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자 회담 군축 아니라 비핵화 의제 중심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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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2월 05일 10:1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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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28~29일 개최된 북미 양자대화에서 어떤 말들이 오갔는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12월 4일자 <경향신문>은 힐 차관보가 2008년 중반까지 핵 폐기를 하면 관계 정상화와 평화협정 논의까지 할 수 있다는 의사를 전달한 사실을 보도했다.

    이 보도의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11월 중순 부시 대통령의 언급이나, 라이스 장관의 연설 내용을 고려한다면 있음직한 일이다. 다만 미국이 핵 폐기의 구체적 시한을 제시하였는지는 짐작하기 어렵다.

    11월 7일 미국의 중간 선거 이후 미국 고위급 인사들이 한 발언의 내용들을 종합한다면 북한의 핵 폐기를 전제로 하여 중유 제공, 테러지원국 해제, 관계정상화, 평화협정 체결 등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안들은 분명 10월 9일 북한의 핵 실험 이후 미국이 보이던 입장에 비해 상당한 진전이라 평가할 수 있다.

    미국, 대북 정책을 급선회시키고 있는가?

       
     ▲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질문공세를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근 미국 정부가 무엇을 제안하였는지는 불분명하지만, 2003년 당시 미국이 제기한 ‘대담한 제안’과 지금의 제안들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대담한 제안’에서 미국은 북한이 핵을 폐기할 경우 비핵 에너지 지원, 테러지원국 해제, 항구적 안전보장 제공, 외교관계 정상화 등 포괄적 해결을 공약한 바 있다.

    당시 미국은 북한의 핵 폐기 선언 → 핵 동결-폐기-사찰 계획 합의 → 대북 중유 제공 → 3개월의 준비기간 동안 핵 동결 및 핵활동 리스트 제공 → 핵 폐기 및 핵 사찰 → 다자 안전보장, 비핵에너지 제공 → 비핵화 이후 포괄적 해결 등을 제안하였다. 따라서 미국의 제안을 특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파격적이라고 평가되는 미국의 제안이 2003년 당시 주장하였던 정책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이는 미국이 북한의 핵 실험을 심각한 상황으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의 반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의 최근 움직임을 보려면 10월 9일 북한의 핵 실험 이후 미국이 취한 일련의 대응들을 함께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북한이 핵 실험을 실시한 후 미국은 일사천리로 이에 대응하였다. 불과 5일만에 UN 안보리 결의안 1718호가 채택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중-러 설득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안보리 결의안 이후 미국은 북한에 대한 효과적인 제재를 관철하기 위해 한국 등을 압박하는 한편, 중국과의 외교 채널을 통해 북한과의 협상을 동시에 진행시켰다. 탕자쉬안 중국 국무위원이 방북했을 때 미국의 메시지가 전해졌으며, 중국은 북한의 메시지를 미국에 전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양동 전략을 번스(Nicholas Burns) 미 국무차관보는 제재와 외교의 ‘이중전략(dual-track strategy)’라고 표현한다. 번즈 차관보가 11월 15일 하원 국제관계위원회에서 보고한 것에 따르면, 제재는 북한을 협상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것임과 동시에 북한의 추가 행동에 대한 경고라는 것이고, 외교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협상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미국이 자신감을 가지고 핵 문제와 북한 문제에 임하는 데엔 무엇보다 이 문제를 둘러싼 국제 구도가 달라졌다는 것에 기인한다. 즉 북한을 지원하는 입장이 매우 약화되었으며, 미국과 중국 사이에 공통적 이익이 확대하였다는 것이다.

    미중 협력이 강화되는 국제 구도

    북한이 핵 실험을 한 이후 핵 문제 혹은 북한 문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크게 증가하고 있고, 미국과 중국 사이의 협상과 전략 논의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의 영향력은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 한반도 문제의 타자화라고 불러야 할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비현실적인 것처럼 들렸던 미중 빅딜설이 최근 다시 주목을 받는 것도 달라진 국제 구도 때문이다.

    중국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동시에 한반도의 안정을 원한다고 밝혀왔다. 중국이 평화로운 발전(和平發展)을 통해 소강(小康)사회를 이룩하자면, 한반도의 불안정과 북한의 위기 상황을 어떻게든 제어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중국의 입장에서 북한의 핵실험은 중국을 ‘판단’으로 내몰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안정이 상충하는 목표인 이상 둘 중의 하나를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미 핵 실험 이전 중국의 학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중국은 한반도 안정을 위해 한반도 비핵화를 포기할 가능성이 큰 것처럼 보인다.

