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 정치적인 한나라당 윤리위원회
        2006년 11월 27일 06:1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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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가 광주지역 비하 발언과 피감기관 골프 등으로 물의를 빚은 당 소속 의원들에 대한 당 윤리위원회의 징계방침과 관련, 당사자들을 대신해 자신이 벌을 받겠다고 자청했다. 일부 의원들의 반발도 누그러뜨리고 인명진 윤리위원장의 체면도 세워 당내 갈등을 적당히 무마하고 자칫 이 문제가 대선주자 편 가르기로 비화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강재섭 대표는 27일 최고위원회의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의 특정지역 비하 발언과 피감기관 골프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며 “윤리운동을 공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당 대표인 제가 모든 책임을 지길 원한다”고 밝혔다.

    강 대표는 윤리위에 “물의를 빚은 분들도 책임을 통감하는 자세로 임해왔고 국감에서도 열심히 일했다”며 또한 “새 윤리위원회가 본격 가동되기 전에 벌어진 일”이라며 ‘정상참작’을 요청하기도 했다.

       
     ▲ 김용갑 의원 (사진=연합뉴스)

       
     ▲ 인명진 윤리위원장(사진=연합뉴스)

    특히 10.25 재보궐선거에서 김용갑 의원이 공천 탈락 후보를 지원한 것과 관련 “당의 공천과정도 잘못됐고 공천된 마당에 단합해서 하지도 못하는 등 정치적으로 여러 문제가 있다”며 “반드시 윤리(위원회 소관) 문제인가 하는 것도 있고 결국 최종은 대표 책임이 아니겠느냐”고 말해 이와 관련 ‘제명’까지 언급한 인명진 윤리위원장의 주장을 에둘러 피해갔다.

    그는 “일벌백계를 대신해 당 대표가 십자가를 질 수 있도록 해줄 것을 윤리위에 간곡히 요청한다”며 구체적으로 주말을 이용해 김용갑 의원이 한나라당 공천 탈락 후보를 지지해 물의를 빚은 창녕군 등지에서 봉사활동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그렇게 처리하면 당의 화합 속에 더 강력하고, 더 치열한 참정치 운동을 만드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강재섭 대표의 이날 갑작스런 기자회견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이날 오후 당 윤리위원회가 김용갑 의원에 대한 징계 수위를 결정하기로 예정돼 있어 사실상 강 대표가 윤리위에 ‘징계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당장 제기됐다.

    인명진 위원장에 대해 징계 당사자인 김용갑, 송영선 의원이 각각 ‘좌파 성향’, ‘목사들의 착각’ 등 공개적인 비난은 물론 당내 의원들의 반발에 떠밀려 결국 윤리위에 ‘적당선’에 대한 메시지를 보내려는 의도라는 시각이다. 결국 김용갑 의원에는 면죄부를 줘 당내 반발을 무마하는 한편 자신이 책임을 지는 형태로 인명진 위원장의 면도 세워주는 절충안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강 대표는 이러한 시각이 제기될 수 있지 않냐는 지적에 대해 “그럴 수도 있다”며 하지만 “정당 윤리위원회라는 것은 일반 사법부와 조금 다르고 어차피 정당의 정치 속에서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인 위원장을) 영입해 놓은 과정에서 당내 누구하고 가깝다는 오해도 일어났다”며 자신이 책임을 지는 것이 “이런 것(오해)을 단숨에 해결하고 참정치 윤리운동에 전 당원, 의원들의 공감을 받고 2단계 추동력을 얻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윤리위의 징계 강행으로 인 위원장이 특정 대권 주자측과 가깝다는 주장이 확대 재생산되고 결국 집안 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사전 차단하려는 의지도 엿보인다. 당 관계자는 “징계받은 대상이나 이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일부에서 악성 루머를 부풀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이러한 시각을 뒷받침했다.

    강 대표 역시 이날 기자회견에서 “윤리위 처리 과정에 당내 마치 큰 갈등 있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다”면서 그저 “당 개혁 과정의 건전한 현상”, “초기단계의 진통”이라고 애써 강조했다.

    한편 강재섭 대표의 발언이 오히려 윤리위에 김용갑 의원에 대한 징계 근거를 마련해줬다는 해석도 있다. 당의 한 주요 관계자는 “부모야 자식 대신 맞겠다고 나설 수 있겠지만 심판하는 사람이 부모를 대신 잡아넣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결국 당 대표가 벌을 받겠다고 나서 징계 대상자에 대해 확실하게 처벌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적어도 당사자들이 강 대표의 봉사활동에 동참한다면 더 좋은 그림이 나오지 않겠느냐”며 “구체적인 것은 기술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대표 비서실장인 박재완 의원도 “강재섭 대표의 발언을 ‘김용갑 구하기’로 해석하는 것은 ‘낡은 시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강재섭 대표가 징계로 봉사활동을 자처하면서 인명진 위원장의 ‘봉사활동’ 징계 방침을 그가 영입되기 전에 벌어진 일들에도 소급 적용할 수 있느냐는 당내 논란을 일소했다고 지적했다. 박재완 의원은 “윤리위원회의 고민도 덜어주고 당사자의 불명예도 없애주는 새로운 해법”이라고 말했다.

    인명진 위원장은 이와 관련 “오늘 윤리위에서 강재섭 대표가 대신 벌 받는 것으로 벌이 되나, 무시하고 (당사자를) 징계해야 하나를 의논해야 할 것”이라며 “당대표가 벌을 받겠다는 것이 굳이 가이드라인이 된다면 그 일을 한 사람도 벌을 받아야한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인 위원장은 “국민들이 그 만큼 (처벌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논의해보겠다”며 “이 일은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는 게 내 확실한 소견이고 의지”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공당의 대표가 벌을 받겠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며 강 대표의 제안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징계 당사자들의 강 대표 사회봉사 동참에는 “상식으로는 (그런데)”라며 “글쎄, 정치인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물론 윤리위가 김용갑 의원을 징계한다고 해도 징계 수위가 강재섭 대표가 자처한 사회봉사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인 위원장이 언급한 ‘제명’ 수준의 강력한 처벌에서는 크게 후퇴하는 것이어서 결국 집안단속을 위해 말로만 참정치를 주장한다는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면키는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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