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조합’에 퇴직금 받아내는 분투기 최종편⑤ 보름의 시간-2
보름의 시간 3(2021.06.16. ~ 2021.06.30.)
퇴직금, 드디어 입금되다!
6월 22일 은행 마감시간이 지났지만 휴대폰은 내내 조용하다. 이날 오전에 만났던 거래은행의 담당자는 ‘보통 해외송금 시 중계은행을 거치기 때문에 송금요청 당일 입금되는 경우는 없다’고 했다. 해외 송금은 거래은행 본점을 통해 우선 수령된다. 수취인에게 문자로 사전 공지하고 본점은 해당 금액을 계좌관리지점으로 보낸다. 내 계좌로의 입금은 그 다음이다. 이런 식의 절차가 해외은행의 경우 중계은행을 거쳐 송금되는 시스템인 게다.
어쨌든 과거엔 이런 절차를 잘 모른 채 ‘급여가 오면 오는 갑다’ 했던 평상심이 안 되는 나를 보며, 더 기다려 보자고 다독였다. 거처로 돌아간 그날 야밤에 이메일을 확인했다. IUF 사무총장은 (내겐 퇴직금, 그들에겐 소 취하 조건의 합의금에 대해) 거래 은행의 지급확인서를 보내줬다. 한국 시간으로 22일 밤 10시 24분이었다. [※(아래 오른편) GPI(Global Payments Innovation)코드조회 하단을 보면 제네바 송금시각이 오후 3시 9분이다. 한국과 7시간(서머타임적용)의 시차를 고려하면, IUF는 지난 32개월이 지나도록 침묵 속 무시로 일관하던 태도와 달리 그야말로 ‘지체 없이’ 이메일로 나와 변호사에게 (왼편의) 거래은행이 발급한 지급확인서를 보낸 셈이다. 그들의 갑작스런 호들갑,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내 쓴 웃음을 머금게 된다.]
23일 오전 인터넷뱅킹에 접속, 받은 송금 내역을 다시 검색했다. 조회결과엔 아무 것도 없다. 무슨 일일까? 질문을 속으로 삼키다, 정오가 다 되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22일로 재검색. 빙고! 왔다! 증빙서류 확인을 이유로 입금이 ‘보류’ 중이라 계좌관리지점 담당자에 전화해 이 사실을 고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4,399일분에 해당하는 ‘퇴직금’이 내 계좌에 꽂혔고 이어 은행이 발급한 타발송금영수증도 받았다. 2018년 10월 16일 최초 청구 이후 981일 만에 얻은 쾌거다. 마침내!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마음을 가라앉힌 뒤 변호사에 연락해 ‘타발송금영수증’을 보내며 소 취하 진행을 요청했다. 이날 오후 6시 52분 소 취하서가 제출됐고 IUF에도 통보됐다. 이로써 IUF를 상대로 한 내 퇴직금 싸움이 막을 내렸다. 홀가분했다. 그동안 열아홉 반려견을 돌보며 백수로 지내는 나를 말없이 응원했던 가족은 물론 무수한 감성 자원을 나눠줬던 많은 지인과 친구들을 향해 고마운 마음이 넘쳤다. 그런데…
아직 ‘끝’이 아니다 – 절차적 마무리 ‘간이송달’ 협조
가속도가 붙은 차량은 멈추는데 시간이 걸린다. 내 사건도 그랬다. 거듭 말하지만 국제민사소송에서 서류 번역은 원고가 해야 한다. 송달에 필요한 소장 및 증거서류 번역은 물론이고 소송 안내서와 변론 및 선고기일 통지서에 대해서도 해당 언어로 제출해야 했다. 사실 원고의 소송 취하 후 절차적 마무리는 법원의 몫이니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담당 재판부는 (소 취하 원고인 나로서도 고마운) 시간과 비용의 절약 방법을 찾고자 고민했던 것 같다. 전자소송의 경우 피고가 (아래의) 대법원 나의사건검색 사이트에 접속해 사건 진행 내용을 조회하면 ‘소송 종결’을 인지한 것으로 간주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해외 거주 피고들은 그런 내용을 잘 모르고 외국어 서비스도 되지 않으니 접속한 이력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니 ‘소송 종결’을 알리는 종이서류를 송달해야 했다. 전자소송이지만 종이소송과 혼재된 내 사건이 배태한 문제들이었다.
