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파트는 정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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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2월 02일 07:3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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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간에 화두는 단연 아파트다. 아파트 시세와 분양가가 뉴스의 주인공이 된 지 오래다. 아파트를 가진 자는 너나 할 것 없이 부동산 시가에 골몰한다. 납골당 같은 시설물은 물론이거니와 집값을 하락시킬 만한 요인이 있다 싶으면 여지없이 출입금지다.

    낡은 아파트에 사는 자들은 재개발 열풍에 휩싸여 있다. 뉴타운 지구로 지정된 곳마다 사람들은 술렁이고 편 갈라 삿대질하는 모습도 흔한 풍경 중 하나다. 아파트를 갖지 못한 자는 회색 성채에 입주하기를 소망한다. ‘내집 마련’은 하나의 표어를 넘어서 그들의 욕망을 정확히 대변한다.

    아파트를 보면 사회를 상상할 수 있다

    과거에는 ‘현대’아파트의 경우처럼 건설회사 간판이 중요했다면, 요즘엔 각종 로마자 딱지들이 품격을 좌우한다. 딱지들은 광고에서 풍요와 안락을 약속한다.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만이 아니다. 시공된 지 한참 지난 아파트들도 도색을 새로 하고 이름을 바꿔 단다.

    아파트는 계급을 가름하는 기준이다. 아파트에 사느냐 못 사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느 아파트에 사느냐도 중요한 요소다. 아파트는 심지어 정치적이다. 과거 특정 당 텃밭 지역에 아파트군이 들어서면, 과거와는 정반대의 정치색을 띠기도 한다. 아파트 세상이고 아파트 공화국이다.

    이처럼 아파트는 한국 사회현상 핵심에 자리 잡고 있다. 아파트를 들여다보면 사회 전체를 상상할 수 있다. 때문에 아파트는 단지 주거양식과 문화를 다루는 건축 분야의 특정 소재일 수는 없다. 한국의 사회과학은 아파트라는 문턱을 무시하고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아파트에 ‘강남’이라는 말이 붙기 시작하면 그 위력은 몇 배 더해진다. 아파트 사회의 핵심도 강남이요 역사도 강남이었으니 그 미래도 강남이라고 한들 과장은 아닐 터. 따라서 한국 사회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아파트와 강남만큼 좋은 소재도 없다.

       
      ▲『강남, 낯선 대한민국의 자화상』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각각 한 부분을 차지하면서 사회 전체에 가공할 영향력을 미친다는 점에서, 더 나아가 사회를 규정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아파트는 사회의 결과이면서 원인으로 작동하는 것 아닌가. 이런 점에서 강준만이 『강남, 낯선 대한민국의 자화상』에서 시도하는 아파트 사회학 또는 강남 사회학에는 분명 귀 기울일 만한 요소가 있다.

    강준만의 핵심 주장이 드러나는 곳은 머리말과 맺음말이고, 책의 대부분은 아파트와 강남의 역사를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다. “1966년 5월 30일 서울역 앞 지하도 공사 기공식에는 김현옥은 물론 국무총리 정일권까지 참석해 삽질을 했다. 이들에겐 수없이 많은 삽질이 기다리고 있었다”(p.29)라는 농담조의 문장이나 “1968년 8월 현재 서울시내 465개 동 중 공중전화나 전신전화취급소가 없는 이른바 ‘벙어리동’이 48개 동이나 되었고, 주로 압구정 반포 등 강남 변두리에 몰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p.35)라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 등이 책을 술술 읽히게 하는 요소로 꼽을 만하다. 이 책은 건설과 건설 행정의 역사, 도시 문화사의 면모까지 갖춘 그야말로 아파트 백과사전이다.

    강남, 욕망의 용광로

    그런데 책 서두와 말미를 보면 저자의 핵심 주장은 아파트 사회 비판 또는 강남 비판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아파트와 강남 비판을 비판하며, 아파트와 강남이라는 존재를 흔쾌히 수용하고 인정하자고 제안한다. 이와 같은 주장은 다음 대목에서 잘 드러난다.

