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파트 반값!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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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2월 01일 09:2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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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 반값!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아파트 반값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서민들의 내집마련 꿈이다.  내집이 없으면 세상은 사막이다. 오아시스도 없는 사막이다.

    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청춘예찬 글귀를 빌어 지어본 말이지만, 요즘 ‘아파트 반값’이 화제 만발이다. 반값 아파트! 집없는 서민과는 상관없는 정부의 공급확대 정책에 식상한 국민들에게 귀가 번쩍 뜨이는 소리 아닌가.

    국민들 귀를 번쩍 뜨이게 하는 소리

    홍준표 의원이 제시한 토지(대지)임대부 분양주택제도는 무척 낯선 제도지만, 집값이 폭등해 내집 마련 꿈을 빼앗긴 서민들에게 ‘반값으로 아파트를 공급한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며 대선을 앞두고 순식간에 한나라당 당론으로 채택돼 정국의 초점이 돼버렸다.

       
     ▲ 심상정 의원실 손낙구 보좌관 (사진=민주노동당)
     

    그렇다면 땅은 사지 않고 집만 사는 토지임대부 분양주택 제도를 도입하면 실제로 아파트를 반값에 장만할 수 있을까? 또 터무니없이 비싼 아파트 값을 반값수준으로 낮춰 무주택 서민이 내집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이 이것밖에 없을까? 더 나아가서 아파트값이 절반으로 떨어진다 하더라도 도저히 살 수 없는 빈곤층에게도 혜택이 돌아가게 할 수 있는 대책은 없을까?

    그 동안 우리는 집을 살 때 당연히 땅과 건물(아파트, 일반주택, 다세대주택, 연립주택 등)을 한꺼번에 샀지, 땅과 건물을 나눠 산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땅값이 1억5천만원이고 아파트(건물)값이 1억5천만원이라 가정하자.

    땅은 사지 않고(임대료만 내고) 아파트 건물만 사면 3억이 아니라 1억5천이니 얼른 생각하면 ‘반값’이다. 1억5천만 있으면 내집을 살 수 있다니! 내집마련 자금 부담을 줄여준다는 점은 확실히 의미가 있다.

    땅을 민간에게 팔지 않고 중앙정부(또는 공기업)나 지방정부가 소유함으로써 건설업체가 땅값을 부풀려 폭리를 취하는 일도 막을 수 있고, 땅값이 올라 생기는 불로소득이 사유화되지 않는 장점도 있다. 주택을 소유가 아니라 거주 개념으로 바꿔가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홍준표 반값은 반값이 아니다, 토지임대부 주택의 장단점

    그러나 땅과 아파트 건물을 포함한 3억원짜리 아파트를 다 주면서도 돈을 절반만 받는 게 아니고, 땅과 아파트 건물 중 절반(건물)만 주고 절반 값을 내라는 것이니 반값은 사실이 아니다. 또 땅을 거저 주는 게 아니라 한 달에 30만원이든 100만원이든 임대료를 내야 하는 데, 이 임대료가 비쌀 경우에는 차라리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이자를 무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더 나아가서 “내 땅이 아닌데 집만 내집이면 뭐하느냐. 세월이 흘러 아파트가 낡아서 값어치가 떨어지면 반값이 똥값이 되는 게 아니냐” 하는 생각에 선뜻 ‘건물만 살 사람’이 나서지 않을 수도 있다.

    이처럼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은 장단점이 아울러 있고,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제도여서 다소 실험적인 성격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의 아파트 공급제도와 견주면 서민들에게나 사회 전체의 공익에 비춰 발전된 제도임에 틀림없다. 이미 싱가포르에서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이 제도를 도입해 국민 90% 이상이 ‘내집’을 장만해 셋방살이를 벗어났고, 지방정부에서 이 제도를 시행해 성공한 나라도 여럿 있다.

    물론 홍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이 싱가포르와 같은 효과를 내기에는 한계가 많다. 무엇보다도 싱가포르는 국공유지가 90%대여서 정부가 ‘아무 땅이나 말뚝 박고’ 지으면 되지만, 우리나라는 국공유지가 30%인데다 집을 지을 만한 도시용지는 0.1% 수준이어서 어려운 점이 있다.

    더구나 홍의원 법안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대지임대부 분양주택을 우선 건설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돼 있을 뿐 최소 % 이상 짓는다는 ‘강제조항’이 없이 대통령령으로 위임하고 있다. 공공택지에는 전부 다 지어도 부족한 마당에 ‘짓고 싶으면 지을 수 있다’는 정도로 해놓았으니 ‘안 지어도 그만’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강제 조항없어 "안 지어도 그만"

    또 용적률을 400%로 올려놓았기 때문에 40~50층 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찬 황량한 시멘트 도시가 될 수도 있다. 또 민간업체가 땅을 임대받아 아파트를 지어 분양할 경우 건축비를 부풀려 폭리를 취할 경우에 대한 대책이 없다.

    따라서 이 제도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줄이려면 최소한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갖고 있는 국공유지나 공공목적으로 수용하는 공공택지는 민간 건설업체(주로 재벌)에게 넘기지 않고 공공주택을 짓는다는 원칙을 먼저 세워야 한다.

    따지자면 지금까지 아파트값이 원가의 두 배, 세 배까지 폭등한 것은 공공택지를 재벌 건설업체에게 분양해 소유권을 넘겨줬기 때문에 시작된 것이다. 이 땅을 싸게 넘겨받은 건설 재벌이 땅값을 많게는 두 배까지 부풀리고, 다시 아파트를 짓는 데 들어가는 건축비와 각종 비용을 뻥튀기 하는 방법으로 분양원가를 터무니없이 올려 이윤을 뽑아먹었기 때문에 분양가가 하늘로 치솟은 것이다. 땅을 건설재벌에 넘기지 않으면 우선 땅값 부풀리기는 원천 봉쇄된다.

