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탄소 시대를 향한
    새로운 에너지 공동체 구상
    [책소개]『한반도 에너지 전환』(권승문 외/ 생각비행)
        2021년 07월 24일 08:0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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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 에너지 전환을 위한 사회공간적 상상력”

    2018년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고, 그 결과로 체결된 판문점 선언과 공동합의문은 한반도 정세의 긴장 완화와 아울러 평화 정착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8년 여름의 끝 무렵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한반도 에너지 전환을 주제로 세미나팀을 운영했다. 7명의 저자는 한반도에 불어온 훈풍을 타고, 남한의 에너지 전환 이론과 실천에 대한 시야를 한반도 전체로 넓힐 기회로 삼고자 했다.

    두 기관은 ‘한반도와 아시아 에너지 전환의 미래’라는 주제로 공동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얼 띤 토론을 양분 삼아 ‘한반도 에너지 전환 세미나’를 시작했다. 2019년 한 해 동안 세미나팀은 에너지 전환론, 에너지 전환의 지리학, 에너지 민주주의, 정의로운 전환 등의 이론공부를 마치고, 북한 에너지시스템 관련 계획과 정책을 살피고, 남북 에너지 교류협력 실태와 한반도·동북아 스케일의 인프라 건설 계획까지 검토했다.

    그 연구 결과를 담은 《한반도 에너지 전환》은 다양한 개념과 이론자원 그리고 사회공간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과거를 평가하고 현재를 진단하고 동시에 미래를 구상하는 실천적 과정이었다. ‘탈탄소 시대를 향한 새로운 에너지 공동체 구상’이라는 부제에서 드러나듯 한반도 에너지 공동체는 ‘안보’와 ‘개발’이라는 화석화된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국가주의와 채굴주의의 새로운 버전으로 전유될 수 있다. 또한 에너지 공동체의 복합성과 역동성을 주목하고 다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전환의 상상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지속 불가능한 꿈에 불과할 것이다.

    7명의 저자는 기존 통일담론의 양분이었던 민족주의, 국가주의, 실용주의를 넘어서 평화, 인권, 정의, 지속가능성, 커먼즈 등의 새로운 가치들을 수용하면서 에너지 전환을 위해 남과 북이 어떻게 협력할 수 있을지, 이를 통해 한반도 평화가 어떻게 진전될 수 있을지 논의하며 화두를 던진다. 북한은 ‘텅 빈 공간’이 아니라 미래 한반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사유와 실천의 잠재성을 담고 있는 ‘능동적인 공간’이다.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 속에서 남북의 에너지 협력은 더 미룰 수 없는 공동의 과제다. 이러한 때 한반도 전체와 동북아라는 공간적 스케일에서 에너지 전환이 어떻게 가능할지 그려보는 상상력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할 방향과 경로를 설정하는 중요한 실천 과정이 된다. 그리고 남과 북이 함께 그 길을 걸어갈 때 우리의 상상은 현실이 될 것이다.

    “한반도 에너지 전환을 위한 전략과 구상”

    한반도 에너지 전환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 아니다. 과거에도 교류협력 차원에서 국내외 (재생)에너지 지원사업이 간헐적으로 추진되거나 검토된 전례가 있다. 비록 대북제재라는 제도적 장벽이 존재하지만, 재생에너지 교류협력의 당위성과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시민사회와 학계에 제법 형성되어 있다. 최근 북한을 에너지 전환의 대상 혹은 주체로 접근하려는 제안이 적지 않다. 이들 논의에는 인도주의, 평화주의, 생태주의 관점이 강하게 녹아 있다.

    에너지 전환의 모델과 경로는 하나가 아니다. 그러므로 한반도 에너지 전환을 논하기 위해서는 첫째, 재생에너지를 비롯한 개별 에너지 사업 부문을 넘어서 거시적 수준과 미시적 수준을 종합하는 다층적 차원에서 에너지시스템 전반의 전환적 사고가 필요하다. 둘째, 남한과 북한이라는 개별적, 폐쇄적 국가공간이 아닌 한반도와 동북아라는 새로운 연결성과 위치성을 담을 수 있는 한반도 차원의 새로운 사회공간적 상상력이 요구된다. 셋째, 기존 에너지 관련 학계와 정책 분야에서 시도해왔던 과거의 사실(fact)을 바탕으로 예상되는 미래를 가정하던 수준을 넘어서 ‘바람직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하여 사실과 더불어 허구(fiction)를 적절하게 섞어서 어떻게 ‘보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환상[more concrete and practical illusion’(Hwang, 2021)]을 만들 수 있을지에 방점을 둘 필요가 있다.

