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재판 일주일 전 날아든
    IUF의 갑작스런 합의 요구
    '국제노동조합'에 퇴직금 받아내는 분투기 최종편-④ "보름의 시간-1"
        2021년 07월 29일 09:0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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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직금 받아내는 분투기 최종편-③ “첫 재판 앞두고 다시 예열 시작”

    보름의 시간 1 (2021.06.16. ~ 2021.06.30.)

    꿈을 꾸다, IUF의 결자해지?

    6월 16일 새벽녘 꿈을 꿨다. 내용은 ‘IUF가 원고(나) 청구 취소의 소를 제기’한 것이다. 그 아침, 수첩에 꿈 내용을 적으며 ‘내 무의식이 무엇을 말하는 걸까?’ 궁금했다. 이제야 IUF가 제대로 된 반응을 하려나? 하릴없이 올라오는 생각을 털어내려 집 근처 은파호수를 한 시간 가량 산책 후 귀가했다. [참고로 2015년 11월부터 2018년 8월까지 117회에 걸쳐 C. G. 융 연구자인 현직 정신과 전문의로부터 꿈 분석 상담을 받았던 터라 인상적인 꿈은 지나치지 않고 곱씹는다.]

    휴대폰 이메일 앱에 ①이 떴다. 뭐지? IUF 사무총장이 발신자다. 이메일 본문엔 내용 없이 공문만 첨부되어 있었다. 클릭. IUF 사무총장이 피고1과 2를 대표해 보낸 공문의 내용은 근로계약서 조항 위반을 수용할 수 없지만, 이 사건이 오랫동안 진행된 점과 정옥순의 IUF 근무를 인정하여 소 취하 조건의 금전 합의를 하자’는 것이었다. 공문의 작성일은 6월 15일이고 수신자는 내 변호사였다. IUF 사무총장이 이메일을 발송한 건 제네바 현지 시각 밤 10시가 넘은 때였다. (시차상 한국은 다음 날인 16일 새벽 시간이었다. 어쨌든) 내 이메일 주소가 참조로 넣어졌기에 함께 받아볼 수 있었다.

    IUF가 변호사 앞으로 보낸 공문 캡처

    첫 반응, 당연히 ‘환호’했다. 변호사에게 문자로 알린 후 연락을 기다리면서 이어진 의문, ‘송달을 받은 것이 반년이 넘었는데 왜 지금에서야?’ 아무리 그래도 국제노동조합으로서 노동관련 법 위반에 따른 판결문을 받고 싶지는 않았던 것일까? 혹은 그들만의 어떤 명분 찾기의 일환이었을까? 그럼에도 소장에서 청구한 퇴직금과 정확히 일치하는 금액을 소 취하 합의 조건으로 제시했다. 물론 소송에서 청구한 법률비용과 지연이자는 조건에 없었다. 이를 두고 그 아침 생각했다. 나 또한 청구한 퇴직금만 받아낸다면 그 두 개 항목은 내 실수를 만회하고자 했던 그간의 수업료로 치자고 말이다.

    [살짝 다른 얘기 덧붙이면, 의심스러웠던 IUF의 갑작스런 행위의 배경은 퇴직금이 입금되고 사흘이 지나서 인도네시아 소식통에 의해 풀렸다. ‘카더라’도 있어 이 연재에 담긴 그렇고 나중에 ‘후기’로 써 보면 어떨까? 물론 지면이 허락되어야 될 일이다.]

    재판장의 ‘퇴직금 계산 착오’ 의문 속 야단법석 IUF에 답하다

    변호사는 문자를 받고 2시간 뒤 전화를 했다. 변호사 또한 의외였는지 ‘송금 받기 전까지는 진위를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퇴직금도 못 받고 쫓겨난 나이지만 ‘입금 없이 소 취하’할 정도로 순진하지는 않다.

    변호사는 앞서 내 사건 재판장의 전화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퇴직금 계산이 잘못된 것 같다’는 것이 용건이었다. 나는 순간 당황하며 물었다. “얼마나 잘못됐다는 거죠?” 민사단독이지만 재판장이 직접 전화하는 예는 흔치 않다며 변호사는 말했다. 계산을 해 본 재판장은 (스위스프랑 청구액 중 천 단위 이하) 숫자가 690이 아니라 470 정도 나온다고 했단다. 고로 220프랑 차이가 난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왜 착오가 났을까 의아했다. (일단 그건 그렇고, 우선 IUF 요청에 답을 해야 했다.)

    변호사가 ‘IUF의 제의를 수락하되 6월 21일까지 송금하면 입금 확인 후 소 취하하겠다’는 내용의 답변 초안을 내게 보내주면 번역해 다시 넘기기로 했다. 변호사는 재판부에 이 사실을 알렸고 IUF측 공문의 제출 여부를 문의했다. 재판부는 ‘제출할 경우 준비서면으로 간주, 국제소송의 절차에 따라 제네바에 다시 송달해야 하니 잘 생각해서 결정하라’고 공을 넘겼다. 일단 제출하지 않기로 했으나, 변호사가 약속한 답변 초안은 늦어졌다.

