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세 가수이자 노조 조직가 & 젊은 급진파 가수
        2006년 12월 02일 04: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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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타 필립스와 아니 디프랑코. 두세대를 뛰어넘은 하나의 이상.
     

    ‘유타 필립스Utah Phillips’는 전업 가수다. 동시에 그는 전업 노동조합 조직가이기도 하다. 그에게 노래는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이면서 동시에 노동자를 조직하는 무기이기도 하다. 우리 나이로 70을 넘긴 그의 인생에서 양자는 칼로 자르듯이 구분되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를 ‘광활한 미국남서부의 황금빛 목소리’라고 소개한다. 이 어인 자아도취인가 싶지만 직접 그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쉽게 수긍이 간다. 특히 60세가 넘어서 만든 녹음들에서도 여전히 아름다운 미성과 또렷한 발음, 성량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의 노래는 매우 전통적이다. 우디 거스리 이후의 미국 포크의 미학을 충실히 재현하고 있다. 내용과 형식 모든 면에서 옛 선배들의 궤적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미국 포크 뮤지션들은 지금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유타 필립스만큼이나 원형 그대로의 ‘포크’를 고수하는 이는 정말 드물다.

    어쩌면 유타 필립스의 노래들은 우디 거스리 이후가 아니라 그 이전의 미국 포크의 원형들, 그러니까 ‘기타는 또 다른 펜’이라는 신념을 안고 노래로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 전국을 떠돌던 1900~1930년대 미국의 노동가수들에 직접 맞닿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유타 필립스의 경력에서도 다소 이색적인 작품들이 오늘 소개할 두 장의 앨범이다. 이 앨범들은 ‘아니 디프랑코Ani DiFranco’와 함께 작업한 것들로 그가 현대적인 음악기법과 ‘비트’의 힘을 빌려온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 시도들이다.

    여기서 잠깐 아니 디프랑코가 누군지 소개하자면 뉴욕 출신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보통 ‘안티포크’ 운동의 기수로 지목되는 인물이다. 안티포크는 90년대 들어 펑크락에서 갈라져 나온 지류 중의 하나로 사실 장르라고 말하기는 좀 뭐한 ‘현상’같은 것이었다. 음악은 펑크인데 밴드가 아니라 포크가수처럼 혼자 부른다는 점에서, 그리고 보통 급진적인 가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포크’에 비유된 것이다. ‘안티’는 적대적이라는 뜻이 아니라 변증법적인 비유로 보면 된다.

    아무튼 아니 디프랑코도 유타 필립스 못지않게 급진적인 가수로 지난 2000년 미국 대선 때는 녹색당 후보로 출마한 랄프 네이더의 당선을 위해 기타 하나 둘러메고 지원공연을 다닌 열혈 전사다.

    나이차로 말하면, 유타 필립스가 서른이 넘어서 레코딩 데뷔를 했을 때 아니 디프랑코는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으니 한 세대 이상의 갭이 존재한다. 그러나 둘은 그 차이를 뛰어넘어 음악과 이상을 공유하는 동지로서 함께 작업을 했다.

                                                                         * * *

       
    "The Past Didn’t Go Anywhere"
    1996년
    1. Bridges
    2. Nevada City, California
    3. Korea
    4. Anarchy
    5. Candidacy
    6. Bum on the Rod
    7. Enormously Wealthy
    8. Mess With People
    9. Natural Resources
    10. Heroes
    11. Half a Ghost Town
    12. Holding On

    공동작업의 첫 번째 결과물인 "과거는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The Past Didn’t Go Anywhere"는 유타 필립스의 인생 경험과 그 속에서 얻은 교훈을 담고 있다. 모두 12곡이 담겨 있지만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개념의 노래들은 아니다.

    포크 가수들이 흔히 ‘토킹 블루스Talking Blues’라고 부르는 형식으로 기타 반주에 맞춰 긴 이야기를 나레이션처럼 덧붙이는 것인데 이번에는 기타가 아니라 아니 디프랑코가 만든 반복적인 비트에 몸을 싣고 있다.

