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아랍인 5만 춤추게 한 좌파 로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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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1월 29일 09:0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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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의 취미생활까지도 통제하려 들었던 군사독재 정권의 눈을 피해, 청계천을 뒤지던 70~80년대의 음악광들이라면 핑크 플로이드라는 이름에 추억 한두 개 정도는 어렵지 않게 떠올릴 것이다.

바늘을 올리면 노래 소리 반, 빗소리 반이던 조악한 음질의 ‘빽판’을 대단한 보물이라도 되는 양 서로 돌려가며 듣던 또래들 사이에서 핑크 플로이드의 여러 앨범들은 단연 ‘필청’ 음반이었다.

그중에서도 <더 월The Wall>은 ‘청계천 키드’들의 대화에 끼고 싶으면 반드시 섭렵해야만 하는 음반이었다. 비록 가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들었던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이 앨범이 무언가 대단히 불온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은 입소문을 통해 다들 익히 알고 있었다. 오죽하면 정권이 한 두곡 정도가 아니라 아예 앨범 전체를 금지시켜버렸을까.

확실히 핑크 플로이드는 ‘정의사회 구현’에 어울릴만한 밴드는 아니었다. 게다가 그 밴드의 중심에 서있던 로저 워터스는 스스로 사회주의자임을 선언한 자였다. 그런 의미에서 5공화국의 문화공보부는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는데 소홀함이 없었다.

신군부에 단단히 찍힌 록 밴드

당시 국내에는 ‘학교 교육에 대한 반항’ 정도로 알려졌던 <더 월>은 그 이상의 복잡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의 반 이상은 로저 워터스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더 월>의 주인공인 ‘핑크’와 마찬가지로 로저 워터스의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 때 전사했다. 아내가 출산하기 전에 입대한 아버지는 어린 아들이 생후 5개월이 됐을 때 이탈리아 전선에서 사망했다.

   
  ▲ 로저 워터스
 

로저 워터스의 부모는 공산주의자였다. 비록 아버지 얼굴 한번 본 적 없었지만 부모의 영향은 어린 그를 일찍부터 사회주의에 눈 뜨게 만들었다. 스스로가 밝힌 바에 따르면 10대 시절 로저 워터스는 노동당의 청년 조직인 ‘청년사회주의자Young Socialists’의 캠브리지 지부 대표를 지냈다.

캠브리지는 그가 유소년기를 보낸 곳이다. 또한 50년대 말 영국에서 반핵운동인 ‘핵무기감축캠페인CND’이 거세게 일어났을 때 자신이 열정적으로 참여했다고 밝혔다.

그는 90년대 후반 한 인터뷰에서는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에 대해 “사회주의 이상이 생명을 다했고 하늘 위로 날아가 버렸다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1967년 핑크 플로이드가 정식으로 데뷔한 이후 로저 워터스가 시위에 참가하거나 단체를 지원하는 형태로 공식적인 정치 활동을 벌인 적은 없다. 어린 시절부터 노동당의 지지자였지만 그마저도 블레어의 정치와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지지를 철회했다.

2003년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영국에 노동당이라는 정당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보수당과 또 다른 보수당만이 있을 뿐이다. 보수당은 보수당이라고 불리고 다른 보수당은 ‘신노동당’이라고 불린다. 그 사람들(신노동당)이 무슨 주장을 하건 간에 말이다”라며 격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의 사상적 지향은 현실 정치가 아니라 음악 활동을 통해서 표현됐다.

이라크 전쟁으로 노동당 지지 철회

너무나도 유명한 핑크 플로이드의 1973년도 앨범 <달의 암흑면Dark Side Of The Moon>은 경제학보다는 사회학에 더 가까운 작품이다. 그러나 이 앨범을 관통하는 여러 주제들 중 하나가 ‘자본주의’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앨범의 수록곡 중 하나인 ‘돈Money’은 노골적으로 자본주의의 원초적인 토대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마르크스가 ‘자본’을 쓰면서 제1장을 ‘상품과 화폐’로 시작했듯이 핑크 플로이드도 돈에 대한 사람들의 여러 가지 상반된 태도를 나열하며 현대인들의 왜곡된 욕망을 그렸다.

이어지는 노래 ‘우리와 그들Us And Them’은 나와 너, 가난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 흑과 백 같은 분열과 대립을 노래한다. 요컨대 바리케이드의 이쪽 편과 저쪽 편으로 구분된 세계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달의 암흑면>에 실린 마지막 노래 ‘월식Eclipse’은 더 의미심장하다. 이 노래의 마지막은 이렇다. “태양 아래 모든 것은 조화를 이룬다. 그러나 태양 자체는 달에 의해 잠식된다.” 다시 한번 마르크스를 동원하면, 그가 <공산당선언>에서 ‘모든 단단한 것들이 허공 속으로 사라진다’고 표현한 현대사회의 불안과 동요가 이 노랫말에 그대로 겹쳐진다.

   
 
 

1977년에 발표된 앨범 <동물들Animals>은 개, 돼지, 양을 통해 각각의 사회 계급을 풍자하고 있다. 3년 뒤에 나온 <더 월>은 더 복잡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부터 전쟁, 억압적 사회체제, 전체주의, 붕괴를 통한 재건까지.

반대로<더 월>의 후속작인 앨범 <최후의 일격Final Cut>에서는 주제를 전쟁으로 좁혀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최후의 일격>은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치른 포클랜드 전쟁에 대한 로저 워터스의 비판 성명이기도 하다. 이 앨범을 마지막으로 그는 핑크 플로이드를 탈퇴했다.

음악은 세계를 반영하는 거울

전쟁은 로저 워터스가 생애에 걸쳐 꾸준히 제기하고 있는 주제이다. 솔로로 전향한 뒤에도 핵 전쟁을 다룬 애니메이션 <바람이 불 때When the Wind Blows>의 사운드 트랙을 제작하는가 하면 지난 2004년에는 이라크 전쟁을 비판한 노래 ‘아이들 죽이기To Kill The Child’와 ‘베이루트를 떠나며Leaving Beirut’를 녹음해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배포했다.

그는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이 두 곡을 작곡했지만 2004년 미국 대선 직전까지 공개를 늦췄다. 부시의 낙선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기 위해서였다. 이 노래에서 그는 부시 대통령과 블레어 총리를 강한 어조로 비난했다.

이 두곡을 제외하면 로저 워터스의 최근작은 놀랍게도 정통 오페라였다. 프랑스 대혁명을 다룬 3막짜리 오페라 “싸 이라Ça Ira”는 2005년 초연됐고 평단의 환영을 받았다.

지난 6월 22일 로저 워터스는 팔레스타인에서 공연을 가졌다. 오랫동안 이스라엘의 점령 정책을 비판해온 이 노장 뮤지션의 공연에는 아랍인과 유대인을 합한 5만 명의 관객이 모여들었다. 무대에 오른 그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분리하기 위해 설치한 장벽을 향해 <더 월>에 들어있는 그 유명한 노랫말을 목청껏 외쳤다.

“벽을 허물어라! Tear down the w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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