한국에 꼭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글쓴이가 중국에서 보낸 뜻밖의 여정에 관한 사적 기록이자,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들”에게 보내는 약속이다.

    조금 특별한 중국 기행서

    이 책은 주관적인 기행문 형식을 빌린 인문에세이다. 봄에는 북쪽에서 서쪽으로 기차를 타고 베이징-시안-시닝을 다녔고, 여름에는 남서부 윈난성과 구이저우성의 도시들을 돌았다. 가을엔 북쪽의 산시성과 허베이성 여행을 다녀왔으며, 마지막 여정은 남부의 광둥성과 홍콩이었다. 중국을 한 바퀴 돈 셈이다. 하지만 여느 여행서에서 볼 수 있는 맛집이나 관광 정보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사회주의’라는 간판을 걸어놓은 대국, 중국에서 일어나는 자본의 탐욕에 맞서 싸우는 청년들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동아리 유지를 위해 가짜 연극을 해서라도 소중한 공동체를 지키려 분투하는 학생들, 학내 노동자를 위한 야학을 열어 연대를 만들어내는 학생들, 낮에는 엔지니어로 일하고 밤에는 마오주의자로 활동하는 G매체 편집장, 《전태일 평전》과 한국 노동운동의 어려움에 대해 묻는 이들, 마오쩌둥의 가르침을 따라 노동자?농민과 연대해야 한다고 외치는 청년들, 영화 상영회를 열어 토론하는 노동자들, 다양한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고 싶다는 청년”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물론 글쓴이가 이들을 만나려고 베이징에 간 것은 아니다. 우연히 그들과 마주쳤고 우정을 쌓았다. 그러면서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중국의 민낯을 직접 확인했다. 그것은 개혁개방 이후 심화된 불평등과 빈곤이다. 2018년 6월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지역별 불평등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심각하다. 불평등 정도를 가늠하는 지니계수(gini index) 역시 1981년 이래 지금까지 꾸준하게 상승했다. 1980년대 초 0.3에 못 미쳤던 지니계수는 2000년대 중반 0.5에 근접했다. 최근 들어 조금 완화되긴 했지, 많은 농민공이 일자리를 잃거나 임금 체불에 시달리고 있어 당분간 이 폭을 줄이는 것은 매우 어려워 보인다.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을 어렵사리 통과한 뒤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 기자회견에서 리커창 총리마저 “중국 인민 6억 명의 월수입이 1,000위안에 불과하다”고 말했을 정도다.

    이러한 붏평등과 빈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동아시아 각국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문제다. “자신과 한국 사회에 대한 성찰로 시작된 여정”은 이렇게 국제연대에 대한 갈망으로 끝난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동료들과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를 만들어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동아시아 사회운동에 관한 리서치와 연대, 뉴스레터 작업은 이런 실험의 하나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