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하지 않는 것들,
    여성 징집 논쟁부터 여군의 현실까지
    [책소개]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김엘리/ 동녘)
        2021년 07월 03일 09:0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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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더 이슈에 관한 논쟁에서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말이 있다. “그럼 여자도 군대에 가든지.”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여성 징병 청원 글이 20만 명 넘는 동의를 얻으며 화제가 되었지만, 사실 이러한 글은 청원 게시판이 생겨난 2017년 이후 해마다 올라왔다. 1999년 군가산점제 위헌 판결 이래로 20년 넘게 반복된 주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여성혐오 발언을 정당화하는 ‘최후의 근거’로 꾸준히 출몰한다. 2015년 ‘○○녀’ 발언들이 확산될 때도, 2020년 한 기업의 면접 질문 속에도 ‘군대 가지 않는 이기적인 여성들’의 딱지가 붙어 있다.

    그럼 여성징병제를 도입하기만 하면 지긋지긋한 갈등이 해결될까? 여성징병제는 성평등을 위한 지름길인가? 이 기나긴 논쟁에서 우리가 곧잘 잊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미 군대에 간 여성들, 즉 여성 군인들이다. 1950년 한국전쟁 이래로 이 ‘초남성 공간’에서 분투한 이들은 남성중심적인 군 문화에 맞서고, 때로는 전략적으로 순응하며 자신들의 자리를 만들어왔다. 이 책은 그들의 ‘과거’와 ‘현재’ 이야기로부터 여성징병제라는 ‘미래’를 역추적한다. 물론 여군은 남군과 달리 지원제로 선출되어 장교와 부사관으로 시작하지만, 그 자체로 군대 속 여성의 위치를 드러낸다.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군대와 안보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여성 군인들을 분야별로 인터뷰하고, 군 안팎의 각종 문헌과 영상 자료를 분석해 그들이 어떻게 일하고 성장하는지 보여준다. 부침이 심했던 여군제도의 역사 속에서 여성은 각 시대마다 어떻게 군인이 되어갔는지, ‘군인’이 되고자 했던 그들에게 ‘여성성’은 어떤 의미였는지, 오늘날 신자유주의 경쟁체제가 여군과 남군의 생각을 어떻게 바꾸어가고 있는지 펼쳐 보이며, 납작해진 여성 징집 논쟁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한다.

    여자도 군대 가라? 그들은 이미 군대에 있었다!
    여성 징집 논쟁을 읽는 새로운 관점

    “여자는 군대를 안 갔으니 남자보다 월급을 적게 받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얼마 전 한 기업의 입사 면접에 등장한 것으로 알려진 이 질문은, 해당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 등이 이어지면서 대표적인 성차별 질문 유형으로 각인되었다. 하지만 질문 자체는 어딘가 익숙한 구석이 있다. 1999년 헌법재판소가 군가산점제 위헌 판결을 내린 이후 남성병역의무제에 대한 헌법소원이 계속 청구되어왔다는 점, 여성징병제 청원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생긴 이래로 매년 올라왔다는 점은, ‘군대 가지 않는 여성’을 둘러싼 논쟁의 역사가 짧지 않음을 보여준다. 사실 ‘여성’과 ‘군대’가 만나는 대부분의 이슈에서 한국 사회는 제대로 합의에 이른 적도, 논의의 역사를 제대로 정리한 적도 없다. 이를테면 여자도 군대에 가야 하느냐,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게 싸우는 군인이 될 수 있는가, ‘여성성’은 군 복무를 하는 데 장점인가 등의 질문에서 그렇다. 공통점이 있다면 군대보다는 ‘여자’에 초점을 맞춰왔다는 사실뿐.

    이 책은 언뜻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주제, 즉 미래에 도입될 수도 있는 ‘여성 징병’과 과거부터 지금까지 존재해온 ‘여성 군인’을 잇는다. 물론 병사로 징집되는 남군과 달리 여군은 간부로 출발하지만, 저자는 이들이 그 자체로 군대에서 일하는 여성의 현실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여군들의 이야기로 ‘여성징병제’라는 미래를 그려보면, 우리의 기대와는 거리가 있다. 여성 군인은 1950년 한국전쟁의 발발로 생겨났지만, 오랫동안 특수병과에 소속되어 남군을 보조하는 역할에 머무르다가 1990년에 와서야 일반병과로 통합되었다. 이처럼 ‘립스틱 바르는 여군’에서 ‘위장크림 바르는 여군’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남성을 기준으로 하는 군인상과 남성화된 군 문화 앞에서 ‘결핍’되고 ‘미끄러지는 존재’다.

    예컨대 여성 군인들은 ‘여성성’을 버리도록 훈련받지만, 실제로는 섬세함과 꼼꼼함 같은 ‘여성성’을 여군의 전문성으로 요구받는다. 상관들과의 관계뿐 아니라 부하들과의 관계에서도 인정받기 위한 ‘기싸움’을 벌이는가 하면, 여성이라는 이유로 ‘보호’되거나 “여군인데도 잘하네” 같은 말을 듣는 온정적 성차별의 상황에서도 ‘적절히’ 대처해야 한다. 저자는 특히 군대에서만 ‘미투’가 일어나지 않은 것이 군대 자체의 문화와 조직의 특성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여성 징병의 논의 앞에서 군대 자체를 사유하고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물론 지금껏 여성징병제 이야기가 나올 때 군대를 성찰하자는 주장이 없진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은 군대 안으로 들어가 실제 여군들의 이야기를 통해 살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여군들은 어디에도 적중하지 않는 존재였다”
    군대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생생한 이야기

