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병 걸린 한국의 독특한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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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1월 29일 09:0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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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람들은 프랑스가 독특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자본주의’라는 관점에서 ‘프랑스 자본주의’라는 말이 있을 법도 한데 그런 말은 안 쓴다. 그 대신 국가독점자본주의나 특별한 조절양식 같은 용어들을 사용한다.

외국 특히 미국이나 일본 학계에서는 이런 프랑스 학자들의 말을 들으면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끼면서 새로운 개념이 등장했다고 난리 브루스를 추는 경우도 있지만, 정작 프랑스 내에서의 반응은 "별 것도 아닌데, 뭘" 하는 정도로 시큰둥한 경우가 종종 있다.

프랑스는 ‘국가’ 즉 Etat라는 것이 경제와 정치만이 아니라 사회문화 일반에 대해서 좀 독특한 전통을 가지고 있고, ‘민족국가’라는 개념 자체도 프랑스에서 만들어낸 개념이다. 자본주의라고는 하지만, ‘시그널 경제’라고 하는 매우 독특한 국민경제의 운용방식이 전통처럼 내려오고, 이 독특한 흐름을 만든 것은 좌파가 아니라 프랑스 우파의 정신적 지주인 드골 대통령이다.

우리나라도 자본주의인가? 물론 당연히 자본주의이고, 세계 10위라는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큰 나라의 하나이지만, 선뜻 자본주의 일반의 분석을 들이대기에는 뭔가 이상한 게 많다. 경제학에서 흔히 사용하는 ‘균형’이라는 개념을 들이댄다면, 한국이라는 시스템은 불균형으로 인하여 작동하는, 그래서 ‘절뚝거리며 질주’하는 매우 교묘한 시스템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속도는 아주 빠른데, 그 속도가 좋은 것이냐라고 질문하면, 너무 이상한 게 많다.

‘절룩이며 질주하는’ 교묘한 시스템

경제통계와 사회통계를 보다보면, 우리나라가 유독 높은 숫자들이 나오는 경향이 있는데, 규모로 비교하면 OECD 국가들 사이에서 한국이라는 이름이 나오지만, 건축비율, 유기농지 비율, 혹은 여성관련 지수들을 보면, 한국은 베트남이나 요르단 같은 나라들 옆에서 이름이 나온다. 마초와 관련된 지수들은 중동의 이슬람국가들과 비슷한 데에서 한국이 발견되고, 전쟁과 같은 것에 대한 지수들도 때때로 전시 중인 국가들과 비슷하기도 하다.

예전에는 한국 사회의 이 독특한 성격을 ‘반봉건’이라는 말로 설명하려고 했던 것 같고, 한동안은 ‘식민지’라는 용어를 사용하려고 했던 것 같다. 일견 요즘 와서는 터무니없는 소리 같아 보이기는 하지만, 그 시절의 연구를 했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연구 동기 같은 걸 곰곰이 생각해보면, 하여간 한국이 가지고 있는 이 ‘특별한 모습’이 도대체 무엇이냐라는 질문이 있었던 것 같다. 좌파들만 이런 질문을 한 것은 아니다.

"이러다가 이 사회가 망하지"라고 혀를 끌끌 차는 것은 우파들도 마찬가지인데, 학계에서는 거의 신경쓰지 않지만, 이규태의 ‘한국학’이라는 것도 따져보면 뭔가 한국이 가지고 있는 묘한 ‘아노말리’ 현상이 존재한다고 하는 것은 우파들의 시각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크게 보면 민족주의적 경향이 좌파에도 있고, 우파에도 있을 수 있겠지만, 공통적인 것은 한국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무엇이라고 생각할 것인가라는 질문 자체인 것 같다.

