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적 시장경제 vs 노동 중심 국민경제
        2006년 11월 27일 12:5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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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개 연구소가 모였다. 대안연대, 민주사회정책연구원,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성공회대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 세교연구소, 좋은정책포럼, 진보정치연구소, 참여사회연구소, 코리아연구원, 희망제작소.

    ‘진보’라거나 ‘개혁’이라는 세평이 따라 붙는 유명한 연구소 열 개가 모인 것도 대단하거니와, 이 연구소 그룹들이 <위기에서 대안으로>라는 이름으로 대안 찾기 합동 토론회를 하기로 하였다니, 요즘 들은 소식 중 가장 반가운 것이다.

    "무림의 고수들 다 모였다"

    조희연 교수(성공회대, 사회학)는 “싱크탱크들의 성과를 공유하고, 서로 간의 피드백(feedback)을 얻기 위해”라고 소박하게 말했고, 손석춘 원장(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은 “무림의 고수들이 다 모였다”며 기대를 드러냈다.

       
     ▲ 지난 11월 24일 10개 싱크탱크 합동 연속 토론회가 김대중 도서관에서 열렸다.
     

    몇 차례일지 모를 연속 토론회의 첫 번째 토론회가 지난 금요일 열렸다. 김대중 도서관에서 열린 <한국 경제의 대안을 찾아서>에서는 신정완 교수(성공회대, 노동경제학)의 「한국경제의 대안적 체제 모델로서 ‘한국형 사회적 시장경제 모델’ 구상」과 김병권 연구센터장(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노동 중심 국민경제론’과 한국경제의 대안찾기」가 발표, 토론되었다.

    신정완의 ‘한국형 사회적 시장경제 모델’은 두 가지 전제 – “다소의 무리를 무릅쓰고 가능한 한 대안적 경제체제 모델의 종합적 상(像)을 그려 보려 시도하였다”와 “시지평이 아주 장기는 아니다. 사회주의 체제나 생태주의적-공동체주의적 대안 등 자본주의 체제와 원리적으로 다른 체제에 대한 구상을 배제한다”는 두 지점 사이에 ‘모델’의 위치를 둔다. 신정완 논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한국은 물적 부존자원이 매우 빈약한 반면에 초고학력화로 인적자원의 중요성과 가능성이 매우 높은 편이다. 이에 따라 노동정책과 사회복지정책이 긴밀히 연계되어 추진될 필요성이 높다.

    점진적 혁신보다는 급진적 혁신이 중요한 첨단산업 분야로 한국의 산업구조가 변화되어 갈 가능성이 높다. 이는 유럽대륙형 자본주의보다는 IT 산업, 의료업 등에서 경쟁력을 보이는 스웨덴, 핀란드 등 사민주의적 경제와 유사한 경제체제로 나아가는 것이 적합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북유럽 ‘사민주의적 경제모델’ 지향

    그러나 전통적인 생산재 산업 및 내구소비재 산업의 비중도 상당히 큰 편이기 때문에 점진적 혁신에 적합한 제도의 유지나 도입도 무시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이 점에서 하위 제도들 사이에 ‘제도적 보완성’(institutional complementarity)이 확보되어야 하고, 단일한 제도 클러스터가 아니라 ‘복선형 제도 클러스터’(double-tracked institutional clusters)를 구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결론적으로 한국경제가 향후 지향해야 할 모델은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등에서 정착된 ‘사민주의적 경제’ 모델과 가까운 것이어야 한다. 국가는 공교육에 대한 투자 강화를 통해 일반적 숙련 수준을 제고하고, 학교 교육과 산업수요 간의 간극을 줄여주고, 평생학습기관들을 설립하여 사회구성원들의 지식수준과 학습능력, 기술구조 및 산업구조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높여주어야 한다.

