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물이름의 국명에
    이명법을 도입하자는 주장에 붙여
    [푸른솔의 식물생태] 식물이름과 어떤 과잉감정
        2021년 08월 17일 04:28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 ‘푸른속의 식물생태 이야기’ 칼럼 링크

    글을 시작하며

    최근에 청와대의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우리 식물이름을 바로 잡아 주세요”라는 글이 게시되었다. 현재 부르는 식물이름을 전반적으로 고쳐 달라는 것인데 무엇보다 이것을 정치에 기대어 국민청원을 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스럽다. 게다가 그 글의 대부분은 식물(학)에 대한 무지와 오해 그리고 왜곡이 묻어 있다.

    그 중에 우리가 한국어로 부르는 식물이름 즉, 국명에 이명법을 도입하자는 주장은 황당무계함을 넘어 거의 재앙 수준이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살펴보자.

    “우리 식물의 국가표준명은 이명법을 채택해야 합니다. 일제강점기하에서 수많은 외국의 선진 학문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습니다. 그 당시 식물명의 학명으로 이명법을 도입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국명은 이명법을 채택하지 않았고 지금도 이를 쓰지 않고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 식물명은 복잡하고 무질서하게 되었고 식물을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게 되었습니다…(중략)…산지 바위틈새에 자라는 돌나물 종류인 바위채송화를 바위돌나물이라 고치고 바닷가에 자라는 땅채송화를 땅돌나물로 바로 잡아야 합니다…(중략)…우리 국가표준식물명이 이명법을 채택해야 할 이유입니다.

    이명법으로 바꾸는 것은 이미 익숙해진 이름에 혼선을 일으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청원은 근본적이고 정당한 근거가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한국인과 한글 사용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반드시 지켜야 할 규범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규범은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론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으로 남겨주신 규칙입니다. 세종대왕께서 한글 창제의 취지로 “대중이 쉽게 배우고 편하게 쓰게 하라”는 어명을 내리셨기 때문입니다.”

    – 2021.8.13.자 청와대 국민청원 “우리식물이름을 바로 잡아주세요” 중에서 (청원 글 링크) 

    돌나물(경기도 분당)

    국명에 이명법(binominal nomenclature) 적용할 경우 발생하는 문제점들

    (1) 이명법이란?

    생물의 분류학적 단위에 붙이는 분류학적인 이름을 학명(學名, scientific name)이라 한다. 이명법은 칼 폰 린네(Carl von Linne, 1707~1778)에 의해 제안된 학명 명명법의 일종이다. 속명(屬名, generic name)과 종소명(種小名, epithet)의 두 이름을 조합하여 ‘속명+종소명’의 형식으로 종(種, species)을 표기하는 방식이다.

    한 종에 하나씩 유일무이한 이름을 붙여 서로 다른 언어를 쓰더라도 전 세계 어디에서나 소통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한 일종의 약속된 기호 같은 것이다. 혼란을 방지하기 위하여 학문의 발전에 따라 종의 인식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없는 한 변경되지 않는다. 변화를 방지하기 위해 죽은 언어인 (고대)라틴어로 표기하고 국제식물명명규약(ICN)에 따른 선취권에 근거하여 최초 부여된 이름이 계속 유지된다. 학명(이명법 포함)은 나라마다 지역마다 또는 언어에 따라 다양하게 부르는 국명(=일반명, common name)과 구별된다

    이명법에서 속명은 라틴어 명사형으로, 종소명은 라틴어 형용사형으로 표시한다. 마지막에 붙는 명명자는 생략할 수 있다. 그래서 두개의 단어로 식물 종을 나타낸다고 하여 이명법이라는 일컫는 것이다.

    예) Sedum sarmentosum Bunge(1833)

    위 학명은 국명 돌나물이라는 종을 표시하는 것으로 이명법에 따른 것이다. 위 학명에서 Sedum이 속명이고, samentosum가 종소명이다. Bunge는 1833년에 이 학명을 부여한 Alexander von Bunge(1803~1890)라는 러시아 식물학자의 이름으로 명명자를 뜻한다.

