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즈라 파운드는
    왜 ‘조국’을 배신했는가?
    파시스트의 나팔수가 된 미국 시인 : 한국 보수만 저열한 게 아니다....
        2021년 07월 29일 11: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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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에는 윤석열의 120시간 노동 운운하는 얘기를 다루었었는데(링크), 이번 주 초에는 그에 버금가는 망언이 튀어나왔다. 윤희숙이라는 이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교육 수준이 낮아 사교육을 필수로 만드는 것도 문제이지만 아이들 간의 (학력) 격차도 늘어나고 있다. 이런 격차는 그대로 아이들 인생의 기회 격차, 소득 격차로 굳어질 것”이라며 “왜 공교육은 이런 상황을 방치하고 있나. 제일 큰 책임이 전교조에 있다고 본다”라고 썼다고 한다. (관련 기사)

    윤희숙의 주장은 언급할 가치도 없는 것이다. 그는 툭하면 ‘귀족 노조’, ‘강성 노조’ 운운하는데, 어떤 노동조합이 귀족 노조이고, 어떤 노동조합이 강성인지에 대한 언급을 한 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소위 보수 진영 인사들의 특징 중 하나를 그도 공유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며, 용어를 통해 상대방을 깎아내린다.

    나는 전에 올린 글들에서 이준석의 발언 하나를 ‘우물에 독 풀기(poisoning the well)’라고 불리는 논리의 오류라고 지적한 바 있었다.(링크) 제발 강성이니 귀족이니 하는 말 붙이지 말고,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 밝히기 바란다. 물론 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이 글은 윤희숙 얘기가 아니라 미국의 시인 에즈라 파운드와 T. S. 엘리엇에 관한 글이다. 윤희숙이나 이준석 얘기를 꺼낸 것은, 소위 보수를 자처하는 이들의 공통점을 뽑아보려는 의도에서였다. 어떤 이들은 한국 사회의 보수는 정통 보수가 아니라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한다. 아니, 그렇지 않다. 보수는 어디에 있든, 저열한 생각을 하고 있거나 거짓을 지어낸다.

    왜 그럴까? 고통으로 가득한 사회들을 유지하려는 것이 소위 보수주의자들이다. 그런데 이 지킬 가치가 전혀 없어 보이는 사회들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자니, 자신들도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고통의 근원을 사회 자체의 구조에서 찾지 않고, 다른 데에 원인이 있다고 지어내곤 한다.

    윤희숙이 이 사회의 문제점들을 만든 이가 강성 노조나 귀족 노조, 전교조 등이라고 꾸며내었듯, 다른 시간대에 다른 공간에서 살았던 이들도 이상한 주장을 꾸며내었다. 파시즘의 창시자 무솔리니의 말을 들어보자.

    피를 흘리며 싸우는 향상된 새 세대의 진격 앞에 낡은 세대의 도시와 국가는 패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일은 비단 도시와 국가에서만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저지하지 못 한다면) 전체 백인이 모든 서방 인종이 다른 피부색을 가진 인종에 의해 잠식되고 말 것이고, 급기야 우리는 우리가 어떤 인종이었는지도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베니토_무솔리니

    이탈리아 사회의 문제점들은 기본적으로 이탈리아 사회 내부에 그 원인이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무솔리니는 “다른 피부색을 가진 인종”에게 전체 백인이 모든 서방 인종이 잠식될 것이라고 말한다. 생각해 보라. 현대는 소위 백인에 의해 서방 인종과 다른 피부색의 이들이 억압받고 착취 받았던 시기라고 하는 것이 더 사실에 가깝지 않은가? 무솔리니의 주장이 헛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은 그 자신과 히틀러가 입증한 바 있다. 그와 히틀러가 ‘다른 피부색을 가진 인종’의 나라 일본과 같은 편에 서서 싸운 바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히틀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악명 높은 학살자는, 1922년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정말 힘 있는 사람이 되면, 나는 제일 먼저 유대인을 몰살시킬 것이다. 내가 이것을 하게 될 만큼 힘이 생기자마자 나는 교통 여건이 허락하는 한 뮌헨의 마리엔플레츠에 교수대를 차례로 지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유대인들은 무차별적으로 교수형을 시킬 것이고 위생에 문제가 없을 만큼 오랜 시간, 악취가 진동할 때까지 그들을 내버려 둘 것이다. 그들이 교수대에서 내려오자마자 다음 유대인이 교수형에 처해지고, 뮌헨에 유대인이 없어질 때까지 교수형을 행할 것이다. 다른 도시들은 이 관행을 따라 독일 전체의 유대인을 모두 몰살시킬 것이다.” (출처: Gerald Fleming, 《Hitler and the Final Solution》 (1987). Berkeley & Los Angeles, C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윤희숙과 무솔리니의 주장과 놀랄 만큼 패턴이 유사하다. 1922년의 독일의 고통의 근원은 독일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를 침공하면서 시작되었지만, 그것을 진정한 유럽 전체의 전쟁으로 만든 것은 독일이었다. 독일은 중립국인 룩셈부르크와 벨기에를 침공했고, 프랑스로 진격했다. 그러자 영국이 독일 제국에 선전포고했고, 유럽은 전쟁터가 된다.

