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골매와 비틀즈,
    둘로 만든 한 곡의 노래
    [대중음악 이야기] 리드 보컬이 둘이었던 밴드, 그들의 음악
        2021년 07월 12일 10:3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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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을 소개하는 글답게 동영상 링크로 글을 시작한다. 송골매의 <어쩌다 마주친 그대>이다.(링크)

    송골매의 이 노래는 <모두 다 사랑하리>(링크)와 함께 그룹의 최고 히트곡이었다. 노래는 인상적인 기타 리프로 시작한다. 리프는 우리말로 옮기면 ‘반복 악절’의 의미인데, 말보다는 듣는 것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링크를 눌러보면 무엇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국민학교’에 들어갔던 1975년에 악명 높은 ‘긴급조치 9호’가 발표되고 시행되었다. 그 내용은 다음을 포함하고 있었다. (주1)

    긴급조치 제9호

    ① 다음 각 호의 행위를 금한다.

    가.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여 전파하는 행위

    나. 집회·시위 또는 신문, 방송, 통신 등 공중전파 수단이나 문서, 도화, 음반 등 표현물에 의하여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반대·왜곡 또는 비방하거나 그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청원·선동 또는 선전하는 행위

    다. 학교 당국의 지도, 감독 하에 행하는 수업, 연구 또는 학교장의 사전 허가를 받았거나 기타 예외적 비정치적 활동을 제외한 학생의 집회·시위 또는 정치 관여 행위

    라. 이 조치를 공연히 비방하는 행위

    긴급조치의 발동은 국회의 법률 제정에 의하지 않고도 행정부가, 즉 박정희와 그 졸병들이 모든 것을 뜻대로 규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소불위의 독재가 펼쳐진 것이었다. 긴급조치는 여러 번 발표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이 9호는 상상을 초월했다. 이때는 막걸리 한 잔 마시다가 말 한마디 잘못해도 어딘가로 사람들이 끌려가던 시대였다. ‘막걸리 보안법’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이 조치에 이어진 일들은 음악계에 거대한 충격을 주었다. 1974년 발표되어 ‘3천만의 애창곡’이라고 불렸던 신중현과 엽전들의 <미인>을 비롯한 많은 곡이 금지곡이 되었다. (주2) 나는 거의 매일 라디오에서 들을 수 있었던 이 노래가 어느 날 갑자기 라디오에서 사라진 것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1987년 가을이 되어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구세군 어린이집’에 다니던 1974년에 인생 처음으로 록 음악에 빠지게 되었던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부터 그 음악을 듣지 못하게 되었고, 1987년 대학에 입학하여 6월 항쟁에 동참하여 작은 승리를 얻을 수 있었고, 얼마 후 그 노래를 되찾게 되었다.

    구미에 맞지 않는 노래들을 다 라디오와 TV에서 ‘퇴출’한 유신 정권은 새로운 음악계를 원했다. 그것이 바로 대학가요제니 강변가요제니 하는 젊은 가수를 발굴하는 가요제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배경이었다.

    “MBC 대학가요제는 문화방송이 주최했으며 현재는 MBC플러스에서 주최하고 있는 대학생 대상의 가요제이다. 명랑한 대학풍토 조성과 건전가요 발굴을 목적으로 시작하였으며, 참가한 대학생들은 창작곡으로 노래 실력을 겨룬다. 이전까지 본선은 문화방송을 통해 생방송 혹은 딜레이 녹화방송으로 진행되었다. 1977년 9월 12일 열린 제1회 대학가요제 이후로 매년 개최되었고, 2012년을 끝으로 잠시 폐지된 바 있다.” (주3)

