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수용대상이 아니다"
    2006년 11월 27일 05:0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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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전동휠체어를 끌며 차도로 돌진했다. 열 명 남짓한 전경들이 달려들어 길을 막았다.  한 사람이 포위되면 또 그 뒤에서 두 번째 사람이, 두 번 째 사람이 포위되면 또 그 뒤 세 번 째 사람이 전동 휠체어를 끌고 맹렬한 속도로 연신 차도를 향해 달려들었다.

지긋지긋했다. 에바다 투쟁 10주년이 되어도 성람재단에서, 광주인화학교에서, 정립회관에서 장애인 성폭행 및 수 억 만원의 공금 횡령이 보란 듯 버젓이 반복됐다. 이사장이 구속돼도, 그의 아들과 친인척들이 다시 그 자리에 앉으면 그만이었다. 현행법은 불법 행위가 발견되면 보건복지부 장관이 재단 임원의 해임을 명령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강제 규정은 아니다.

이 고리를 끊기 위해, ‘성람재단 비리 척결 및 사회복지사업법 전면개정을 위한 공동투쟁단’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 등 45개 장애인단체들이 27일 종로 구청 앞에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삼보일배 행진을 벌였다.

   
 ▲ 장애인단체들이 27일 종로 구청 앞에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대회사을 통해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시설 생활의 선택을 강요받고, 시설장의 영리 사업의 수단이 돼 오직 시설에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강요 받아온 이들의 거세당한 인권을 뼈아프게 되새겨야 한다"면서, 시설 비리를 끊기 위한 대안으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 및 공익이사제 도입’을 제시했다.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한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은 "스스로 표현하지 못하는 인권의 사각 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시설이 이용하고 정부는 이를 방치하고 있다"면서 "사회복지법 개정안은 장애인들에게 ‘목숨’ 과 같은 것이다. 올 정기 국회에서 통과 할 수 있도록 국민들이 힘을 실어 달라"고 호소했다. 

현 의원이 발의한 사회복지법 개정안은 ▲ 운영위원회가 추천하는 공익이사를 이사 정수의 3분의 1 이상 선임 ▲ 임원ㆍ시설장의 자격 요건 강화 ▲ 인권침해가 발생한 법인의 설립 허가 취소 ▲ 법에 시설 운영위원회 구성을 명시 ▲ 시설 이용자의 입ㆍ퇴소권 보장 등을 주 내용으로 담고 있다.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는 "지역 사회에선 싼값에 장애인들을 수용 시설로 몰아넣고, 시설에선 공금을 횡령하고, 부모들도 가슴을 치는 것으로 대신하는 것으로 장애인의 인권에 침묵했다"면서 "그 침묵의 카르텔로 인해 에바다 투쟁이 지금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젠 최소한의 법적 장치를 마련해 그 뿌리를 뽑아버리자"고 다짐했다.

기자 회견 후 벌어진 삼보 일배는 집회가 신고된 인도에서 북소리에 맞춰 진행됐다. 몸이 불편해 삼보일배에 동참하지 못하는 장애인들은 전경들이 있는 차도를 향해 휠체어를 몰았다. 전동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은 전경들의 포위에 대항하며 "우리가 이 빗속에서 장난 하는 줄 아느냐? 사는 게 장난이냐?" 고 연신 외쳤다. 장애인들은 온 몸으로 전경 방패에 발길질을 하느라 휠체어에서 찬 아스팔트 바닥으로 떨어졌다.

   
  ▲ 삼보일배를 하고 있는 참가자들 (사진=오마이뉴스 이상욱 인턴기자)
 

땅에는 빗물이 흥건했고, 하늘에선 빗방울과 칼바람이 몰아쳤다. 말리는 전경도 이를 지켜보는 시민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 다친다고, 위험하다고, 큰 일 난다고 전경도 시민들도 이구동성이었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차도 위에서, 인도 위에서, 휠체어 위에서 찬 바람에 연신 기침을 뱉어내며, "사회복지사업법을 개정하라"고 외치고 또 외쳤다.

어린 시절 본의 아니게 시설 생활을 겪어야 했다는 김광이(42, 지체장애 1급)씨는 “동정이나 시혜가 아닌, 지자체가 책임질 수 있는 합법적 장치가 필요하다”면서 “시설 비리 척결은 장애인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당연한 ‘인권’이다. 일반 시민들도 우리와 같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우리의 요구를 알아야 할 권리가 있는데, 전경들의 포위가 아쉽다”고 말했다.

5 대 희귀병인 근육 장애를 앓고 있는 김판수(43, 근육장애 1급)씨는 “장애인의 80%는 후천적이다. 일반 시민들도 언젠가 장애인이 될지 모른다는 객관적인 생각으로 우리를 대등하게 봤으면 좋겠다. 인간답게 살 권리는 비장애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다”면서 “장애인들이 시설에 수용 되는 것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오늘 내 활동이 생각조차 스스로 표현하지 못하는 시설 장애인들에게 많은 힘과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삼보일배 중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장애인 단체 소속 관계자와 청각 장애인 등 8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이에 대해 장애인 단체 관계자는 "휠체어 장애인들이 행진을 하기엔 인도 사정이 좋지 않아 차도 진입을 시도 할 수 밖 에 없었다"면서 "청각 장애인들도 의사소통이 잘 안돼 오해로 시비가 붙은 것 뿐”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이날 오후 서울 종각역에서 행진을 시작해 오는 29일까지 충정로와 마포대교 등을 거쳐 국회 앞까지 삼보 일배를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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