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력 백중놀이의 즐거움
    그리고 돼지분뇨와 전쟁
    [낭만파 농부] 코로나와 시골살이
        2021년 07월 28일 10: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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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아침, 읍내 병원에서 코로나19 백신(모더나) 1차 접종을 받았다. 언론 보도와 주변 사람들의 경험담 속에서 은근히 후유증이 걱정됐더랬다. 한동안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무거우며, 피로감이 느껴졌지만 그리 심한 편은 아니다. 좀 심했던 숙취 탓인지도 모르겠다.

    전국의 확진자 수가 갑자기 네 자리로 늘어나더니 20일 넘게 4차 대유행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답답한 노릇이다. 백신 접종을 시작한 지가 언제인데 끝마친 인구가 여적 15%에도 못 미치고, 1차 접종자도 전체인구의 1/3에 지나지 않는다. 상황이 좀 나아진다 싶으면 방역을 늦추는 섯부른 조치가 반복된 탓이 크지 싶다. 방역조치는 바싹 조이면서 그에 따른 자영업자 등의 손실은 실질적으로 보상해주는 게 맞지 않나. 용돈 수준의 재난지원금이나 뿌리는 선심정책이 아니라.

    어쨌거나 코로나19 국면이 1년을 훌쩍 넘겨 이어지면서 피로감도 크고 그에 따라 긴장감도 무뎌지고 있다. 용인되는 ‘공적 모임’과 제한되는 ‘사적 모임’의 경계는 모호하고, 모임 제한인원을 넷으로 하는 것과 둘로 하는 것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백신을 접종해도 듣지 않는 변종 바이러스가 잇따라 생겨나면서 이 불안하고 불편한 삶이 평생 이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도 든다.

    그런 가운데서도 인구밀집도가 낮은 시골이다 보니 사정이 덜한 편이다. 확진자가 가뭄에 콩 나듯 하는데 그 때마다 지역사회가 요동칠 만큼 4차 대유행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니 필요한 동네일이라면 조심스럽게 벌이는 편이다. 불안요인은 없는지 꼼꼼히 따져보고 방역수칙을 철저히 챙기는 건 물론이다.

    그렇게 해서 얼마 전 ‘양력 백중놀이’를 펼쳤다. 우리 벼농사두레와 밭농사 모임인 ‘씨앗받는농부’가 함께 마련한 잔치다. 방역을 위해 모든 일정을 바깥에서 하도록 짰다. 동상계곡의 야외평상에서 걸진 점심으로 원기를 돋우고, 술 빚는 동아리 ‘막동이’가 숙성시킨 막걸리를 그 자리에서 함께 걸러 마시며 ‘힘겨운 일상 속의 행복’을 나누었다. 아이들과 몇몇 ‘어른이’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원한 계곡물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렇게 여름 한나절을 보내며 이 풍진시설의 시름을 풀었던 것이었다.

    ‘양력백중놀이’에서 손수 빚은 막걸리 거르기

    백중놀이는 김매기의 고단함을 푸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농사의 한 매듭을 짓는 통과의례이기도 하다. 그 즈음에는 벼가 새끼치기를 통해 개체수를 늘리는 영양생식을 끝내고 나락 맺을 준비를 하는 생식생장으로 접어드는 때다. 농부는 그 동안 흠씬 대주던 물을 끊어 논바닥을 드러낸다. 바로 ‘중간물떼기’라는 것이다. 그렇게 산소를 불어넣어 뿌리를 튼튼히 함으로써 듬뿍 빨아들인 영양분을 이삭에 대주는 공작이다. 그러고 나면 가을걷이까지는 다시 여유로운 국면이 이어진다.

    생식성장으로 접어들어 ‘중간물떼기’ 중인 논배미.

    백중놀이 네댓새 뒤에는 문제의 돼지농장 재가동을 둘러싼 행정소송(1심) 선고가 예정돼 있었다. 승소를 할지, 패소로 끝날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패소에 대비한 전의를 다지고 있던 터였는데 하루 전날, 재판부가 선고를 유보하고 변론을 재개한다고 통보해왔다. 어안이 벙벙한 일이다.

    사실 그 2주 전의 변론종결도 뜻밖이긴 했다. 현장검증과 환경영향평가 감정을 위해 공판이 중단되고 반년도 넘어 재개된 터라 두어 차례 더 심리가 이어질 것 같았는데 원고와 피고의 한 차례 공방이 벌어진 뒤 “더 제출한 것 없나요? 그럼 이것으로 변론을 종결하겠습니다”는 주심판사의 선언이 이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할 말이 왜 없겠는가. 우리는 그 동안 미진했던 부분과 새로 밝혀진 내용을 ‘참고서면’과 ‘최후진술’ 형식으로 제출했고, 업체쪽 또한 이를 반박하는 참고서면을 제출했던 것이다. 재판부로서는 그 내용이 간단치 않았던 모양인지 선고유보-변론재개라는 이례적 조치를 내린 것이다.

    어쨌거나 이번 변론재개로 우리로서는 다시 두 달 이상의 시간을 번 셈이 되었다. 사실 소송의 승패가 아니라 업체쪽이 돼지농장 부지를 완주군에 매각하느냐가 핵심이다. 그것이 행정소송의 막판 쟁점이기도 했다. 완주군으로서는 부지를 사들이겠으니 팔라는 것이고, 업체쪽은 그럴 의사도 능력도 없으면서 급조한 재판전략이라고 맞섰던 것.

    차라리 행정소송 자체가 업체쪽의 매각협상 전략이었으면 싶다. 설령 재판이 우리의 패소로 끝나더라도 그것이 사태의 끝일 수 없다. 지역주민들로서는 지독한 악취 속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노릇이니 재가동을 막기 위한 또 다른 싸움에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종 해결책은 농장부지를 완주군이 인수해 생태에 부담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완주군이 그 대안으로 ‘지능형 축산업 혁신지원센터’ 설립을 제시한 상태다.

    전생에 돼지똥과 무슨 원수를 졌길래…

    섭씨 35도를 웃도는 지독한 무더위와 열대야가 열흘 넘게 이어지고 있다. 그 와중에 마을 앞 만경강 건너에 들어선 돼지분뇨 처리시설(액비공장)이 지난 5년 시달린 악취의 진원지임이 밝혀졌다. 게다가 처리용량을 더 늘리기 위해 공장증설까지 추진하고 있음이 드러나 지역사회가 다시 발칵 뒤집어진 형국이다.

    이래저래 참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언제까지 돼지똥과 전쟁을 치러야 하는지. 전생에 돼지한테 몹쓸 짓을 했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인지도 몰라.

    필자소개
    시골농부, 전 민주노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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