    위키백과에서 인용한 MBC 대학가요제에 대한 설명을 보라. “명랑한 대학풍토 조성과 건전가요 발굴을 목적으로 시작하였으며”라는 설명은 의미심장하다. 명랑한 대학풍토 조성이 무엇인지 나는 알 수 없지만, 유신정권에 반대해 싸우는 것이 유신정권이나 정권의 나팔수였던 MBC에게는 분명히 ‘명랑한’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건전가요”라는 표현 또한 이해할 수 있다. 유신 정권에게는 예를 들어 <아침이슬>이나 양병집의 노래들은 건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금지곡이 되었던 양병집의 명곡 <역>의 가사를 소개한다.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네 바퀴로 가는 자전거
    물속으로 나는 비행기 하늘로 뜨는 돛단배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 위로
    오늘도 애드벌룬 떠 있건만
    포수에게 잡혀 온 잉어만이 한숨을 내쉰다
    시퍼렇게 멍이 들은 태양 시뻘겋게 물이든 달빛
    한겨울에 수영복 장수 한여름에 털장갑 장수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 위로
    오늘도 애드벌룬 떠 있건만
    태공에게 잡혀 온 참새만이 눈물을 삼킨다
    남자처럼 머리 깎은 여자 여자처럼 머리 긴 남자
    백화점에서 쌀을 사는 사람 시장에서 구두 사는 사람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 위로
    오늘도 애드벌룬 떠 있건만
    땅꾼에게 잡혀 온 독사만이 긴 혀를 내민다

    “포수에게 잡혀 온 잉어”와 “(강)태공에게 잡혀 온 참새”는 비현실적이지만, 마지막 가사는 그렇지 않다. 현실 속에도 존재하는, “땅꾼에게 잡혀 온 독사”는 한숨을 쉬거나 눈물을 삼키지만은 않고, 긴 혀를 내민다. 독을 품은. “시퍼렇게 멍이 들은 태양” 하에서 양병집은 독을 품은 혀로 노래했다. 유신 정권이 용납할 가사가 아니었을 것이다.

    ‘명랑’한 대학을 만들기 위해, ‘건전’한 가요를 만들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다시 말해 정권의 건전하지 못한 의도로 시작되었지만, 어쨌든 대학가요제는 많은 유명 음악인들의 등용문이 되었다. 유신정권과 전두환 정권과 노태우 집권 연도까지의 대상 수상 팀 명단을 보자. 어떤 이들은 수상 이후에 대중들의 관심에서 사라지기도 했지만, 어떤 이들은 여전히 기억되고 있다.

    대상을 받은 곡들보다 더 유명해졌던 노래들 혹은 음악인들도 있었다. 1978년 (2회)에는 활주로(배철수, 지덕엽, 김종태, 박홍일 등. 항공대학교)의 <탈춤>이 은상을 받았고, 노사연 (단국대학교)의 <돌고 돌아가는 길>이 금상을 받았다. 1980년에는 마그마(문영식, 김광현, 조하문. 연세대학교)의 <해야!>가 은상을 받았다. 이 노래는 나중에 윤도현 밴드에 의해서도 리메이크되었는데, 한국 록 음악의 역사에서 길이 남을 명곡으로 꼽히기도 했다.

    1982년에는 MBC 강변가요제도 생겼다. 원래 있던 MBC FM 강변 축제를 이은 것이기 때문에 첫 번째 가요제를 제3회라고 불렀다. 1983년에는 손현희의 〈이름 없는 새〉가, 1984년 제5회에는 4막 5장(이선희, 임성균)의 〈J에게〉가 대상을 수상했다. 임성균이 누군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나, 이선희는 최고의 스타가 된다.

    1985년 제6회에는 마음과 마음(김복희, 임석범)의 〈그대 먼 곳에〉가 대상을 탔다. 그해는 경쟁이 치열했는데, 금상 어우러기(정호영, 김판수, 남정미)의 〈밤에 피는 장미〉, 은상 권진원의 〈지난 여름밤의 이야기〉, 장려상 박미경의 〈민들레 홀씨 되어〉 모두 오랜 인기를 누렸다. 박미경의 노래는 사실 이 가요제에서 소개된,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는 노래일 것이다.

    1986년 제7회에는 대상 유미리의 〈젊음의 노트〉와 금상 도시 그림자의 〈이 어둠의 이 슬픔〉이 대 히트곡이 되었고, 1987년 제8회에는 대상 문희경의 〈그리움은 빗물처럼〉보다 동상 티삼스(TΔS)의 〈매일 매일 기다려〉가 더 유명해지기도 했다. 1988년 제9회는 강변가요제를 대학가요제보다 더 유명한 행사로 만들었다. 다섯 곡이 모두 히트곡이 되었고, 이상은과 이상우는 바로 스타가 되었다.