    중단기적으로는 각종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급여 수준은 북유럽보다 비교적 낮게 유지하더라도 국민적 동의에 기초하여 조세-지출규모를 꾸준히 늘려가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나는 신정완의 발표를, 한국의 노동력 특성과 산업 특성상 북유럽 사민주의 모델로의 발전 시도가 합리적이고 바람직하며, 전통산업의 존재와 정치사회적 준비 정도를 보아 ‘낮은 스웨덴’을 먼저 지향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저항적 연대에서 대안적 전선으로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은 지난 여름, 『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을 내놓았다. 김병권 연구센터장이 발표한 ‘노동 중심 국민경제론’은 그 책의 문제의식을 함축한 것이다. “저항적 연대에서 대안적 전선으로, 특정 측면 보완책에서 원리적 차별성으로, 특정 국면 대책에서 변혁적 현실성으로” 등을 지향한다는 김병완 발표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북유럽 모델도 넘어야 한다. 북유럽 모델은 ‘자본의 힘이 국가의 힘을 능가해 버렸다는 점’이나 ‘노동의 조직적 힘이 타협의 한 주체로 서기에는 무력해졌다’는 측면만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인 북유럽 모델 수용이 경제를 주도하는 메커니즘을 그대로 둔 채, 경제외적인 보완책으로 흐를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 세기말부터 일어난 IT혁명을 필두로 바이오, 나노혁명 등의 기술혁명과 포드주의적 소품종 대량생산시대를 지나 다품종 소량생산시대 돌입은 정신기술노동의 ‘창의성, 자율성, 다양성, 협력성’을 중시하게 만들었다. 이런 판단에서 ‘노동주도형 국민경제 모델’은 ‘정신기술노동이 선도하는 질적 생산의 시대’를 적극 반영하여 세운 경제대안 모델이다.

    경제발전 주도 국가 중심성 시대는 사라졌다

    국가가 경제발전의 주도성을 가지는 시대는 지났다. 경제발전의 주도자로서의 국가는 이미 막을 내렸고 역사적 과거형이다. 새사연은 국가 주도와 시장 주도를 넘는 노동 주도, 국민 주도 모델을 지향한다.

    성장은 자본에게 맡기고 분배를 요구해 복지를 펴온 서유럽 사민주의를 한국의 진보에서 당연한 것처럼 인식해왔는데, 이것은 ‘민중이 사회의 이니셔티브를 쥐고 나라를 책임지겠다’는 진보의 핵심적 취지에 정면으로 위반된다. 새사연의 경제대안은 누가 한국경제를 주도할 것인가 하는 주동성의 관점에서 보려는 시도이다.

    고용 국가 책임제로 노동 창의성 보장과 비정규직을 해소하는 노동시장 정책, 공공금융기관 지원 아래 산업자본을 강화하는 자본시장 정책, 공공성과 국민경제에서의 주도적 역할을 강화하는 공기업 정책, 공공주식회사를 도입하는 기업 지배구조 정책, 목적의식적으로 벤처 신기업 창업을 독려 지원하는 산업 정책을 펴야 한다.

    ‘실현경로’가 고려되지 않은 ‘대안모델’은 책상 위의 스케치일 뿐 현실 사회과학이라고 할 수 없다. 민중항쟁과 선거혁명 모두 옳지 않다. ‘정권교체 → 제도교체 → 사회 전 영역에서의 주도성 교체’를 대안경로로 고려해야 한다. 다수 국민 직접 참여, 직접 통제, 자율 집행이 대안경로의 원칙이다”

    송태수(대안연대 운영위원)는 신정완 모델이 “경제 규모가 제도에 미치는 영향, 대외시장과의 관계를 모델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진한(진보정치연구소 상임연구위원)은 신정완 모델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고도성장 컴플렉스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의문을 제기하고, 새사연 모델에 대해 “구체성이 없이 컨셉만 나열했고, 고위험(high risk)의 벤처에 국가가 투자하는 것보다는 중소기업과 지자체가 연계하는 이탈리아식 클러스터가 합당하다”고 주장했다.

