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남미 '21세기 사회주의' 주목해야
    By
        2006년 12월 05일 04:46 오후

    Print Friendly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때가 어느 정도 지나고 나면, 우리에게 다시 기회가 온다는 점에서 정말 맞는 것 같다. 1987년의 민주화 투쟁, 1997년의 노동자 대투쟁, 2006년의 FTA 반대투쟁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아 시민들이 본격적인 ‘ 거리의 정치 ‘를 실천하고 있다.

    앞서의 두 투쟁이 한계를 보여 주었다면 이번의 투쟁은 반드시 승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최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진보진영의 성찰과 대안 모색의 노력이 강한 것을 알고 있다. 현재의 FTA 싸움은 우리에게 중요한 기회이다. 사회를 진보시키는 전략을 기존의 계급중심의 시각에서 헤게모니의 그것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현재의 전세계적인 차원의 신자유주의를 둘러싼 투쟁은 헤게모니 투쟁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우리가 이번 FTA 투쟁에서 패배할 경우 ‘교회, 경찰, 텔레비전’ 에 포위된 채 다국적 기업이 성주로 있는 성안에 갇혀 사는 중세로 돌아갈 수 밖에 없고, 정치의 헤게모니 지형이 형성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절망적이다.

    한미 FTA 투쟁 패하면 민중의 삶은 중세 시절로 

    현재의 헤게모니 전선에 균열을 내기 위해서는 스웨덴식 사회민주주의 모델 못지않게 중남미에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중남미는 신자유주의의 공세에 시달린 경험에서 우리보다 선배일뿐 아니라 그들 자신의 연대와 통합을 통한 헤게모니 우위를 점유한 경험이 우리의 전략 수립에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중남미 좌파의 부상이 예전의 좌파 부상의 경우와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존의 전통 좌파에 대한 도식적 접근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면이 많다.

    현재 신자유주의 광풍을 막아내는데 멕시코, 칠레, 콜롬비아와 중미 소국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중남미 나라들이 선방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다음 몇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 지난 1월 19일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만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왼쪽), 아르헨티나의 키르치네르 대통령(가운데),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 이들은 베네수엘라산 천연가스를 남미로 수송하는 가스관을 공동 건설하기로 합의했다.
     

    스웨덴뿐 아니라 남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첫째, 90년대 초부터 중남미 각국들에서는 도시빈민, 농민, 원주민, 여성, 환경 운동 등 기존의 정치 지형에서는 정치 행위자로 부상하지 않았던 그룹들이 ‘생존권적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거리의 정치’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런 변화의 배경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우선 중남미는 40년대 이후 80년대 말까지 다양한 정치 실험을 해왔지만 그 배후의 맥락에는 항상 포퓰리즘이 작동하고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포퓰리즘의 특징은 적어도 담론수준에서는 노동권을 중시하며 대부분 사회주의적 또는 사회민주주의적 이데올로기 생산을 기득권층이 지속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19세기초 부터 학습해온 ‘절차적 민주주의’의 전통이 길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중남미 국가들은 우리나라와 일본, 미국과 달리 보수적 양당제가 아니라 보수파와 자유민주주의 세력이 서로 지향하는 이데올로기의 차이가 굉장히 컸고, 대부분의 국가들이 거의 내분 수준의 대립을 겪으면서 자유권적 민주주의가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되었다.

    60년대 이후 확립된 ‘절차적 민주주의’ 시기의 양당제는 대부분 급진 좌파를 배제하였지만 사회적 공공성이 강화된 사회민주주의의 이데올로기를 적어도 담론 수준에서는 오랫동안 이어왔다.

    지배층 헤게모니 균열 가져온 신자유주의 

    그러나 오랫동안 난공불락이었던 기득권층의 헤게모니 전선이 80년대 초부터 불기 시작한 신자유주의의 광풍 앞에서 균열이 생기고 붕괴되기 시작하였다. 신자유주의로 양극화가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전통적으로 존재해왔던 양극화가 신자유주의로 인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해지자 포퓰리즘 담론과 일부 시혜적인 사회 정책만으로는 도시빈민, 농민들의 요구를 달랠 수가 없게 되었고 이들은 거리로 뛰쳐나오게된 것이다.

