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염은 평등하지 않다,
    인간의 조건 그리고 여성의 현실
    [에정칼럼] 취약한 이들에 가장 먼저 가장 심하게
        2021년 07월 15일 09:2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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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1일인 일요일은 초복(初伏)이었다. 초복은 소서와 대서의 사이로, 더위가 본격화되는 시기다. 어쩐지 얼마 전부터 더워서 밤에 잠을 설쳤다. 아니나 다를까 열대야였다. 장마가 소강되면서 당분간 폭염이 더 심해진단다. 지금도 이렇게 더운데 일 년 중 가장 덥다는 말복까지 한 달은 또 어떻게 버티나.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엄살은 떨지만, 그래도 나는 형편이 괜찮다. 실내에서 주로 일하고, 선풍기를 하루 종일 틀고 있다. 사무실에 여럿이 있을 때는 에어컨도 틀었다. 집에는 집주인의 에어컨이 달려 있고, 아직은 쓸 엄두를 못 내고 있지만 정 급하면 집주인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고 마음의 가책을 느껴가며 쓸 수도 있을 테다. 여름감기 등으로 몸이 좋지 않으면 원하는 시간에 혼자 힘으로 병원에 가서 유창하게 증상을 설명하고 건강보험을 적용받아 진단과 약을 받을 수 있다.

    모두가 이렇게 폭염에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능숙한 대처라는 말도 폭염의 영향을 그럭저럭 완화할 수 있는 상황일 때, 요령껏 피할 수 있을 때나 가능하다. 어떤 이들은 폭염을 숙명처럼 받아들여 참고, 어떤 이들은 폭염에도 언제나처럼 일해야 하고, 어떤 이들은 여름에 일이 많아 다른 계절보다 더 힘들게 일해야 한다. 이들에게 폭염은 피할 수 없고, 대처할 수 없고, 그저 감내해야만 하는 일이다. 왜 그래야 하나?

    반빈곤활동을 오래했던 활동가 미영(가명)은 인터뷰를 했던 쪽방촌 거주민들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참아낼 운명으로 여긴다고 했다. 장마로 반지하 곳곳에 곰팡이가 피어서 에어컨에 선풍기를 돌리면서도 꿉꿉함을 어찌하지 못하고 전기세는 전기세대로 내는 상황, 쪄 죽는 여름 창문 없는 쪽방에서 선풍기 한 대로 더위를 나는 상황을 그저 견디는 것이다. 동자동에서 만난 순자(가명)씨는 동네 주민 대부분이 더위를 견디지 못해 밖에서 자고 새벽에 방에 들어간다고 했지만, 여성도 밖에서 자느냐 물으니 “절대 아니”라고 한다. 폭력과 성범죄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서다. 샤워를 하고는 선풍기를 쐬며 한 평 남짓한 방에 누워서 버티는 것이다. 단층에 사는 순자씨는 더위를 피하려고 동자동 사랑방에서 마련한 마을밥집(‘식도락’)에서 해가 질 때까지 쉬다가 방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나마 형편이 낫다고 해야 할까. 이런 말을 입에 담기조차 참담하다.

    가스검침원, 수도검침원, 야쿠르트 방문판매원은 더위와 관계없이 계속해서 돌아다니면서 일을 해야 하는 이동노동자다. 여성이 많은 직업이고, 위탁계약 등이 많은 불안정한 노동이다. 하루종일 홀로 외부를 돌아다녀야 하는 직업이기에 건강문제나 폭력의 위협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여기에 폭염이나 혹한이 겹치면 고생이 가중된다. 한 도시가스 검침원은 화장실을 가기 어렵기 때문에 수분 보충이 필요한 폭염에도 물을 덜 마시고 땡볕에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에 1000개 가량 검침을 한다고 했다(기사보기). 박은옥 민주노총 당진시수도검침지회 지회장은(인터뷰 보기) 하루에 약 110가구가 넘게 방문을 한다고 했다. 여름에는 폭염을 피하기 위해 해가 없는 일찍부터 일을 한다. 폭염에 취약한 야외노동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건설업과 농민으로, 남성의 이미지로 재현된다. 여성노동자의 취약한 노동환경과 불안정한 노동, 폭염과 야외노동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필요하다.