    나름대로 오래된 경험과 새로운 형식을 결합시키려는 시도였다. 다만 그런 시도가 만족할만한 음악적 성과를 낳았는지는 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솔직히 말하면 작은 극장에 가서 배경음악이 깔린 모노드라마를 녹음해온 느낌이다.

    유타 필립스는 1956년 주한미군으로 한국에 왔다. 그의 나이 21살 때로 3년간의 복무기간 내내 한국에 머물렀다. 앨범에 실린 세 번째 곡 ‘한국Korea’은 전쟁의 상처가 깊게 남아있던 50년대 말 한국에서 자신이 보고 느낀 것들에 대해 담고 있다.

    유타 필립스는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면서 전쟁의 결과로 고통 받은 사람들과 긴장이 넘치는 휴전선을 보면서 평화주의자가 됐고 급진적인 사고를 키웠다. 한국에서의 경험은 그의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됐기 때문에 공연 때 자주 당시의 이야기를 언급한다.

    아마도 그의 부대가 임진강 근처에 있었는지 ‘한국’은 임진강 건너편의 중국군(1959년까지 북한에 주둔)과 임진강 가에 모여 살던 주민들의 빈곤에 관해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경험을 통해 진짜 적이 누군지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됐다"는 말로 끝맺고 있다.

    이어지는 노래 ‘무정부주의Anarchy’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돌아온 직후의 경험에 관한 것이다. 노랫말에 나오듯이 한국에서 빈곤과 전쟁을 간접 체험하고 고향인 유타주로 돌아온 그는 무정부주의자이며, 평화주의자인 앰몬 헤네시가 운영하는 구호기관 ‘조 힐 하우스’에 동참했다.

    조 힐은 20세기 초반 미국 노동운동의 전설적인 인물로 전국단일노조를 주창했던 ‘세계산업노동자Industrial Workers of the World(IWW)’의 조직가였으며 노동가요 작곡가였다. 조 힐은 유타 필립스뿐만 아니라 미국의 모든 진보적인 음악인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인물이다. 또한 유타 필립스도 조 힐과 마찬가지로 무정부조합주의에 기반한 IWW의 조합원이자 조직가이다.

    조 힐 하우스에서 8년간 일한 유타 필립스는 1968년 상원의원 선거에 지금도 미국 서부 지역에서 활동 중인 독립좌파정당인 ‘평화와자유당’ 소속으로 출마했다. 물론 그의 득표는 당선권과 거리가 아주 먼 수천표에 불과했지만 제3당이 설 자리가 전혀 없는 미국 정치현실에서 무시 할 수 없는 결과로 받아들여졌다. 유타 필립스 자신에게도 정치를 포기하기보다는 다음 선거를 준비할 용기를 갖게 할 만한 결과였다. 문제는 선거운동으로 인해 그가 빈털터리가 됐다는 것이었다.

    다음 선거운동의 자금을 모으기 위해 유타 필립스는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분야, 즉 노래를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선거 때까지 만이라고 생각했던 노래는 이후 30년이 넘게 계속됐다. ‘출마Candidacy’는 미국의 양당정치에 대한 비판에 초점을 맞춘 노래지만 이처럼 자신의 선거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곡이다.

    이어지는 나머지 곡들도 모두 유타 필립스가 살아오며 겪은 경험들과 그 경험들이 보여주는 미국의 현실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 * *

       
    "Fellow Workers"
    1999년
    1. Joe Hill (instrumental)
    2. Stupid’s Song
    3. The Most Dangerous Woman
    4. Stupid’s Pledge
    5. Direct Action
    6. Pie in the Sky
    7. Shoot or Stab Them
    8. Lawrence
    9. Bread and Roses
    10. Why Come?
    11. Unless You Are Free
    12. I Will Not Obey
    13. The Long Memory
    14. The Silence That Is Me
    15. Joe Hill
    16. The Saw-Playing Musician
    17. Dump the Bosses
    18. The Internationale (instrumental)

    1999년 유타 필립스와 아니 디프랑코는 두 번째 공동작품집을 발표했다. 앨범의 제목은 "노동자 동지들Fellow Workers". 제목에서 읽을 수 있듯이 두 번째 작품집의 주제는 ‘노동’과 ‘노동운동’과 ‘노동가요’다.

