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독감류 전염병 근원 "고기 너무 먹어서"
    2006년 11월 27일 11:2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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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 동물인 맹수는 먹이 피리미드에서 맨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다. 그 중 특히 호랑이나 사자를 동물의 왕이라 한다. 생산자인 식물이 맨 아래를 차지하고 그것을 먹는 초식 동물이 1차 소비자, 그것을 잡아먹는 육식 동물이 2차 소비자가 되는데, 소비자로 갈수록 수가 적어져 피라미드 구조처럼 된다.

그러나 생태계를 먹이 피라미드로 보지 않고 먹이 사슬로 보면 시각이 달라진다. 동물의 왕이라 해도 먹이 사슬에서는 한 구성 부분일 뿐이다. 최종 소비자는 다시 미생물인 박테리아에 의해 분해되고 그것이 원점으로 돌아가 식물의 먹이가 되어 먹이사슬이라는 순환의 구조가 완성된다.

먹이 피라미드에서 보면 아래 부분을 차지하는 생물은 윗부분의 소비자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 같다. 말하자면 식물은 초식동물을 위해 존재하고 초식동물을 육식동물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먹이 사슬에서 보면 거꾸로의 관점이 가능해진다. 식물은 자신을 동물에게 먹이로 기꺼이 제공하지만 그 동물을 통해 자기 자손을 널리 번식시킨다. 벌이나 나비를 통해 씨앗을 퍼뜨리고, 새나 초식동물의 배 속을 통과하면서 씨앗의 껍질을 부드럽게 하여 발아를 촉진하거나 멀리 퍼져나갈 수 있다.

   
 
▲ 귀농한 한 농가에서 장독대 옆의 닭들이 정겹게 모이를 쪼고 있다.(사진 김성철)
 

그러면 초식동물도 거꾸로 육식동물을 활용하는 것이 가능할까? 동물의 왕국 같은 프로를 보면 맹수가 온순한 초식동물을 잡아먹는 장면만 나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초식동물을 불쌍하게 보게 한다. 하나하나 개별 장면을 감정을 갖고 보면 그렇게 보이는 게 정상일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잡아먹음으로써 초식동물의 개체수를 조절하는 효과가 있다. 다르게 말하면 초식동물이 자신의 개체수를 조절하기 위해 육식동물을 끌어다가 스스로 먹이를 제공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아프리카 동물의 세계에서 맹수의 사냥 성공률은 25%밖에 되지 않는다 한다. 그러니까 사냥 실패율이 75%나 된다는 얘긴데, 다르게 말하면 늘 75%는 굶주림에 시달린다는 말과 같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오만한 인식

생태계를 이렇게 먹이사슬로 이해하면서도 일방적인 게 아니라 쌍방적인 구조로 이해해야만 생태계가 어떻게 균형을 유지하는지를 알 수가 있다. 그러지 않고 일방적인 먹이 피라미드 구조로 이해하면 균형 맞추기를 이해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궁극의 최종 소비자인 인간만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오만한 인식을 쉽게 갖게 된다.

모든 생명은 그 나름대로 진화의 노력을 통해 현재 최고의 완성태를 실현하고 있다 한다. 그러니까 미생물이 제일 미천하고 그 다음 덜 미천한 식물을 거쳐, 초식동물, 육식동물, 포유동물, 영장류, 인류 순으로 점점 우월해지고 진화한다고 봐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최종덕 지음, “시앵티아” 2003, 당대, 참고)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다윈의 진화론을 제국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욕심을 합리화하는 명분론으로 이용했다는 사실이다. 즉, 초식동물이 미천하듯이 초식을 주식으로 하는 사람들을 미개하고 보았고 육식동물이 우월하듯이 육식을 주식으로 하는 자신들을 우월하다 했다.

나아가 초식동물을 육식동물이 잡아먹듯이 초식을 하는 사람들을 육식을 하는 사람들이 지배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에 합당하다고도 했다. 이들은 이를 더 체계화하기를 초식 중에서도 가장 미천한 음식을 잡곡밥으로 보고 그 다음이 쌀밥, 그 다음이 밀, 그리고 최종적으로 우수한 음식을 고기라 했다.

“짐승들은 어느 놈 할 것 없이 다 똑똑해요.”

얼마 전 충북 보은에서 소 키우며 농사짓고 계신 한 농부의 말씀은 삶으로 체득한 모든 생명의 평등권을 일갈한 것이었다.

“개보다 소가 더 사람 말 잘 알아듣고 똑똑하다는 데 진짜 그런가요?” 했더니, 뭔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눈빛으로 한순간 나를 쳐다보고는 말했다. “짐승들은 다 똑똑해요. 어느 놈이 덜하고 더하다고 할 수 없지요.”