    한 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그렇다고 이 책이 군대는 나쁜 곳이니 애초부터 여성이 입대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책은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저자는 여성의 입대에 부정적인 주장들이 성폭력을 주된 근거로 내세우는 것에 대해 “여성 군인들의 다채로운 활동을 면밀히 읽지 못하는 것”이기에 편협하다고 지적한다. 이 책에는 성별 분업에 도전하고 싶어 군에 지원했고, ‘여성성’을 거부하는 동시에 신자유주의 경쟁 체제 안에서 전략적으로 활용하기도 하며, 스스로를 계발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분투하는 여군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오늘날 남군들과 함께 군사훈련을 받고 활동하는 그들은 한마디로 ‘우수 인력’으로 여겨진다. 2014년 마침내 육군이 포병·기갑·방공·군종병과를 여성에게 개방하는 등 여군 활용 정책이 꾸준히 확대되기까지 주된 근거는 “우수 인력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책에 따르면 ‘우수인력담론’은 양면적이다. 여군이라는 ‘우수 인력’은 성평등을 성취하는 인력이지만, 그 우수함 안에는 늘 ‘여성성’이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남성과의 동일시를 통해 우수함을 증명하려 분투했던 여성 군인들은, 이제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기계발과 능력주의 담론, 그리고 고기술 정보전으로의 변화라는 흐름 앞에서 ‘여성성’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유도된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여성성’이란 이른바 ‘여성 고유의 능력’으로서 ‘부드럽고 유연한’ 리더십이다. 실제로 오늘날 여성 군인들은 이를 적절히 활용하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으며, 이는 다시 여성 군인에 관한 지식을 생산하고 구속하고 있다는 사실이 여러 여성 군인들의 인터뷰에서 드러난다.

    “다르지만 평등하게”를 표방하는 여군 활용 정책에 대해 저자는 “차이를 인정하는 평등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밀히 들여다보면 전통의 회귀”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여성적인 것’은 여성의 고유 능력이 되는 동시에 성 역할을 재생산한다. 이에 따라 여군은 언제나 접두어를 부착한 군인, 즉 ‘여/군인’이 되었으며, “능력 있는 군인으로 소환되어 젠더화된 여성 군인으로 조율”되었다는 것이다. 여성이어도, 여성이 아니어도 안 되는 그들은 “어디에도 적중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존재”로서 ‘군대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맞닥뜨리는 딜레마를 생생히 보여준다.

    “군대는 누가 가든 갈 만한 곳인가?”
    성평등 프레임을 넘어서는 ‘군대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은 정말 여성이 군대에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말일까? 책에서 인용하는 2018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여성은 군인이나 경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집단이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집단보다 “여자도 군대 가야 한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속마음과 일치하지 않는 이 말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는 걸까? 저자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군 복무가 과거처럼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을 강화하는 맥락의 ‘혜택’으로 작용하기보다는 남성들만의 ‘시간 낭비’이자 ‘손실’로 여겨지면서 ‘공정’이라는 이름 아래 여성혐오 감정으로 폭발되는 것에 가깝다고 본다. 이처럼 군대에 대한 인식은 시대에 따라 의미를 달리하는, “근대국가가 생성되면서 축적된 역사적·문화적 유물이자 정치적 아키텍처”로서 “정치경제적 문제이자 사회구성물”이다. 그렇기에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가 중요하다. 이 책은 군대를 “당연하고 절대적인 신화이자 항상 거기에 있는 법적 권력”으로 여기며 질문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군사안보는 왜 공공선인가?”, “시민권은 왜 병역의무를 통해서 성취되어야 하는가”와 같은 좀 더 나은 질문을 던짐으로써 “군대는 갈 만한 곳인가”로 논의의 초점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여성징병제가 성평등과 동의어라고 보지도 않지만, 그와 별개로 군대 문제가 성평등 프레임으로만 다루어져서도 안 된다고 본다. 이를테면 여군의 증가는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이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사례에서 보았듯이 제국주의적 전쟁의 명분으로 ‘이용’되는가 하면, 일본 자위대가 여군의 돌봄 이미지를 앞세워 전쟁과 군대의 확장에 대한 질문을 은폐했다고 지적한다. 물론 군대 안에 여성들이 증가하는 현상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성평등 관점에서 보면 여성들이 금기를 깨고 도전하는 영역이 늘어난다는 점, 몸의 움직임을 통해 자신들의 영역을 넓히고 임파워링(empowering) 한다는 점, 그리고 여성의 존재만으로도 이성애 남성 중심으로 이루어진 군대의 민낯을 드러내고 차별 없는 군을 만들도록 각성시킨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성평등, 능력 있는 여성, 그리고 여성의 증가만이 우리가 군대에 기대할 수 있는 전부일까? 이 책에 따르면 한국에서 이스라엘은 여성징병제를 실시하는 국가로 흔히 인용되지만, 이스라엘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시민권을 얻지 못한 것으로 평가받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저자는 스웨덴의 사례를 들어 사회의 성평등 정도가 여성의 군 복무의 효과도 좌우하며, 모든 영역에서 성평등이 높은 스웨덴은 군대 역시 성평등을 성취하는 방법으로 여성징병제를 실행한다고 강조한다. 그렇기에 “군사적 가치가 시민사회를 압도하기보다는 시민사회의 다양성과 비폭력 탈군사화 가치가 군을 장악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여성 징병 주장에는 과연 이러한 큰 그림이 담겨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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