    음악적으로도 3년 전의 첫 번째 시도와는 차별을 뒀다. 좀 더 전통적인 형식의 노래에 비중을 두고 있다. 녹음은 연주에 생동감과 현장감을 주기 위해 40명의 관객을 앞에 두고 미니 라이브 형식으로 진행됐다. 앨범에 실린 18곡 중 절반은 새로 쓴 곡이고 나머지는 전통적인 노동가요 중에서 고른 것이다.

    우선 눈에 띠는 곡들부터 보면 ‘그림의 떡Pie in the Sky’은 앞서 이야기한 조 힐의 작품이다. 자본가들의 거짓 약속을 죽은 후의 천국을 약속하는 목사의 설교에 빗댄 노래다. 원래 제목은 ‘설교자와 노예The Preacher and the Slave’인데 노랫말에 나오는 ‘그림의 떡’이라는 문구가 파업하는 노동자들의 구호가 되면서 아예 제목이 돼버렸다.

    ‘조 힐Joe Hill’은 1936년 미국 현대음악가인 얼 로빈슨이 작곡한 추모곡이다. 얼 로빈슨은 역시 미국 현대음악의 대표적 작곡가인 아론 코플랜드와 동창생이며 공산당원이기도 했던 인물이다. ‘조 힐’은 이후 수많은 가수들이 불렀지만 존 바에즈가 1969년 우드스톡 페스티벌 무대에서 50만 관객을 앞에 두고 부른 연주가 가장 유명하다.

    ‘가장 위험한 여성The Most Dangerous Woman’은 조 힐과 같은 시기에 광부노조와 IWW의 조직가로 활동했던 미국 노동운동의 대모 ‘마더 존스’에 관한 노래다. 광부파업을 주동하다 구속된 그녀를 놓고 검찰이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자’라고 부른 것이 그대로 별명이 됐다.

    그녀의 전설을 노래한 노동가요도 여럿이고 가장 유명한 것은 ‘마더 존스가 산을 넘어 올거야She’ll Be Coming ‘Round the Mountain’이지만 ‘가장 위험한 여성’은 유타 필립스와 아니 디프랑코가 함께 새로 만든 곡이다.

    ‘빵과 장미Bread and Roses’는 최근 몇 년간 우리 여성노동운동에서도 친숙하게 사용하게 된 구호다. 1912년 매사추세츠의 여성 섬유노동자들의 파업 때 처음 등장해 여성 노동운동의 상징이 된 문구다. 구호는 오래됐지만 노래는 생각보다 젊은(?) 편으로 존 바에즈의 동생인 포크 가수 미미 파리나가 1976년 작곡했다.

    ‘우리는 빵(생존)을 원하지만, 동시에 장미(존엄)도 원한다’는 절규는 거의 100년 전에 터져 나왔지만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도대체 지난 100년 동안 피고 졌던 장미는 누가 다 거둬 간 것일까? 왜 우리는 똑같은 구호를 100년 동안 되풀이 하고 있는 걸까?

    이런 의문에 대한 대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유타 필립스는 두 개의 오래된 노래로 앨범을 마무리하고 있다. 하나는 미국 노동가요인 ‘우리 등 뒤의 사장 놈들을 치워버려라Dump the Bosses’이고 다른 하나는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없는 ‘인터내셔널가The Internationale’다.

    너무 상투적인 결말이라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자, 이 할아버지 포크 가수와 젊은 페미니스트 락커의 첫 번째 작품집 제목으로 돌아가 보자. ‘과거는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 100년 전에 미국인들을 괴롭혔고 50년 전에 한국인들을 괴롭혔던 문제들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세계를 괴롭히고 있다. 문제들은 이렇게 그대로 남아있는데 결론만 새롭고 참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 결론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결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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