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번째 재판에 참석하다
    '국제노동조합'에 퇴직금 받아내는 분투기 최종편⑤ 보름의 시간-2
        2021년 08월 05일 11:3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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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 회의 글 “첫 재판 일주일 전 날아든 IUF의 갑작스런 합의 요구”

    입금이 되지 않아 첫 재판에 참석하다 (feat. 꼼꼼한 재판장님)

    은행 업무를 본 뒤 변호사에게 ‘아직 계좌 입금 전’임을 알림으로써 같은 날(6월 22일) 오후 2시에 열릴 재판에서 만나기로 했다. 민사단독 재판이 열리는 법정은 소액재판이나 형사재판에서 봤던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코로나 대유행 탓일까? 사건 관련자만 입장시켜 재판을 진행했다. (2019년 1월의 대면 이후 만 2년을 훌쩍 넘겨 다시 만난) 변호사와 원고석에 나란히 앉았다. 오른쪽 피고석은 비었다.

    전자소송이라 좌측 벽면에 커다란 스크린이 설치되어 소송 관련 서류를 볼 수 있게 했다. 원고석에 비치된 노트북 대신 벽면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려 함께 봤다. 국제사법공조-헤이그송달제도에 따라 IUF 본부가 국내 법원에 직접 팩스로 보낸 문서는 법적 효력이 없다. 재판장도 그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어떤 사정이 작용했는지 사건 진행 내용에 피고측 서류 제출(관련해 IUF의 난리법석은 4편에 썼다)로 각각 등록돼 있었다.

    재판장은 변호사로부터 ‘IUF가 제시한 합의금이 아직 입금되지 않은 사실’을 고지 받은 뒤, 피고2(IUF 아태지역본부)에 송달이 되지 않았기에 피고를 분리하고, 피고2에 대해서 별도 변론기일을 지정해 통보할 것임을 밝혔다. 그에 따라 피고1에 대해서만 예정대로 재판을 속행했다.

    재판장은 (내가 보기에) 아주 꼼꼼했다. 2020년 7월 2일, 소장과 증거서류는 전자소송방식으로 제출됐다. 이후 재판부로부터 몇 개 보정명령과 ‘피고 소재 국가의 공용어 번역문을 제출하라’는 보정권고를 받았다. 번역료 절감과 시간절약을 위해 소장의 내용은 그대로 두고 일부 증거서류를 철회, 해당 서류번호를 변경함에 따라 소장의 쪽수와 일부 증거서류의 번호 배치가 변경됐었다. 번역과 공증을 마친 뒤 (전자소송 관련 업로드 용량을 초과해 종이소송 방식처럼 공증원본을 재판부에 직접) 제출했던 서류 일체는 ‘준비서면’으로 처리됐다.

    당시 재판부에서 전자소송 목록 상 서류 중복 등으로 혼란을 야기할 수 있으니 7월 2일자 제출 소장과 증거서류 철회를 언급했다고 변호사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그러나 최초 소장과 증거서류는 철회되지 않은 채 전자소송 제출 서류 목록 상단에 자리하고 있었다. 뒤에 준비서면 제출로 명명된 수정 소장 및 증거서류, 관련 전체 번역문 또한 목록에 있었다. 신경 써서 보지 않으면 나조차 뭐가 뭔지 헷갈릴 정도다. 그래서였을까? 원고측 제출 서류 관련 재판부의 우려사항이 반영되지 않았음을 재판장은 놓치지 않고 지적한 뒤 후속조치를 권고했다. 꼼꼼하다고 했던 이유다.

    재판장의 두 번째 언급은 ‘퇴직금 계산 착오’였다. 재판장은 며칠 전 통화를 상기시키며 변호사에게 ‘혹시 다시 계산해 봤는지’ 물었다. 변호사는 해봤다고, 소장의 청구액과 다르지 않다고 답변하며 컴퓨터 프로그램에 입력된 퇴직금 계산식을 이용해 내온 금액임을 덧붙였다. 재판장은 그냥 넘기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각자의 휴대폰 계산기를 이용해 직접 계산해보자고 제안했다. 계산기를 각자 두드리는 가운데 나는 멍 때리고 있다가 ‘재판장은 무엇을 의도한 걸까? 혹시 각자 적용하는 계산식이 다를 수도 있나? 만약 그렇다면 변호사가 재판장에게 계산식을 물어보면 안 되나?’하는 생각이 떠 다녔다.

