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물 관리하며 후배들과 얘기하고 싶어"
    By tathata
        2006년 12월 01일 02:3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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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孔子)는 군자의 나이 칠십세를 종심(從心)이라고 하였다. 마음이 하는 대로 따라도 하늘의 뜻에 거스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남상헌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종심의 나이인 고희를 맞으며  초심(初心)을 말한다. “노동운동도, 진보정당운동도 처음 시작했던 마음 그대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되돌아보면 아쉬운 것이 너무 많다”며 “지금이라도 시간을 아껴 남은 시간을 운동을 열심히 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과연 그에게 ‘아쉬움’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1968년 화학노조 고려피혁 지부장으로 노동운동에 첫발을 디뎠고, 12년간 지부장을 역임했다. 당시 고려피혁노조에는 회사로부터 보조금을 지원받아 운영되는 ‘어용노조’가 자리잡고 있었고, 남 지도위원은 지부장에 당선되자마자 보조금 지급을 중단시키고 조합비 인상을 통해 노조를 자주적으로 운영하여 민주노조를 세웠다.

    이후 70년대 노동운동의 산실이었던 크리스챤아카데미 노동사례연구회 회장을 역임하고, 1980년 전두환 신군부의 ‘정화조치’로 해고됐다. 1990년에는 전노협 상임지도위원직의 이름으로 전노협의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 했다.

    그리고 현재 민주노총 지도위원과 민주노동당 당대회 의장직을 맡고 있다. 이 외에도 70년대 민주노동운동동지회 회장, 전태일기념사업회 이사,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단체 연대회의 고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 등을 맡고 있다.

       
     ▲ 지난 28일 서울 철도웨딩홀에서 열린 남상헌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고희연에서 70민주노동운동동지회 회원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지난 28일에는 고려피혁노조에서부터 운동을 함께 해온 동지들, 그리고 전노협, 민주노총까지 함께 해온 후배들이 마련한 그의 고희연이 서울 철도웨딩홀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이 자리에는 민주노총의 역대 위원장과 연맹 위원장,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의원과 최고위원들이 대거 참여해 남 지도위원의 고희를 축하했다.

    그는 고희연에서 “지나간 삶을 되돌아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이제부터라도 시간을 아껴서 열심히 살아 밥을 축내는 늙은이가 되지 않겠다”고 말했다. 노동운동의 한 가운데에 서서 수십년을 올곧게 운동을 지탱해온 그가 토로하는 아쉬움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의 식지 않는 은근하고도 끈질긴 열정은 무엇일까. 지난 29일 남 지도위원을 만났다.

    -올해로 고희를 맞이시는 소회는 어떠하신지요.

    =그동안 나이를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왔는데, 어느 날 내 나이가 70이 돼 있는 것을 보고, 혹시 내가 나이를 잘못 계산한 게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라도 시간을 아껴 써야겠다고 절실히 느꼈습니다. 되돌아보면, 일제치하에 태어나 군사독재시절을 겪으면서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이 녹록치 않고, 힘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사치스러운 엄살 아닌가. 자신이 추구하는 신념을 위해 삶 전체를 내놓으신 분들, 소신을 지키기 위해 옥고를 치르는 분들도 있는데…내가 잘못 생각했구나하고 자책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무엇을 했나 생각해봤는데, 역시 역사의 큰길에서 한결같이 걸으며 큰 뜻을 이룬 분들을 생각하며 몸 둘 바를 몰라 했습니다. 내가 운동을 한 것은 역사에 대한 소명의식보다는 살기 위한 길을 찾아오면서, 노동자가 인간답게 사는 길을 찾아오면서 여기까지 이른 것입니다.

    내가 좀 더 철저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운동을 해왔다면 한국 노동운동의 현주소가 더 나은 자리에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과 책임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인간이 가는 길에 크게 역행하지 않고, 이 정도 아쉬움만 남는 것으로 긍지를 느끼려합니다. 그것은 여러 동지들과 후배들이 함께 해온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남상헌 민주노총 지도위원
     

    – 요즘 지도위원님의 근황은 어떠한지요.    

    =충남 아산에서 자취생들의 원룸을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의 중요한 행사가 있으면 서울로 올라옵니다. 집은 서울 강서구 화곡동인데, 현재는 떨어져 살고 있는 셈이죠.

