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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종일 뙤약볕 아래,
    연중 가장 바쁜 모내기철
    [낭만파 농부] 난리 치른 듯 어수선
        2021년 06월 29일 09:1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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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한 달 가까운 모내기철이 끝났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린다’는 연중 가장 바쁜 시절. 꼭두새벽 일어나 뙤약볕 아래 온종일 종종거리는 농가의 풍경이 그대로 펼쳐지는 때.

    모내기는 논바닥에 모를 꽂아 심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오랜 준비가 필요한 공정이다. 못자리의 모가 쑥쑥 자라 옮겨 심을 때가 다가오면 논배미를 만들어야 한다. 논배미 만들기는 모내기 준비과정을 말하는데 논두렁을 손보는 일에서 시작된다. 허물어지거나 낮아진 논둑을 손보는 작업으로 요즘은 ‘논둑조성기’라는 기계의 힘을 빌리는 게 보통이다. 트랙터에 매단 기계가 논둑을 지나가면 매끈하고 가지런하게 보강된다. 논둑 상태에 따라 2~3년에 한 번 이 기계를 이용하는 편이다. 올해는 우리도 3년 만에 논둑조성기를 돌렸다. 쓸 때마다 참 편리한 기계라는 감탄이 절로 난다.

    이어 논둑치기. 논둑에 풀이 우거지면 경계를 확인하기 어려워 논갈이 작업에 애를 먹는 탓에 예초기를 돌려 말끔히 쳐내야 한다. 올해는 그나마 예초기를 돌릴 곳이 많이 줄었다. 논둑조성 과정에서 풀이 흙으로 덮인 덕분이다. 그럼에도 닷새 동안 예초기의 진동과 압력과 싸워야 했다.

    다음은 쟁기질(애벌갈이). 수북이 자란 풀을 갈아엎고 써레질을 쉽게 하는 작업이다. 이 상태에서 모내기가 다가오면 농부는 물 잡기에 나선다. 올해는 다행히 가물지 않고 때때로 비가 내려준 덕분에 물이 모자라 애를 먹는 일은 없었다. 논배미에 물이 철렁거리면 흙을 잘게 부숴 묽은 반죽상태로 만드는 로터리작업과 바닥을 판판하게 다듬는 써레질이 이어진다. 트랙터 작업이 정교하지는 않은 경우 높낮이가 고르지 못한 곳이 생기는데 레이크(열두발 쇠스랑)로 일일이 평을 잡아줘야 한다.

    모판나르기

    써레질을 한 뒤 사나흘 동안 흙탕물이 가라앉으면서 논바닥은 묵이나 젤리 상태로 끈끈하게 굳어진다. 모내기 공정에서는 모판 나르기에 가장 많은 품이 든다. 다 자란 모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논배미로 옮겨 나르는 작업이다. 모판을 못자리에서 뜯어내 트럭에 실어 여러 논배미에 부린다. 기계를 쓸 수 없고 다 손으로 해야 하니 일손이 많이 들 수밖에. 올해도 벼농사두레 회원들이 대거 달려들고, 시골살이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청년들까지 서른 넘는 이들이 힘을 보탠 덕분에 여유 있게, 마을잔치 벌이듯 왁자지껄 일을 끝낼 수 있었다.

    모내기 또는 고요속의 외침

    정작 모내기는 ‘고요 속의 외침’처럼 싱겁다. 이앙기 운행자와 보조인력 단 둘이서 하는 따분한 작업. 못줄을 띄워 모를 낸 일꾼 수십명이 광주리에 이고지고 날라 온 들밥과 새참으로 동네잔치를 벌이던 손모내기 시절의 풍경일랑 더는 떠올리지 마시라. 읍내 식당에서 여느 때처럼 시켜먹는 점심에 빵과 음료로 때우는 새참. 나흘 동안의 심심한 잔치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래서 우리는 모내기를 무사히 끝냈다는 핑계로 따로 잔치를 열었다. 이름하여 ‘모내기 무사완료 가든파~뤼’. 야외등을 환하게 밝힌 잔디마당에서 저마다 바리바리 싸들고 온 푸짐하고 맛있는 저녁. 이날은 모닥불을 피워 고기도 구웠다. 새내기 회원 가운데 대중음악 뮤지션이 함께 해 특별공연을 열고, 기타반주에 맞춰 이어지는 떼창과 <바위처럼>에 맞춘 떼춤까지. 이슥토록 ‘광란의 밤’이 펼쳐졌다.

    모내기 끝낸 자들의 ‘가든파튀’

    모내기철 한 달을 지나며 얼굴은 검게 그을렸고, 논일에 마를 새 없던 손도 많이 거칠어졌다. 치우고 정리할 틈이 없던 집안 꼴은 한 바탕 난리를 치른 듯 어수선하고, 텃밭에는 풀이 밀림처럼 우거졌더랬다. 그래도 간만에 맛보는 이 여유로움과 평화는 달콤하기만 하다. 거기에 잔치까지 더하니 그야말로 금상첨화 아닌가.

    아무튼 잔치가 끝나고 나면 다시 일상이 펼쳐지게 돼 있다. 이앙기가 제대로 심지 못해 군데군데 구멍이 난 곳에 모를 꽂아 넣는 ‘모 때우기’에 또 닷새를 종종거려야 했다. 1만평 드넓은 논배미를 꼼꼼히 메울 순 없는 노릇이고, 심하다 싶은 곳만 대충대충 때웠는데도 말이다.

    올해는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손님들이 찾아왔다. <봇따리 농촌학교>라 해서 예비 귀농인들이 참여하는 2박3일의 농사 탐색과정. 그 가운데 1박2일 프로그램이 내게 맡겨진 것. 참가자들이 대부분 20대로 꾸려져 조심하고 섬세하게 다가가야 했다. 그렇게 보고 듣고, 궁금한 점은 캐묻는 모습이 무척이나 진지하다. 한 시간 동안, 뙤약볕 아래 모 때우기를 체험하는 실습을 했다. 애초 ‘피사리’가 예정되었으나 올해는 물 사정이 우렁이가 제몫을 다하면서 잡초가 거의 올라오지 않아 대체한 작업이다. 벌겋게 상기되고 땀을 뻘뻘 흘리며 “농부님들 참 대단하세요!”를 연발하는 이들에게 벼농사가 어떤 모습으로 자리 잡았을지 몹시 궁금하다.

    <봇따리 농촌학교> 참가자들의 모 때우기 체험

    모내기철은 지나갔다. 이제 김매기철이 다가온다. 앞서 얘기했듯 아직까지는 잡초가 거의 올라오지 않아 김매기에 애를 먹을 일은 없어 보인다. 어쨌거나 김매기 철도 지나면 우리는 다시 ‘양력백중놀이’라는 이름의 잔치판을 연다. 올해는 ‘씨앗받는 농부’라는 밭농사 영농조합과 함께 하기로 했다. 무더위에 지친 몸을 시원한 계곡물에 담그고 닭백숙으로 허해진 원기도 채울 수 있겠지.

    이렇게 밤꽃 피는 유월이 가고 뜨거운 여름이 오고 있다.

    필자소개
    시골농부, 전 민주노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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