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년의 싸움 끝에
    체불퇴직금 결국 받아내다
    '국제노동조합'에 퇴직금 받아내는 분투기 최종편-①
        2021년 07월 08일 09:2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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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모, 퇴직금 받은 거 축하해!”

    조카 승우가 영상 통화에서 내게 건넨 인사다. 초등학교 입학 전인 2018년 가을, “퇴직금이 뭐야?”라고 물었던 승우는 그새 3학년이 됐다. 지난 6월 22일 국제식품연맹(IUF)을 상대로 한 ‘퇴직금 청구 소송’의 첫 재판을 앞두고 나는 승우에게 물었었다. “너 그때, 퇴직금 안 주면 칼로 찔러 버리지, 했던 말 기억해?” 이 녀석, “내가 그랬어?”라며 놀라 반문한다. 재작년 노동부 진정 때까지만 해도 ‘기억’했던 조카였다.

    3학년 승우

    ‘남의 일은 3일 지나면 잊는다’고 한다. ‘아직도 안 줬어? 징글징글하네.’ 혹은 ‘아직도 싸워? 받을 수는 있는 거야?’라는 말로 김 빼는 이들보다는 3일 이상 기억해줬던 조카가 오히려 고맙다. 물론 조카 말고도 힘내라고 응원해주며 자신의 감성 자원을 나눠준 이들이 더 많았으니 역시 감사와 따뜻함이 함께 했던 시간이었다.

    다른 한편의 진실을 말하자면, 쪽팔리는 거 죽기보다 싫어하는 까닭에 ‘어떻게든 퇴직금, 받아 내리라’ 다짐하며 분기탱천할 수 있었다. 김 뺐던 이들 또한 내 분기탱천의 응원자로 봐도 무방하니, 그들에게도 감사를 전하고 싶다. (역시 돈이 들어오니 넉넉해지는 걸까?)

    복기 (2018.10.16. ~ 2020.10.8.)

    전국여성노조를 통해 2018년 10월 16일, IUF에 체불 퇴직금을 청구했다. 이후 IUF는 여성노조에 보낸 2차례의 답변과 이듬해 2월 말 주스위스 한국대사관 앞으로 보낸 답변에서 ‘근로계약서 조항상 지급 의무도 없고 계약 위반도 아님’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내 퇴직금 청구의 전제는 ‘근로계약서’가 아니었다. 1년 이상 일한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퇴직금은 대한민국 근로기준법상 강행규정이다. 따라서 IUF가 기대고 싶었던 근로계약서 조항과는 상관없다. 결국 IUF가 원하는 ‘근로계약서가 우선인가’ 아니면 내가 원하는 ‘법대로 할 것인가’를 따지는 게 쟁점이었다.

    2020년 7월 2일, 퇴직금 청구 관련 민사소송을 제기하기까지 나는 국민신문고를 다섯 차례 이용했다. 그 결과, 이기기 위해 (투석할 3개의 돌멩이를 얻어내) 단계별 대응을 계획했고, 그 1단계가 ‘민사소송’이었다. 당시 내 사건을 배당받은 재판부는 ‘어차피 판결을 받아도 집행 강제가 어려울 텐데…’라는 우려의 입장을 변호사에게 전달했다. 나는 재판부의 우려를 ‘법적 효력 여부가 불투명한데 이처럼 많은 수고와 돈을 들여서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로 해석했다.

    반면, 내가 소송에서 우선 기대한 것은 (승소를 전제로) 법원의 판결문이 갖는 ‘공신력’이었다. 굳이 노사관계가 아니더라도 어떤 다툼에서 뒷배가 없는 개인의 주장은 힘을 갖기 어려운 법이다. 그러니 나는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여서라도 내 주장의 ‘뒷배-공신력’이 필요했다. IUF에 퇴직금을 청구한 이후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녀본 뒤 마주하게 된 ‘벽’이었고, 좌절 속에서 피워낸 나름의 현실 감각이었다. 재판부의 우려가 앞으로 내가 마주할 또 하나의 ‘벽’이고 ‘현실’이라면 내가 할 일은 ‘판결문 집행 강제 또는 효력 발생’을 위한 어떤 조건을 만드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해외 거주 피고에게 전달될 소장과 증거자료는 그들 거주국가의 공용어로 번역해야 한다. 번역의 정확성은 번역자의 유자격으로 우선 증명한다. 그게 끝이 아니다. 번역된 사문서를 공문서로 바꾸는 최종 단계엔 유자격 변호사의 공증이 있어야 한다. 결국 소송에서 판결문은 ‘유자격’의 총망라인 셈이다. 이 과정을 이해한다면 판결문의 공신력이 왜 힘이 갖는지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물론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는 경우는 논외로 하더라도.

    2020년 10월 7일, 4차례 시도 끝에 번역 공증을 마쳤다. 변호사는 그 다음 날 공증된 소장과 증거서류를 법원에 직접 제출했다. 이제 소장과 증거서류의 해외 송달 업무는 법원에 그 공이 넘어갔다. 법원은 또한 내 사건의 2차례 변론기일과 선고기일을, 국제소송의 관행인지 소 제기 1년 후인 2021년 6월 22일과 7월 22일, 8월 10일로 이미 지정해둔 터였다.

    첫 재판까지 남은 시간

    첫 재판까지 반년 넘는 시간이 내게 주어졌다. 무엇을 하며 기다릴 것인가? 승소 판결문을 전제로 한 제2, 제3의 대응을 위해 품을 팔기는 아직 일렀다. 이와 별개로 다른 압박 카드의 적용가능성을 지인 변호사에게 문의했고 답을 기다렸다. 성질 급한 내가 ‘기다림’이 반복될수록 점점 차분해지는 것도 새롭다면 새로운 경험이었다.

    2018년 3월 30일 IUF에서 해고 통보를 받은 뒤 (직전 28일 혼자 일했던 한국사무국이 일방 폐쇄되기도 했고 기타 근로계약서 조항에 따라) 3개월치 급여를 받았으니 6월 말까지 한국사무국 업무를 갈무리했다. 이후 7월 한 달 정도 휴가를 가졌다. 마침 해고도 됐고 거주지 전세계약도 끝나가던 터라 (긴 얘기 아주 짧게) 40년 서울 생활을 뒤로 하고 그해 10월 말 군산으로 이주를 감행했다.

    맞다. 퇴직금을 청구한 것이 군산으로 가기 전 10월 16일이었고. 앞서 언급했(고 2019년과 2020년 레디앙에 연재했)지만 2020년 7월 초 민사소송을 넣기까지 나름 쉴 새 없이 달려왔다. 2020년 10월 8일, 3개 언어 번역공증본이 법원에 제출됨에 따라 내 할 일은 우선 끝났고, 내년 재판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그래서일까? 해고 뒤 가졌던 2018년 7월 휴가 때와는 다른 기분의 여유 시간이 내게 주어졌다. 무엇을 하며 기다릴 것인가? <계속>

    필자소개
    전 IUF 아태지역 한국사무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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