    2019년, 2020년에 이어 올해도 폭염 속 청소노동자 사망이 발생했다. 청소노동자는 ‘보이지 않는 존재’다. 새벽부터 청소를 한 뒤 조악한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하곤 한다. 창문이나 에어컨이 없는 경우도 많고, 화장실이나 계단 밑, 지하방이 휴게실인 곳도 있다. 최근 서울대학교에서 사망한 청소노동자는 코로나19로 평소보다 많은 양의 쓰레기를 치워야 했고, 하루에 4개층을 엘리베이터도 없이 100L 쓰레기봉투를 채우며 일했다고 한다. 일이 늘어도, 날이 더워도 청소는 계속된다. 중장년층 여성이 많은 청소노동자의 건강상태, 과도한 업무량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폭염이 겹치면 청소노동자들은 평소보다 훨씬 더 취약한 상태가 된다.

    농업노동자들. 박스안은 검침원 방송화면

    캄보디아에서 온 여성 이주노동자 티다(가명)씨는 깻잎농장에서 이 년 가량 일했다. 보파씨는 여름이 겨울보다 더 힘들단다. 여름에는 깻잎이 잘 자라고, 따야 할 깻잎도 많다. 일이 많아 새벽 6시에 출근해 저녁 6시까지 일 한다. 한 달에 두 번을 쉬면 많이 쉰다. 차양막을 쳐도 햇볕은 그대로 내려쬐고 숨 막히는 열기는 가시질 않는다. 물난리가 나거나 비가 계속 오면 잠깐 피했다가 다시 일을 한다. 비가 와서 일을 쉬면 쉰만큼 월급이 깎인다. 일이 많아서 일을 더해도 농장주는 ‘네가 일을 못해서 더 일하는 것’이라며 과도한 노동을 노동자 잘못으로 돌린다. 초과근무수당도 주휴수당도 없다.

    농장은 대부분 5인 이하 사업장으로 편법을 써서 맞추기 때문에 해고제한, 주52시간, 가산·연차수당 등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게다가 농업은 근로기준법 제63조에 의해 근로시간, 휴게, 휴일에 관한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 업종이므로 농장주는 당당하다. 법의 부재는 곧 관리감독의 부재다. 가뜩이나 고용허가제로 사업주에게 종속되어 있는 이주노동자는 고용주에게 밉보이지 않기 위해 부당한 일도 항의하지 않거나 아파도 참는 경우가 많다. 농장주는 이주노동자가 아파도 병원을 가지 못 하게 하거나 한국말로 의사소통이 쉽지 않은 노동자에게 ‘너 혼자 알아서 가라’며 사실상 노동자의 아픔을 방치한다.

    폭염은 모두가 겪는 현상이지만, 폭염으로 인한 피해까지 모두가 똑같이 겪지는 않는다. 기후위기가 심해질수록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폭염은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폭염으로 고통 받는 이들, 특히 여성의 현실은 개별 사건으로 파편화되어 이해된다. 특정 노동자의 비극으로만 유통된다. 폭염은 여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나? 취약한 고리에 놓여있는 이들은 어쩌다 취약하게 되었나? 다양한 여성들의 현실에 대한 가시화가 필요하다. 코로나19는 위험이 사회의 가장 취약한 위치에 놓인 사람들을 가장 먼저, 가장 심하게 할퀴고 지나간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폭염마저 취약한 자리에 놓인 사람들을 먼저, 더 심하게 무너뜨리게 할 수는 없다.

    덧. 이번 칼럼은 필자가 서울시NPO지원센터 활력향연 프로그램 지원을 받아 수행하고 있는 <기후재난의 여성피해>연구를 하며 보고 들은 이야기의 일부입니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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