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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콜롬비아가 가야 할 길
    [외신 번역] 2022년과 직접민주주의
        2021년 07월 10일 02:5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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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ntagna Yi님이 정기적으로 의미있는 외신 기사나 글을 번역하여 게재할 예정이다.<편집자>

    [변역자주] 콜롬비아는 지난 4월 28일부터 현재 이반 두케(Ivan Duque) 정부가 발의한 세법 개정안 및 의료 민영화 법안에 반대하며 전국적 투쟁(Paro nacional; 전국 파업)에 돌입하였다. 7월 9일 현재까지도 바예 데 카우카(Valle de Cauca; 카우카 계곡, 원주민 주민의 비율이 가장 높은 주) 주의 칼리(Cali) 시를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연대 파업과 가두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콜롬비아는 파나마 운하 건설 이후부터 해당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미국의 노력으로 남미에서 친미 정권이 가장 견고하게 자리 잡은 국가이자, 커피, 사탕수수, 석유 등의 자원침탈 및 매판자본 지배층의 형태가 강고한 전형적인 신식민주의 국가이기도 하다. 이에 반하여 1960년대부터 FARC(Fuerzas Armadas Revolucionarias de Colombia; 콜롬비아 무장혁명군) 등의 여러 좌파 무장투쟁 민병대들이 봉기하여 2016년 평화협정 이전까지 정부의 보조를 받는 우익 민병대와 마약 카르텔, 미국 특수부대의 교육을 받은 정규군의 청야작전 및 제노사이드로 점철된 내전을 치루기도 했다.

    이런 특성에서 기인하여 콜롬비아 정부는 남미에서 가장 권위주의적이고 군사주의적이기로 악명이 높다. 2002년에서 2008년간 특별 평화법원(Jurisdicción Especial de Paz)에 따르면 6,402건의 군경에 의한 불법적 민간인 살해가 일어났고, 2016년 FARC와의 평화협정 이후에도 2021년까지 전직 FARC 게릴라 조직원 252명이 마약 카르텔과 우익 민병대에 의해 살해되고, 노조원, 원주민 활동가 등 사회운동 활동가들도 약 천 명이 살해되는 등 끝없이 피로 물든 폭정을 펼쳐 왔다.

    이와 더불어 매판자본 신식민주의 국가의 특성상 콜롬비아 정부는 신자유주의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이번 코로나 팬데믹에서도 전혀 민중의 생명과 안전을 신경쓰지 않는 처사를 보여왔다. 재난지원금과 의료체계 확충보다는 “연대 기금”을 창설하여 각 대형 은행들에게 국고에서 돈을 송금하는 방식으로 유동성을 늘려 금융업계와 다국적 자본이 타격을 덜 받게 하는 것에만 집중한 결과, 5000만 중 200만이 확진 판정을 받고 5만 4천명이 사망했고, 수많은 콜롬비아 민중이 기아와 가난에 허덕이며, 코로나 속에서도 비대면이 아닌 출근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이반 두케 정부가 내놓은 세법 개정안은 재정 적자를 메꾸기 위한 증세를 골자로 저소득층과 중산층에 대한 식품세 증세 등 전면적인 수탈의 형태를 띄는 개악안이었고, 의료 민영화 법안을 통해 사보험이 없으면 의료비 폭탄을 맞게 되는 미국형 의료 민영화를 추진하려고 했다. 결국 이러한 부정의가 콜롬비아 민중의 분노를 폭발시켜 대대적인 투쟁의 막을 열게 된 것이다.

    콜롬비아 정부는 이 투쟁을 두고 언제나처럼 폭력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ESMAD(Escuadrones Móviles Antidisturbios; 기동타격대)를 위시한 경찰 폭력과 계엄 선포로 출동한 군대의 폭력에 의해 지금까지 85명 이상이 사망했고, 동수가 실종되었으며, 천 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

    착취하는 매판자본 엘리트와 착취당하는 대다수의 민중이라는 극명한 차이, 보수-중도 양대 정당의 장기 집권이 낳은 기존 정치 제도에 대한 불신, 권위주의적 정부의 강력한 탄압으로 인해 콜롬비아 투쟁은 SOS Colombia, Nos están matando(저들이 우릴 죽이고 있다)라는 슬로건에서 보이는 절박함이 나타나면서도 기존 정치조직과 엘리트주의에 반대하고 민중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성격을 띈다. 이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중남미 거리의 정치의 특징인 여러 Colectivo(정치 소모임)들이 주최하는 여러 토론(asemblea)과 행사로 공론장이 형성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아래 글은 콜롬비아 독립언론인 La Oreja Roja(붉은 귀)에 투고된 기고글로, 이와 같은 콜롬비아 투쟁의 일면을 보여주기 위해 번역하였다.


    2022년을 향한 길: 면대면 민주주의(직접 민주주의)의 재활성(원문)

    오스카르 에스피티아(Óscar Espitia)

    • 시위는 평화에 대한 권리나 존엄이 있는 삶의 권리와 같은 기본권을 주장하기 위해 우리가 찾을 수 있었던 유일하게 효과적인 방법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는 2022년을 향해 면대면 민주주의를 재활성화하는 포석이 되기도 했다.

