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대통령, 대답 좀 해보시지요"
        2006년 12월 06일 09:35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정치는 구도싸움이다. 싸움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물론 구도는 자의로만 성립하지 않는다. 투표자들이 인정하는 구도여야 한다. 그럴려면 현실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명분도 분명해야 한다. 메시지도 쉽고 뚜렷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여권 내부의 권력 다툼을 지역주의대 반지역주의 구도로 규정했다. 민주당, 고건 전 총리 등과의 통합을 전제로 하는 신당논의는 지역구도로의 회귀라고 했다. 통합신당파는 "통합이 왜 지역주의냐"고 반발했다.

    통합을 지역주의라고 비판하는 노대통령과 통합은 지역주의가 아니라고 반박하는 통합신당파의 공방을 언론은 연일 보도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역구도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싸움의 구도로 이미 고착된 느낌이다. 노대통령이 던진 그물에 통합신당파가 제대로 걸려든 모양새다.

       
     ▲ 노무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이런 구도는 노대통령에 전적으로 유리하다. 실제 통합신당론은 지역구도를 전제로 성립하기 때문이다. 통합신당파의 반격은 ‘이게 왜 지역구도냐’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지역구도를 일부 감수하고라도 추구해야 할 보다 중요한 가치를 제시해야 한다. 통합신당파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김근태 의장은 평화개혁세력의 결집을 강조한다. 그런데 내용이 모호하다. 긴 설명이 필요하다. 이런저런 설명을 필요로 하는 순간 구도는 효력을 상실한다.

    예컨데 민주당 한화갑 대표, 고건 전 총리, 김근태 의장, 여당 실용파가 함께 서 있다고 가정하자. 이들을 본 사람들이 ‘평화’와 ‘개혁’을 떠올릴까, ‘지역구도’를 떠올릴까. 이건 가치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대단히 현실적인 문제다. 김근태 의장은 지금 가망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

    범여권 정계개편 문제에 관한 한 ‘지역구도냐, 아니냐’는 노대통령의 규정은 타당해 보인다. 그런데 노대통령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간다.

    지역구도를 한국 정치의 만악의 근원으로 규정했다. 노대통령은 "대통령의 직분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며 "지역구도 하의 다당제와 결합된 여소야대라는 최악의 정치구도" 때문이라고 했다.

    이쯤에서 올 하반기 주요 정치 의제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과연 야당의 비협조로 노대통령이 할 일을 못했는지 따져봐야 한다. 올 하반기 우리 정치는 대략 한 달을 주기로 이슈를 갈아치웠다.

    7월엔 한미FTA가 주요 이슈였다. 서울에서 2차 협상이 있었다. 한미FTA에 관한 한 한나라당은 여당보다 더한 노대통령의 후원자다. 8월엔 ‘바다이야기’로 정국이 몸살을 앓았다. 이 역시 "개가 짖지 않은 것(노대통령 표현)"은 야당의 비협조와는 무관했다. 9월엔 이른바 전효숙 파동이 있었다. 이 문제는 한나라당의 발목잡기 사례로 인정할만 하다.

    10월엔 북핵사태가 왔다. 대북 문제다. 현 정부 들어 대북 관계가 악화된 시발점으로 대북송금 특검을 꼽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전적으로 노대통령의 결단에 따른 것이었다. 한나라당의 정략적 반대는 김대중 정부 때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현 정부의 일관성 없는 대북 정책이 남북 관계를 교착상태에 빠뜨린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11월엔 부동산 대란이 왔다. 최근 몇 년 간 천정부지로 치솟은 부동산 값은 현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각종 ‘도시’자 들어가는 개발 정책은 전국을 투기장으로 만들었다. 고분양가 문제도 그렇다. 노대통령 자신이 "세상에는 열 배 남는 장사도 있다"면서 분양원가 공개를 반대한 사람이다. 한나라당이 반대한 건 종부세 등 조세정책이 유일한데, 어쨌건 이미 시행되고 있다.

    12월엔 비정규직 문제가 화두가 되고 있다. 11월 30일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손 잡고 비정규직 법안을 통과시켰다.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비정규직을 줄이기 위한 노대통령의 어떤 노력을 한나라당이 어떻게 좌절시켰는지 궁금하다.

    훑어보면 국민의 삶과 중대하게 관계된 정치 영역에서 노대통령이 한나라당의 반대 때문에 못한 것은 별로 없다. 한미FTA나 비정규직 법안, 이라크 파병처럼 한나라당이 든든한 조력자가 되는 정책도 제법 있다.

    노대통령이 지역구도 정치체제를 만악의 근원으로 꼽으려면 이런 질문에 답해야 한다. 현 통치위기의 원인이 민심 이반에 있다는 진단에 동의한다면 더욱 그렇다.

    지역구도가 극복되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줄어드는가. 부동산 값은 잡히고 주거 여건은 개선되는가. 한미FTA를 둘러싼 사회적 대치상태는 해소되는가.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