    이런 시각을 공유하며 저자들은 다음과 같은 논의를 펼친다. 1장(황진태)은 한반도 공간을 ‘도시적인 것(the urban)’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출발점으로 잡고서 한반도 에너지 전환을 상상하자고 제안한다. 국가 중심적 시각으로 한반도 일대를 바라봤을 때 포착하지 못한 국경을 가로지르는 행성적 차원에서 동북아 도시화의 역동성을 확인하고, 북한이 화석연료 수출을 통하여 동북아 주변국들의 도시화를 촉진할 배후지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예측한다.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 지속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한 대안으로 북한의 화석연료를 땅속에 묻어두고, 남북 공동으로 자원 매장지를 공유화(commoning)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2장(이강준)은 북한에서 출간한 자료를 중심으로 북한의 에너지 체제의 특징과 현 북한 에너지 실태를 분석한다. 북한 자료에 대한 접근이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한반도 공간의 절반을 차지하는 북한의 상황을 내재적으로 접근하는 작업은 실현가능한 한반도 에너지 전환을 구상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북한의 에너지 관련 법제(헌법 및 법률)와 1947년부터 최근까지 최고지도자들의 신년사를 분석하여 북한 에너지 정책의 거시적 흐름을 짚는 것부터 북한 가정의 재생에너지 사용 실태에 대한 미시적 분석까지 북한의 에너지 경관을 다층적으로 조망한다.

    3장(한재각)은 한국의 에너지시스템의 전환 경로를 거시환경‐레짐‐틈새 단계에 기반한 사회기술 시나리오로 접근한다. 기존 사회기술 시나리오의 비공간적 맹점을 보완하고자 다중스케일적 접근을 접목했다. 이를 통해 한국의 에너지 전환을 위한 세 가지 경로(국가 스케일: 중앙집권적 전환 경로, 지역 스케일: 에너지 분권과 자립의 경로, 국제적 스케일: 동북아 슈퍼그리드 경로)를 제시하고, 각 경로에 대한 다면적 평가를 시도한다.

    4장(홍덕화)은 동북아 슈퍼그리드 논의를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현재 슈퍼그리드 관련 논의가 동북아 평화와 재생에너지 전환을 이끌 것이라는 기대감과 다른 한편으로 동북아의 지정학적 긴장관계로 인한 실현가능성에 비관적인 입장 사이에서 심도 있게 진전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지적하고, 슈퍼그리드가 통과할 구간의 상이한 체제(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이해, 성장주의 담론에 경도되면서 간과하게 되는 발생 가능한 위험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국제적인 스케일에 기반한 동북아 슈퍼그리드 담론이 에너지 공유재, 공동체 에너지와 같은 지역에 바탕을 둔 여러 전환 경로에 대한 성찰을 막고 있음을 환기한다.

    5장(이정필·권승문)은 기존 에너지 전환의 시각이 일국에 한정되어 있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2050년 한반도 에너지 미래를 상정한 ‘한반도 에너지 전환 시나리오’의 예비 작업을 시도한다. 다른 장들과 달리 통계학적 방법을 활용한 에너지 백캐스팅 시나리오(backcasting scenario) 작업으로 ‘한반도 에너지 공동체’ 구상에 필요한 앞으로의 연구과제들을 확인해주는 나침반을 제공한다.

    6장(이보아)은 지금까지 추진된 남북한 에너지 교류 및 협력의 경험을 평가한다. 그간의 에너지 교류 및 협력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안보 논리를 내세우면서 경수로 건설, 중유 지원 등을 추진한 정부 주도 사업과 북한 주민들의 에너지 빈곤해소를 목적으로 보일러 지원, 산림복원, 태양광설비 등을 제공한 민간 주도 사업이다. 대규모 자금이 투입된 정부 사업은 별다른 성과를 남기지 못한 것에 비하여 아이러니하게도 민간사업은 규모는 작지만, 유의미한 교류의 경험치를 쌓았음을 확인한다. 이는 미래의 한반도 에너지 전환은 기존에 한반도를 감싸고 있는 안보 논리와 국가 행위자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한반도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지향하고, 한반도에 존재하는 다양한 행위자들의 참여를 열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환기한다.

    《한반도 에너지 전환》이 한반도 에너지 전환의 청사진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저자들은 이를 공론화하고 촉진하기 위해 새로운 사회공간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정교한 사고실험(思考實驗)들을 시도했다. 그러므로 지속가능한 한반도 평화 공동체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더없이 반가운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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