    즉 북한 핵의 동결과 국제 통제 레짐을 통한 북핵 관리를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예상이 그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핵 물질이 해외로 반출되지 않는 한, 특히 제3세계 테러리스트들에게 제공되지 않는 한 북한의 핵을 무시하려 들 가능성도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의 핵은 매우 초보단계이며 미국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다.

    북한이 조기에 핵 능력을 발전시킬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는 소련이 스푸트니크호를 발사하는 등 발전한 인공위성 기술을 지녔지만, 그 기술을 미사일 능력으로 전환하는 데 수십 년이 걸린 것에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의 행동을 통제하고, 제약함으로써 위기와 갈등의 가능성을 관리하는 데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북한의 핵 실험은 미국과 중국이 북한이 지닌 핵 능력의 관리, 좀 더 넓게 표현하자면 북한의 관리라는 측면에서 전략적 대화를 할 여지를 넓혀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2004년 말 죌릭 미 국무 부장관이 중국과의 전략대화에서 미중 양국에게 유리한 한반도 질서 형성이 가능하다고 언급하였던 것이 조금 더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드는 상황인 것이다. 물론 미-중간의 대화나 합의가 당장 현실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추가적인 행동이 이뤄지지 않고, 상황이 현재처럼 유지된다면 중국의 전략적 판단 역시 늦춰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으로선 어찌되었건 북한으로 하여금 사활적 이익을 포기하도록 강요할 영향력은 없기 때문에, 자신의 전략적 판단에 따른 위험 부담을 우려할 것이다.

       
     ▲ 북한 핵실험 성공 이후 걸려 있는 현판 
     

    북한의 핵 실험이 미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중국을 겨냥한 것이었다는 지적들은 이런 측면에서 설득력을 가진다. 미중 협력의 지평이 확대되는 것에 대해, 북한은 심각하게 우려했고 그에 대한 경고로서 핵 실험을 강행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핵 실험은 역설적으로 미중 협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지도부가 과연 중국을 염두에 두고 핵실험을 하였는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북한이 러시아와의 협력을 다시금 강조하는 것은 북중관계의 변화라는 맥락에서 의미 있는 사건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신속한 핵 문제 해결만이 한반도 평화체제 형성의 지름길

    힐 차관보는 "공은 북한에 있다"고 언급했다. 11월 말 북미 양자대화에서 북한이 어떤 입장을 밝혔는지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힐 차관보에 따르면 북한은 핵 보유 주장을 강하게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며, 미국의 제안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인 것 같다.

    만약 북한이 핵보유국 주장을 강하게 하지 않았다면 상당한 진전이라 평가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핵보유국 주장은 6자 회담의 의제와 성격 자체를 바꾸자는 것으로서, 협상을 통한 타결을 봉쇄시키는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북한이 핵 군축 회담의 의지를 굽히는 것은 필요하다. 6자 회담은 핵 군축회담이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한의 핵 폐기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북미수교가 달성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만약 북한이 미국의 핵과 북한의 핵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고집한다면, 주변국들은 북한이 협상을 통해 시간을 벌며 핵무기를 더욱 늘리려 한다는 것으로 인식할 것이다. 그것은 미국과 중국의 영향력을 키우며, 일본의 한반도 문제에 대한 간섭력을 늘려 줄 뿐이다.

    장래에 미중이 협력하여 보다 덜 갈등적인 차원에서 미래의 동북아시아 안보 틀에 합의하든, 혹은 미중 갈등하여 휴전선이 세력균형선(Line of the Balance of Power)으로 고착화하든 한반도에는 결코 유리하지 않다. 한반도 평화체제 형성을 위해서는 핵 문제의 조기 해결이 반드시 이뤄져야 하며, 그 신속성과 포괄성에 따라 어느 정도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과 남한은 기존 전략의 실패와 과오를 인정하고 전향적인 전략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할 과제가 있다. 북한의 대미 편향적 전략은 한반도의 타자화에 기여를 하였고, 남한의 일관성 없는 전략은 북한과 미국으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다.

    어찌되었건 남북협력을 기축으로 하는 전략을 단 한 번만이라도 제대로 실천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비중 있는 인물의 특사 교환이나 대북 인도주의적 지원의 재개 등에 대해서는 단안을 내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 진보-평화 운동의 어깨도 많이 무거워졌다. 다시금 정세에 개입하기 위한 실천방안을 내와야 할 때이다. 북한의 핵보유를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실천의 전제일 것이다. 진보-평화 운동은 문화적 감수성을 매개로 한 대중적 평화운동의 확산이나 국제연대를 통한 국제여론의 환기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2007년은 대통령선거가 치러지는 해이다. 전반적으로 보수화가 나타나는 상황에서, 대결적 남북관계의 도래를 막고 한반도 평화의 가능성을 열어놓기 위한 고민이 절실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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