‘삶의 질’이라는 지표가 아주 객관적이라면 그냥 그런 지표를 내어보면 우리나라의 상태를 "자, 이렇다"라고 보여줄 수 있겠지만, 사람이 끼어들어 있는 ‘삶’ 그리고 ‘사회’라는 복잡한 대상은 그렇게 숫자로 쉽게 보여줄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언제나 삶의 질 1위인 쮜리히를 서울과 비교하면 살기가 겁나게 좋은 것은 사실인 것 같지만, 돈이 없거나 이방인들에게도 마냥 쮜리히가 살기 좋은 도시는 아니다. 150불 아래로는 호텔을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 일류가 되기위한 중요(?)하고 1차적인 관문인 대입수능 현장. (사진 =연합뉴스)
 

우파들의 이상한 개념 ‘잠재성장률’

우리나라의 현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지표들이 몇 가지 있기는 한데, 고용과 관련된 지표들은 경제학적으로는 거의 설명이 되지 않는 지표들이다. 물론 고용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나는 ‘고용’이라는 질문 위에 이론을 세우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편이다.

경제학자 중에서 고용이라는 눈으로 가장 화려하게 이론을 만들었던 사람은 조안 로빈슨인데, ‘황금시대(Golden Age)’라는 멋진 용어가 바로 로빈슨 여사가 만든 말이다. 현대 성장론 교과서에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용어이기는 한데, 한국 사회를 분석하거나 대안을 제시할 때 지나치게 고용이라는 눈만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면 이상한 결론에 도달하기 쉬울 것 같다는 게 내 조심스러운 생각이다.

대충 실업자를 80만 정도라고 잡으면, 중소기업의 인력난이 20만 정도가 된다. 독특한 것은 실업시대라고 말하면서, 또 한 편에서는 구조적인 인력난이 상존하는 시대인 셈이다. 물론 완전고용이라는 상황을 달성하기는 어렵지만, 5년 후에는 몰라도 아직 한국 경제는 완전고용에 가깝게 총고용을 확보하고 있는, 국민소득 1만 5천불짜리 덩치가 3% 이상의 성장 속도로 달려 나가는 완전 괴물인 셈이다.

우파들은 ‘잠재성장률’이라는, 경제학 교과서에는 등장하지 않는 아주 이상한 개념을 사용하면서 성장 속도가 너무 떨어졌다고 얘기를 하지만 그야말로 박정희 시대의 패러다임인 셈이다. 속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는 시스템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표현하기에 따라서는 분배 문제라고 할 수도 있지만, 기계적인 분배라는 용어로는 잘 포착되지 않는 뭔가 본질적인 것이 있는 것 같다 (이게 뭐냐고 묻지 마시라… 이게 뭔지 찾아내면 나 같은 C급 경제학자에게도 노벨상의 길이 열리게 된다.)

고용에 개입하는 문화현상, 경제학자에겐 골치 아픈 질문

일부에서는 이 중소기업들에 필요한 고용을 외국인 노동자로 채우면 되지 않느냐 혹은 이미 그런 변화가 온 것 아니냐고 하기는 하지만, 숫자와 규모로 아직 그런 변화가 종료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세계 어느 나라도 중소기업의 고용을 외국인 노동자로 전부 채운 경우는 없다.

하여간 편하게 얘기하자면, 새로 노동시장에 신규 진입하는 사람들이나 아니면 마찰적 실업 등 다양한 형태로 ‘미취업’ 상태인 사람들이, 비정규직을 선택할지언정 중소기업에는 취업하지 않으려는 묘한 현상이 존재한다. 이론적으로는 잘 설명이 안 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지만, 하여간 존재한다. 물론 비슷한 경우가 90년대 후반 유럽에서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닌데, 이 때의 소위 ‘사회적 일자리’는 청소나 하역과 같이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일자리보다는 훨씬 열악한 조건의 일자리였는데, 그래서 ‘좋은 일자리’라는 개념 같은 것들이 등장하게 된 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의 모든 일자리가 사람들이 상상하듯이 3D이고, 형편없기만 한 것이냐? 그렇지는 않다. 여기에도 전문직 자리가 필요하고, 전문 경영인도 필요하고, 기획 업무도 필요하다. 그야말로 문화현상이 어딘가 개입한다고 밖에 설명할 수가 없는데, 문화현상은 데이터로 전환되기 전에는 경제학자가 다루기에는 아주 골치 아픈 질문인 셈이다.