    대상 : 이상은 〈담다디〉
    금상 : 이상우 〈슬픈 그림 같은 사랑〉
    은상 : 이정아 〈떠나간 후에〉
    동상 : 소나기 〈소낙비〉
    장려상: 박성신 〈비 오는 오후〉

    MBC 대학가요제가 큰 인기를 끌자 경쟁사였던 TBC(전두환 정권에 의해 KBS로 강제 통합됨. 나중에 생긴 종편 JTBC의 명칭은 삼성/ 중앙일보가 TBC의 ‘소멸’에 한이 맺혔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는 1978년에 ‘해변가요제’를 만들었다.

    ”이 대회(1978년 1회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징검다리 팀에는 당시 한양대학교 2학년생인 왕영은이 참가했으며 아래 동영상을 보면 눈에 띄는 미모를 갖고 있었다. 덕분에 MBC의 장수 어린이 프로 뽀뽀뽀의 초대 뽀미 언니로 출연해 역대 최장수 뽀미 언니로 활약했다. 한국항공대학교 밴드 활주로의 멤버로 참가해 인기상을 받은 배철수는 같은 해 MBC 대학가요제에도 다시 출전해 ‘탈춤’으로 은상을 거머쥐었고, 우수상을 받은 홍익대학교 밴드 블랙 테트라의 멤버 구창모와 같이 송골매를 결성한다. 듀엣으로 참가한 벗님들의 이용균(이치현의 본명)은 나중에 ‘이치현과 벗님들’을 결성해 ‘집시여인’과 같은 많은 히트곡을 냈다. 그 외에 ‘회상’으로 유명한 김성호도 눈에 띄고, 특히 ‘개그계의 신사’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주병진도 친누나와 함께 참가했다.” (주5)

    1980년에 집권한 전두환 정권은 본고사 폐지와 학력고사 도입, 졸업정원제의 시행 등을 통해, 저소득층과 지방 고등학생들이 대학으로 들어갈 때 만나곤 했던 장벽을 낮추었다(의도했든 그러하지 않았든). 독재 치하에서도 경제발전은 계속되었다. 박정희 정권의, 그리고 전두환 정권 때에도 이어지던 저곡가 저임금 정책은 자본가들, 특히 재벌의 빠른 자본 축적을 도와주었고, 한국 경제의 빠른 ‘성장(양적 팽창)’에 영향을 미쳤다. 다시 말해 ‘한강의 기적’은 박정희의 공이라기보다는 민중들의 피와 땀의 결과였다. 어쨌든 경제발전 또한 대학생이 대폭 늘어나게 되었던 원인이 되었다.

    유신 말기의 대중문화 정책의 산물이었던 ‘가요제’들은 이러한 상황과 맞물려, ‘명랑’, ‘건전’ 등 정권의 의도와는 다른 음악들이 등장하도록 도왔다. 소수가 가는 곳이었던 대학은 다수가 가는 곳이 되었고, 대중음악의 생산과 유통과 관련하여 대학에 재학하고 있던 혹은 졸업한 가요제 출신 가수들의 영향력이 상당히 커지게 되었다.

    1990년대에 상황은 다시 변하는데, 1989년 SM 엔터테인먼트가 만들어졌고, 1992년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였다. 이제 가요제 출신들이 대중음악의 변화/ 발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상황은 서서히 마감되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기획사’가 주도하는 음악이 점점 지배력을 키워갔다. 1996년에 H. O. T.가 데뷔했고, 이는 현재 우리가 아는 대중음악의 생산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했다. 음악 역시 장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계제 대공업’을 맞이했다고나 할까.

    주로 대학생들을 참가자로 했던 가요제 출신들이 대중음악에서 큰 의미를 지니게 되었던 시기에, 가장 큰 인기와 영향력을 가졌던 그룹 중 하나가 송골매였다. 항공대의 활주로와 홍익대의 블랙 테트라 출신들이 힘을 모아 만들었던 이 그룹은 두 명의 리드 보컬을 가지고 있었다. 둘의 스타일은 매우 달랐다. 배철수는 돋보이는 리듬 기타를 내세운 정통적인 록 음악에 약간 ‘한국적인 정서’가 가미된 노래들을 불렀다. 구창모는 소프트 록에 가까운 노래를 했고, 돋보이는 미성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처음 본 순간>

    이런 둘이 따로 작곡했던 노래를 하나로 모았던 일이 있었다. 그들의 2집에 실렸던 <내 마음의 꽃/ 길지 않은 시간이었네>가 바로 그 노래다.