    우린 지금 콜롬비아 역사에 있어 중대한 순간에 놓여있다. 전국 파업을 통해 우리가 불러일으킨 사회적 위기(estallido social; 라틴아메리카에서 현상 유지의 반대어로 쓰는 말-역주)는 강력하고 적대적인 세력을 풀어놓았다. 이들이 억압을 행사하는 축선은 바로 민주주의다.

    지난 두 달간 사회운동이 이뤄낸 주요하고 부정 불가능한 승리들에도 불구하고 투쟁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은 콜롬비아 민중 대다수가 처한 정치적 소외로 인해 눈앞에 보이는 해결책이 없다는 것으로 설명된다고 할 수 있다.

    위기에 놓인 것은 바로 대의민주주의이다. (극심한 불평등, 더욱 심화된 빈곤, 실질적 기회의 박탈 내에서 드러나는) 사회경제적 소외의 엄청난 규모는 국가의 문제에 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에 평범한 콜롬비아 민중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데, 대의민주주의라는 기존의 시스템이 가지고 있던 취약성의 직접적 결과다.

    우리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거리로 나왔고 아직도 거리에 남아있는 우리는 대통령이나 국회, 여타 국가 기관이 우리 이해관계를 고려한다고 느끼지 않는다. 또 많은 이들은 그 어떤 정당이나 기존 정치인들이 그들을 대변한다고 느끼지 않는다. 이들은 노조나 사회 조직, 심지어 파업위원회(Comité del Paro; 전국 파업을 주도하는 노조 및 사회 운동 단체의 연합체)조차도 그들을 대변한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들은 “독립 세력”이나 “반대 세력”이라고 자신을 부른다.

    시위는 권리의 일부를 넘어서, 평화에 대한 권리나 존엄이 있는 삶에 대한 권리와 같은 기본권을 주장하기 위해 우리가 찾을 수 있었던 유일하게 효과적인 방법이 되었다.

    정부에 호의적인 정치인들과 국회의원들은 이것을 알고 있다. 검찰도, 변호사도, 민중의 수호자도 알고 있다… 대통령은 이것을 완벽하게 알고 있다. 대통령의 문제는 유리화된 것이 아니다. 문제는 흔히 말하듯이 악한 신념이다.

    왜냐하면 저들은 만일 정치적 소외를 고치기 위해 무엇인가 한다면 저들이 지금껏 쌓아 올렸던 특권과 사회경제적 엘리트 계층의 자기 친구들을 위한 시스템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시민불복종의 어떠한 징후라도 나타나면 저들은 진압 부대를 보낸다. 이 진압 부대는 정교하고 비싼 무기를 들고 특히 청년과 여성을 타겟으로 격렬하게 폭력을 행사한다. 그 때문에, 저들은 파업위원회와의 경우처럼 협상 테이블에 앉기를 주저하고 사보타주한다. 그 때문에, 저들은 저항하는 민중을 보지도, 듣지도, 이해하지도 않으려고 한다.

    현재 사회적 위기의 상황 속에서, 권위주의적 정치 기획으로서의 우리베주의(2002-2010년 간 재임한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의 권위주의 및 신자유주의적 정치를 일컫는 말)는 콜롬비아 민중 대다수의 정치적 소외를 강화하는 도박을 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이는 민주주의를 완전한 시뮬레이션으로 바꾸어놓았다. 다시 말해서, 선거판은 열어놓되, 선거기관의 복종과 함께 물불 가리지 않고 우리베주의 후보를 당선시키면서, 여기에 대한 반발로 일어나는 농촌과 도시에서의 사회운동은 치안 부대와 신 우익민병대를 유지하면서 피와 총으로 탄압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2022년 대선을 위한 결정적 전투를 미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SNS에서 퍼지는 “투표장에서 보자”나 “저들은 이미 투표용지를 조작해놨어” 같은 말들은 콜롬비아처럼 투표율이 지극히 낮은 국가에서 선거 참여 독려를 위해 중요하다. 그러나, 베네수엘라나 최근 니카라과에서 있었던 일에서 보듯, 권위주의적 정부가 선거 과정에서 취할 부정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선거법을 악용한 엘 살바도르에서의 경우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지금이 바로 결정적인 순간이다. 우리베주의와 그를 지지하는 정치, 경제, 사회적 엘리트들이 내건 패가 민주주의를 시뮬레이션으로 바꾸는 것이라면, 민중의 패는 민주주의를 재활성화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투쟁의 최전선에서의 경험은 우리에게 소중한 교훈을 주었다. 바리케이드와 진압 부대의 탄압에 맞선 저항을 넘어 투쟁의 참가자들은 공공 장소를 공적 토론과 사회 변혁을 위한 기획의 집단적 창조의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정부가 혼란의 섬이라고 폄훼하는 곳들이 실제로는 민주주의의 오아시스가 된 것이다.

    열린 의회, 공공 토론… 이름은 중요치 않다. 행진과 집회를 넘어 공적 토론과 가장 일상적인 문제부터 가장 복잡한 문제까지 국가적 문제에 대한 대안의 조직을 이끌어내어야 할 것이다. 민중이 이끄는 공간들, 투쟁에 최전선에 선 자들과 파업의 지지자들, 또한 파업을 지지하지 않는 자들까지도 함께 모일 수 있는 곳들이 그런 역할을 할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권위주의의 야만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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