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지옥에 대한 한 해법
    [교육] “저는 이대밖에 못나왔어요”
        2021년 07월 15일 09:5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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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석이(가명)는 대치동 선경아파트에서 태어났다. 대치동 미도아파트에 가서 돈 자랑하지 말고, 선경아파트에 가서 학벌 자랑하지 말라는 얘기가 2000년대에 강남에서 유행했을 정도로, 그 아파트 단지 거주자들의 학벌은 무시무시했다.

    2011년에 나는 서초동에 있는 어떤 재수생 대상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면서 서초동과 대치동에서 입시 상담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중학교 1학년 학부모 한 분이 전화로 “중1 상담도 가능하신가요?”라고 물었고, 나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잠시 후 그 학부모께서 오셨고, 상담이 시작되었다.

    선경아파트에 사신다던 그분, 현석이 어머니의 말씀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저는 이대밖에 못 나왔고요. 저희 남편은 서울대 법대를 나온 판사예요. 법대가 없어졌잖아요. 아이가 서울대 경영대에 가게 하려면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나는 약간 정신이 없었지만, 최선을 다해 이것저것을 말해주었다.

    그 여자분은 상담이 끝나갈 무렵 울기 시작했다. 나는 힘들었다. 왜 입시 상담을 하는 나에게 남편이 자신을 ‘개무시’하는 것을 말한단 말인가? “이대밖에 못 나왔다.”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그분의 하소연을 들으며 그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집안이 어떻게 될지 나는 궁금했지만, 그 궁금함은 풀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국 사회는 매우 특이하다. 그 어느 나라에서도 ‘표준적인’ 학부모들과 고등학생들이 서-연-고-서-성-한-이-중-경-외-시-건-동-홍-숙, 이런 식의 서열을 외우지 않는다. 가장 경쟁이 치열한 사회 중 하나인 미국에도 하버드-예일-프린스턴과 같은 서열은 없다. 아이비리그라 불리는 동부의 몇 대학이 유명하지만, 서부에 있는 스탠포드를 다녔다면,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를 다녔다면, 아이비리그 출신보다 못하다고 평가받지 않는다.

    파리에 있는 국립대학들의 명칭에는 숫자가 붙는다. 2018년에 파리 4대학(소르본)과 6대학(피에르-마리 퀴리)이 합쳐져 소르본 대학이 되기는 했지만, 그전까지는 1, 2, 3, … 13 이런 식의 명칭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어쩌면 귀족학교라고 할 수 있는 그랑제꼴이 있기는 하지만, 68혁명(1)은 파리의 대학들을 ‘평준화’시켰다.

    독일에서는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이 전체의 30% 수준이다. 독일 학생들은 초등학교를 마치고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학교(김나지움) 또는 실업계 학교로 나눠서 진학한다. 김나지움 진학률은 40% 미만이다. 김나지움 학생들은 졸업할 때 ‘아비투어(Abitur)’라는 시험을 보는데, 이 시험 점수와 내신 성적을 바탕으로 대학에 지원한다. 독일에서는 원칙적으로 아비투어 시험에만 합격하면 어느 대학이든 지원할 수 있고, 입학이 가능하다. 입학 후에 타 대학, 타 전공으로 편입도 자유롭다(의학, 치의학 등은 예외). 입학은 쉽지만, 졸업은 상대적으로 어렵다고 한다.

    “이대밖에 나오지 못한” 현석이 어머니를 나는 오랫동안 만났다. 현석이는 대학 입시 첫해에 고려대 이과대학의 한 과에 합격했다. 그리고 재수해서 지방 의대에 진학했다. 그리고 삼수해서 서울에 있는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그는 세 차례 모두 2월 말에 추가합격으로 해당 학교들에 들어갈 수 있었다. 현석이는 ‘입시의 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세 차례 모두 정시에서 수능 성적 꼴찌 혹은 꼴찌에서 이등으로 해당 학교 학과들에 합격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에게 조언했던 누군가가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현석이 어머니는 현석이가 ‘인 서울 의대’에 합격한 날 나에게 전화해 감사를 표했다. 나는 엄청나게 흥분해서 전화하던 그가 내게 집이라도 한 채 사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날 이후 그는 내게 연락하지 않았다. 원래 그런 거다.