    구창모의 미성으로 빠른 노래가 시작되고, 후반부에서는 미성이라 부르긴 힘든 배철수의 노래가 뒤를 잇는다. 페이스북 친구 한 분의 추천으로 그 음악을 들었는데, 내가 알고 있던 곡이었다. 그때는 “구창모가 부르다가 배철수가 부르는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완전히 다른 두 곡을 붙였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던 것이었다. 이 노래의 내용을 “내 마음의 꽃과 연애를 하는 데 성공했군.”이라고 받아들였었는데, 이제 다시 가사를 읽어보니 다른 두 가지 이야기일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어쨌든 이어 붙여서 듣는 이들이 착각하게 했다면, 그 시도는 성공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조용필의 시대였던 1980년대 초반, 송골매는 조용필 정도는 아니었으나 2위 그룹 정도에는 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2~4집 앨범을 배철수-구창모 이중 리드 보컬로 가던 그들에게 시련이 닥쳤다. 구창모가 그룹을 탈퇴했고, 솔로 가수가 된 것이다. 그는 <희나리>로 성공적으로 데뷔했지만, 그의 전성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1990년 후로 그는 음반을 내지 않았고, 중앙아시아에서 사업을 했다고 전해진다. (주6)

    구창모가 떠난 송골매 역시 1981~1984년의 전성기를 회복하지 못했다. 1990년에 <모여라> 가 히트했으나, 얼마 후 그들은 활동을 중단했다. 배철수는 1990년 3월부터 《배철수의 음악캠프》로 팝 전문 DJ 활동을 시작했고, 가끔 방송에서 노래를 부르긴 했지만, 사실상 DJ 활동에 전념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송골매는 유신 말기의 대중음악계 길들이기의 산물인 가요제 출신이었다. 그러나 유신 정권의 기대와 달리 대중음악계는 명랑해지거나 건전해지지만은 않았다. 음악은, 대중음악은 정권의 뜻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예술이란 독재자의 것이 아니며, 그것을 만드는 그리고 즐기는 모든 이의 것이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그런 이들이 그리 많지는 않은 이야기로 글의 전반부를 마무리한다. 박정희가 죽던 날 같은 자리에 있었던 심수봉이 <그때 그 사람>을 발표한 곳 또한 대학가요제 행사장이었다. 1978년 제2회 MBC 대학가요제에 명지대생으로 참가한 심수봉은 자신이 직접 작곡과 작사를 한 그 노래를 발표했다. 그는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이 행사를 통해 한국 가요사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 중 하나가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대상을 받았던 <밀려오는 파도 소리에>도 멋지고 은상을 받았던 활주로의 <탈춤>도 멋지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때 그 사람>이 1978 대학가요제 최고의 노래였다고 생각한다. 한국 트로트 사에서 최고의 노래 중 하나이기도 하고. 박정희는 죽었고, 심수봉은 그 일로 표현하기 힘든 고통을 겪었지만, 심수봉의 노래는 아직도 많은 이를 즐겁게 혹은 슬프게 만들고 있다. 독재자의 통치 기간은 길었지만(19년), 심수봉의 노래는 2021년 기준으로 43년 동안 사랑받고 있다.

    송골매의 노래처럼 두 작곡가가 만든 음악을 붙여서 만든 음악이 있었다. 그 노래의 제목은 <A Day in the Life>이고, 대중음악 이야기 첫 회에서도 금지곡 중의 하나로 소개한 바 있다. 오늘은 비틀즈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 그들의 두 노래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비틀즈를 한국인들은 대개 잘 모른다. <Yesterday>나 <Let it Be>도 명곡이지만, 그들은 발라드를 주로 불렀던 음악인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록 그룹이었고, 아주 에너지 넘치는 록 그룹이었다. 1960년에 결성해 주로 독일에서 활동하던 그들은 1962년에 영국 최고의 그룹이 되었고, 1963년에는 미국을 ‘침공’한다. 비틀즈 등의 미국 진출을 미국 언론은 ‘British Invasion’이라고 칭했다. 비틀즈가 얼마나 대단한 인기를 누렸는지 알 수 있다. 미국에서 최초로 크게 히트한 노래는 <I want to hold your hand>였다. 수트를 입고 ‘범생’ 머리를 한 그들의 모습은 참으로 ‘풋풋’해 보인다.

