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제도 개편 포함 정계개편 구상 제시
        2006년 12월 04일 05:3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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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의 진로 결정 방식과 관련, "당헌에 명시된 민주적 절차에 따라 정통적이고 합법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전당대회를 통해 당의 진로를 결정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거듭 강조한 것으로 분석된다.

    노대통령은 또 여야 대결정치와 국정 표류의 원인을 지역구도와 결합된 여소야대 정치체제로 지목하면서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역주의 정치구도를 극복하기 위해 중대선거구제 도입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돼 주목된다.

    "대통령직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

    노대통령은 4일 청와대 브리핑에 올린 ‘우리 모두의 책임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라는 제목의 열린우리당 당원에게 드리는 편지에서 정계개편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비교적 상세히 밝혔다. 노대통령이 던진 문제의식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현 정치체제 전반에 대한 문제 제기다. 노대통령은 "대통령의 직분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며 "지역구도 하의 다당제와 결합된 여소야대라는 최악의 정치구도" 때문이라고 했다.

    노대통령은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해 한나라당이 흔들지 않는 일이 없다"고 했다. "아무런 정책적 대안도 없고, 대화나 타협도 거부하고, 국회의 절차도 거부하니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노대통령은 "지난해 사학법 개정 이후 1년여 동안 중요한 법안의 대부분이 국회에서 발목이 잡혀 정상적인 국정수행이 어려웠다"고 했고, "예산안도 마찬가지"라며 "(한나라당은) 대통령이 특별히 열심히 하려고 하는 일의 예산을 다 깎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노대통령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인사권도 제대로 행사할 수 없었다"고 했다. 특히 "인사권마저 제대로 행사할 수 없다면 대통령의 직무수행은 참으로 어렵다"며 "여당 사람들도 이런 사정을 다 알지는 못하는 모양"이라고 여당에 섭섭함을 토로했다.

    "지역구도와 결합된 여소야대 정치체제가 문제의 원인"

    그러면서 이 같은 문제가 비단 자신만이 겪는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 노대통령은 "역대 정부 후반기마다 대통령선거를 앞둔 야당의 정치공세와 여당의 대통령과의 차별화로 국정이 어려웠다"고 했다. 김영삼정부 말기의 외환위기와 김대중정부 말기의 신용불량자 급증도 이런 탓이 크다고 지적했다.

    노대통령은 반복되는 국정 난맥의 원인을 "우리 정치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찾았다. 노대통령은 "여소야대, 그것도 지역구도하의 다당제와 결합된 여소야대라는 최악의 정치구도가 그 원인"이라고 했다. 즉 "정책보다 지역간의 정치적 대립과 불신에 바탕한 지역구도는 대화와 타협을 불가능하게 하고, 규칙과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정치를 낳는다"는 것이다.

    노대통령은 지난해 자신이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한 것도 "야당과의 협력과 타협을 통해 국정의 교착상태를 풀어보고자 했던 것"이라며 "야당은 연정도 거부하고, 여야정 정치협상같은 대화와 타협 제안마저 거부하고 있다"고 한나라당을 비판했다.

    노대통령은 "87년 이후 반복되고 있는, 지역구도와 결합된 대결적 여소야대 구도와 국정의 표류현상은 다음 대통령도 직면하게 될 문제"라며 "정치권과 언론, 당원과 국민 여러분께서 이제 한국정치의 구조적인 문제와 해결 방안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중대선거구제 개편 논의 필요성 시사

    노대통령의 이 같은 인식은 국정 표류의 원인은 현 지역구도 정치체제에 있으며, 바람직한 정계개편이란 이 같은 구체제의 극복까지를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노대통령이 그리는 정계개편이란 여권 내부의 이합집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제도 개편을 포함하는 정치권 전반의 개편 과정임을 시사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노대통령이 "한국정치의 구조적인 문제와 해결 방안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대목은 중대선거구제로의 개편 논의가 본격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 정치권 일각에선 얼마 전 노대통령의 하야 가능성 언급이 제기된 당시 "노대통령이 임기를 걸고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중대선거구제 개편에 나서려 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돌기도 했다.

    "차별화와 탈당은 해답이 될 수 없다"

    노대통령은 이 같은 문제의식의 연장선에서 여권 내부로 시선을 돌렸다. 노대통령은 먼저 "차별화와 (자신의) 탈당은 해답이 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여기서 ‘차별화’는 여당의 행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의 연장선상에 있고, 탈당 불가는 "당을 지킬 것"이라는 노대통령 자신의 각오에 대한 설명이다.