마침 법원에서는 과거 전자소송 도입 이전, (내 건과 유사한 국제소송 취하의 경우, 피고 소재 국가의 중앙당국을 통한 헤이그송달이 아닌) 팩스 송수신으로 ‘간이송달방식’을 운용했던 사례를 찾아낸 모양이다. 이를 근거로 6월 24일 목요일 오후 변호사로부터 원고 측의 ‘소 취하서’ 번역본 제출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런데 이것 말고도 법원에서는 피고로부터 받아야 할 ‘소 취하 서류 접수확인증’ 양식에 대한 번역 실무 협조를 구해 왔다. 또한 해외 이메일 계정으로의 발송이 법원 자체적으로는 불가해 변호사를 통한 관련 서류의 대리 송달을 요청했다고 한다. 25일 오전 원고의 ‘소 취하서’와 피고가 제출할 ‘확인증’ 등 두 건의 번역본을 변호사에게 보내며, 대리 송달 관련 몇 가지 의견을 전달하고 관련 처리여부에 대해서는 담당 재판부와 변호사에 일임했다.
다른 한편, ‘간이송달’이 안 될 경우 시간과 비용이 들더라도 완벽한 종결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헤이그송달’을 준비하자 싶었다. 민사소송 판결 이후 계획했던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서다. 2018년 10월 전국여성노조를 통한 IUF와의 공문 공방, 2019년 2월부터 2020년 4월까지 외교부, 고용노동부(2건), 산업통상자원부, 법무부에 다섯 차례의 국민신문고 민원을 내고 답변을 받았다. 이 과정을 통해 좀 더 공신력 있는 결정문을 받아서 ‘싸우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게 2020년 7월의 민사소송이었다. 소장이 송달된 지 반년이 지날 때까지 침묵했던 IUF가 ‘소 취하 조건의 금전 합의’를 갑자기 제의해 왔고, 나로서는 제2, 제3의 수고 없이 ‘퇴직금’을 받아낸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니 정말 ‘끝’을 보기 위해서 (이미 경험한) ‘헤이그송달’ 절차를 밟는 것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닌 셈이었다.
6월 28일 월요일, 변호사는 ‘번역 2건’과 내 의견을 재판부에 전달했고, 이와 관련해 재판부는 ‘이메일을 이용한 간이송달방식’을 취할 계획이라고 내게 전달했다. 이게 이날 오후 3시까지의 상황이었다. (걱정이 많은 나였지만) 일임한다고 했으니 기다릴 뿐이다.
다음날 오전 7시경 변호사가 남긴 텔레그램 메시지를 통해 그 최종 결과를 알게 됐다. 법원은 28일 자체 이메일로 IUF 사무총장 앞으로 소 취하서 등 관련 서류를 간이송달하는데 실패했다. 그 내용이 변호사에 전달, 결국 대리 송달됐다. IUF 사무총장은 (시간상 지체 없이 조직 안팎에서 쓰는 이름과 서명이 아닌) 내 소장에 썼던 정식 이름과 나로서는 처음 보는 서명을 적어 ‘소 취하 서류 접수확인증’을 담당 재판부 앞으로 보내줬다. 정말이지, 이제 끝났다 했는데…
아쉬웠나, 하나 더!
소송을 하면 인지대와 송달료를 낸다. 소송을 취하해 남은 금액을 돌려준다며 6월 30일 변호사의 마지막 연락이 왔다. 받을 것이 있다니 좋군. 남은 송달료는 변호사를 통해 받았지만 인지대 환급을 위해서는 법원이 보낸 서류에 내 서명과 관련 필요 서류를 구비해 (등기)우편으로 접수해야 했다. 우편 발송을 끝으로 이번 소송에서 해야 할 모든 일이 진짜, 진짜 끝났다! (참고로 법원의 인지대 환급은 보통 원고가 보낸 ‘소송등인지의 환급청구서’ 접수 후 2주 정도 소요된다.)
관행 너머 ‘교차’의 사례를 남기다
이제 ‘분투기 최종편’을 정리할 때다. 내 사건을 요약하면, 나와 IUF 간에 체결한 근로계약은 외국적 요소가 있는 법률관계에 해당된다. 이의 분쟁 해결을 위한 준거법은 국제사법이다. 민사 소장엔 원고인 내가 국제사법 25조 4항과 28조 1항에 따라 대한민국 근로기준법 상 ‘퇴직금 지급’ 대상임을 분명히 하는 몇 가지 판례가 적시됐었다. 이 내용은 최초 전국여성노조를 통한 IUF와의 공문 공방에서도 강조했던 내용이었다. 말과 글의 무게는 사인(혹은 법인) 간 분쟁의 법률 근거로 쓰일 때보다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법원의 판결문이 훨씬 큰 효력을 갖게 된다. 소송을 제기했던 이유다.