    지인의 소개로 일을 하게 됐는데, 마땅한 수입도 없는데다가 지인의 간곡한 부탁으로 일을 하게 됐습니다. 관리일을 하면서 한가한 시간에는 책도 읽고, 이런저런 생각도 하고 그렇습니다. 공기 좋은 곳에서 산책을 하고, 운동을 할 수 있는 생활이 만족스럽습니다.

    -남 지도위원님에게 노동운동을 하게 한 힘은 어떤 것인지요. 오랜 해고자 생활과 생계의 어려움으로 혹시 후회를 하신 적은 없으신지요.

    =노동자로서 몫을 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생각해봤습니다. 내가 다시 다른 일을 하더라도 나는 역시 노동자일 수밖에 없겠구나 생각했지요. 전태일 동지 같은 사람들은 노동자가 사람답게 살기 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인간애로 자기를 불살랐습니다.

    그 사람에 비하면 지금 우리의 투쟁은 미약한 투쟁이고, 엄살이지요. 지금 우리는 외부의 탄압이나 압력에 대해서는 불의에 맞서 적극적으로 투쟁하는 반면, 내부의 문제에 있어서는 정지되어 있음을 느낍니다.

    -70년 생을 살아오시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언제인지요.

    =60년대 회사를 상대로 임금인상을 요구했는데, 노사협의가 잘 안 이뤄지는 상황에서 투쟁으로 성과를 이뤄냈을 때 운동하면서 처음으로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87년 노동자 대투쟁 당시 운동의 봇물이 터질 때 쾌감을 느꼈지요. 전노협이 만들어지고 탄압 속에서 전쟁 이후 몇 십년 만에 총파업이 이뤄지고, 또 노동법 개악저지를 위한 97년 총파업이 결정됐을 때, 그리고 전노협이 확대돼 민주노총으로 발전되어 가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역시 민주노동당이 창당됐을 때의 기쁨도 이루 말할 수 없지요.

    -가장 힘든 때는 언제였는지요.

    =80년 군부독재정권 당시 ‘정화조치’로 해고되었습니다. 이후 상당기간 동안 저항했는데, 그 때 당시 지부장직을 사퇴하라는 압력이 컸습니다. 공안은 “당신 하나 없애는 것은 파리 한 마리 없애는 것처럼 쉽다”고 내게 말했지요. 난 “위원장직은 조합원이 뽑아줘서 선출된 것이므로, 임기가 끝나지 않는 한 그만 둘 수 없다”며 분노했습니다.

    공안으로부터 풀려나온 이후에 수개월 동안 참 아팠습니다. 몸무게도 10킬로나 줄었지요. 그때가 돌아보면 가장 힘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소망이 있으시다면.

    =운동 내부에는 정파가 있습니다. 정파는 운동을 발전시킬 수 있지만, 경직되면 나와 생각이 다른 쪽은 적으로 몰 수 있습니다. 지금 운동내부의 정파는 정도를 넘어서 배제는 물론 상대조차 안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추구하는 가치가 크게 차이 없으면서도, 작은 차이를 극한까지 몰고 가고 있는 성숙되지 못한 운동의 자세가 있습니다. 이제 초심으로 돌아가서 대의에 입각해 마음가짐을 정립시키면서 마음을 열고 토론을 통해서 서로를 인정해야 합니다.

    운동을 사랑한다면 내 마음부터 열고, 상호 주장의 장점을 잘 읽어내고 결론을 도출해야 합니다. 교육과 훈련을 통해 경직된 자세를 풀고, 결론을 도출하면, 우리는 다른 차원의 운동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소모적이고, 손실을 가져오는 운동이 됩니다.

    나는 내가 그 소모와 손실, 낭비를 고치는 일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세부터 초심으로 돌아가서 순수하게 열정으로, 대의에 입각하는 자세가 되어야 문제가 해결 될 것입니다. 나부터 열어나가겠습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남은 여생을 민주노총의 노동교육원 같은 곳에서 관리업무를 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셨는데요.

    =공기 좋은 곳에 민주노총 교육원이 세워지고, 후배들이 교육을 받으면서 토론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곳이 세워진다면 건물 관리를 하면서 그 모습을 볼 수 있겠지요. 후배들이 교육하는 동안 따뜻한 물 한 잔을 권하면서 내가 경험해온 노동운동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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