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0일만에 비정규직 노조 간판 걸다
    2006년 12월 05일 11: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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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은 꿈같은 이야기다. 싫은 소리 했다가 ‘짤려도’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도 없다. 천신만고 끝에 노조를 만들면 ‘계약해지’라는 이름으로 집단해고를 당하고 만다. 하이닉스매그나칩, 기륭전자, KM&I, 현대하이스코, KTX… 모두 똑같다.

24개의 하청회사 사장들과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나아가 원청회사와 ‘고용안정협약서’를 체결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비정규직 노동운동의 새 역사를 써가고 있는 금속노조 기아자동차비정규직지회다. 이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설립 550일만에 마침내 기아차 화성공장 내에 노조사무실을 마련하고 현판식을 진행했다.

   
 
 

길거리 노조 생활 2년 만에 청산

12월 5일 오전 11시 30분 금속노조 기아자동차비정규직지회(지회장 직무대행 신성원)은 화성공장 조립동 매점 옆 6평 짜리 사무실에 마침내 꿈에 그리던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이어 ‘기아자동차비정규직지회’라는 자랑스런 노동조합 현판을 내걸었다.

신성원 직무대행은 "작년 초에 쳤던 천막을 드디어 걷고 현판식을 하게 되어서 눈물나고 감회가 남다르다"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대기아차 그룹을 상대로 싸워서 노동조합을 인정받아 사무실을 내 준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간부들은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눈물이 뒤엉켜있던 2동의 천막을 철거했다. 지난 해 1월 22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연이은 계약해지에 맞서 천막농성에 들어간 지 700일만이었고, 지난 해 6월 4일 금속노조 비정규직지회를 설립한 지 550일 만이었다.

틈나는 대로 천막을 찾았던 정규직 김영학 대의원은 "동지적 입장에서 사무실이 너무 늦게 마련되어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새로 생긴 사무실에서 더 많은 노동자들을 만나 더 열심히 투쟁해나갈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만 2년 동안 길거리에 있었어요. 무엇보다 인터넷도 안되고, 낡은 컴퓨터 한 대로 일을 하려니 무척 힘들었죠. 좁긴 하지만 회사와 맺은 단체협약에 따라 컴퓨터로 여러 대 생기고, 전화와 팩스도 되고, 노조활동을 훨씬 더 원활하게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아요." 비정규직지회 이준영 교선부장의 말이다.

비정규직의 피난처이자 해방구였던 천막

   
 
 

정규직 노조사무실 건너편에 쳐진 두 동의 천막은 노조사무실이자 농성장이었다. 노조 간부들의 회의실이었고, 수배된 간부들의 피난처이자 잠자리였다.

컴퓨터 한 대로 매일 조합원 선전물과 회의록을 만들어냈다. 감옥에 가 있는 김영성 지회장은 이곳에서 꼬박 700여일을 보내야했다.

반대로 두 동의 천막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쉼터이자 해방구였다. 참새가 방앗간을 들리듯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출퇴근 길마다 천막사무실에서 들러 비정규직의 애환과 설움을 나눴다.

젊은 관리자한테 쌍욕을 듣고 분을 못이긴 환갑의 늙은 노동자들과 뜨거운 물에 살갗이 녹았는데도 산재처리조차 받지 못한 식당아줌마들의 이야기가 이곳에서 퍼져나갔다.

두 동의 천막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의 마당이기도 했다. 정규직 활동가들은 비정규직 천막을 찾아와 서로의 고민과 어려움을 나누었다. 이준영 부장은 "정규직 대의원과 활동가들이 틈나는 대로 천막에 들려 비정규직의 어려움을 나누고 많은 지원과 연대를 했다"고 말했다.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보낸 1년 6개월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는 1만명이고 비정규직은 2차 하청까지 포함해 2천5백명이다. 그 중 현재 노동조합에 가입한 조합원은 1,400명이다. 조합원들은 30여개에 이르는 하청업체에서 수출반제품 포장, 주철주조, 조립, 플라스틱, 도장, 검수, 식당, 청소 등의 일을 하고 있다.

작년 6월 4일 450여명의 노동자들은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를 만들었다. 2002년부터 ‘노동해방을 향한 비정규직 현장투쟁단'(현투단)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해오다가 금속노조에 가입하게 됐다.

곧바로 20여개 하청업체를 대상으로 집단교섭을 벌였고, 비정규직의 힘으로 화성공장을 멈춰 세우는 역사적인 파업을 전개했다. 원청회사인 기아자동차가 용역깡패를 투입해 군사정권 시절을 능가하는 탄압을 벌였지만 조합원들은 온 몸으로 이겨냈다. 11월 4일 마침내 22개 업체와 단체협약을 체결했고, 계약해지된 하청업체 조합원 전원이 고용승계됐다.

올해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식당노동자 100여명이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파업을 벌여 사측인 ‘현대푸드’와 사상 처음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이어 원청회사로부터 "사내 협력업체 인원조정 시 고용이 보장되도록 한다"는 확약서를 따내 역사상 처음으로 원청회사가 하청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하도록 만들어냈다.

비정규직 법안 총파업에도 모범

민주노총은 한미FTA와 노동법개악 저지를 위해 지난 달 15일부터 총파업을 벌였다. 기아자동차노동조합은 15일 딱 하루만 파업을 벌였을 뿐 노동조합 선거를 이유로 파업을 벌이지 않았다. 정규직이 파업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이 파업을 벌이는 것은 몇 배 더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고난의 행군으로 단련되어왔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을 확산시키는 날치기 법안을 외면할 수 없었다. 지난달에만 15일, 22일, 24일, 29일까지 4번의 파업을 벌였고, 비정규법이 날치기 통과된 다음 날인 12월 1일에도 금속노조의 긴급 파업지침에 따라 4시간 파업을 벌이고 서울로 달려와 국회 앞에서 치열하게 싸웠다.

비정규직지회는 12월 6일 다시 4시간 파업을 벌이고 조합원들과 서울로 올라온다. 비정규직지회 신성원 지회장 직무대행은 "비정규직 확산법안에 이어 로드맵까지 통과되면 노동자가 살 수 없는 세상으로 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결사항전해야 한다"며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정규직들도 같이 파업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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