    노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여당의 비판을 ‘차별화시도’로 규정했다. 노대통령은 "역대 정부에서 여당은 어려움에 처하자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통해 이를 해결하려고 했다"며 "이러한 차별화와 정부여당의 균열은 당의 지지도나 대통령 후보들의 지지도를 올리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했다.

    이어 "오히려 당 지지도와 후보 지지도, 국정 지지도를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며 "더욱 심각한 것은 여권의 분열과 대통령의 고립으로 인해 책임정치가 실종되고, 국정통제시스템이 와해되어 IMF 외환위기와 신용불량자 양산 등의 어려움을 낳는 한 배경이 되었다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에 대한 당의 비판에 대해 노대통령이 거의 원리적인 수준에서 동의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통합신당은 구민주당으로의 회귀다"

    노대통령은 자신의 ‘탈당’ 관련 발언에 대해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대의를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대통령은 정계개편의 방향과 관련, "영남당도 호남당도, 지역당은 안 된다"고 했다. 자신은 "이른바 통합신당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그리고 어떤 세력이 새롭게 참여하는지 들어보지 못했다"며 "다만 민주당이나 특정 인물이 통합의 대상으로 거론될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는) 결국 구민주당으로의 회귀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고 했다.

    즉 자신이 여당 지도부로부터 정식으로 제안받은 적은 없지만 당 안팎에서 나오는 정계개편 관련 발언들을 보면 민주당이나 고건 전 총리 등을 통합의 대상으로 놓고 있는데, 이는 결국 지역주의 정치구도로의 회귀에 불과하며 자신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노대통령은 다만 "우리당의 정책적, 역사적, 법적 정체성을 유지, 발전시켜서 국민 속에 뿌리내리는 노의를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당의 갈 길은 ‘리모델링’이지 통합신당이 아니라는 얘기다.

    "당헌대로 합법적 방식으로 진로 결정해야"

    노대통령은 "우리당의 진로와 방향은 그 형태가 어떠하든 정책과 노선을 어떻게 변화, 발전시킬 것인지를 중심으로 논의되어야 한다"며 "이 문제는 당 지도부나 대통령 후보 희망자, 의원 여러분만으로는 결정할 수 없다"고 했다. 당 비대위가 당의 진로에 대해 소속 의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키로 한 것에 대한 비판으로 읽힌다.

    노대통령은 이어 "(당의 진로에 대한 결정은) 당헌에 명시된 민주적 절차에 따라 정통적이고 합법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그게 정당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전당대회를 통한 당의 진로 결정을 거듭 촉구한 것으로 분석된다.

    노대통령은 끝으로 "저도 당원으로서 당의 진로와 방향, 당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노선에 대해 당 지도부 및 당원들과 책임있게 토론하고자 한다"고 했다. 자신이 "당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뜻이다. 전당대회에서 자신이 당 사수의 깃발을 들고 본격적인 세대결에 나서겠다는 것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친노파 본격적인 세규합에 나설 듯

    노대통령의 이날 입장 표명은 여러가지가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먼저 시점이다. 해외순방에 앞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함으로써 자신이 없는 동안 당 사수파가 결집할 수 있는 동력을 마련해준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당의 진로는) 당 지도부나 대통령 후보 희망자, 의원 여러분만으로 결정할 수 없다"면서 비대위의 의원 대상 설문조사의 정당성과 절차적 의미를 깎은 것은 통합신당파의 여론몰이에 미리 쐐기를 박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노대통령의 이날 입장 표명으로 당의 진로를 둘러싼 당권파와 친노파간 대립은 한층 가열될 공산이 커졌다. 무엇보다 비대위가 추진키로 한 설문조사의 정당성을 놓고 한차례 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5일 설문조사 반대 기자회견, 8일 ‘당 정상화를 위한 전국당원대회’를 계획하고 있는 친노파는 노대통령의 이날 입장 표명을 계기삼아 본격적인 통합신당 반대 여론몰이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노대통령의 이날 입장 표명에 대해 김한길 원내대표는 "12월은 민생법안과 예산안 처리에 당이 모든 노력을 집중해야 할 때"라는 말로 불편함 심기를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노웅래 공보부대표는 "어려울 때일수록 삼가하고 조심하는 게 당을 위해서도 국가를 위해서도 좋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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