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짝퉁 진보 vs 파쇼 따라지의 가짜 싸움
        2006년 12월 02일 10:3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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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국회에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새마을노래의 가사처럼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 그 양상이 자못 시사적이다.  

    양당의 싸움은 과거사 문제를 놓고 벌어진다. ‘교과서포럼’의 이른바 뉴라이트 역사교과서 출간 계획이 소재다. 한나라당이 먼저 비난받을 빌미를 제공했다.  

    종종 당의 뜻을 잘못 ‘대변’하거나 지나치게 정확하게 ‘대변’하는 게 문제인 유기준 대변인이 이번에도 사고를 쳤다. 그는 4.19 혁명을 ‘학생운동’으로 폄하하고 광주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축소한 뉴라이트의 교과서를 ‘학문적 진일보’라고 평가했다.  

       
       ▲ 30일 서울대에서 열린 ‘교과서포럼 -한국근현대사 대안 교과서, 이렇게 고쳐 만듭니다’에서 포럼 도중 4.19혁명동지회, 4.19유족회 등 5개 관련단체 회원들이 들어와 포럼자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보수언론과 또 다른 뉴라이트도 비판한 그 교과서를, 공식논평을 통해서, 겁도 없이. 1일 한나라당 당직자들은 유 대변인이 잘못 ‘대변’한 말을 치우느라 하루종일 고생해야 했다.    

    과거를 향해선 얼마든지 진보적일 용의를 갖고 있는 열린우리당이 발끈하고 나섰다. 크고 작은 당직자들이 한나라당에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원혜영 사무총장은 "한나라당이 집권하게 되면 우리 아이들이 이런 역사교과서로 공부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든다"고 했다.  

    민병두 홍보기획위원장은 "(뉴라이트 교과서 발간에는) 특정 세력의 정치적 저의가 있다"고 한나라당을 겨냥했다. 김영춘, 유기홍 의원 등은 "한나라당을 법에 따라 해산시키는 게 마땅하다"고 했다.   

    역시 압권은 서영교 부대변인의 것이었다.  

    서 부대변인은 ‘교과서포럼’의 편찬자들을 "친일 매국에 파쇼 따라지들"로 규정한 뒤 "친일에 저항하는 민족주의와 민중의 혁명, 그리고 민주주의를 송두리째 뒤엎고 싶은, 과거를 부정하고 싶은 변절자들의 추악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이것이 변절자 뉴라이트와 군부독재의 후신인 한나라당의 본색"이라며 "그들은 일제 식민지하에서 일제에 붙어 먹었던 매국노와 1인 독재 10월 유신하에서 반공으로 덕을 본 파쇼 따라지들로 광주 민주화운동을 폭도라고 매도하고 탄압하던 자들과 하나"라고 했다.  

    과거를 향해선 이렇게 적대적인 양당이 현재의 지반 위에선 사이좋게 공조하는 것이 요즘 국회의 또 다른 풍경이다.  

    서 부대변인이 운동권 투의 강경한 논평을 내놓은 그 날, 열린우리당은 ‘친일 매국에 파쇼 따라지, 일제에 붙어먹었던 매국노와 하나’인 한나라당과 손 잡고 비정규직 법안을 강행처리했다.  

    문화방송 노조위원장 출신인 노웅래 의원은 "국회가 모처럼 일을 한 것 같다"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노동운동가 출신인 이목희 의원, 우원식 의원, 김영주 의원, 한국청년연합회 초대 회장 출신인 김형주 의원 등은 별도의 기자회견을 갖고 "비정규직 법안은 지금 우리 사회가 감내할 수 있는 최대치"라고 했다.  

    이날 전남대 삼민투 위원장 출신인 강기정 의원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당초 민주노동당과 잠정 합의한 기초연금제 도입안을 사실상 폐기처분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국회에 계류된 다른 법안들도 속성으로 처리할 기세다.   

    열린우리당은 두 개의 시간감각을 갖고 있다. 과거사에 대해선 진보적인데 현재의 일들에 대해선 보수적이다. 뒤를 보며 한나라당과 잡아먹을 듯이 싸우면서 실은 사이좋게 손 잡고 미래로 가고 있다.  

    그러니 열린우리당의 과거사에 대한 진보적 해석의 진정성에도 의심이 간다. 이들에게 과거사란 한나라당과의 빈약한 차이를 보충하는 알리바이가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교과서포럼’ 따위의 저열하고 정략적인 역사 해석이 대두되는 빌미를 제공한 것은 아닌가 생각되는 것이다.   

    현재는 곧 미래의 과거사다. 비정규직 법안이 강행처리된 11월 30일을 미래의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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