    독일 제국은 패했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탄생했다. 그러나 새로 생긴 공화국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막대한 배상금을 내야 했고, 폴란드를 잃었다. 19세기에 프랑스로부터 강탈했던 알자스-로렌 지방(<마지막 수업>에서 언급되었던)을 프랑스에 내주었다. 아프리카 식민지들도 벨기에, 영국, 프랑스에 다 내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히틀러는 애꿎은 유대인을 지목한 것이다. 물론 유대인 중에는 탐욕스러운 금융자본가들이 많았다. 그러나 탐욕스러운 금융자본가 모두가 유대인은 아니었고, 유대인 모두가 탐욕스러운 이들도 아니었다. 예를 들어 폴란드에 거주하던 가난한 유대인들은 탐욕스러운 금융자본가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문제의 근원을 다른 곳에 있다고 지목하는 일은, 수천만 명이 죽은 전쟁, 2차 세계대전의 씨앗 중 하나가 되었다.

    이런 파시즘과 나치즘에 동조한 미국의 유명 시인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에즈라 파운드였다.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1885년 10월 30일 ~ 1972년 11월 1일)는 미국의 시인·문예 비평가이다. T. S. 엘리어트와 함께, 20세기 초반의 모더니즘 시 활동의 중심인물이었다. 그는 모더니즘 운동, 특히 이미지즘(Imagism)과 보티시즘(Vorticism)을 추진한 원동력이었다.”  (관련  글 링크)

    파운드는 어떻게 파시스트의 나팔수가 되었는가?

    미국에서 태어나고 공부했던 그는 “1908년 자신이 태어난 ‘반은 야만스러운 나라’ 미국을 떠나 영국 런던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파운드의 주변에는 T. S. 엘리엇, 제임스 조이스 같은 20세기 영미문학의 거목들이 모여들었다. 그는 ‘시인들의 시인’답게 젊고 재능 있는 예술가들을 격려하고 집필을 거들었다. 엘리엇의 ‘황무지’ 초고를 반으로 쳐낸 것은 그였다.” (관련 글 링크)

    그가 미국을 떠나 영국으로 가게 된 경위를 살펴보자. 그는 인디애나주에 있는 한 대학에서 강사로 일하다가 두 가지 문제를 일으켰다. 그는 흡연이 금지된 복도에서, 그것도 학장실이 있는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곤 했다. 이 일로 대학 운영진의 미움을 사던 그의 방에서 한 여성이 발견되었고, 장로교 대학이었던 와바시 대학(Wabash College)은 그것을 용인하지 않았다. 강사에게 주어진 주거 공간에 여성을 끌어들인 것은 아마 그 학교의 규정을 어긴 것이었을 터인데, 그 후에 했다는 말이 미국은 ‘반은 야만스러운 나라’라는 말이다. 무언가 패턴이 보인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는 지식인. 누군가가 생각나지 않는가?

    그는 해고 당한 후 유럽으로 떠났고, 런던에 정착해 왕성한 활동을 했다. 런던 생활 초기에 그는 친구에게 다음의 내용을 담은 편지를 썼다. “런던은, 오래된 런던은 시를 위한 곳이다.”

    1920년에 그는 런던을 떠난다. “The British were insensitive to mental agility in any and every form.”이라는 말을 남기고. 직역하면 “영국인들은 모든 형태의 정신적인 민첩함에 둔감하다.” 정도일 것인데, 사실 그는 “그 자신의 엄청난 자만심, 어리석음, 나쁜 태도로(by his own enormous conceit, folly, and bad manners)” 런던 문학계의 기피 인물이 되었던 것이었다. (관련 글 링크)

    시를 위한 곳이라던 런던은 모든 정신적 민첩함에 둔감한 이들로 가득한 도시가 되었다. 사람의 마음이야 당연히 변할 수 있지만, 그의 경우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역경에 약한 지식인은 자신의 잘못 때문에 자신이 곤경에 빠졌을 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대신 남을 공격하곤 한다. 그리고 그는 점점 그 정도가 심해졌는데, 미국과 영국 모두에게 배신당했다는 생각은 나중에 황당한 행동으로 이어졌다. 무솔리니와 히틀러의 품에 안긴 것이다.