    낮술을 마시고 왔다. 이제 나는 낮술 먹은 자의 몽상을 전개할 것이다.

    모든 국립대학을 통합한다. 국립대학의 수업료는 사립대학들의 30% 미만이 된다. 학생들은 네 학기는 자신이 거주하는 도나 광역시에 있는 대학에서 강의를 받으며, 네 학기는 다른 곳에서 강의를 받는다. 서울 거주자로 예를 들면, 그는 국립대학교 관악 캠퍼스나 전농동 캠퍼스, 혹은 서초동 캠퍼스에서 네 학기 수업을 받고, 나머지 네 학기는 대구나 부산이나 광주 같은 도시들의 캠퍼스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이것에는 예외도 있다. 장애인인 학생이나 소득이 극히 낮은 가정의 학생이라면, 거주지에서 가장 가까운 캠퍼스에서 모든 학기를 소화할 수도 있다.

    모든 국립대학은 교수진과 강사진을 공유한다. 교수들이 꼭 주말부부가 될 필요는 없다. 온라인 강의를 할 수도 있으며, 교수가 거주하는 지역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하는 현장 강의는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만 하면 된다.

    몇 년이 지나자 50여 사립대학들이 문을 닫게 된다. 저렴한 등록금의 국립대학들에 밀린 것이다. 그 대학들을 국유화한다. 몇 년이 지나자 나머지 사립대학들 대부분이 ‘망한다’. 일부는 폐쇄하고 일부는 국유화한다. 남은 사립대학들은 고려대, 성균관대, 연세대, 이화 여대, 한양대이다. 그 대학들은 귀족 대학이 되어 살아남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렇게 한국 사회의 대학들은 일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모두 국립대학이 되며, ‘서열’도 점차 사라진다.

    사회주의다! 누군가가 외친다. 웃기지 말라. 미국만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다. 프랑스와 독일이 사회주의 사회라고 우기고 싶은 것인가? 2017년 기준으로 독일의 사립대학교 학생 비율은 8%에 불과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교들(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괴팅엔 대학교, 뮌헨 대학교,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등)은 모두 국립대학이다. 프랑스 파리의 국립대학교 얘기는 위에서 이미 했다.(2)

    경제 수준이 달라서 불가능하다! 웃기지 말라. 프랑스의 일 인당 국민소득은 4만 달러 수준이고, 한국의 국민소득은 3만 달러 수준이다.(3) 큰 차이가 나지 않으며, 프랑스는 이미 1968년에 그런 개혁을 했다. 1968년은 53년 전이고, 최진실과 신해철이 태어났던 해이다. 53년 전 프랑스의 경제력이 2021년의 한국보다 더 높았을 것이라고 믿는가?

    ‘지잡대’ 나온 놈이 열패감을 폭발하고 있다! 그런 표현 쓰지 마세요.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리고, 죄송해서 어쩌죠. 저 서울대 졸업했어요.

    모교를 배신한 놈이다! 그래, 나는 모교를 배신하고 싶다. 나는 그 대학이 전혀 자랑스럽지 않다. 이회창, 이인제, 안철수, 유승민, 나경원, 김진태, 윤석열, 조국. 더 말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그 대학이 사라지길 바란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국립대학교 백여 개 캠퍼스 중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4)

    “당신은 내가 몽상가라고 말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저 혼자가 아니에요.”

    <참조>

    1. https://ko.wikipedia.org/wiki/프랑스의_68운동

    2. https://ko.wikipedia.org/wiki/파리_대학교

    3. https://kosis.kr/statHtml/statHtml.do?orgId=101&tblId=DT_2KAA902_OECD

    4. John Lennon, <Imagine>에서 인용

    필자소개
    레디앙 기획위원. 도서출판 벽너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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