    (2) 국명에 이명법을 적용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아마도 위 청원자는 식물분류학에 의할 경우 돌나물속(Sedum)에 속하는 바위채송화와 땅채송화에 ‘채송화’라는 이름을 붙는 것이 못내 못마땅했나 보다. 그래서 ‘바위돌나물’과 ‘땅돌나물’이라고 하면 보다 쉽게 이해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나 이명법을 포함한 학명은 국제식물명명규약(ICN)이라는 복잡한 규정과 체계에 따라 규율된다는 것에 무지하다. 번역본만 200페이지에 달할만큼 복잡하고 왠만한 식물학자들도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이렇게 복잡한 학명의 이명법을 국명에 적용하면 무슨 문제가 생길까? 얼핏 떠오르는 몇가지를 살펴보자.

    먼저 이명법은 라틴어를 따른 것이기 때문에 명사형(속명)+형용사형(종소명)으로 되어 있어 우리말과는 어순이 완전히 다르다. 곧이 곧대로 적용하자면 ‘돌나물바위’라는 식이 되어야 한다. 이미 언어의 기본체계에서 이명법을 우리말에게 적용한 것은 문제점에 부딪힌다. 그래도 우리말의 어순에 맞추어 이명법을 수정하여 적용하자는 주장으로 선회해서 이해하여 보자.

    다음으로 위 청원자가 예를 든 돌나물은 1715년 저술된 것으로 추정되는 우리의 옛 문헌 『산림경제』에서 기록되었던 이름으로 고유명사이다. 이명법은 모든 종(species)의 명칭에 동일하게 적용되므로 ‘돌나물’이라는 이름에도 별도의 형용사에 해당하는 말을 추가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예컨대 돌나물이라는 우리의 전통적인 이름도 ‘참+돌나물’과 같은 방식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것은 비단 돌나물뿐이 아니다. 선조들께서 13세기부터 불러 왔던 것으로 확인되는 무궁화도 ‘새무궁화’라는 형태로 바꾸어야 한다. 먹는 수박도 ‘참수박’과 같은 방식으로 바꾸어야 한다. 식탁에 자주 오르는 상추는 ‘이명법상추’라고 해야 하나? 일상생활 속에 스며들어 있는 모든 식물이름을 바꾸어야 하고 이것은 우리의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체계의 전체적인 혼란이 불가피하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가?

    자생하는 식물의 식물이름에 이명법을 적용해도 아주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돌나물속(Sedum) 식물에 돌나물, 바위채송화 그리고 땅채송화만 있으면 위 청원자의 주장은 그나마 문제가 덜 할 수 있다. 아래는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 제공하는 돌나물속(Sedum)에 속하는 종들이다. 이 국명 모두를 이명법 형식으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위 청원자의 생각에 따라 대략이라도 바꾸어 보자.

    ▶ 가는기린초<Sedum aizoon L.> ==> 가는기린돌나물
    ▶ 갯돌나물<Sedum lepidodium Nakai> ==> 갯돌나물
    ▶ 기린초<Sedum kamtschaticum Fisch. & Mey.> ==> 기린돌나물
    ▶ 돌나물<Sedum sarmentosum Bunge> ==> 참돌나물
    ▶ 돌채송화<Sedum japonicum Siebold ex Miq.> ==> 돌돌나물
    ▶ 둥근잎비름 <Sedum makinoi Maxim.> ==> 둥근잎돌나물
    ▶ 땅채송화<Sedum oryzifolium Makino> ==> 땅돌나물
    ▶ 말똥비름<Sedum bulbiferum Makino> ==> 말똥돌나물
    ▶ 멕시코돌나물<Sedum mexicanum Britton> 멕시코돌나물
    ▶ 민말똥비름<Sedum alfredii Hance> ==> 민말똥돌나물
    ▶ 바위채송화<Sedum polytrichoides Hemsl.> ==> 바위돌나물
    ▶ 섬기린초<Sedum takesimense Nakai> ==> 섬기린돌나물
    ▶ 속리기린초<Sedum zokuriense Nakai> ==> 속리기린돌나물
    ▶ 애기기린초<Sedum middendorffianum Maxim.> ==> 애기기린돌나물
    ▶ 태백기린초<Sedum latiovalifolium Y.N.Lee> ==> 태백기린돌나물
    ▶ 털기린초<Sedum selskianum Regel & Maack> ==> 털기린돌나물