대기업과 정부만으로 사회가 돌아가면 지상낙원?

하여간 이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해서 그야말로 시스템의 ‘컴퍼넌트’가 원하는 상태는 도대체 어떤 상태일까? 아마 현 상황에서 모든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위한 변화를 디자인한다면, 대기업과 정부만 남은 상황일 것이다. 딱 이렇게 두 부문만 남고도 돌아갈 수 있는 경제를 디자인한다면, 모든 사람이 행복해질 것 같다.

   
 ▲ 수학능력시험이 끝난 16일 저녁 대학로에서 열린 ‘ANTI 수능 페스티벌’에서 학생들이 현행 입시제도에 반대하는 현수막이 들어있는 박을 터뜨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뭐, 여기에 사람들의 선호를 조금 더 고려한다면, 방송국과 국가대표 축구팀만 더 하면 좌파든, 우파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문화적으로는 대단히 행복한 상황이 될 것 같다.

대기업에 근무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을 위해서 모든 기업들을 10개 남짓의 재벌로 통합해주고, 공무원이 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을 위해서 기타 나머지는 하여간 전부 공무원으로 바꿔저면, 현 상태에서 한국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최대의 지상낙원이 되지 않을까?

약간 엄밀성을 떨어뜨려서 상상하기에 따라서는 스웨덴이 이 상태와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스타벅스와 월마트가 제대로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자영업이 튼튼하다는 점이 스웨덴과 스위스 경제가 가지고 있는 묘한 특징이다 (유럽에서 지역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는 동네에 가서 대형 슈퍼와 프랜차이즈 상점이 배치와 현황을 보면 거의 비슷하게 알 수 있다.)

싱가포르가 비슷하다고 상상할지 모르지만, 싱가포르 역시 중소기업과 소규모 상업 및 유통자본이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어서, 이런 모습과는 좀 다르다.

불온한 상상이기는 하지만, 북한이 만약 현 상황에서 자본주의로 전환한다면, 대기업과 정부만 남은 시스템이 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북한이 현 상황에서 자본주의로 전환한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점차적으로 창업의 숫자가 줄어드는 중이다. 경제사회 분석할 때 창업의 숫자를 지표로 많이 사용하고는 하는데, 한나라당 쪽 분석가들은 우리나라 창업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노무현의 경제 실정의 증거라고 들이밀기도 하는데, 이건 좀 아니다.

그럼 DJ 시절의 벤처창업 열풍일 때에는 경제가 좋았다고 말을 해야 하고, 실제로 올해를 제외하면 그렇게 창업 숫자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잘 했었다고 해야하는데, 그러지 않은 걸로 봐서, 기계적으로 창업 숫자와 경기를 연동시키는 것은 너무 정치적인 해석인 셈이다.

무엇보다도, 창업은 경제가 어려울 때 늘어나는 경향이 있는데, 대형 실업이 증가하면 자영업을 포함해서 창업으로 전환하는 사람들이 늘 수 있으니까, 기계적으로 갖다 댈 지표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사람들은 점점 더 일류를 좋아하고, 그래서 회사도 대기업과 정부기관을 선호한다는 점일 것이다.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중소기업의 인력난이 기술적인 분석만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는 한 번에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현상으로 인한 부작용은 너무 뻔하다. 중소기업과 연결되어 있는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문제가 생기고, 이런 변화는 더 가속화된다. 학교도 더 좋은 곳을 나와야 하고, 공부도 더 많이 해야 한다. 전체적인 비율로 본다면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지만, 하여간 게임의 규칙과 생존의 법칙을 깨달은 사람들은 일류를 향해서 달려나갈 수밖에 없다.