    그는 파리에서 머물다가, 1924년에는 이탈리아로 이주한다. 파운드는 1차 세계대전이 금융자본주의의 산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주1) 이 타당할 수 있는 생각으로부터 그는 이상한 결론을 도출하고, 위험한 생각과 행동을 하는 길에 들어서게 된다. 1933년에 무솔리니를 만난 그는 “보스(무솔리니)만큼 내 생각을 빠르게 이해하는 사람은 처음 만났다.”라는 말을 남긴다. 1939년에 그는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가 유대인을 대표한다고 선언하고, 편지의 서명란에 ‘Heil Hitler(히틀러를 경배하라)’는 문구를 사용한다. 또한, 제3제국(나치 독일)이 “러시아를 문명화시킬 세력”이라고 칭송했다.

    1940년대가 되자 그는 라디오 방송을 시작하는데, 여기서 그는 위험한 생각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1940년대의 그의 행적에 관한 영어 위키 백과의 일부를 인용한다.

    에즈라 파운드 박사(그의 유일한 박사학위는 해밀턴 대학 명예박사였다)라고 자신을 부르며 그는 미국, 루스벨트, 루스벨트의 가족, 처칠, 그리고 유대인들을 공격했다. 그는 히틀러를 칭찬했고, 우생학(자)에게 “최고의 인종을 보존하라.”라고 권고했으며, 유대인을 “오물(filth)”이라고 지칭했다.

    또한, 그는 Japan Times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기고했다. “Democracy is now currently defined in Europe as a ‘country run by Jews.” 즉, 현대 유럽의 민주주의는 유대인들에 의해 지배되는 국가들로 정의될 수 있다는 말을 한 것이다. 또, 다른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The English were a slave race governed since Waterloo by the Rothschilds.” 영국인들은 워털루(나폴레옹과의 전투) 이래로 로스차일드가(유명한 유대계 가문이다)에 의해 지배되어 온 노예들이라는 얘기이다.

    현대 유럽을 돈 많은 이들이 지배했다는 얘기는 타당하다. 그런데 그는 여기서 ‘유대인’이라는 공격 대상을 끄집어낸다. 이 점에서 그는 무솔리니와 히틀러와 다르지 않다. 여기서 ‘민족’이나 ‘종족’을 끄집어낼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인 문제를, 구체적으로 계급 갈등을, 생물학적 차이의 문제로 슬쩍 바꿔버린 것이다.

    히틀러가 주장했고 무솔리니가 동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유대인 일부의 문제를 유대인의 문제라고 선언한 것이다. 이것은 그가 지식인인 척했지만, 부분과 전체에 대한 개념조차 갖추지 못한 얼치기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리아족이 우월한 민족 혹은 종족이며, 유대인은 열등하고 탐욕스러운 종족이라는 말을 들으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제대로 된 판단력을 가진 이들은 코웃음을 치겠지만, 당시의 다수의 독일인과 일부 이탈리아인들은 그런 얘기를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소위 지식인이었던 그는 왜 그랬던 것일까? 그도 히틀러에게 속았던 것일까? 알고도 그렇게 한 것이 아닐까?

    유럽의 기독교적 전통에서 유대인은 예수를 배신한, 돈만 아는 이기적인, 돈을 받지 못하면 살을 베어가는 ‘나쁜 놈들’이다. (주2) 돈 많은 일부 유대인들은 떵떵거리고 살았을지 모르나, 유대인들은 전체적으로 보아 힘없는 존재였다. 히틀러나 무솔리니나 모두 그것을 알고 있었고, 가장 취약한 이를 공격하는 것이 대중에게 먹힌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유대인 탄압과 더 나아가 학살을 실천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한데, 보수주의자들은 자본가와 비교해 약자인 노동자들을, 남성과 비교해 약자인 여성을 공격한다.