    “강남은 욕망의 용광로이다. 구별짓기의 아성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왜 아파트가 연구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거나 하지 않으려 했듯이 강남이야말로 가장 ‘한국적’이라는 사실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왜 강남의 진실을 피하려는 걸까? 진실은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일까?”(p.10)

    강준만은 우리 사회를 분석하는 데 강남과 아파트가 핵심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가장 한국적인 사례인데도 많은 학자와 분석가들은 이 문제를 회피해 왔다는 것이다. ‘강남과 아파트가 문제야’라면서 실제로는 강남과 아파트에 주거하거나 이를 갈망하는 모습이 그렇다. 강준만이 보기에 이는 정직하지 못한 태도이다. 때문에 자신은 강남과 아파트를 주요 논제로 삼아 한국 사회를 한꺼번에 펼쳐 보이겠단다.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다. 강남과 아파트가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만큼 이를 진지하게 다뤄온 것은 아니니 말이다. 다만 다음 대목에 이르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한국 사회엔 강남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가 흘러넘친다. 이에 대해 억울해 하거나 분노하는 강남 주민들이 많다는 걸 분명히 알아두는 게 좋겠다”(p.11)라거나 강남 주민들의 “모든 항변에 다 동의할 수 없다 하더라도 강남 주민에 대해 삐딱한 시선을 갖는 건 옳지도 않을뿐더러 어리석은 일”(p.12)이라고 말하는 데서 그랬다.

    이는 “이 책은 강남을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아주 차갑게 거리를 두고 사회과학적으로 강남에 접근할 것”이라고 하는 저자의 당찬 포부와는 상반된 모습으로 보인다. 차가운 이성으로 사회과학을 하는 것과 애매한 중간에 서는 건 분명 다를 테니까. 또 강남과 아파트 문제에 대면하여 가려진 현실을 드러내는 것과 겉으로 드러난 현실을 추인하는 것은 전혀 다른 성격의 문제일 테니까.

    한국사회를 움직여온 건 ‘강남 정신?’

    강준만이 책에서 펼친 논리를 얼추 정리해 보니 이렇다. ‘왜 아파트고 강남인가. 이것이 한국형 갈등의 급소임을 많은 자료를 동원해 보여 주겠다. 왜 사람들은 이 중요성을 간과하는가. 왜 이해하려 하지 않고 표면적으로 비판하는 데 그치는가. 한국 사회를 움직여 온 엔진은 무엇이었는가. 바로 강남 정신이다.

    이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보고 싶지 않았던 우리의 자화상, 그 낯선 이면이다. 사람들은 왜 강남과 아파트를 원하는가. 그 심리적 바탕에는 구별짓기가 있다. 강남과 아파트가 사회의 핵심 문제가 된 데는 이를 갈구하는 한국인의 욕망이 있다. 이 욕망을 정직하게 대해야 한다.’

    거칠게나마 몇 가지 문제를 지적해 보자.
    첫 번째 문제. 하필이면 왜 강남인가. 이 점은 다시 반복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강준만이 주장하려는 강남은 도대체 ‘어떤’ 강남이냐는 점이다. 강남과 아파트 개발의 어두운 그늘을 풍부한 자료로 보여 주지만 이를 핵심 주장의 논거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내게 강남은 ‘부동산 투기와 탈세가 만연한 곳, 철저한 계급 투표, 친미적 역사관과 문화 취향의 현장, 텍사스를 연상시킬 만큼 중앙정부에 대해 강력히 집단적으로 저항하는 곳, 학벌주의의 요람’ 등의 이미지로 떠오른다. 강준만은 이를 ‘삐딱한’ 시선이라고 명토 박는다.

    강남의 긍정적 측면은 빼고 부정적 측면만을 본다는 것. 그럴지도 모른다. 다만 강준만의 강남은 (실제 자신이 그것을 추구해 온 게 아니라면) 그저 ‘강남 비판’을 비판하기 위해 도출된 강남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강남 문제는 드러나지 않고 강남을 보는 시선의 문제들만 남는다.

    아파트 붐은 삶에 대한 전투성을 배양시킨다

       
      ▲ 강준만 전북대 교수
     

    두 번째 문제. 강준만은 강남 정신을 말하며 어찌됐든 이것이 우리 사회의 주요 동력이라고 말한다. “‘강남 정신’은 적어도 정신과 문화의 측면에서 볼 때에 강남이 한국 자본주의의 엔진일 수 있다는 걸 시사한다. 보다 높은 곳을 향한 무한질주의 정신, 무언가 크게 한몫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 그리고 그런 정신과 기대감에서 비롯되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전쟁하듯이 사는 삶의 태도를 잘 보여주는 게 바로 강남”(p.324)이라는 것.