    다시 말해 일반 시민들이 비록 경제적으로는 가난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집단적 인식 수준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단지 노동계급의 존재와 의식이 일치되는 과정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우리와 같이 경제성장에 계속 성공해오다가 신자유주의가 만들어 내는 양극화의 벽 앞에서 당황하면서 정치, 경제체제의 방향을 사회민주주의 쪽으로 틀어보는 것을 대안적으로 검토해보는 것과는 그 수준과 맥락이 다른 것이다.

    ‘거리의 정치’의 대표적인 예인 베네수엘라의 1989년의 ‘카라카스 대사건 ‘은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에 거부감을 가진 도시 빈민과 학생 등, 즉 정당이나 노조 등의 조직화된 세력의 추동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중심이 돼 거리 시위와 슈퍼마켓의 강탈을 통해 생존권을 요구한 사건이었다.

    1994년의 멕시코의 마르코스 부사령관이 일으킨 사빠티스타 반군의 봉기는 그해부터 발효된 나프타에 저항하여 단순히 반정부 시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정치체제를 바꾸는 대안적 실험을 시작한 것이다. 원주민의 공동체 철학에 기반하고 현대적 헤게모니 투쟁 전략인 담론 투쟁을 중심으로 했다는 점에서 중남미 좌파의 새로운 부상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중남미 좌파의 새로운 부상

    둘째, 중남미의 지식인과 예술가들은 50년대부터 중남미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것이 주된 미학적 이데올로기적 과제였다는 점이다. 우리의 경우 이제 와서 지식인들이 그 동안 소홀히 해왔던 정체성 탐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본다.

    정체성을 탐구하는 것은 단지 과거를 돌아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를 중시하고 미래의 유토피아를 꿈꾼다는 점에서 강한 정치성을 가진다. 이들은 대부분 좌파적 상상력과 소위 ‘아래로의 하방’ 을 실천하였다. 이와 같은 흐름을 증폭시킨 것이 59년에 수립된 쿠바 사회주의 체제다. 쿠바는 특히 중남미에 대해 문화적 연대와 통합을 불러오는데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셋째 인권과 원주민 권리와 생태, 여성 등 소수자의 권리를 중시하는 사회운동단체들이 90년대 중반부터 중남미 연대를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이같은 연대는 1991년에 체결된 메르코수르를 중심으로한 정부 차원의 국제 연대와 병행 발전할 수 있었다.

    이같은 사회운동단체들의 국제연대의 대표적인 예는 반신자유주의 포럼으로 유명한 브라질의 뽀르토 알레그레시에서 2001년부터 시작된 ‘ 세계 사회포럼 ‘을 들 수 있다. 이 포럼을 통해 중남미 각국의 진보세력 특히 여성, 생태, 건강, 교육, 원주민 운동 세력이 자리를 같이 한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

       
     ▲ 남미의 알자지라를 표방하며 지난해 7월 24일 출범한 텔레수르 방송.
     

    중남미 연대의 또 다른 예로 ‘텔레 수르’ 방송을 들 수 있다. 우리에게도 카타르의 ‘알 자지라’ 위성방송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CNN과 또 다른 반대의 거리에 있는 중남미의 2005년 6월에 설립된 다국적 국영 ‘텔레 수르’ 방송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방송은 차베스가 주도하여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쿠바, 우루과이, 볼리비아 등의 정부가 공동 투자한 케이블 티브이 매체로 24시간 시사 뉴스, 다큐멘터리, 토론 프로그램을 전문적으로 방송한다. 일반 언론매체에서 다루지 않는 뉴스를 심층 보도하고, 진보적 시각에서 해석한다. 현재 콜롬비아 우파 정부는 이 방송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감을 표시하고 있다.

