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기 1위 영화 배경 영월엔 극장이 없다
        2006년 11월 29일 08:1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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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라디오 스타>의 최곤과 일편단심 매니저 박민수는 그 후 어떻게 됐을까. 결국 매니저와 재회한 최곤은 떠나면 그만이지만, 정작 그를 스타로 빛나게 만들었던 주변의 ‘빛’(영월 지역민)들은 ‘영월’을 떠날 수 없다.

    <라디오 스타>가 2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었으며, 영화에 대한 칭찬도 자자해 재개봉 요구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이 영화에 등장한 영월 지역의 장소들도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영월 시내에 몰려있는 곰세탁소, 청록다방, 사팔종합건재철물, 중국집 영빈관 등이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시인 심재상(관동대 교수)씨는 <강원일보>를 통해 “라디오 스타에서 영월은 서울 제국의 유배지일 뿐이다. 사실, 막막했던 방송에 결정적 방향을 제시한 사람은 다름 아닌 청록 다방의 ‘김 양’ 이었다”면서 “주인공들은 그 모든 영월적인 것들을 멋들어지게 소비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영월은 서울 제국의 유배지

    이 기사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정작, 영월엔 영화 <라디오 스타>를 볼 수 있는 극장이 없다. 서울에선 관객들의 호응에 힘입어 ‘강남 CGV 압구정점’에서 ‘재개봉’을 하고 있지만, 영월 지역민들은 ‘단 하루’ 문화예술회관에서 시사회를 통해 만났을 뿐이다. 그 밖에 영화를 보려면 극장이 있는 인근의 제천으로 나가거나, 12월에 출시될 비디오를 기다리는 방법뿐이다.

       

    서울에선 영화 음악 사운드 트랙이 품절되고, 인터넷에선 네티즌들이 선정한 좋은 영화 1위로 꼽히는 등 영화 <라디오 스타>의 흥행 기록이 계속 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영화의 진짜 주인공인, 엄마가 보고 싶어 마이크에 대고 울어버린 김 양, 이를 짝사랑하는 중국집 배달원, 커피 값 외상 다는 철물점과 세탁소 사장, 가진 거라곤 운전면허와 태권도 단증이 전부인 백수, 소주잔에 우유를 마시는 선술집 아들 등은 조용하다.

    28일 영월에서 만난 그들은 라디오 스타 최곤이 떠나지 않기를 바랬다. 영월은 최곤에게 재기의 발판을 선사했지만, 과연 최곤은 영월에 무엇을 남겼을까. 영월 지역민이 마음 속으로 그린 라디오 스타의 속편과 영화 속 진짜 주인공들의 ‘실제 삶’을 들여다봤다.

    조용필을 가장 빨리 볼 수 있었던 ‘영월’

    최근 ‘동강의 래프팅’으로 각광 받고 있는 영월은 왕년 가수 왕 최곤 만큼이나 한 때는 ‘잘 나가는 도시’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한 중석 광산’이 있던 영월은 강원도에서 가장 큰 장이 들어섰으며, 서울대 광업학과를 최고 인기 학과로 만들기도 했다. 극장은 기본이고, 나이트, 카바레 등에서 전국을 통틀어 ‘조용필’을 가장 빨리 볼 수 있는 도시였다. 80년대인 그때만 해도 영월의 인구는 13만을 육박했다.

    그러나 지금은 강원도에서 두 번째로 고령화된 도시로서 총 인구는 4만 명을 밑돈다. 지금 영월은 재기하기 위해 관광 및 문화 자원을 특화하고, LNG 발전소 건립을 추진하는 등 각종 사업을 벌이고 있다. 영월 지역민들은 가수 최곤이 몰락해 가는 과정이 영월의 자화상과 닮았다며, 최곤과 영월의 재기가 함께 이뤄지는 라디오 스타의 속편을 꿈꿨다.

    영월군청 문화관광과 전대복 계장(40)은 “좋은 감독이 만든, 좋은 영화 속에 주민들의 인간적 모습이 과장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담겨져 기쁘다. 그러나 영월 주민과 동화되지 않는 미완의 결말은 안타까움으로 남는다”면서 “네티즌 반응을 모니터 해본 결과 관객들도 영월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고 영화 평을 밝혔다.

    이어 그는 “영화 속 최곤처럼 영월엔 과거 화려했던 그 시절을 잊지 못하는 어르신이 많다. 하지만 영화처럼 과거에 젖어있을 시기가 아니다”라며 “지금이야말로 획기적으로 영월을 바꾸어야 할 때이다. 남아있는 4만이라도 더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관광 및 문화 자원을 활성화 시켜 지역 경제 발전에 모두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토로했다. 

    “우리들의 작지만 아름다운 삶"

    영화 속 최곤을 스타로 밝혀주는 ‘진짜 주인공’이자, 이들 가게를 운영하는 영월 사람들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 곰 세탁소 엄기중(70)씨

    영화 속에선 세탁소와 철물점 사장이 1,500원 하는 커피 값에 외상을 달아 전국적으로 망신을 당한다. 그러나 실제 곰세탁소 주인인 엄기중씨는 먹고 사느라 그간 영화 한 편을 본 적도, 술, 담배 등 잡기를 배울 시간도 없었다. 영화 촬영지였건만, 라디오 스타는 보지도 못했고, 국민 배우 안성기나 박중훈도 그리 유명한 사람인줄 몰랐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6세된 첫 아들을 돈이 없어 치료를 못해 먼저 가슴에 묻은 엄씨였다. 지금도 새벽이면 죄책감에 혼자 운다는 그는 15년째 보험을 하고 있는 아내와 함께 돈을 버는 덕에 남은 자식에게 손 벌리고 살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한다.

