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대통령 끝까지 갈 것 같다"
        2006년 11월 28일 04:5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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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이 28일 ‘탈당’과 ‘중도 하야’ 카드를 꺼내 보인 것은 26일 제안한 ‘여야정 정치협상회의’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야정 정치협상회의’는 국회의 교착상태를 풀기 위해 노대통령이 직접 정치협상의 전면에 나서겠다는 선언이었다. 현재 국회에는 사법개혁 관련 법안, 국방개혁법안 등 2,600여 법안이 계류되어 있다. 여당에만 기대서는 이들 법안을 처리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음직 하다.

    여당에 대한 불신과 ‘여야정 정치협상회의’

    노대통령의 ‘정치협상’ 제안에는 여당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는 것 같다. 대략 세 가지로 짐작된다.

       
      ▲ 노무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먼저 여당의 정치적 무능에 대한 불신이다. 노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한나라당의 사학법 연계 전략에 말려 제대로 된 법안 처리 하나 못하는 여당이 실망스러울 수 있다. 노대통령은 지난 4월 임시국회 때 사학법 재개정 문제에서 여당의 양보를 당부한 적이 있다.

    그러나 여당의 반발에 밀려 없던 일이 됐고, 그 이후 여야간 교착상태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 최근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처리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여당의 정치력에 대한 기대를 사실상 접은 것으로 보인다.

    당청간의 정치적 불화도 여당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여당과 함께 임기 후반기를 마무리하려면 정치적으로 일체감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노대통령과 여당의 관계는 법적 이혼을 앞두고 별거상태에 들어간 부부에 가깝다. 정계 개편과 맞물려 여당 내에선 노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강도가 점차 세지고 있고 대선 국면에 접어들수록 이런 추세는 더욱 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주요 국정 현안에서 당청간의 정책적 거리도 상당하다. 이라크 파병과 한미FTA 추진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25일 여권 수뇌부 4인회동에선 한미FTA 협정 문제를 놓고 김근태 의장과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 사이에 설전이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김 의장이 "FTA 문제가 심각하다. 정부가 ‘한.미 FTA 반대 범국민운동본부’에 차관급 인사를 보내서라도 적극적인 설득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으나 이 실장은 "그 문제는 법대로 해야 한다. 정부가 사람을 보내 설득하는 모양새는 좋지 않다"고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협상에 응하지 않으면 대통령직 중도 사퇴할 수도

    노대통령이 여당을 제쳐두고 정치 협상의 전면에 나서기로 작심한 이상 한나라당의 협조를 끌어내는 게 관건이 된다. 노대통령이 27일 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임명안을 철회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읽힌다. 노대통령은 28일 "임기 동안 직무를 원활히 수행하자면 이런저런 타협과 굴복이 필요하면 해야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한나라당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서라면 앞으로도 ‘타협’과 ‘굴복’을 감수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나라당은 이미 거부했지만 노대통령은 ‘정치협상’을 지속적으로 제안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노대통령의 ‘탈당’과 ‘중도 하야’ 발언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노대통령은 "임기를 다 마치지 않은 첫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정치협상에 응하지 않으면 대통령직을 내던질 수도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중도 하야가 아니라 그런 극단적 언사를 통해서라도 한나라당의 정치적 협조를 끌어내려는 노대통령의 강한 의지다. 또 ‘탈당’이란 한나라당의 협조를 끌어내기 위해 필요하다면 여당 당적을 버릴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한나라당도 마냥 무시하기 힘들 것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한나라당에 대한 노대통령의 정치협상 제안은 앞으로 더욱 공세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여당의 한 관계자는 "노대통령이 배수진을 친 것 같다"며 "끝(대통령직 사퇴)까지 갈 것 같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노대통령이 탈당을 통해 대통령직 사퇴의 의지가 있음을 보여준 후, 그래도 한나라당이 자신의 제안을 받지 않을 경우 실제 대통령직을 사퇴하는 수순을 밟을 수도 있다고 점쳤다.

    만의 하나 노대통령이 사퇴하게 되면 60일 이내에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하고 각 정당은 30일 이내에 경선을 완료해야 한다. 지리멸렬한 상태에 놓인 여당에겐 별 타격이 없겠지만 박근혜, 이명박 양강이 버티고 있는 한나라당에겐 분열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일각에선 노대통령이 계속 밀어붙일 경우 한나라당도 마냥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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