모든 생명이 다 나름대로 진화적 완성태를 보여주고 있다고 했던 말을 이 농부는 한마디로 정리하고 있는 셈이다. 말하자면 모든 생명은 균형 잡힌 먹이사슬에서 평등하다는 진리를 삶으로서 체득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육식동물을 폄하하거나 육식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것의 과잉을 경계하고자 함이다. 먹이 피라미드에서 최종 소비자가 최상층부인 것은 최고로 우월하다는 뜻이 아니라 제일 개체수가 적다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 최종 소비자인 인간은 어떠한가? 동물 중에서 인간만큼 개체수가 많은 것도 없을 것이다. 현재 세계 인구가 평균 일인당 사는 데 필요한 면적이 1.8ha인 것에 반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현재 그것의 두 배 가까운 3.0ha를 쓰고 있다고 한다.(경향신문, 2006년 11월 25일 참조) 세계 인구가 한국 사람처럼 소비를 하면 지구가 두개는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아마 세계 최고로 소비를 많이 하는 미국처럼 모든 사람이 산다면 지구는 몇 개가 더 필요할 것이다.

과잉육식 온갖 질병의 근원

소비가 많이 늘어난 것 중 제일 비중이 큰 것은 에너지이고 그 다음이 육식이다. 에너지의 과잉 소비는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육식을 주로 얘기하고자 한다.

우리나라는 최근 25년 동안 달걀이 두 배, 돼지고기 세 배, 우유 여섯 배 증가했다. 우리 밥상에서 육식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질병도 따라서 높아졌다. 그 중 눈에 띄는 병이 대장암이다. 초식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장은 서양 사람들에 비해 길다. 소화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리다보니 장이 더 길도록 진화한 것이다. 그런 긴 장에 고기가 들어가면 오랜 시간 고기 단백질이 장에 머무르면서 좋지 않은 가스와 독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장을 공격하여 각종 질병과 암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고기들이 양은 많아졌지만 질이 나빠졌다는 사실이다. 왜 나빠졌을까? 그것은 근본적으로 대량사육 방식에 기인한다. 요즘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조류독감도 마찬가지다. 닭은 케이지(cage)라는 몸만 겨우 들어가는 조그만 우리에서 꼼짝달싹 못하게 만들어 잠도 못 자게 밤새 불을 밝혀 평생 계란만 낳게 만드는 기계로 키워지고 있다. 계란은 당연히 무정란이다.

돼지도 그 생명권이 박탈된 지 오래이며 소도 마찬가지다. 지금 소들은 섹스할 자유도 없다. 수컷 정액을 사다가 사람이 손으로 암컷의 질을 통해 자궁 속에 넣어 임신을 시킨다. 정액을 생산하는 종우(種牛)도 불쌍하기는 매한가지다. 종우에게서 정액을 받기 위해서는 암컷 흉내를 내는 수컷이 필요하다. 발정 난 암컷처럼 속여서 종우가 그 위를 올라타게 한 다음 정액을 쏟아내면 옆에 있던 인부가 바가지로 잽싸게 낚아채어 정액을 채취한다.

"하필 수컷으로 하여금 암컷 역할을 하게 하냐"니까 암컷을 갖다 놓으면 자칫 암컷 질로 종우의 생식기가 삽입되어 정액을 채취하는 데 실패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참 인간이란 모질기가 끝이 없다.

게다가 지금 가축들은 항생제 오염이 심각하다. 우리나라는 특히 항생제 남용이 세계 최고란다. 항생제란 세균을 죽이기 위한 것인데 세균만 죽이는 게 아니라 유익한 미생물까지 죽이는 데 문제가 심각하다.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다. 항생제를 남용하면 유익 미생물까지 죽이게 되므로 가축이 건강하기 힘들다. 더 문제는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바이러스가 발생하는 일이다.

제일 병에 약한 닭

지금 전국을 시끄럽게 만드는 조류독감 바이러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축 중에 제일 병에 약한 게 닭이다. 그 다음이 돼지이고 제일 건강한 것이 소다. 문제는 가축을 키우는 환경과 먹이, 그리고 종자에 있다.

모든 생명이 다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동물들은 집단 생활을 조심해야 한다. 옛날 닭들은 한 집에 그저 10여 마리 정도 키우면서 집안 마당을 구석구석 뒤지고 다니며 벌레를 잡아먹거나 풀들을 뜯어먹었다. 돼지도 한 두 마리 정도 키우면서 사람이 못 먹는 것을 먹여 소중한 거름을 만들었다. 일꾼 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사람도 집단생활을 통해 병이 잘 전염된다. 아이들이 어린이집 갔다 오거나 학교 갔다 오면 감기 옮아오고 전염병 옮아오기 일쑤다. 아이만이 아니라 요즘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접촉하며 살고 있어 바이러스 입장에서는 참으로 살기 좋은 환경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회사에서 식당에서 길거리에서 숱한 불특정 다수와 원하지 않는 스킨쉽을 하며 살아간다. 이 얼마나 바이러스가 좋아하는 환경이겠는가?