    시간이 흐르며 그들의 음악은 점점 변화하는데, 그 정점에 올랐던 음반이 1967년에 발표되었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였다.

    이 앨범은 앨범 재킷(커버 그림)이 큰 화제를 모았는데, ‘숨은 얼굴 찾기’를 하면 재미있다. 영미의 음악이나 문화에 관심이 크지 않은 분이라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포크/ 포크록 가수 밥 딜런을 찾는 것은 쉬울 것이고(맨 위 열의 오른쪽 끝에 있으므로), 두 번째 열에서는 레디앙 독자들은 아마 칼 마르크스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얼굴의 주인 중에는 젊은 말론 브랜도도 있고, 마릴린 먼로도 있다. 링크에는 모든 사람의 정체를 알려주는 정보가 있으니 참고할 수 있다.

    이 앨범에서 가장 유명한 두 노래를 소개한다. 먼저 역시 금지곡이었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이다.

    Picture yourself in a boat on a river
    With tangerine trees and marmalade skies
    Somebody calls you, you answer quite slowly
    A girl with kaleidoscope eyes
    Cellophane flowers of yellow and green
    Towering over your head
    Look for the girl with the sun in her eyes
    And she’s gone (주7)

    귤나무와 마멀레이드 하늘이 있는
    강 위의 배에 있는 당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누가 당신을 부르고 당신은 꽤 느리게 답하네요.
    만화경 눈을 가진 소녀.
    노란색과 녹색의 셀로판 꽃이
    당신 머리 위로 우뚝 솟아있고,
    자신의 눈에 태양을 머금은 소녀를 찾으면,
    그 아이는 떠날 거예요.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Ah

    다이아몬드를 지닌 하늘 위의 루시(반복)
    아.

    Follow her down to a bridge by a fountain
    Where rocking horse people eat marshmallow pies
    Everyone smiles as you drift past the flowers
    That grow so incredibly high
    Newspaper taxis appear on the shore
    Waiting to take you away
    Climb in the back with your head in the clouds
    And you’re gone

    흔들리는 목마 사람들이 마시멜로 파이를 먹고 있는
    분수 옆의 다리로 그 소녀를 따라가요.
    너무나 믿을 수 없이 높게 자라는 꽃들을
    지나쳐 당신이 흘러갈 때 모든 이는 미소를 지어요.
    당신을 데려가려고 기다리는
    신문지 택시들이 강가에 등장하고,
    당신의 머리는 구름 속에 있는 채로
    당신은 뒤에 오르고, 당신은 사라지네요.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Ah

    다이아몬드를 지닌 하늘 위의 루시(반복)
    아.

    Picture yourself on a train in a station
    With plasticine porters with looking glass ties
    Suddenly someone is there at the turnstile
    The girl with the kaleidoscope eyes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Ah

    거울 넥타이를 한 플라스틱 (운반) 노동자들이 있는
    기차역에서 기차에 오른 당신을 상상해 보아요.
    감자기 개찰구에 누군가가 나타나네요.
    만화경 눈을 가진 그 소녀.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Ah

    다이아몬드를 지닌 하늘 위의 루시(반복)
    아.

    (반복)
    (반복)

    초현실적이고 몽환적인 가사이다. 1회에서도 언급했듯, 마약의 영향 아래서 곡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다음 곡은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가 만든 서로 다른 노래를 이어붙인 <A Day in the Life>이다. 이 곡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존 레넌의 노래, 관현악 연주, 폴 매카트니의 노래, 존 레넌의 노래, 관현악 연주, 장중한 아우트로(피아노 세 대의 ‘쿵’). 관현악 연주 부분에 관해 1980~1990년대에 ‘25시의 데이트’라는 심야 음악 방송을 진행했던 대중음악 평론가 전영혁은 “우주적인 코드 진행”이라고 표현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처음 들을 때 가슴이 과도하게 쿵쿵 뛰는 바람에 청취를 포기했었던 기억이 난다. 다수의 음악 잡지 기자들과 평론가들은 이 곡을 20세기 최고의 대중음악이라고 불렀다.

