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 4단체 "언론중재법 철회하라"
    정치인·대기업 등 징벌적 손배 길 터줘
    정의당 “집권여당에 최적화 법안…언론의자유 훼손”
        2021년 07월 29일 06:3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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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민주당이 27일 허위·가짜 뉴스를 생산한 언론사에 대해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국회 문화체육위 법안심사소위에서 강행 처리한 가운데, 야당과 언론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방송기자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등 언론현업단체들은 29일 공동성명을 내고 “헌법이 보장한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며, 시민의 권리 강화보다 정치와 자본권력의 언론 봉쇄도구로 변질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민주당 스스로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며 “위헌적 법률 개정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언론계는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골자로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손배제 적용 대상에 정치인, 공직자, 대기업 등 정치와 경제 권력은 아예 제외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자칫 언론중재법이 언론의 본질적 역할인 권력 감시 기능의 족쇄를 채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또 형법상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유지한 채 징벌적 손배제를 도입하는 것은 이중처벌에 해당한다는 문제도 제기했다.

    이 단체들은 “어떤 공론 절차도 없이 내부 논의만으로 단일안(대안)을 만들었고, 현업단체 의견 청취는 입법 강행을 위한 명분이었을 뿐 실제 개정안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곳곳에 언론-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위헌적 대목들이 넘쳐난다”며 “일부 조항들은 전두환 독재정권 시절 정치권력이 언론의 기사 편집과 표현을 일일이 사전 검열하던 보도지침과 유사한 느낌마저 준다”고 비판했다.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허위·조작보도’에 대해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배제에 대해서도 “고의와 중과실을 추정할 수 있는 조항을 확대해 원고의 입증책임을 대폭 완화하고 있다”며 “그동안 언론사·기자에게 적용되어 왔던 공익성, 진실이라 믿을 상당한 이유 등의 위법성 조각사유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독소 조항이 포함돼 불법노동 실태를 취재하기 위한 잠입취재는 ‘법률 위반’이 되며, 공직자 비리에 대한 연속 보도는 ‘계속적이거나 반복적인 허위·조작보도’가 되고 만다”고 우려했다.

    문화체육관광위 법안심사소위와 언론4단체 입장 발표 모습

    특히 민주당이 신설한 허위·조작 보도에 대한 언론사의 고의 또는 중과실 추정 기준은 정치적으로 가장 논란의 여지가 크다.

    ▲취재 과정에서 법률을 위반해 보도한 경우 ▲정정보도 청구 등이 있는 기사를 충분한 검증 없이 복제·인용 보도한 경우 ▲계속적, 반복적인 허위·조작보도로 피해를 가중시키는 경우 ▲제목과 기사 내용을 다르게 하거나 조합해 새로운 사실을 구성하는 등 기사 제목을 왜곡하는 경우 ▲사진·삽화·영상 등 시각자료와 기사 내용을 다르게 하거나 또는 당사자를 특정할 수 있는 시각자료를 사용해 새로운 사실을 유추할 수 있게 하는 등 시각자료로 기사 내용을 왜곡하는 경우 등이다.

    이 중 사진·삽화·영상 등 시각자료로 기사 내용을 왜곡하는 경우는 최근 <조선일보>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그의 딸 조민 씨 삽화를 범죄 기사에 사용해 논란이 된 경우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정치인, 공직자, 대기업에 대해 ‘악의를 가지고 허위·조작 보도한 경우’ 징벌적 손배가 가능하도록 한 것도 문제다. 여기에서 ‘악의’란 허위·조작보도가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경우, 보복성 허위·조작보도를 하는 경우 등에 해당한다.

    언론단체들은 “‘악의’에 대한 하위 규정은 정치인, 공직자, 대기업 등이 주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용어로 채워져 있다”며 “정치인, 공직자, 대기업에게는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요구할 법적 근거를 만들어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연속보도나 기획보도는 ‘허위·조작보도가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경우’로 해석될 수 있고, 권력자들의 해명에 대한 팩트체크는 ‘보복성 허위·조작보도’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

    허위·가짜 뉴스를 배포한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배제 자체를 부인하지 않지만, 정치·경제 권력의 악용 가능성이 너무 크다는 것이 언론계의 주장이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도 이날 오전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징벌적 손배제라는 법률 틀 자체를 부인하는 게 아니다. 도입할 수 있다고 본다”며 “(그러나) 이미 여러 가지 언론 규제들이 중첩돼있기 때문에 가장 강력한 징벌적 손배제를 도입하려면 적어도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나 형법상 명예훼손제는 대폭 축소하거나 없애는 방식으로 언론에 대한 규제 총량을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시민 개인의 언론 피해는) 이들을 구제할 수 있는 실효적 조치들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지 이렇게 질서 없이 무턱대고 징벌적 손배제라는 무리한 법조문을 가지고 들어오면 향후 위헌 시비만 불거지고 실제로 법률이 제대로 가동되지도 못하고 폐기처분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야당들도 “언론재갈법”이라며 일제히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여당의 대권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언론사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노무현 정신’”이라고 한 것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께서 살아계신다면, 지금의 언론법 개정을 두고 아마 개탄하실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언론의 다양성을 확보해 그를 통해 국민들이 취사선택할 수 있게 하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관과 지금 징벌적인 손해배상을 통해 언론의 입을 가로막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언론관은 매우 차이가 크다”며 “(민주당의 언론중재법은) 조금의 다른 의견도 가짜뉴스라고 몰아붙이고 그것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겠다는 것”이라고 이같이 비판했다.

    그는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무수한 가짜뉴스와 마타도어로 국민의 참정권을 침해하려고 했던 언론인,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 하에서 확인되지 않는 무수한 증인을 내세워서 각종 음모론을 부추겼던 방송인이 누구인가”라며 “본인들의 유리한 편에 서서 가짜뉴스를 퍼뜨렸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못하면서 왜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고 하느냐”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지사는 김어준 씨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는지 입장을 밝혀주시라. 안 그러면 당신은 비겁자”라고 했다.

    정의당 또한 “언론 개혁을 하겠다는 것인지, 언론 통제를 하겠다는 것인지 저의가 궁금하다”고 비판했다.

    이동영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전날 국회 브리핑에서 “여당 주도의 언론 법안에는 언론노조나 언론단체 등 언론계에서 요구해왔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혁이나 편집 독립권 확보를 위한 신문법 개정, 지역신문지원법 등은 빠져있다”며 “취재원의 발언을 허위, 왜곡해 인용하거나 법률을 위반하는 경우 등을 고의나 중과실로 추정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내용이 주를 이룰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언론중재법은 집권여당이 ‘언론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일방적이고 독단적으로 밀어붙일 사안이 아니다”며 “보통 시민들을 위한 언론개혁이 되어야지, 집권 여당에 최적화된 언론개혁을 추진한다면 언론의 자유는 훼손되고, 시민의 알 권리는 지켜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여당은 언론계와 야당의 비판에도 언론중재법을 ‘가짜뉴스 피해구제 법안’이라고 지칭하며 단독 처리 의지를 드러냈다.

    박완주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오전 정책조정회의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은 명백한 고의, 명백한 과실의 허위조작정보를 생산하는 언론사 등에 한한 것”이라며 “정상적인 절차에 의해 언론 보도를 하는 언론사 등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법안의 내용과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신다면 결코 이것을 ‘언론 재갈법’ 이라고 호소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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