    기린초라는 이름 역시 17세기에 저술된 『다산집』등에 기록된 우리의 옛이름인데 이를 변형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위와 같은 변경한 이름이 쉽게 기억되는가? 식물의 형태를 기초로 해서 그나마 이해가 가능했던 단어들이 사라지게 된다. 예컨대 ‘둥근잎비름’은 ‘말똥비름’과 비슷하지만 잎이 보다 둥근 형태를 가진 종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비름’을 없애고 모두 돌나물로 대체하니 무엇과 비교되었는지 알 수가 없게 된다.

    이런 문제점을 줄일려면 이름은 ‘둥근잎돌나물’이 아니라 ‘둥근잎비름돌나물’이 되어야 하고, 위 청원자가 예를 든 바위채송화도 ‘바위돌나물’이 아니라 ‘바위채송화돌나물’이 되어야 한다. 같은 속내의 식물들끼리 형태적으로 차이가 있어도 모두 돌나물로 통일하면 오히려 더 혼동이 생겨 나서 식물분류학에 정통하지 않은 사람들은 식물이름을 부르기조차 어려워진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분류학적 견해의 변경에 따라 속명은 자주 변동될 수 있다는데 있다. 실제로 지금은 다른 속으로 분류되지만 얼마 전까지도 꿩의비름속(Hylotelephium)과 바위솔속(Orostachys)은 돌나물속(Sedum)으로 분류되었다. 위 청원자의 주장에 따르면 얼마 전까지 우리는 꿩의비름도 ‘꿩의비름돌나물’로, 바위솔도 ‘바위솔돌나물’로 불렀어야 했고, 지금은 새로이 ‘참꿩의비름’과 ‘새바위솔’이라는 형식의 말을 일일이 만들어 불러야 한다. 앞으로도 유전학이 발전하여 식물의 유전자 분석이 정교해질수록 속명의 변동은 계속 생겨날 것이다. 그때마다 식물학을 전공하는 학자들만 학명의 변화를 익혀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어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이 식물학적인 견해 변경에 따라 식물이름을 매번 바꾸어 불러야 한다는 황당한 상황에 부딪힌다.

    이렇게 국명을 이명법에 따라 부르면 편해 보이는가? 도대체 어떤 사고를 하면 이러 황당한 생각과 주장을 하게 되는 것일까?

    훈민정음 그리고 우리 식물이름의 유래

    (1) 세종대왕과 훈민정음에 대한 오해와 왜곡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한글(훈민정음)은 우리말이 중국어와 다르므로 우리말을 발음 그대로 표기할 수 있도록 글자로 만든 것이다. 세종대왕이 언제 종래 우리 백성들이 사용하던 이름을 버리고 새로 말을 만들고 그것을 규범화하여 지키라고 강제하였단 말인가?

    세종대왕은 한글(훈민정음)을 창제하시고 그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1446년에 『훈민정음해례본』을 간행했다. 여기에 19종의 식물이름이 확인된다.

    “감 柿, 갈 蘆(갈대), 콩 大豆, 뒤 茅(띠), 파 葱, 마 薯藇, 드븨 瓠(박), 팟 小豆, 가래 楸(가래나무), 피 稷, 버들 柳, 고욤 梬, 삽됴 蒼朮菜(삽주), 쟈감 蕎麥皮(메밀), 율믜 薏苡(율무), 벼 稻, 닥 楮(닥나무), 싣 楓(신나무), 잣 海松(잣나무)[표기 일부를 현대어로 수정함]

    여기 어디에 이명법이 적용된 이름이 있는가? 당시 백성들이 사용하던 우리말 이름이 있을 뿐이다.