    뮤직비디오 역시 상당히 신경 쓴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최고의 대중음악이라는 말에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대단한 곡이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꽤 있는 음악이다. ‘겉멋’, ‘가짜(phony)’, ‘약에 취한(drugged)’과 같은 말로 일부 사람들은 이 곡을 평가했다.

    가사를 소개하고자 한다.

    Lennon

    I read the news today, oh boy(감탄사, ‘아 소년’ 이런 식으로 번역하면 안 됨)
    About a lucky man who made the grade
    And though the news was rather sad
    Well, I just had to laugh
    I saw the photograph

    아, 나는 오늘 신문에서 성공했던
    한 운 좋은 남자에 관한 뉴스를 읽었어.
    비록 그 기사는 다소 슬펐지만
    음,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어.
    나는 그 사진을 보았거든.

    He blew his mind out in a car
    He didn’t notice that the lights had changed
    A crowd of people stood and stared
    They’d seen his face before
    Nobody was really sure if he was from the House of Lords

    그는 승용차 안에서 정신을 잃었어.
    그는 신호가 바뀐 것을 알지 못했어.
    많은 이들이 서서 응시했어.
    그들은 전에 그의 얼굴을 보았었지만.
    그 누구도 그가 귀족원(영국 의회 상원) 출신인지를 확신하지 못했어.

    I saw a film today, oh boy
    The English Army had just won the war
    A crowd of people turned away
    But I just had to look
    Having read the book

    아, 나는 오늘 영화를 한 편 보았어.
    (영화에서는) 영국군이 막 전쟁에서 이겼어.
    많은 이들은 고개를 돌렸어.
    하지만. 나는 봐야만 했어.
    그 책을 읽었었거든.

    I’d love to turn you on

    나는 당신을 황홀경에 빠지게 하고 싶어.

    관현악 연주

    McCartney

    Woke up, fell out of bed
    Dragged a comb across my head
    Found my way downstairs and drank a cup
    And looking up, I noticed I was late
    Found my coat and grabbed my hat
    Made the bus in seconds flat(주 8)
    Found my way upstairs and had a smoke
    And somebody spoke and I went into a dream

    깨어나서 침대에서 뛰어내렸어.
    머리를 빗었고
    아래층으로 가서 (차) 한 잔을 마셨어.
    위를 바라보고 내가 늦었다는 것을 알았고,
    코트를 찾고 모자를 집어 들었고
    몇 초 플랫 후에 버스를 탔어.
    (버스의) 위 칸으로 올라갔고 한 대 피웠어.
    그리고 누군가가 말했고, 나는 꿈으로 빠져들었어.

    Lennon

    I read the news today, oh boy
    Four thousand holes in Blackburn, Lancashire
    And though the holes were rather small
    They had to count them all
    Now they know how many holes it takes to fill the Albert Hall(주 9)

    아, 나는 오늘 뉴스를 읽었어.
    랭카셔의 블랙번에 있는 4천 개의 구멍들에 관한.
    비록 그 구멍들은 다소 작았지만,
    그들은 그것 모두의 숫자를 세야 했어.
    이제 그들은 앨버트 홀을 가득 채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구멍이 필요한지 알아.

    I’d love to turn you on

    나는 당신을 황홀하게 만들고 싶어.

    관현악 연주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없는 음역의 소리 후 곡 종료

    1969년에 레넌은 비틀즈를 떠났고, 70년에 비틀즈의 해체가 대중에게 알려졌다. 1970년대에 구성원들은 모두 마약을 끊었고, 존 레넌은 마르크스주의와 유사한 정치적 성향을 띠게 된다. 그것은 <Working Class Hero>나 <Imagine> 같은 노래에서 잘 드러났다. 솔로 앨범 <Imagine>은 대중들의 좋은 반응을 얻었고, 앨범과 같은 제목의 노래 <Imagine>은 반전운동에서 사용되었다.