    무솔리니는 대중을 선동하기 위해 고대 로마에 대한 이탈리아인들의 향수를 교묘하게 이용했다. 두 세계대전 사이의 시기에 서유럽에서 그리 부유하지 않았던 나라 이탈리아에는 영국이나 프랑스 등에 대한 열등감을 가진 이들이 있었을 것인데, 유럽과 아프리카 북부, 아시아 일부까지를 지배했던 고대 로마를 들먹이는 것은 무솔리니에게 대중들이 빠져드는 데 공헌했다. 사실 그가 한 것이라고는 사단을 군단이라 개칭하고(카이사르의 9군단이나 10군단을 생각하라), 고대 로마식 경례를 도입한 것 정도였지만 말이다. (주3)

    유럽이나 미국의 시인 중에는 고대 그리스 로마 문명을 ‘이상적’인 것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았는데, 파운드 역시 그러했다. 그런데 그는 한 발 더 나갔다. 그는 고대 그리스-로마에서 기원한 진정한 유럽적인 전통을 무솔리니와 히틀러가 계승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혹은 그런 생각을 자신에게 주입한 것이다. 그 결과 고대 로마의 전통을 (사이비로) ‘계승’한 무솔리니의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권의 나팔수가 되어 조국 미국을, 더 중요하게는, 인류를 배신했다.

    무솔리니와 히틀러가 패망하였던 1945년에 그는 미국 당국에 반역죄로 체포되었고, 재판에서 정신병자로 분류되어 감옥에 가는 대신에 정신 병원에 감금되었다. 체포 직전 그는 이러한 성명을 발표했다.

    나는 반유대주의자가 아니며,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와 생계를 위해 정직하게 하루의 일을 하는 유대인을 구별한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시골에서 온 단순한 사람들이었다. 히틀러는 성인(聖人, saint)이었고 자신을 위한 것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반유대주의에 속아서 자신을 망쳤다고 생각한다. 그건 그의 실수였다.

    파운드 씨. 반유대주의를 주창한 히틀러가 반유대주의에 속았다고? 당신은 반유대주의자가 아니라고? 유대인을 오물(filth)이라고 부른 것은 기억나지 않아?

    이 미국의 반역자이며 인류의 반역자를 위해 T. S. 엘리엇, 로버트 프로스트,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의 많은 ‘문인’들은 구명운동을 한다. 헤밍웨이 너마저! 그는 스페인 내전을 통해 파시스트들이 얼마나 야만적인지를 아는 이였다. 그는 스페인에서의 종군 기자 생활을 바탕으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쓰지 않았던가.

    패거리 의식은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예전에 같은 정파에서 학생운동이나 사회운동을 함께 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떤 이와 그의 아내를 옹호하는 이들이 있듯이, 엘리엇이라는 노벨 문학상을 받은 시인은, 자신의 작품을 편집해 주었고 친한 사이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조국’을 배신한 파시스트 나팔수의 구명운동을 한 것이다. 물론 겉으로는 문학이 어떻고 건강이 어떻고 하는 핑계를 대었지만. 엘리엇이 어떤 자인지는 나중에 살필 것이다.

    나중에 풀려난 그는 KKK단의 극우 지도자와 친구 관계를 맺기도 하고, 이탈리아로 돌아가 파시스트 추종 세력 앞에서 ‘파시스트 경례’를 하는 모습이 찍히기도 한다. 이탈리아에서 그는 “미국 전체가 모두 다 정신병원”이라는 말을 남긴다. 이 정도면 도를 넘어서는 추악함을 가졌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모든 게 남 탓이고, 자신의 잘못은 하나도 없다는 얘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아닌가?

    복도에서 담배 피워 미움을 산 후 직장의 기숙사에 여자를 끌어드린 것 때문에 실직하자 자신이 살던 나라를 반 야만적인 나라라고 부르고, 자신이 거만하고 나쁜 예의범절을 가져서 런던 문학계의 왕따가 되자 헛소리를 늘어놓고(그는 런던을 ‘반쯤 맛이 간 창녀’라고 불렀다), 수천만 명을 죽인 히틀러-무솔리니 연합 세력을 열렬하게 지지하여 정신 병원에 갇힌 후, 거기에서 나와서는 “미국 전체가 모두 다 정신 병원”이라고 한다. 이것이 그리스-로마 고대 문명을 숭배했던 한 천재 시인의 언사였고, 행동이었다.

    그가 남긴 여러 작품이 있지만, 그와 관련하여 가장 유명한 작품은 그가 편집했던 T. S. 엘리엇의 <황무지(The Waste Land)>였다. 사실 이 작품은 엘리엇이 쓴 것이지만, 작품이 완성도를 갖추게 된 것이나 유명해진 것 모두에 파운드가 공헌했다. 이 위험한 생각을 지녔던 이가 편집한 작품이 서구에서 칭송을 받는다? 이상하지 않은가.