    그는 "영월이 과거와 달리 이젠 늙은이들만 아는 도시가 돼 버린 것 같다"며 후손들에게 더 나은 공간을 물려주지 못함에 연신 미안해했다. 마치 자신의 잘못 때문이기라도 한 것처럼.

    ▷ 사팔종합건재철물 김승한(43)씨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영월에서 가장 큰 철물점을 운영하는 김승한씨는 자신에 대해 “세월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촌사람”이라며 “남들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35년 된 목재 가구, 40년 이상 된 주판, 저울 등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김씨는 “1등이 있으면 60등도 있어야 한다. 모두가 다 꼭 서울에 가야 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라며 “고향에 오면 같이 술 한 잔 할 친구도 남아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영화 속 최곤이 영월을 떠나고 싶어하는 것에 대해 “과거를 잊지 못해 화려했던 시절의 허물이나 가면을 못 벗는 것이다. 현실에 충실하고자 하는 보통 사람의 심리라고 이해한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것을 지키기 위해 작은 것에 만족하며 영월에 사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하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라디오 스타가 영월의 재기를 다지는 희망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청록다방 김경애(47)씨

    영화에도 직접 청록 다방 주인으로 출연해 전화 접수를 받았던 김경애씨는 평생 화장이라곤 신부 화장 말고 해 본 적이 없는 “여자 같지도 않은 여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녀는 17시간의 노동(새벽6 ~ 밤12)이 화장은 고사하고 씻을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게다가 청록다방은 영월에서 가장 오래된 다방으로서 일년에 딱 한번(어머니 생신)외에는 문을 닫지 않는다. 김씨는 부지런한 것이 ‘손님에 대한 예의’이자, 홀로 딸 둘을 키워낸 비결이라고 공개했다.

    서울살이도 15년 정도 했다는 김씨는 “꼭 내 고향이어서가 아니라, 정말 영월만큼 마음 편하고 민심 좋은 곳이 없다”라며 “라디오 스타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영월에 대해 알게 됐으면 한다”는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 영빈관(중국집) 김종하(38)씨

    “빤질빤질 거리는 (짜장면) 면발 봤어요? 제가 만든 거래요. 항공 촬영으로 영월 전경이 나올 때는 얼마나 가슴이 떨리든지.(웃음)”

    영화 속 짜장면 및 배달부 오토바이, 헬맷, 우비 등을 모두 협찬한 젊은 사장 김종하씨는 영화를 얘기하는 내내 싱글벙글이었다. 8형제인 온 가족을 데리고 제천에 가서 함께 영화를 봤다는 김씨는 최곤이 영월을 떠나려 하는 대목에 가서는 "실제로 영월의 현실이 그렇다"며 말끝을 흐렸다.

    지금 자신의 주변에도 영월을 떠나려고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지만 잡을 수 없다며, 타지에서 정말 잘 되기만을 바랄뿐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영월에 남는 사람이든 떠나는 사람이든 삶에 있어 자신감이 가장 중요하다며, 자신은 영월에 끝까지 남겠노라고 다짐했다.

    8형제 중 네 째로서 앞으로 동생 네 명의 결혼을 책임져야 한다는 김씨 또한 영화 속 최곤처럼 영월이 다시 일어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중국집의 성공으로 지역 경제에 힘을 보태겠다는 다짐과 함께.

    영월도 최곤처럼

    영화 <라디오 스타>가 오는 12. 1일 막을 내린다. 비록, 라디오 스타의 ‘서울 발 소동 속’엔 영월이 빠졌지만, 영월 지역민들은 라디오 스타가 ‘미완의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최곤이 영월 지역민과 동화된 제 2, 3의 속편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수줍게 고백했다.

    80년대엔 강원도에서 가장 큰 장이 들어섰다는 아침 시장. 한참 저녁 찬 거리로 북적거려야 할 시장통엔 한기만 넘나들었다. 이른 저녘 일곱시 무렵임에도 불구하고 시내의 각 점포들은 이미 불이 꺼진 곳이 많았다. 그나마 운영하고 있는 상점은 세일을 하거나 점포정리를 하는 곳이었고, 간혹 달리는 택시도 대부분 빈차였다. 학생들이 북적거려야 할 패스트푸드점이나 분식집도 썰렁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월 지역민들은 재기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영월을 다시 최곤처럼 빛내기 위해 스스로 박민수 같은 매니저가 되기를 자처했다. 사팔종합건재철물 김승한씨는 말한다.

    "남들처럼 떠날 수 있음에도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남아있는 우리의 삶이 정답은 아니다. 비록, 남은 이들의 인생이 영화 속 화려한 삶과는 다를지라도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우리의 삶이 작지만 아름답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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