    미국의 주류 언론은 기분이 나빠졌고, ‘롤링스톤’ 잡지는 “수록곡의 대부분이 좋은 음악이다. 하지만 그의 가식은 곧 따분해질 뿐만 아니라, 시대에 뒤지게 될 것이다(his posturings will soon seem not merely dull but irrelevant.)”라고 말했다고 한다. 롤링스톤은 정말로 가식적인 발언을 많이 한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편에서도 언급했었다(2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어이, 구르는 돌 잡지. 그냥 “나는 좌파가 싫어요.”라고 말하는 게 어때?

    존 레넌은 죽었고, 매카트니는 2000년대에도 왕성하게 활동했다. 링크에서 볼 수 있듯, 2005년 63세의 매카트니는 여전히 훌륭한 로커였다.(관련 링크)

    비틀즈의 노래 <Helter Skelter(허둥지둥)>는 비틀즈의 얼마 되지 않는 하드록 작품이다. (주10)

    구창모와 배철수, 폴 매카트니와 존 레넌은 모두 출중한 음악인이었다. 그들은 서로 협력하여 송골매와 비틀즈라는 그룹을 이끌었다. 둘 다 어느 시점에서 헤어졌고, 헤어진 후의 음반 판매량과 인기는 예전만큼은 아니었다. 매카트니는 꾸준히 히트곡을 냈는데, 재미있는 것은 최고의 히트곡들은 모두 듀엣곡들이었다는 점이다. <Ebony and Ivory>는 스티비 원더와 불렀고, <The Girl is Mine>과 <Say Say Say>는 마이클 잭슨과 불렀다.

    뛰어난 둘이 한 팀에서 공존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샤킬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가 한 팀에 있기 힘들었듯이. 어쨌든 비틀즈의 경우는 10년, 송골매의 경우는 4년 동안, 두 뛰어난 보컬리스트/ 작곡가들은 협업했고, 그 시기는 그들의 음악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때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주석>

    주1) https://ko.wikipedia.org/wiki/긴급조치 를 참조할 수 있다.

    주 2) http://www.redian.org/archive/153536 에서 금지곡의 역사를 다룬다.

    주 3) https://ko.wikipedia.org/wiki/MBC_대학가요제

    주 4) 위의 링크 참조.

    주 5) https://namu.wiki/w/TBC%20젊은이의%20가요제

    주 6) https://ko.wikipedia.org/wiki/구창모

    주 7) Look for the girl with the sun in her eyes, and she’s gone.

    웹상의 번역 몇 가지를 보니 대부분 번역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 이 문법 사항은 우리가 중고등학교 때 배운 것이다. “명령문+and 어쩌고 하면 if 절처럼 번역하라.” 성문기본영어의 예문을 아직도 기억한다. “Work hard, and you will succeed. = If you work hard, you will succeed.” 사실 열심히 해도 꼭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이런 참고서의 예문 역시 ‘정치적’이다. 아무튼, 인용 부분은 “자신의 눈에 태양을 머금은 소녀를 찾으면, 그 아이는 떠날 거예요.”로 생각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주 8) “그날 그의 100m 기록은 11초 플랫이었다.” 11초 플랫=11.00초

    주 9) 1871년 빅토리아 여왕 재위 시기에 만들어진 영국의 공연장. ‘제국주의’의 상징적인 공연장이었고, 두 번의 세계대전 때는 정치적인 의도의 문화 행사에 많이 사용됨. 이 노래가 나온 후 대중음악 가수들도 사용하는 일이 생기는데, 최초는 1968년의 유로비전 송 컨테스트였다. 여왕 생일 축하공연이 열리는 곳. 추측하건대 레넌은 이 공연장에 반감이 있었던 것 같다.

    https://en.wikipedia.org/wiki/Royal_Albert_Hall

    주 10) https://www.youtube.com/watch?v=TtJjbpGhYvU

    비틀즈의 노래를 한국의 헤비메탈 그룹인 시나위가 불렀다. 김바다는 ‘헤비메탈’하게 부를 줄 알고 신대철은 아버지 신중현처럼 훌륭한 기타 연주자이다.

    필자소개
    정재영(필명)은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작가이다. 저서로는 「It's not Grammar 이츠낫 그래머 」와 「바보야, 문제는 EBS야!」 「김민수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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