    미리 결론부터 말하면, 이 시는 파운드의 ‘사상’만큼이나 반인류적이다. 몇 부분만 인용하자. 대개의 이들은 이 시의 한 구절만을 알고 있을 뿐인데, 그 부분부터 보자.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출처: https://www.poetryfoundation.org/poems/47311/the-waste-land

    밑줄 친 부분이 그 유명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부분이다. 4월은 생명력이 넘치는 달인데, 그는 가장 잔인하다고 했다. 현대의 4월은, 엘리자베스 1세 시대와는 다르게, 생명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시의 전체에 걸쳐서 왜 현대의 4월에는 생명력이 없는지, 혹은 왜 현대에는 생명력이 없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제목이 황무지이다. 메마른 땅. 왜 현대는 메마른 땅이 되었는가?

    이 지점에서 그는 보수주의자 특유의 헛발질을 한다. 현대의 ‘불모’의 사랑을 그가 어떻게 묘사하는지 잠깐 살펴보자.

    He, the young man carbuncular, arrives,
    A small house-agent’s clerk, with one bold stare,
    One of the low on whom assurance sits
    As a silk hat on a Bradford millionaire.
    The time is now propitious, as he guesses,
    The meal is ended, she is bored and tired,
    Endeavours to engage her in caresses
    Which still are unreproved, if undesired.
    Flushed and decided, he assaults at once;
    Exploring hands encounter no defence;
    His vanity requires no response,
    And makes a welcome of indifference.
    (And I Tiresias have foresuffered all
    Enacted on this same divan or bed;
    I who have sat by Thebes below the wall
    And walked among the lowest of the dead.)
    Bestows one final patronizing kiss,
    And gropes his way, finding the stairs unlit… 

    그 남자, 여드름투성이 젊은이가 등장한다.
    작은 부동산 중개업소 직원인데 오만한 눈빛이다.
    하류층 출신인데 그에게는 브랫포드 백만장자가
    머리에 쓴 실크 모자처럼 자신감이 놓여있다.
    딱 알맞은 시간이로군, 그는 헤아린다,
    식사도 끝났고 여자는 나른하니
    그를 껴안으려 애를 쓴다면
    바라지는 않더라도 뿌리치지 않으리라.
    얼굴을 붉히며 결단을 내린 그는 단숨에 덤벼든다,
    더듬는 손길은 아무 저항도 만나지 않는다.
    남자의 허영은 반응을 원치 않으며,
    (여자의) 무관심을 도리어 반긴다.
    (그리고 나 – ‘티레이시아스’는 침대건 소파건
    이런 데서 행해지는 일들은 모두 겪어봤노라,
    ‘테베’의 성벽 아래 앉아있기도 했고,
    가장 천한 천민들 주검 사이를 걷기도 했노라.)
    사내는 마지막 생색내는 입맞춤을 하고,
    불 없는 계단을 더듬어 내려간다…

     

    She turns and looks a moment in the glass,
    Hardly aware of her departed lover;
    Her brain allows one half-formed thought to pass:
    “Well now that’s done: and I’m glad it’s over.”
    When lovely woman stoops to folly and
    Paces about her room again, alone,
    She smoothes her hair with automatic hand,
    And puts a record on the gramophone.

     

    여인은 돌아서서 거울을 잠시 들여다보며
    떠나버린 연인을 거의 생각하지 않으며
    되다만 생각들로 머릿속을 채운다,
    “그래, 이제 그건 끝났어, 끝나서 기분 좋아.”
    아름다운 여자가 어리석음에 빠져
    홀로 자기 방을 거닐 때,
    그는 자동적인 손으로 머리칼을 매만지며,
    축음기에 레코드를 건다.

    출처: https://www.poetryfoundation.org/poems/47311/the-waste-land 번역은 필자.

    건방진 표정을 짓는 하층민 젊은이 하나가 연인을 찾는다. 식사가 끝나고 청년은 여성을 애무하고 아마도 성행위를 한다. 그리고 떠난다. 여자는 별로 의사가 없지만, 젊은이의 ‘공격’을 허용하고, 그가 떠나자 “끝났으니 이제 괜찮아.”하고 말한다. 그리고 레코드를 듣는다. 이게 엘리엇이 묘사하는 20세기식 ‘불모의 사랑’이다.

    이 시건방진 여드름 난 ‘하층민’ 젊은이의 ‘불모의’ 성행위 묘사가 끝난 후, 엘리엇은 다음의 구절을 집어넣는다. 사실 파운드가 그렇게 했을 것이다.