    그 사이 계산을 맞췄는지 재판장은 자신의 계산과 소장 청구액이 역시 다르다고 재차 주장했다. 변호사 또한 소장 청구액과 다르지 않다고 하면서도 추후 다시 계산해보겠다는 여지를 남겼다. 재판장은 변호사의 의견을 받아들이며 ‘퇴직금 계산 착오’에 대한 결론을 보류했다. (혹시나 재판장은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존하지 말고 직접 손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거나 써서 답을 내오는 행위를 게을리하지 말라고, 그렇지 않을 경우 인간의 연산 능력이 ‘퇴화’될 수 있다는 점을 우회로 알리고 싶었던 것일까? 알 수 없다. 다만 이처럼 꼼꼼한 재판장을 만난다면 단련되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싶었다.)

    마지막으로 재판장은 IUF에서 보낸 영문 원본의 불출석 사유서와 참고서면을 스크린에 띄우며 ‘피고의 합의 제의가 분명해 보이고 다른 다툼의 의도는 읽히지 않는다. (아마도 속뜻은, 국내 판결의 해외 집행 강제라는 어려움이 있으니) 당사자 간 합의로 끝내는 것이 괜찮은 해법 같다’는 말로 첫 재판을 끝냈다.

    정산의 시간, ‘내로남불’될 뻔하다

    첫 재판을 마치고 변호사와 함께 퇴장 후 (아직 퇴직금이 통장에 찍히지 않았지만) 사건위임계약서에서 정했던 착수금과 성과보수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아무래도 돈 얘기는 얼굴을 맞대고 하는 것이 오해를 낳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변호사 업계의 관행을 몰라 물었다. 우선 민/형사 사건을 포함한 착수금에 대해서는 형사 사건 미진행으로 일부 반환이 가능한지, 그리고 계약서 상 ‘경제적 이익가액’에 대한 해석을 IUF가 제의한 금액 중 그간의 법률 및 번역비용을 제하고 성과보수액을 따져도 될지 물었다. 두 질문에 대해 변호사로부터 모두 우호적인 답변을 얻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변호사와 인사하고 헤어졌다.

    약 2시간이 지나 변호사는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사무실 복귀 후 계약서를 다시 살펴봤다며 법원에서의 구두 합의가 정정될 필요가 있다고 해서 다시 협의를 진행했다.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착수금 일부를 반환받기로 하고 경제적 이익가액은 비용 차감 없이 IUF에서 송금 받는 금액 전액을 기준으로 했다. 즉, 통장에 입금되는 정확한 금액을 약정요율로 계산해 성과보수를 지급하는 것이다. 변호사의 입장 변화에 대해 나는 ‘무슨 말씀인지 알겠다’는 대답만 했다.

    별다른 말을 보태지 않은 이유는 이렇다. 먼저 (‘급여 외 추가 금전 청구를 금지’한 IUF와의 체결 근로계약서를 무시하고 대한민국 법률에 따라) 퇴직금을 청구했으니 IUF 입장에서 보면 나도 입장을 번복한 것이 된다. 두 번째, IUF 제안의 수락은 소장에서 청구한 퇴직금 외 법률비용과 지연이자를 포기한다는 의미다. 이 돈의 포기는 내 실수에 대한 수업료로 치겠다고 ④편에 쓴 바 있다. 그런데 그새 또 마음이 변해, 변호사와의 정산에서 ‘몇 푼이라도 건져보고자’ 했던 내 욕심을 봤기 때문이다. 어쨌든 다행이다. ‘내로남불’되지 않아서.

    필자소개
    전 IUF 아태지역 한국사무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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