    내게는 One and Only(오직 하나뿐인) 사건이지만 변호사 입장에선 One of Them(여러 개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감정에 진폭이 이는 걸 보면 역지사지는 정녕 쉽지 않다. 이럴 때 상수는 기다리되 다른 일을 하는 거다. 거래은행에 미리 전화를 걸어 해외송금 관련 문의를 했다. ‘미화 5만불 넘게 송금영수 시, 거래입증 서류가 없으면 영수확인서의 대면 제출이 필요’함을 알게 됐다. 어차피 계좌관리지점이 서울에 있어 상경해야 하니, 통장에 입금되기 전까지는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트리지 말자고 나를 다독였다.

    17일 저녁에서야 변호사로부터 IUF에 보낼 답변 초안을 받았다. 18일 오전 9시경 내 쪽에서 최종 전달한 번역문을 변호사가 IUF 사무총장 앞으로 보낸 건 그날 밤 11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그날 변호사의 답변 6시간 전 (웃픈 얘기지만) IUF에서는 변호사에게 (6월 15일자) 공문을 다시 보내며 왜 답이 없는지 재촉했다. (정말이지 왜 이제야 이렇게 난리를 치는지 점점 미스터리했다.)

    게다가 그 3시간 뒤에는 담당 재판부에 ‘코로나 대유행으로 재판 출석이 어렵고 정옥순에게 소 취하 조건의 합의를 제의한 상태’임을 알리는 공문을 (사람 일이란 어떻게든 알게 되는 법이다. 우연히 17일 통화했던 한 통역사는, 아태지역본부에서 자신에게 접촉해 해당 법원의 연락처를 물어와 번호를 알려줬다고. 아마도 그 번호의) 팩스로 보냈다는 사실도 변호사와 내게 이메일로 고지했다.

    (이 글을 쓰는 나만, IUF의 야단법석이 의아한가? 다음날인 19일 토요일 오전에 확인했지만) IUF는 우리의 답변을 받은 지 1시간 만에 ‘합의에 응해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중부유럽시각(CET) 기준 월요일 업무 시작 후 우선순위로 처리하겠다’고 알려왔다. IUF의 ‘확’ 달라진 태도를 보며, 16일 오전 최초 합의 제의에 반응했던 내 환호가 만 3일 만에 씁쓸한 냉소로 변하는 걸 나도 어쩌지 못했다.

    앞서 언급했지만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 까닭에 가족 포함 도움을 준 모든 이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첫 재판 참석을 이유로 열아홉 살 반려견 짜부와 함께 동생 차를 이용해 토요일 저녁 상경했다.

    시차, 통장 입금을 기다리며 할 일을 하다

    IUF가 거래은행에 6월 22일자로 송금/지급을 6월 21일 10시 57분에 요청한 서류 캡처

    IUF가 이 사건 소 취하 조건의 합의금 송금을 담당 재판부에 고지한 팩스 공문 캡처

    IUF는 21일 제네바 현지 시각 오전 10시 57분 거래은행에 합의금의 송금/지급 요청을 넣었다는 서류를 증거로 보내왔다. (혹시 내가 합의를 틀어버리거나 먹튀 할까 걱정했나?) 담당 재판부에도 ‘정옥순과 합의를 이뤘고 관련 합의금을 송금함에 따라 변호사가 소 취하 절차를 밟을 것’임을 친절히 팩스 고지했다. 한국시각으로는 오후 5시 57분이다. 이미 은행 마감시간이 지나 해외송금 확인이 불가했다. 21일 저녁 변호사와 상의해 IUF에 보낼 답변 초안을 넘겨받아 그 밤에 번역해 넘겼다. 내용은 ‘21일자 IUF의 송금요청서 사본을 접수했고 22일 은행영업시간 내 통장 입금이 확인되면 소 취하 후 관련 서류 사본의 발송’을 약속 것이었다. (피곤해 잠이 들었는지) 변호사의 답변 발송 시각은 22일 새벽 5시경이었다.

    22일 아침 거처를 떠나기 전까지 인터넷뱅킹 상 IUF의 송금 정보는 뜨지 않았다. 그럼에도 재판이 열리는 오후 2시 전에 돈암동 소재 계좌관리지점을 방문해 업무를 처리해야 했다. (관리지점을 군산의 집 근처로 옮겨 처리해도 되지만 재판에 따른 동선 등을 감안해 변경하지 않았기에) 이날 오전 며칠 전 통화했던 담당자를 찾아가 만났다. 거래입증서류로 ‘소송 진행정보, 양측의 금전합의 관련 공문, IUF의 송금요청서 등’을 자가 판단해 제출했다. 담당자는 서류를 받아들고 꼼꼼히 내 사정을 메모한 뒤 돈이 입금된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재방문이 어려운 내 사정을 감안해 ‘영수확인서’를 미리 작성케 했다.

    돌아 나오는 길에 담당자의 전화가 걸려 왔다. 본점의 외환 담당과 통화한 결과를 전달하며, 입증서류로 ‘재직증명서’가 있느냐고 물어왔다. 2015년 본부 발행 재직증명서만 있다는 말에 난감한 기류가 수화기 너머 감지됐다. ‘혹시 그 이후 근무 증빙으로 해고통지서는 어떠냐?’고 물었다. 담당자가 반색한다. ‘퇴직금’ 명목의 송금을 입증하는데, 다툼 서류 대신 재직증명서와 해고통지서 만한 게 있을까 싶었다. 역시 머리를 맞대면 해결책이 나온다.

    필자소개
    전 IUF 아태지역 한국사무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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