    Weialala leia
    Wallala leialala
    Elizabeth and Leicester
    Beating oars

    엘리자베스 1세 여왕과 레스터 백작은 연애하던 사이였다고 전해진다. 현대의 ‘일방통행적’ 성애보다 배의 노를 저으며 밀회를 나누던 그 여왕과 귀족은 더 아름다운 사랑을 했다고 작가는 믿고 있었던 것이었다. 과연 그럴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말해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시절의 ‘사랑’이 현대의 젊은이들의 ‘사랑’에 비해 더 아름다웠다고 말할 근거는 전혀 없다. 엘리엇은 ‘현대=황무지/ 16세기=황무지 아님’이라는 등식을 교묘하게 만들었거나 무의식적으로 만들었다.

    20세기에는 애정 없는, 남자가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성행위도 존재했을 것이다. 21세기인 지금에도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묻고 싶다. 그게 현대에만 있는 일인가? 봉건시대 유럽에는 없었을까? 심지어 ‘초야권 행사’도 있지 않았는가? 과연 과거에는,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는 아름다운 쌍방향 사랑만 있었을까? 성폭행은 없었을까? 돈이나 권력에 근거한 성행위는 없었을까?

    분명한 것은 여성의 권리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20세기의 일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1800년대까지 여성의 참정권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진정한 여성 권리의 성장은 미국 기준으로 말하면 1960년대 이후의 일이다. 엘리엇 씨. 과연 현대가 황무지라면 고대나 중세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지옥?

    엘리엇은 미국에서 태어났고 자랐다. 파운드처럼 ‘옛것’에서 무언가를 찾으려 했던 엘리엇은 16세기 영국-셰익스피어와 엘리자베스 1세의 시대-에서 그 단서를 발견했다. 그는 조국 미국을 버리고 영국으로 귀화했고, “나는 왕당파(Royalist: 군주제 지지자)다.”라고 선언했다. 일제 강점기 한국의 시인이 “나는 일본 천황의 신하이다.”라고 선언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혹은 “나는 중국 황제의 신하이다.”라고 선언했으면 그는 어떤 취급을 받을까?

    이 시가 나오고 한참 후인 1927년에 그는 영국 국교회(성공회)로 개종하고, 같은 해에 영국인으로 귀화한다. 그는 자신의 관점을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The general point of view [of the essays] may be described as classicist in literature, royalist in politics, and anglo-catholic [sic] in religion”. (문학적으로는 고전주의자이고(낭만주의 문학을 그는 ‘배격’하고자 했다), 정치적으로는 왕실 충성파이고, 종교적으로는 ‘앵글로-가톨릭’이다.)(주4)

    ‘앵글로-가톨릭‘이라는 표현은 엘리엇이 쓰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표현이다. 성공회(聖公會, 영어: Anglicanism, Episcopal Church) 대신 이 표현을 쓴 것은, 아마도 영국 국교회(성공회)가, 영국 왕의 이혼을 가톨릭이 불허하였기 때문에 만들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혼을 위해 새로운 종파를 만들었다는 평이 주는 수치심을 피하기 위한 신조어 만들기라. 대단한 사람 아닌가?

    미국 시민이었다가 여왕의 신민(subject)이 되기 위해 영국에 귀화했던 그는, 귀화하기 전에 쓴 그 시에서 이런 짓까지 벌인다.

    Well, that Sunday Albert was home, they had a hot gammon,
    And they asked me in to dinner, to get the beauty of it hot—
    HURRY UP PLEASE ITS TIME
    HURRY UP PLEASE ITS TIME
    Goonight Bill. Goonight Lou. Goonight May. Goonight.
    Ta ta. Goonight. Goonight.
    Good night, ladies, good night, sweet ladies, good night, good night. (주5)

    출처: 상동

    기가 막힌다. 현대의 우리말로 옮겨보겠다.

    음, 앨버트(남편)가 집에 있던 그 일요일에, 그들(남편 친구들)이 뜨거운 소시지를 가지고 있었어. 그들은 내게 저녁을 같이 먹자고 청했어, 뜨거운 소시지의 아름다움을 얻으라고.
    서두르세요, 식당 닫을 시간입니다.
    서두르세요, 식당 닫을 시간입니다.안뇽 빌. 안뇽 루. 안뇽 메이. 안뇽.
    타 타(영국의 인사말 중 하나). 안뇽. 안뇽.
    안녕, 숙녀분들, 안녕, 달콤한 숙녀님들, 안녕, 안녕.