    다소 과격한 문장으로 이어진다. “한국의 아파트 붐은 …… 삶에 대한 전투성을 배양시켜 어떤 점에선 한국의 경쟁력을 높여 주는 데에도 기여했을 것이다.”(p.327) 강남 정신이 한국 사회의 원동력이라는 주장은 일단 차치하자. 강준만은 그 원동력의 힘이 어디로 향하는지 묻지 않는다. 그 힘이 뻗어나가는 자리가 바로 한국 자본주의의 썩은 부위임을 애써 외면한다. 이를 알면서도 강남 정신이 한국 시스템의 엔진이라고 태연히 승인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세 번째 문제. “‘구별짓기’와 차별은 강남에만 있는 게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만연돼 있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 한국 사회와 한국인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라 할 단일성과 밀집성을 아파트가 상징하는 동시에 실제로 구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 ‘구별짓기’가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다. 남들과 구별되고자 하는 인간의 본원적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소재가 빈약한 ‘아파트 공화국’에선 아파트를 통한 구별짓기가 가장 중요한 구별짓기 양식이 된다.”(p.327~28)

    아파트라고 하는 획일적 형태 안에도 수많은 갈림이 있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다른 것보다는 공통 분모가 훨씬 많은 것이 아파트이기도 하다. 이럴 때 아파트를 향한 사람들의 욕망은 구별짓기보다는 모방 욕구에 가깝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닮은 게 훨씬 많으니까.

    물론 강준만은 이런 모방심을 ‘평등주의’의 일환이라고 설명한다. 지나친 환원은 아닐는지. 남다른 것을 용인하지 않고 동일한 문화양식을 개인에게 강요하는 사회의 문제가 결과로 드러난 것은 아닐는지. 게다가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배제와 계급 구획을 구별짓기라는 이름으로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한 예로 분당 주민이 성남과 판교, 용인을 대하는 태도를 보자). 따라서 강준만의 구별짓기는 그의 말마따나 인간의 본원적 욕망이 아니라, 차별과 배제의 형태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욕망의 틀로 아파트를 분석하다

    네 번째 문제. 어쩌면 책의 핵심 키워드는 강남도 아파트도 아닌 ‘욕망’일지 모르겠다. 욕망은 “인간 세계의 엔진”(p.321)이며 “그 어떤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굴러가게 만드는 동력은 욕구, 욕망, 욕심 따위의 것임에 틀림없다.”(p.323) 이런 욕망의 틀로 강남과 아파트를 바라보는 것은 아래 이유 때문이다.

    “이미 풍요로운데도 불구하고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끊임없이 생각하고 애쓰는 게 훨씬 더 ‘욕망’이라는 단어에 어울리지 않는가?”(p.324) 욕망의 틀로 강남과 아파트를 분석하는 것은 신선한 시도일지 모른다. 또 강남 바깥의 사람들이 강남 사람들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것 또한 사실일지 모른다.

    그러나 무엇이 그 욕망을 낳는지, 무엇이 이중삼중 꼬인 욕망의 고리를 만드는지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여기서 멈춰 시종일관 특정한 행위의 원인이 되는 욕망만을 주장한다. 욕망 이론을 빌려와 강남, 한국의 ‘진부한’ 자화상만을 강조한 것은 아닐까. 욕망 이론을 도입하려면 욕구들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발견해야 하지 않았을까.

    욕망의 틀로 본 강남과 아파트 사회학의 가장 큰 맹점은 다음 대목에서 나온다. “강남에 대해 배 아파 할 것 없다. 전부는 아닐망정 대다수 한국인의 꿈을 그 동네 주민들이 앞장서서 구현해 보인 것뿐이다. 그러나 노력 없이 돈이 돈을 벌어 주는 시스템에 대해선 배 아파 해도 무방할 것 같다.”(p.335)

    불로소득의 측면을 부정하지만, 전체적인 뉘앙스는 ‘실은 너희들도 우리를 닮고 싶은 거지?’라고 묻는 보수적 언론의 교묘한 수사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은 오늘날 빗나간 주택 정책과 건설 카르텔이 만든 기형적 구조에 신음하는 대다수 시민을 보지 못한다. 공허한 이론이 아니라 현실에서 직접 문제를 보겠다는 야심찬 시도와는 달리, 결과적으로는 강남 사람의 현실과 주장을 대변하고 말았다.

    주지하다시피 강준만은 참여정부를 전면 비판해 온 사람 중 하나다. 겉으로는 사회 정의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정반대 모습을 취한 게 참여정부라면, 결국 그들의 정의는 허상에 불과했다면, 가장 간단한 방법은 다시 무엇이 정의고 무엇이 정의가 아닌지 곰곰이 따져보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아래 구절을 볼 때, 그는 참여정부 비판에 너무 골몰한 나머지, 정의의 기준조차 잃어버렸음을 자인하고 만 것은 아닐까. “차라리 교육방송은 물론 모든 공영방송을 통해 ‘부동산 재태크’를 국민 평생교육 차원에서 가르치는 게 훨씬 더 사회 정의에 부합하는 것 아닌가? 우리 모두 알게 모르게 서로서로 부동산에 관한 ‘대 국민사기극’을 저지르고 있는 건 아닌가?”(p.340) 그저 강준만식 수사학이라고 넘어가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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