    ‘노동중심 국민경제론’ 구체성 없이 컨셉만 나열 

    신동면(코리아연구원, 경희대 행정학, 사회복지학)은 신정완 모델에 대해 “조정시장경제 국가들도 서로 다른 복지모델을 가지기 때문에, ‘제도적 보완성’이 이에 맞추어 더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지적하는 한편, “대안은 상황에 대한 올바른 평가로부터 나와야 하는데 새사연은 사회민주주의 모델을 잘못 평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신정완은 “박정희 시대 같은 고성장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느 정도의 성장이 지속되어야 하는데, 이는 북한 변수로 인한 국방비 요소, 복지 지출로는 해결할 수 없는 과다한 자영업 비율 때문”이라고 답했다. 김병권은 “국가가 벤처 중소기업을 주도하고 투자하는 대만 모델은 충분히 도입 가능하다”고 답했다.

    신정완 논문은 여러 차례 개비 보완된 것이고, 새사연 모델은 많은 사람들의 꽤 오랜 토론을 거쳐 나온 것이다. 논문을 꼼꼼히 읽지도 못한 상태에서 이런 구상들에 대해 왈가불가해야 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비판하자면, 내 생각은 이렇다.

    신정완 모델은 스스로가 진단한 이중 구조(double track)가 아니라, 전통산업-첨단산업-복지산업의 삼중 구조(triple track)일 수 있다. 왜냐하면 전통산업과 첨단산업에 요구되는 노동숙련 기간과 고용특성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전통산업과 첨단산업의 비율 관계, 그리고 그 시간적 변천에 따라 복지 수요 특성이 변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에 맞추어 어떤 복지를 어떻게 공급할 것인가 역시 모델의 핵심 요소로 설계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새사연 모델의 인식 전제인 과학기술혁명과 다품종 소량생산, 정신기술노동에 대해서는 조금 더 가치 판단을 해야 할 듯 하다. 20년 동안 1,500만 대를 생산한 포드 티 모델(Ford model T)보다 더 많은 연간 500만 대를 현대차가 생산하고 있는 현상은 어떻게 파악할 것인지? 노동의 정신적 고도화는 자본축적 기술축적에 따른 노동숙련 장기화 경향, 즉 자본주의의 오래되고 일반적 현상은 아닌지? 과학기술혁명이니 지식혁명이니 하는 미래학 가설과는 달리 노동에 대한 자본 지배력의 강화가 냉정한 현실이 아닌지?

    새사연 모델에는 세 개의 내부 괴리가 있다. 현실에서의 국가 축소를 인정 또는 긍정적으로 용인하면서 공공 주도를 지향하는 괴리, 지향하는 경제모델의 작동 원리보다 월등히 높은 직접민주주의적 정치를 설정하는 괴리는 앞으로 보완 가능하거나, 내 오독일 수 있다.

    가장 심각한 괴리는 ‘노동 중심’에 대한 강조가 개별적 경제 투입 요소로서만 반복되고, 정치사회적 집합 주체로서의 노동계급은 부정되거나 간과된다는 점이다. 이런 이데올로기와 현실태는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과 조선노동당이 지배한 국가에서 이미 보았던 것이 아닌가?

    이 날의 토론회에 대해 이병천 교수(참여사회연구소, 강원대 경제학)는, “구체성이나 상상력에서 일반 토론회 수준을 크게 넘지 못하고 있다. 머리 잘 굴리거나 좋은 말 해서 될 일이 아니다. 호흡을 길게 가지자”고 촌평했다.

    내 짧은 경험으로는, 일의 성과는 일하는 팀을 짜는 데에서 대부분 결정된다. 학술과 운동을 아우르고, 사상적 편차도 꽤 넓은 ‘10개 싱크탱크’는 판짜기에서 이미 반쯤 성공한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새 것이 나오지 않는다면 다른 곳에서 새 것을 찾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다음 달 초에 있을 2차 합동 토론회에서는 진보정치연구소의 「신국가전략보고서」가 발표될 예정이다.

    http://www.redian.org/bbs/list.html?table=bbs_1&idxno=255&page=1&total=77&sc_area=&sc_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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