    또다른 중남미 연대의 예로 베네수엘라에 설립된 ‘파울로 프레이리 중남미 생태농업대학’을 들 수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와 중남미 농민운동단체인 ‘비아 깜뻬시나’ 와의 협정을 통해 설립된 이 대학은 2006년 9월부터 중남미 전역에서 주로 가난한 원주민과 농민 자제를 신입생으로 선발하여 5년 과정으로 생태농업 전문가를 육성할 예정이다.

    남미 좌파의 다양하고 구체적 실험

    새롭게 좌파의 변신을 보여주는 곳은 베네수엘라이다. 1999년에 집권한 차베스 정부는 우리에게 심어진 이미지로는 과격 좌파의 포퓰리즘 정부일 뿐이다. 그러나 차베스 정부는 사유재산과 시장경제 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비독재, 비폭력적인 수단으로 정통 사회주의 모델이 아닌 반신자유주의 ’21세기 사회주의’ 체제의 다양성을 급진적으로 실험하고 있다.

       
     ▲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남미 북부지역의 독립영웅인 시몬 볼리바르의 대형 초상화 앞에서 연설을 하며 웃고 있다.
     

    ‘주민위원회’를 통한 문자 그대로의 참여민주주의 정치를 실험 중이고, ‘ 노동자 공동경영’ 제도를 통해 ‘사회적 생산’ 기업의 새로운 모델을 실험 중이다.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이 중에서 하나의 예로, 미션 밀라그로로 불리우는 맹인 무료 개안 수술 사업이 있다. 베네수엘라 의사들과 쿠바 의사들이 주로 담당하는데 2005년 10월부터 현재까지 베네수엘라 환자의 혜택은 약 3만 6천명, 각국의 중남미 환자들은 약 5,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한편 70년대부터 신자유주의를 중남미 최초로 정착 시켜왔던 칠레는 정치, 경제적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5월 약 100만명의 고등학생들이 전국적으로 거리 시위를 벌였다. 차별적인 신자유주의적 교육 정책에 대해, 즉 사립학교에 비해 열악한 공립학교에 대한 정부 지원에 대한 항의였다. 

    이 사건이 현실에 안주하던 칠레의 좌파를 크게 자극했다. 칠레 이외에 미국과 FTA를 체결한 콜롬비아와 멕시코는 현재 심각한 정치, 사회적 위기 상황을 드러내고 있다.

    예를 들면 멕시코 시티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종료된 뒤 두 달 동안 시내 중심가에서 1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텐트를 치고, 먹고 자며 콘서트와 연설과 평화적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남부 오하하까 주에서는 멕시코의 비민주적 기득권 진영에 속하며 주민은 안중에도 없는 폭압적 정치를 벌여온 주지사를 권력에서 끌어내기 위해 무려 5달간이나 교사를 중심으로한 시민, 학생들이 시위가 현재도 지속되고 있다.

    물론 군경의 폭력적 진압에 의해 15명의 인명이 희생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체포됐다. 또한 현재 멕시코는 두 명의 대통령과 두 개의 내각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내전 중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펠리페 깔데론 대통령 이외에 반신자유주의를 이데올로기로 하는 오브라도르의 ‘애매한'(?) 내각은 일반 국민들이 우리 돈 1만원 이상의 모금을 통해 대안적이고 평화적인 좌파 진지를 형성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최근 멕시코 영화감독 이냐리투의 영화 ‘바벨’ 을 보았다. 이 영화는 미국, 모로코, 일본, 멕시코를 넘나들며 반신자유주의의 메시지를 나비효과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현재의 전세계적인 정치 지형은 단순하고 조작적이고 폐쇄적인 세계관의 할리우드 영화와, 상상력이 넘치고 기존의 삶의 방식을 바꿀것을 암시하는, 예를 들어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식의 영화가 대결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본다.

    필자는 후자가 보다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전략으로 연대하고 있으며 유리한 진지를 구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좀더 멀리 보고 넓게 보면서 서구 이외의 진보 세력과 연대할 필요가 있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