다만 내 사건이 승소하더라도 ‘국내 판결의 해외 집행강제’면에서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판결문을 손에 넣기 위한 형식이나 절차에 따른 시간과 비용, 그에 따른 체력 소모는 그나마 견딜만했다. 그러나 결과를 확신할 수 없기에 시시각각 일희일비하는 마음을 다스리는 인고의 시간은 쉽지 않았다. 내 20년 노조활동 경력과 조카들에게 부끄럽지 않으려고 시작한 이 싸움으로 화병이나 다른 중병에 걸린다면 무슨 소용일까 생각하며 최대한 긍정 마인드를 갖추려 했다. 이 싸움 끝에 ‘뭐든 남지 않을까’하는 의미를 부여하며 나를 독려했다.
이렇게 비용 들이고 에너지 쓰며 진행했던 4년간의 싸움이 소송의 판결(과 그 이후 추가 대응)이 아닌 피고의 소 취하 합의금 제의를 받아들임으로써 끝이 났다. 그리하여 레디앙에 지난 2년 간 연재했던 ‘국제노동조합에 퇴직금 받아내기’ 분투기는 3년차 연재에서 퇴직금의 실물 수령이라는 승리로 마무리됐다.
그럼에도 사족일지 모르나 소송 관련 절차/형식적 경험을 바탕으로 짧게 하나만 더 보태고 싶다. 일명 ‘교차’ 번역공증과 전자/종이소송의 혼재. 내 사건은 ‘교차’ 번역공증에 따라 전자소송과 종이소송의 형식이 혼재됐다. 변호사가 방문했던 공증사무소는 지금껏 번역공증의 경우 ‘A라는 기준언어에서 B라는 번역언어로의 공증’만 취급했었다. 내 사건의 한글 소장은 증거서류 원본이 국영문 혼용으로 기존의 ‘A기준언어→B번역언어’ 공식에 부합하지 않았다. 게다가 서류의 분량도 (평소 공증사무소가 취급하곤 했다는) 일 혹은 십 단위를 넘어선 천장 가까운 쪽수였다. 인간지사 뭐든, 처음이 어렵다. 선례가 없으니 괜한 뒷감당 안 하려면 ‘관행대로’가 편한 법. 그러나 역시 사람이 하는 일, 예외는 있고 융통성도 발휘할 수 있다. 그 덕에 기존의 관행에 새로운 사례가 덧대져 조금씩 넓혀지는 것이다. 그렇게 내 사건으로 인해 공증사무소는 (사건내용의 납득을 위해 3번의 시행착오 끝에 4번째에 아래 표와 같이) 3건의 교차번역공증이라는 첫 사례를 남겼다고 볼 수 있겠다.
아마도 전자소송과 종이소송의 혼재는 내가 첫 사례는 아닐 게다. (설사 처음이라 해도 상황에 따라 융통성 발휘가 아주 어려운 대목이 아니었을 수도 있고.) ③편에서 언급했지만 전자소송 사이트에 업로드 하려던 3개 공증본 파일의 용량이 업로드 용량 ‘관행’을 초과해 변호사는 재판부 문의 후 종이소송처럼 법원에 직접 제출했다. 직접 제출 공증번역본은 모두 (첫 재판 때 가서 보니) 전자소송 문서 목록에 자리하고 있었다. 아마도 담당 재판부에서 별도의 수작업을 통해 업로드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해야 할 일을 했다 해도 실무자로 노조에서 굴러본 나로서는 그 별도의 수고가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혹여나 그렇게 되길 바라지 않지만, 국내에서 해외에 피고를 둔 국제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판단이 선다면 (백퍼센트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교차번역공증이나 소송 관련 절차에 대해서 필요하다면) 내 사례를 이용해 도전해보시라. 직접 조언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환영한다. 누구 말대로 ‘입금’이 되고 보니 세상 넉넉해지는 요즘이다. 지금까지 TMI(Too Much Information, 너무 많은 정보) 글 읽어주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아울러 지난 3년간 분투기의 연재를 허락해주신 레디앙에도 한 없이 깊은 감사를 전한다. 이제 정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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