    “Good night.”에서 d 발음도 하지 못하는 ‘천한’ 것들이 모여 떠드는데, 그 대화 내용에는 여러 남자들의 소시지를 맛보았다는 느낌의 이야기가 포함되었고, 그것이 현대의 ‘불모성’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난교나 부부교환(스와핑) 같은 것들은 원래 귀족 사회에서 유행하던 것이었다. ‘천한 것’들에 비해 귀족 사회의 성적인 자유가 더 높았고, 그들은 남편이나 아내의 외도를 눈감아주는 것을 밥 먹듯 했었다. 그런데 ‘천한 것’들의 문란함을 그는 얘기한다.

    앞에서 인용했던, 사랑 없는 성행위 또한 그는 이상한 시각에서 이야기하는데, 사랑 없는 성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남성의 재력이다. 예를 들어 이건희는 한 번에 네다섯 명의 여성들을 논현동 빌라와 삼성동 저택에 불러들여 성관계, 혹은 ‘유사 성관계’를 맺었는데, 한 명 당 500만 원을 지급했다고 했다. 한 번에 2000만 원에서 2500만 원을 쓴 것이다. (주6) 1920년대 영국이라고 달랐을까? 부유한 이들이 여드름 난 하층민 젊은이보다는 애정 없는 성행위를 더 많이 하지 않았을까?

    나도 현대 사회를 비판할 수 있다. 누구라도 비판할 수 있다. 현대 사회가 불모지라고도 말할 수도 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충분히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하지만 적어도 시인은 다음의 행위들은 하지 말아야 한다.

    1) 발음을 문제 삼는 것과 특정 계층의 어휘를 문제 삼는 것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이들의 ‘황폐함’을 나타내기 위하여 특정 지역 사투리를 사용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경상도 방언도, 전라도 방언도, 충청도 방언도 부정적인 관념을 나타내기 위한 장치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특정 계층 특유의 말투를 그런 관념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해서도 안 된다.

    Goo night이란 발음을 현대의 ‘불모성’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한 것은 참으로 무지한 짓이다. ‘Ta ta’라는 인사말이 현대의 불모성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다. 당신이 그렇게 한다면 나도 당신을 공격할 수 있다. good의 변형인 better에서 r 발음도 하지 못하는 자가 무슨 얘기를 하는 건가? (주 5 참조)

    2) 어휘 ‘low’의 사용

    엘리엇은 현대인의 ‘불모의 사랑’을 나타내기 위하며 다음의 문구를 사용한다.

    He, the young man carbuncular, arrives,
    A small house-agent’s clerk, with one bold stare,
    One of the low on whom assurance sits
    As a silk hat on a Bradford millionaire. 

    그 남자, 여드름투성이 젊은이가 등장한다.
    작은 부동산 중개업소 직원인데 오만한 눈빛이다.
    하류층 출신인데 그에게는 브랫포드 백만장자가
    머리에 쓴 실크 모자처럼 자신감이 놓여있다.

    이는 명백히 어떤 계층을 비난하는 것이다. 하류층의 얼굴에 자신감이 보이면 안 되는가? 여드름투성이는 자신감을 가지면 안 되는가? 연애하면 안 되는가? 엘리엇은 어휘 하나하나가 시에서는 다 분명한 목적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했던 사람이다. 이러한 어휘의 사용은 그가 가지는 현대에 관한 문제의식이 결국은 귀족과 평민과 같은 분명한 위계질서가 사라져가는 것, ‘하류층’과 자신과 같이 많이 배운 ‘상류층’이 섞여서 살아가야 하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두려움에서 기인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현대가 황무지라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하층민들의 성생활에서 현대의 ‘불모성’을 찾아냈던 무지한 자 엘리엇을 위해 간략한 역사 강의를 하고자 한다. 1900년대 유럽의 비극은 제국주의로부터 출발한다. 1차 세계대전은 엄청난 식민지를 지니고 있던 영국과 프랑스 등과 그러지 못했던 후발 제국주의 국가들의 전쟁, 즉 ‘제국주의 전쟁’이었다. 2차 세계대전의 발발에도 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이 하나의 계기로 작용했다. 패전국이었던 독일과 같은 나라에는 히틀러 같은 선동가가 나타날 수 있는 충분한 토양이 존재했다.