    땅을 넘기지 않을 뿐 아니라 공공택지에는 공공주택만 짓도록 한다면 더 효과 만점이다. 집을 짓는 공사 자체는 대한주택공사가 짓거나 건설업체에 공개입찰을 붙여 맡겨도 될 것이다. 그러나 땅은 물론이고 집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또는 공기업 경우에 따라서는 국민연금 등 공공의 소유인 공공주택이 된다.

    공공택지에 공공주택만 짓도록 하면 효과 만점

    이렇게 지은 집 중 일부는 첫째, 현재의 영구임대나 국민임대주택처럼 30년 이상 계약기간에 시세보다 훨씬 싸게 임대해주는 것이다. 둘째, 또 다른 일부는 땅과 집을 무주택자에게 모두 분양해주되 일정기간(예컨대 30년) 동안은 다른 사람에게 팔 수 없고 팔려면 원래 소유주였던 공공에게 물가상승분을 반영해 되팔게 하는 즉 환매수 조건으로 분양할 수도 있다. 셋째, 나머지 일부는 땅은 팔지 않고 임대해주고 집만 파는, 앞에서 살펴본 대지임대부 분양 주택으로 할 수도 있다.

    물론 국공유지나 수용된 공공택지가 아닌 민간이 소유한 땅에서는 지금처럼 건설업체들이 알아서 지어 팔 것이다. 다만, 분양원가를 최소한 58개 항목까지 상세하게 공개하고 분양계약서에 담아서 그대로 짓지 않으면 돈을 물어내도록 해서 터무니없는 폭리구조를 차단해야 한다.

    천안시 사례도 있지만 아파트 분양 승인권을 가진 지방자치단체의 분양원가 검증기능을 대폭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 아파트를 최소한 80%까지 짓고 나서 후분양하도록 제도를 바꿔, 파는 건설업체와 분양받는 소비자가 대등한 관계가 되도록 해야 한다.

    정리하자면 대지임대부 분양주택의 매력 포인트인 ‘아파트 반값 공급’의 취지를 살리자면 먼저 국공유지를 포함한 공공택지를 재벌을 비롯한 민간건설업체에게 넘기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반값 아파트’에 귀가 번쩍 뜨이는 집없는 서민에게 필요한 세 가지 형태의 공공주택을 짓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차원에서 공급하는 주택은 100% 공공주택으로 하는 것이다. 단, 이 세 가지 공공주택에 대지임대부 분양주택도 포함시키고, 환매수 분양주택, 공공 소유-공공 임대주택도 포괄하는 것이다. 물론 무주택 서민의 처지를 감안할 때 공공 임대주택을 가장 많이 공급하고 나머지 환매수와 대지임대부 분양주택을 적절히 섞는 게 올바를 것이다.

    대지임대부 ‘조삼모사’, 환매수 분양 ‘확실한 반값’

    대지임대부 분양주택은 땅은 주지 않고 건물만 주면서 반값만 받는 ‘조삼모사’ 색채가 있지만, 환매수 분양주택은 땅과 집을 다 주면서 반값만 받는 점에서는 ‘확실한 반값’이다. 땅까지 주면서 반값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이윤을 많이 붙이는 재벌을 비롯한 민간건설업체와 달리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등 공공이 분양하기 때문이다.

    단, 이윤을 꼭 필요한 수준만큼만 붙여 싸게 분양해서 ‘내집에서 편안하게 살게 하되’ 집값이 올라서 생기는 불로소득이 사유화되는 것을 아예 차단하기 위해 일정기간(예컨대 30년) 동안은 팔 수 없고 꼭 팔려면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에게 물가상승분만 반영해 되팔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공택지에는 공공주택만 짓는 것은 건설과 공급중심의 주택정책을 복지중심으로 뿌리부터 바꾸는 주택정책 철학을 완전히 새로 짜야만 가능하다. 그러자면 건설교통부와 토지공사 주공 등 현재의 주택조직은 전면 개편해서 복지부 산하에 주택청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기존 제도에서 불로소득을 나눠온 건설재벌, 경제관료, 정치인, 보수언론, 어용학자 등 부동산 5적의 먹이사슬을 끊어내야만 가능한 일이다.

    싱가포르 국민들은 대지임대부 분양주택을 선호했는데 우리 국민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파트 반값’에 귀가 번쩍 뜨이는 집없는 서민들의 집 걱정을 덜 수만 있다면 어떤 것을 선호한들 무슨 상관이랴. 어차피 장단점이 있는 것이니 ‘공공택지에는 공공주택’이란 큰 원칙을 확실히 세우고 나머지는 실제로 살게 될 서민들의 선택에 맡기자.

    지금 더 중요한 것은 부동산 5적에 맞서 이길 수 있는 힘을 만드는 실천이다. 집없는 서민들의 열망을 대변하고 조직할 수 있는 실천이 없이는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한들 A4용지에 인쇄된 이론이요, 남의 나라 얘기 아니겠는가. ‘청춘예찬’을 지으신 작가 민태원님에게 실례를 무릅쓰고, 그의 명문을 빌어와 ‘노가바 버전’으로 읊조리며 글을 마친다.

    보라, 집걱정에서 벗어나고픈 서민의 꿈을! 그들의 눈에 무엇이 타오르고 있는가? 진보의 눈이 그것을 보는 때에 진보의 귀는 생의 찬미를 듣는다. 진보세력의 뼈 끝에 스며들어가는 열락의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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