   
 
▲ 닭장에 많은 닭들이 사육되고 있지만 앉지도 못하고 꼼짝달싹 못하는 케이지에 갇힌 닭들에 비하면 이정도는 행복한 닭들이다. 게다가 이 닭들은 주인이 직접 만든 발효사료를 먹기 때문에 거의 질병이 없다.(사진 김성철)
 

어쨌든 근본적인 문제는 가축들이 걸리는 병이 사람에게도 전염된다는 사실이다. 짐승에게서 사람에게 전염되는 질병들은 피해가 심각해 치사율이 높다. 원숭이로부터 온 에이즈나, 쥐로부터 온 흑사병, 닭으로부터 오는 조류독감, 그리고 에볼라 바이러스도 침팬지로부터 전염된다는 학설이 있다.

초식인 작물들이 걸리는 병이 사람에게 전염되는 일은 결코 없다. 얼마 전 테러리즘이 세상을 시끄럽게 할 때 미국에서 탄저균을 테러리스트들이 우편을 통해 퍼뜨린다고 하여, 뭘 모르는 사람들은 고추가 잘 걸리는 탄저병과 같은 것인 줄 알고 오해한 적이 있다. 다만 이름만 같은 것 일뿐인데 말이다.

가축의 병이 전염되는 근본원인은 대량사육

그리고 가축의 병이 전염되는 근본의 문제는 대량사육 방식에 있다는 사실이다. 작물도 대량으로 농사를 지으면 반드시 병충해를 피할 수가 없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런 대량 사육 방식은 다 자연과는 괴리되어 이뤄진다는 점이 더 문제를 키워준다.

원래 고기는 명절이나 제사 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명절이라 해도 절대 고기가 대표 음식은 아니었다. 추석은 송편, 설날은 떡국, 단오날은 백가지 나물, 대보름엔 오곡밥, 동지엔 팥죽 등 대부분의 대표음식은 초식이었다. 고기가 귀하기도 하였지만 일상적으로 먹어서는 안되는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식물성 단백질의 대명사인 콩도 과잉섭취를 경계했고, 그것으로 만든 두부조차도 자주 먹는 음식이 아니었다.

다만 콩으로 만든 장류들은 단백질의 독성이 발효를 거쳐 분해된 것이라 일상적으로 먹어도 별 상관이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가축도 먹기 위해 키운 것이 아니라 일을 시키거나 거름 만드는 데 쓰기 위해 키웠다. 사실 가축은 순환농업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주요 고리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가축은 농경에서 보조적인 위치에 있었다.

서양에서도 육식이 일반화된 것은 산업화 이후이다. 일반 서민들은 밀과 빵을 주식으로 했고 육식도 유제품, 예컨대 우유나 우유를 발효시켜 만든 치즈나 요구르트 등을 섭취한 것이다. 서양에서 고기가 주식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광활한 목초지의 개발도 큰 역할을 했지만 무엇보다도 곡식으로 가축을 키우면서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커지기 시작했다.

곡식으로 사료를 만들어 가축을 키우면서부터 가축은 자연에서 멀어지고 인공적인 울타리에 가둬졌다. 비로소 대량사육이 가능해진 것이다. 좁은 공간에서 대량사육을 하다보니 감염의 가능성이 많아져 항생제 사용이 많아진다. 항생제만이 아니라 성장촉진 호르몬제 같은 화학약품이 무분별하게 투입된다. 이렇게 고기가 자연으로부터 격리된 공간에서 공장처럼 생산되면서 사람의 건강을 더욱 위협하게 되었다. 광우병이나 조류독감이니 구제역이니 하는 것들이 다 그렇게 생겨났다.

사람 5명 먹을 곡식이 가축 사료로

문제는 더 있다. 세계 곡식 생산량 중 1/3이 가축의 사료로 소비된다는 사실이다. 사람 다섯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곡식으로 한명 먹을 수 있는 고기를 생산하는 데 쓰이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최근에는 유전자를 조작해 만든 곡식으로 사료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하여간 이런 시스템이 세계적으로 기아 인구를 늘리고 자연을 파괴하는 주범이 되고 있다. 말하자면 이런 시스템을 통해 소수자들이 다수자들의 먹을거리를 빼앗아 폭식하고 그것으로 남는 음식은 자연을 더럽히는 오염원으로 버리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열대우림 같은 지구의 허파들을 파괴하고 있으니 참으로 분통터지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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