한국 사람들의 생존 법칙 "일류를 향해 달려라"

노동시장과 노동의 재생산 과정에서 생겨난 이런 작은 문제들은 금방 증폭되어 사회와 문화에 투영되어 요상한 담론들을 만들어내고, 요런 것들이 다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일련의 순환고리가 우리나라에서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이런 걸 ‘승자독식 사회’라고 멋지게 표현하기도 하지만, 하여간 중소기업의 인력난이 왜 생기는지에 대해서는 이런 말로도 잘 설명되지 않는다.

보통의 자본주의는 중소기업이 반드시 규모가 작아서만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의 경제생활과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규모의 효과’ 혹은 ‘도요타 효과’ 혹은 ‘혁신 효과’ 등 별의별 이름을 다 붙여서 어쨌든 살리려고 하고, 그렇게 중소기업이 살아난 효과를 때로는 과장해서 표현하기도 하지만, 하여간 대체적으로 ‘죽어라고 살리려고’ 하는게 보통의 자본주의 정부이다. 물론 우리나라 정부도 그런 건 할려고 하지만, 여하튼 효과는 미지수다.

사람들이 집단 학습으로 마치 세상에는 재벌과 정부만 존재하는 듯이 행위하는 건 진짜 묘하다. 이게 문제를 발생시키는 건 ‘다양성(diversity)’이라는 관점에서이다. 재벌과 정부만 남아야 할 것 같은 경제를 생태학 이론으로 묘사하면, 종다양성(bio-diversity)이 심하게 위협받는 상태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상태를 ‘생태계가 건강하지 않은 상태’라고 표현한다.

무시무시한 한국 자본주의 진화의 종점

생태계가 건강하지 않다는 것은 생태학에서 복원성(resilience)이 약하다고 하는데, 외부 충격이 왔을 때 원 상태 혹은 새로운 균형을 찾아갈 복원력이 떨어지는 것을 종다양성이라는 변수로 표현한다.

경제사회 시스템에 이런 걸 집어 넣어보면, 종다양성이 떨어진 사회는 독재의 가능성이 무척 높아진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DJ가 좋아했던 표현대로라면 소위 ‘다이나믹 코리아’라는게 이것인데, 요즘 유행대로 표현하면 ‘양극화’라고도 할 수 있다.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있는 놈들만 살아남고, 소위 생태계의 ‘생산자’ 즉 ‘별 볼 일 없어 작아보이는 것’들은 죽을 수 밖에 없는 게 한국 자본주의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진화의 종점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생산자와 생태계의 중간 연결고리가 끊어진 생태계는 붕괴한다.

하여간 사람들의 표현을 빌려 쉽게 표현하자면, 한국 자본주의가 일류 재벌 그리고 1류 직장인 공무원만 남고 나머지 것들은 사라져주었으면 하는 소위 ‘일류병’에 단단히 걸린 셈이기는 하다.

돈 없는 사람도 좀 살고, 못 생긴 사람도 좀 살고, 머리 나쁜 사람도 좀 살 수가 있어야 멀쩡한 사회인데, 이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 아니면 도대체 세상을 살 수가 없는 이 시스템은 그 자체로도 장기적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전환되지 않을까?

회식 자리의 심각한 발언 "지방 방송 꺼라"

사람들은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그런 것이라고 쉽게 표현하지만, 6.25 이후의 재건시절이나 박정희의 유신경제 보다 지금이 더 먹고 살기 힘든가? 조선일보에서는 배고파서 죽겠다고 난리를 치지만, 사실 단군이래로 한민족이 가장 풍요로운 시절이 노무현 시절 아닌가? 지표상으로는 그런데, 막상 돌아가는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부동산 때문에 그런가?

"지방 방송은 끄라"고 회식 자리에서 말을 못하게 하는 나라는 좀 너무 심했다. 지방 방송도 먹고 살고, 별 볼 일 없는 사람도 숨을 좀 쉴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시스템은 일류 외에는 아예 멸종을 시키려고 하는 것 같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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