    (2) 우리 식물이름의 유래

    우리는 1910년 강제병합을 겪은 후 식민제국에 의하여 근대 과학이 이식되면서 비로소 식물학을 접하게 되었다. 일본인 아래에서 식물학을 익혔던 조선인 실무자와 연구자들은 강제병합으로부터 20여년이 경과된 이후인 1933년에 이르러 조선인들끼리 모여 근대 과학으로서의 식물학에 따라 새로이 인식된 식물들에 대한 우리 이름(조선명)을 찾기로 하고 ‘조선박물연구회’를 결성했다.

    그 최초의 성과물이 1,944종에 해당하는 식물 종에 대해 조선명을 찾아 정리한 『조선식물향명집』(1937년)의 발간이었다. 『조선식물향명집』의 저자들은 먼저 식물학이라는 과학적 기준에 의거하여 종의 분류가 정확한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 종을 대해 기존에 조선인들이 사용하던 조선명을 전국을 돌아다니며 채록하여 이 이름을 주로 하고 『향약집성방』과 『동의보감』 등 우리의 옛 문헌을 참고하였다. 이런 방식으로 조선인들이 부르던 우리의 이름을 찾아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위 돌나물속(Sedum) 식물을 예를 들자면 ‘돌나물’과 ‘기린초’가 종래 사용하던 이름이다. 이 이름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유명사로 이명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런 이후에 실제 당시 우리가 부르던 이름이 없는 경우 비슷한 전통적 명칭을 빌어 왔다. 그래서 빌어 온 이름이 잎의 모양을 본 뜬 것으로 추정되는 ‘채송화’와 ‘(쇠)비름’이다. 그와 더불어 종래에 부르던 이름이 없는 경우 식물의 형태적 특징, 학명, 전설과 유래, 산지, 발견자, 생육상태, 색, 냄새, 맛 등을 고려하여 전통 명칭의 앞 뒤에 형용사(형용격)의 단어를 붙여 우리의 고유 명칭이 나타날 수 있도록 하여 새로이 이름을 만들어 붙였다. 이것은 이명법을 적용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통 명칭을 살리기 위한 방식이었고 노력이었다.

    그래서 바위에 주로 살면서 잎이 채송화를 닮았다는 뜻을 가진 ‘바위채송화’와 같은 이름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식물분류학이라는 전문가의 시각이 아니라 일반 백성들이 실제로 사용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을 위주로 만들어진 이름이다. 실제로 바위채송화의 잎을 살펴보라. 채송화가 연상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바위채송화(잎; 경기도 화악산)

    글을 마치며

    근대 과학으로서 식물분류학이 정립된 이후 식물이름은 식물분류학에 따른 종 분류에 근거하여 종 단위로 불리고 사용될 수 밖에 없다. 그러한 점에서 식물의 국명도 식물학이라는 과학과 연관이 있다.

    그러나 식물에 대한 우리의 국명은 우리의 언어이고 조상때부터 사용하던 우리의 문화와 관습에서 의해 만들어지고 사용해 온 것이다. 그리고 그에 더하여 우리의 전통에 기초하여 새로이 만들어진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학명을 규율하는 국제식물명명규약(ICN)은 국명에 대해 각 나라와 언어권별로 알아서 정하고 부르도록 할 뿐이지 이를 규율하거나 강제하지 않는다. 적용 대상 자체가 아니다.

    국명을 학명에 맞추어 규격화된 것으로 만들 하등의 이유가 없다. 세종대왕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어린 백성들이 편하게 사용할 수 있으면 된다. 그런 이름이면 충분하다. 어린 백성들이 굳이 식물분류학이라는 학문을 일일이 다 이해하고 그것에 맞추어 이름을 불러야 할 어떠한 이유도 없다. 깊은 산을 오르다 ‘바위채송화’를 만나면 아, 채송화를 닮았는데 집에서 키우는 것이 아니라 바위에서 자라는 녀석이구나라고 아는체 하고 인사를 할 수 있으면 된다. 일제강점기에 우리의 식물이름을 정리한 『조선식물향명집』도 바로 그러한 정신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필자소개
    독자. 『한국 식물이름의 유래』 공저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