    전쟁과 제국주의의 수탈이라는 현대의 비극의 원인 제공자 중 하나가 영국이었다. 그리고 엘리엇이 칭송하는 엘리자베스 1세는 아메리카 대륙으로 영국이 뻗어나가는 것을 가능하게 했던 이다. 즉, 엘리자베스 1세는 넓게 정의한 제국주의의 창시자 중 하나이며, 다른 관점에서 보면 ‘제3세계’의 식민지화와 수탈의 ‘원조’이다. 그는 제국주의자의 장충동 뚱뚱이 할머니다. 그를 미화하는 자, 엘리엇이 세상을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었을 리 없다.

    그러므로 현대라는 황무지(the Waste Land)의 본질은 엘리엇이 그리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보수주의자 특유의 헛발질을 그는 멋지게 해냈다. 히틀러나 무솔리니 같은 이들, 처칠(주7)과 같은 이들이 힘을 키우려고 하던 시대에 그는 하층민들의 성생활에서 현대의 불모성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시를 썼다. 참으로 현학적으로, 참으로 악질적으로.

    글을 정리하고자 한다. 촉망받던 미국의 두 시인 중 하나는 ‘영국 국교회와 왕실’에 ‘귀의’했다. 다른 하나는 파시스트들과 나치의 옹호자가 되어 그들의 유대인 학살과 소련인 학살을 방조하거나 옹호했다. 고대 그리스 로마도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영국도 결코 이상향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렇게 믿기를 원했고, 그런 생각에 근거하여 행동하고 말하고 썼다.

    파운드는 현대의 고통을 유대인에게 떠넘겼고, 엘리엇은 현대가 황무지가 된 것을 하층민들에게 떠넘겼다. 그들은 보수주의자의 정수를 보여준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보수란 지키자는 주장이다. 그런데 그들 또한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사회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까지 감출 수는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비난할 대상을 찾는다. 히틀러와 파운드에게 그것은 유대인이었다. 엘리엇에게 그것은 하층민이었다. 윤희숙에게 그것은 ‘귀족 노조’와 전교조이다. 이준석에게 그것은 페미니스트들이다.

    보수는 이재용을 비난하지 않는다. 보수는 조중훈 일가를 비난하지 않는다. 보수는 김승연을 비난하지 않는다. 보수는 약자를 비난한다. 보수는 가해자보다는 피해자를 비난한다.

    한국 보수가 특이한 것이 아니다. 보수는 원래 그런 것이다. 사회를 정치 경제적으로 지배하는 이들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공격하자고 선동하는 것이, 바로 보수가 하는 일이다.

    <주석>

    주1) 이는 일면 타당한 생각이다. 1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 전쟁이었고, 제국주의의 근원에는 더 많은 시장과 더 많은 원료, 더 많은 ‘값싼 노동력’을 얻으려는 자본의 욕망이 존재했다.

    주2)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을 여러분은 기억할 것이다.

    주3) 팔을 앞으로 내뻗는 경례법은 고대 로마에서 유래했다. 무솔리니는 이를 흉내 냈고, 멋있어 보였는지 히틀러도 그것을 흉내 냈다. 이런 게 무솔리니식의 ‘옛 로마의 계승’이다.

    주4) in preface by T.S. Eliot to For Lancelot Andrewes: Essays on Style and Order(1929)

    주5)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인용한 것이다. 영국의 특정 계층 사람들이 ‘good night’을 ‘goo night’으로 발음하는 것을 햄릿의 문구와 대조하는 것을 파운드와 엘리엇은 즐겼겠지만, 이는 한심한 짓인데, 셰익스피어 시대의 발음은 그가 사랑하던 1920년대의 영국 런던 영어 발음보다는 미국 영어와 더 가까웠다. 가장 극명한 것은 better, lover 등의 r 발음이다. 셰익스피어 시대에 r 발음은 존재했고, 현대 영국 영어의 런던식 발음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의식적으로 영국 영어를 사용했던 엘리엇은 당연히 r 발음을 하지 않았을 것인데, 그런 그가 <햄릿>의 문구를 발음 비교를 위해 사용하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주6) 일부 20대 남성들이여. 잠깐의 쾌락을 위해 여러분이 일 년에 버는 돈 만큼의, 혹은 절반의 돈을 쓰는 이와 수백억 원을 뇌물로 써 감옥에 있는 그의 아들 대신, 왜 여러분만큼 힘들게 살아가는 동년배 여성을 비난하는가?

    주7) 그는 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고, 그 점은 평가받아야 하지만, 석유에 주목하여 중동의 비극을 만들어낸 이이기도 하다. 처칠과 석유에 관해서는 다음 책을 참조할 수 있다. (참고할 책 링크)

    필자소개
    레디앙 기획위원. 도서출판 벽너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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